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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똘

1980 밴드천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김규똘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08.26 17:04
최근연재일 :
2023.09.29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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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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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1,704

작성
23.08.28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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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대중음악연구회

DUMMY

목소리 없는 합주가 합주실을 가득 울렸다.

드럼의 연주가 고조될 찰나였다. 드럼 병철은 한참 연주를 이어가다, 영 맛이 살지 않는지 갑작스레 연주를 뚝 끊었다.


투웅!


대중음악연구회에는 이상할 정도로 먹구름이 연달아 드리웠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누나, 우리 입학식 공연 어떻게 해요? 보컬도 없는데.”


대중음악연구회는 보컬 문제로 한창 머리를 싸맸다. 돌연 보컬이 잠적, 탈퇴한 탓이다.


“됐어, 그런 자식 없어도. 보컬 그까짓 거 없어도 우리끼리 잘하면 돼.”


대중음악연구회의 서클장, 강미선은 눈을 흘기며 몇 주 전 자신과 싸워 서클 탈퇴한 보컬 놈을 저주했다.


“다 누나랑 싸워서···. 성질 좀 죽여요.”


베이스 성호가 볼멘소리로 중얼거렸다.


“우리 성호도 머리채가 잡히고 싶구나.”


미선과 머리채 잡고 싸워 탈퇴한 서클 멤버가 몇이었더라. 성호는 세기를 포기했다.

그렇다고 마냥 미선을 탓할 수는 없었던 게, 탈퇴한 자식들은 서클 회장 미선을 먼저 깔보고 나섰던 놈들이었다.


“잔소리 말고, 우리는 우리 음악을 하면 돼. 이런 걱정할 시간 있으면 한 곡이라도 더 쳐.”


카랑카랑한 미선의 지시에 다시 합주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다들 다시 합주에 몰두해있을 무렵, 이상한 남학생 한 명이 불쑥 나타났다.


“저 그 기타 좀 칠게요.”


또랑또랑 맑고 순한 눈을 한 남자가 불쑥 찾아왔다. 서클 가입 기간도 아닌데 대뜸 서에 가입하면 안 되느냐 묻는 남자.


도대체 저 남자는 무엇인가.


범생이 같은 얼굴을 해놓고, 기타를 친다고 하지 않나, 노래를 부른다고 하지 않나. 그러면서도 집에 기타는 없다는 저 남자는 대체?


미선은 무턱대고 합주실에 들어온 이 남자가 궁금해졌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를 같이 합주하자고 말하는 남자.


그래서 기타를 쥐여줬다. 쥐여줬더니-


‘이게,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이 작은 합주실이 제가 주인공인 무대인 것마냥 날고 튀어오른다. 원곡을 편곡하다시피 한 개성 강한 연주.


하지만 결코 하모니를 무시하지는 않았다.


드럼의 소리를 무시하지 않고 제멋대로 뛰쳐나가지 않았다.

이 남자는 ‘합주’하는 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기타를, 베이스를, 드럼을, 건반을 듣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낯설다. 하지만 정말 좋다.’


뼛속까지 찌르르 울리는 음악적 쾌감.

지금까지 3년간 대중음악연구회를 하며 이렇게 소름 돋는 합주가 있었던가.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 남자가.

이 남자의 연주가.


몽환적이고 강렬한 도입부.

가슴을 울리는 기타 선율.


편곡 수준의 자유로운 연주였지만, 이건 분명 산울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였다.

그때도 지금도 파격적인 3분의 사이키델릭한 기타 독주. 그리고 그 뒤를 잇는 포크 록.

처음 나온 78년 이후부터 수도 없이 들었던 곡이다.


하지만.


‘이렇게 독특한 연주는 처음이야.’


지금까지 이런 연주를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지금껏 들어본 기타 연주 중 이런 개성 강한 연주는 처음이었다.


강렬한 스트로크, 생긴 것과 다르게 박력 있고 야성적인 비브라토.


