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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똘

1980 밴드천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김규똘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08.26 17:04
최근연재일 :
2023.09.29 19:20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129,998
추천수 :
3,724
글자수 :
171,704

작성
23.08.29 21:00
조회
4,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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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글자
11쪽

선언

DUMMY

요즘 기현이 이상했다.

말 잘 듣는 아들, 범생이 아들이었던 기현이 요즘 계속 통금 시간 직전에 집에 들어왔다.

기현의 아버지 장기철은 기현이 밥 먹듯 집에 늦게 들어오기 시작하자, 기현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얘가 어디서 뭘 하고 돌아다니는 건지.

위험하게 학생운동 하고 돌아다니는 건 아닌지.

시대가 시대인 만큼 유효한 걱정이었다.


그런 걱정이 들면서도, 지금 이 학업에 매진해야 할 중요한 시기에 왜 쓸데없이 돌아다니기나 하는 건지 괘씸한 감정이 불쑥 솟기도 했다.


합주하느라 요즘 매번 통금 직전에 집에 들어오기 일쑤였다.

통금은 무슨, 매번 저녁 식사 전에 들어오던 기현이 요즘에는 통금 직전까지 밖에서 시간을 보내다 집에 들어오니, 가족들은 이상한 눈초리로 기현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기현아.”


오늘도 밤 11시 즈음해서 귀가한 기현을 기어코 아버지가 붙잡았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시각, 몰래 2층 그의 방으로 들어가려던 작전은 보기 좋게 실패하고야 말았다.

제 발이 저린다고, ‘아 오늘이구나’ 직감한 기현은 알아서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었다.


“너 왜 요즘 늦게 들어오니?”


아버지는 엄한 목소리로 다그치듯 물어왔다.


“죄송합니다.”

“여자친구라도 생겼니?”

“아뇨. 제 주제에 무슨 여자친구겠어요.”

“학생운동 같은 거 하니?”

“아뇨. 저 간 안 큰 거 아시잖아요.”

“그럼 뭐 하느라 요즘 늦게 들어오니? 그것도 통금 시간 다 되어서.”

“서클 해요. 밴드··· 아니다, 그룹사운드 서클이요.”


아버지는 기현의 어깨에 멘 기타를 흘끗 바라보았다. 가족에게 따로 알리지 않고 그동안 한푼 두푼 부업해서 모은 돈으로 구매한 기타였다.

아버지는 기현의 기타를 보곤 저 정체가 저것이었구나, 깨닫는 눈빛이었다.


“영어 회화 서클도 아니고 그룹사운드? 생전 노래 한 번 안 부르고 남 앞에 나서지도 않던 네가 그룹사운드를 한다고?”


아버지는 아주 의심스럽다는 눈초리였다.

그럴 만도 하다. 23년의 장기현이 빙의되기 전 80년의 장기현은 내성적 인간의 극치였으니까.


“그룹사운드가 좋아요, 아버지.”

“어디 대학가요제라도 나갈 기세구나.”


저 말뜻의 의중을 아주 잘 안다. 23년 장기현도 부모님께 들어보았으니까.

그때 기현의 부모님은 기현에게 ‘그거 해서 뭐, 그래미라도 탈 거니?’라고 말했다.

그래서 ‘예, 그래미 탈 겁니다.’라고 했다가 기현은 뺨 싸대기를 맞았다.


답이 정해져 있는 물음.

하지만 아버지가 원하는 대답을 할 리가.


기현은 아버지께 뺨 한쪽을 내어드릴 각오를 하고 선언했다. 그때도, 지금도 기현은 아주 진지했다.


대학가요제도 나가고 싶고, 언젠간··· 그래미도 타고 싶다.


그리고 내가 꼭 이루고 싶은 꿈.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오르는 것.

그렇게 오랫동안 사랑받는 명가수가 되었으면 한다.


기현은 아버지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아무래도 밴드를 대학 생활의 치기 정도로 생각하는 듯했다.


“네가 하면 얼마나 한다고 쓸데없는 데다 돈도 썼구나. 넌 그걸 꼭 해야 하는 거냐? 지금은 한창 학업에 정진해야 할 때다.”


‘네가 하면 얼마나 하니?’ 싸늘한 목소리가 비수가 되어 꽂혔다. 기현은 보지도 않고 자신을 무시하는 아버지의 고압적 태도가 진저리가 났다. 그건 80년의 장기현도 같았다.


“제가 하면 얼마나 하는 줄은 아세요?”

“그거야 뻔하지. 난 살면서 네가 노래 부르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런 녀석의 노래 실력? 기타 실력? 안 봐도 뻔하지.”


23년의 장기현은 80년의 장기현과 다르다.

23년의 장기현은 80년대의 장기현과 다르게, 부모님에게 바락바락 대들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아뇨, 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르세요. 저, 꽤 잘해요. 친구들한테 기타랑 노래로 인정도 받고요. 제가 하면 얼마나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시면서 왜 그렇게 말씀을 하세요?”


기현은 아버지를 똑똑히 바라보며 발끈한 마음을 쏟아냈다.


“···뭐?”

“저 아주 잘한다고요.”

“그래, 네가 그