‘얼굴은 영락없는 범생이인 주제에, 제법인데.’


미선은 못 견딜 만큼 이 남자의 다음 연주가 궁금했다.


지극히 시적인 가사가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젠장, 어떻게 목소리까지 좋을 수가 있어? 이건 반칙이지!’


미선은 튀어나오려는 욕을 애써 씹어 삼켰다. 뭐 저런 남자가 있을 수 있는지.


범상치 않은 발성과 울림통.

시를 읊는듯한 어조.

계속 곁에 두고 듣고 싶은 허스키한 목소리.


모든 게 독특하고 모든 게 의외였다.

이런 얼굴에서 이런 박력이라니.


이 남자는 우리 대음연에 내려온 천사? 아니면 귀인?


미선은 완전히 압도되었다.


*


맞춰보지도 않은 상대와 6분여의 대곡을 틀린 곳 없이 완창했다. 오래간만의 합주라, 자중하지 못하고 나 혼자서 너무 내달린 것 같았다.


이렇게 혼자 자아도취된 연주를 듣고도 과연 합격시켜 줄 건지 의문스러웠다.


‘아쉬운데. 안 된다고 하면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할까.’


조마조마할 무렵.


“합격. 그냥 합격이야. 너희들 이의 있어?”

“있을 리가요.”


타이밍 좋게 떨어지는 합격 목걸이.

너무 좋은 나머지, 옆에 있던 베이스와 기타에게 어깨동무한 뒤 방정맞게 방방 뛰었다. 그만큼 좋았다.


“합격! 합격!”


둥글게 둥글게 방방 뛰며 연신 ‘합격! 합격!’을 외쳤다.


“네, 네···. 축하드려요.”


어째서인지 기가 반 이상은 빨린 얼굴인 듯한 베이스와 기타는 반쯤 흐느적거리며 고개를 건성으로 끄덕였다.


“그만하고 앉아요.”


더 이상 보다 못한 서클 회장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넵.”


기타와 베이스를 놓아주고는 기합이 팍 들어간 얼굴로 앉았다.


“일단 대중음악연구회에 들어온 걸 환영해요. 저는 서클 회장 강미선이에요. 건반 담당이고, 곧 4학년. 23살이고요.”

“저는 국어교육과 2학년, 장기현, 24살입니다. 호칭을 어떻게 할까요?"


미선 씨? 사실 여자랑 그렇게 친하지는 않아서, 또래 여자의 이름을 각 잡고 부르기에는 낯간지러웠다.


"말 편하게 하세요. 저는 아직까지는 존댓말이 더 편해서. 편하면 그때 편하게 말 할게요.”

“저는 오빠라고 부를게요. 오빠는 그냥 반말로 이름으로 불러도 되는데, 뭐··· 그렇게 해요. 그리고 이쪽은 드럼 최병철, 베이스 민성호, 기타 민성현. 병철이랑 성호는 스물둘, 성현이는 스물셋. 참고로 성호랑 성현이는 형제.”


미선은 대음연 멤버들을 기현에게 한 명씩 소개시켜주었다. 드럼을 맡은 병철은 헬스를 꾸준히 하는 건지, 어깨가 우람했다. 성호와 성현은 말수가 적은 내성적인 형제였다.


“소개를 마쳤으니, 이제 본론. 우리 대중음악연구회는 일 년에 총 두 번 연주회를 해. 첫 번째는 입학식 공연, 두 번째는 학교 축제. 일단 고정된 공연만 두 번이고, 일정에 따라 더 추가될 수도 있어.”

“그럼 지금은 입학식 공연을 준비 중이었겠네요.”

“말해 뭐해. 그 싸가지 없는 새끼가 나가지만 않았어도··· 아니다, 됐다. 말해 뭐하겠냐. 입만 아프지. 이렇게 덕분에 기현 오빠가 들어왔으니 된 거지. 기현 오빠는 개기거나, 나가거나, 잠적하거나 하지 말고요.”


당한 게 많은 모양이다. 미선은 한참 우다다 쏟아내다, 지성인답게 화를 내리눌렀다.


“그래서 무슨 곡을 준비 중이었어요?”

“레드 제플린 알아?”


당근 빳따죠. 영원한 GOAT 레드 제플린을 모를 리가.


“레드 제플린을 모를 리가.”

“의외로 모르는 사람들이 꽤 많아서 물어봤어요. 여튼, 레드 제플린의 Black Dog(블랙독) 외 네 곡을 준비 중이었어요.”

“블랙독이라···. 블랙독이 첫 곡인가요?”

“자세한 곡 순서는 정하지는 않았는데, 아마도 첫 곡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아주 잘 아는 곡이다. 하드록, 블루스록 계열로 평소에 다루던 장르와는 살짝 다른 장르의 계열이지만, 이런 명곡을 모를 리가.

3옥타브 미까지 고음이 도달하는 미친 난이도의 곡.

보컬인 로버트 플랜트도 목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3옥타브 도로 낮추어 불렀다던 곡.


“보컬이 노래를 잘 불렀나 봐요? 블랙독을 할 정도면.”

“노래는 그냥저냥 봐줄 만한 정도? 뛰어나지는 않았고. 그냥 그 자식이 레드 제플린에 꽂혀서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거예요. 지 주제도 모르고.”

“가랑이 찢어지기 딱 좋은 곡인데.”


아무리 잘 불러도 중박인 미친 난이도의 곡. 정말로 어중간한 사람이 부르면 가랑이 찢어지는 곡이다.


“그래서 오빠가 원하면 바꾸려고 해.”

“바꿔요? 음···.”


3옥타브 미라···. 해보지는 않았지만 가능할 듯도 한데.

하지만 지금까지 만든 곡 중 3옥타브 미까지의 고음은 없었다.


“그냥 일단 지금 불러보면 안 돼요? 블랙독이라면 저도 잘 아는 노래고. 악보 있어요?”

“당연히 있어요. 좋아요, 해봅시다.”


*


무반주로 지르며 시작하는 강렬한 첫 도입부.

얼마만큼 해낼 수 있을까. 미선은 저절로 침이 삼켜졌다.

기현이 첫 도입부를 내지르는 순간.


“Hey, hey, mama, said the way you move gonna make you sweat, gonna make you groove!”


‘됐다!’


미선은 쾌재를 지르며 아랫입술을 피날 것처럼 깨물었다. 웃음이 비집어 나왔다. 그것도 자꾸만.

저게 다 잡은 고기라니. 저게 내 가두리 양식장 안에 있는 고기라니.


저 정도면 지를 수 있었다.

아니, 지르고도 남았다.


그 뒤로 보컬을 답가하듯 뒤따르는 야성적인 멜로디.


기현의 허스키한 보이스와 레드 제플린의 블랙독이 미친 듯이 잘 어울렸다.


‘어떻게 사람 목소리가 저렇게 고통스러운 기미 없이 편안하게 올라갈 수가 있지?’


기현의 목소리는 곡이 끝날 때까지 음 이탈 없이 짱짱하게 지속되었다.


먼저 탈퇴한 그 녀석에게 잠적해줘서 고맙다고 절이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작가의말

오늘의 곡

HEART- Magic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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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1

  • 작성자
    Lv.20 태양파덜
    작성일
    23.08.29 21:40
    No. 1

    남자가 군대다녀오고 2학년임 복학생 아님?
    그럼 동아리장이 반말함 안돼지 않음?
    80년대면 2년6개월인데 3년 차이에 학번이 위 학번 같은데?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5 김규똘
    작성일
    23.08.29 22:00
    No. 2

    감사합니다 ^_^ 제가 문과라 계산을 잘못했네용 가끔 나이 계산 틀리곤 합니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99 악한ARKHAN
    작성일
    23.09.10 14:36
    No. 3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몇 가지 시대 오류가 보여요.
    1. 90년대 까지도 대학은 무조건 학번이 갑이었습니다. 학번도 나이도 위인데 동아리 선배고 뭐고하는 개념이 있을리가 없었죠. 사실 80년대고 뭐고 요즘 대학에서도 동아리 먼저 들어왔다고 선배대접을 받는다는건 상상이 어려운데요. ㅎㅎㅎ

    2. '동아리'라는 표현은 80년대 이후에 우리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이전에 '서클'이라 부르던 걸 '동아리'라고 변경한 것이었습니다. 1980년이 배경이었다면 '동아리'라는 말이 벌써 등장할 수는 없겠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5 김규똘
    작성일
    23.09.10 14:52
    No. 4

    헉 그렇군요 말씀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그 당시에 대학 생활을 해본 적 없다 보니, 시대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짚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수정하겠습니다 ^^! 호칭 관련해서는 가능하다면 서서히 수정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81 re******
    작성일
    23.09.14 08:51
    No. 5

    오빠는. 거의 안 씀. 형ㅡ선배ㅡ학형. 등이 당시 풍조.

    물론 개인으로 오빠라고 할 수도 있기는. 함.

    찬성: 4 | 반대: 0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3.09.14 13:12
    No. 6

    잘 보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인디고블루
    작성일
    23.09.18 03:52
    No. 7

    글쎄요. 저도 80년대 음악 동아리 출신인데 학번보다 기수였어요.
    늦게 들어온 학번 선배일 경우 서로 존대했었죠.
    같은 기수면 학번 달라도 말놓고 지내는 경우도 있었고.
    일년 후배 기수인데 저보다 나이 많은 후배는 지금도 제게 형이라고 합니다.
    학과에서도 그래서 족보 꼬이는 경우도 많았고, 그런데 그 기준이란게 학과 동문 써클 모두 다른 사회라고 받아 들였던것 같습니다.
    밖에서는 선배라도 여긴 다른 사회니까 후배가 될 수 있다는 거죠.
    학교 마다 다를 수도 있으니 제 경험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일단 대학 들어가는 순간 성인이니까 학번이든 써클이든 후배라도 처음부터 말 놓다는건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보자마자 후배니까 말 놓는 문화는 90년대 이후 생겨난 듯.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99 스티븐식칼
    작성일
    23.09.26 13:30
    No. 8

    80년에 군대 제대했으면 33개월(2년 9개월)입니다.
    군대 안다녀왔으면 이미 졸업했겠죠.

    여자 후배가 오빠라는 호칭을 쓸 정도면 꽤 친밀한 관계이던 시절입니다.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87 뇌활단
    작성일
    23.09.26 15:59
    No. 9
  • 작성자
    Lv.87 뇌활단
    작성일
    23.09.26 16:03
    No. 10

    호주하드록 ACDC좋아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6 팔지마소
    작성일
    23.10.11 18:23
    No. 11

    구락부라고 하기도 했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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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 밴드천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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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성북동 공주님, 강미선 +3 23.09.02 4,098 121 11쪽
8 국어교육과 장기현, 꿈은 시인 +4 23.09.01 4,123 114 10쪽
7 우리 음반 하나 냅시다 +7 23.08.31 4,183 109 10쪽
6 이게 이 곡이라고? +10 23.08.30 4,245 117 11쪽
5 선언 +7 23.08.29 4,264 123 11쪽
4 저 사람 괴물 아녜요? +7 23.08.28 4,425 113 10쪽
» 대중음악연구회 +11 23.08.28 4,574 121 9쪽
2 80년, 동명이인 장기현 +10 23.08.27 4,858 121 11쪽
1 1980년에 떨어졌다 +11 23.08.26 5,988 13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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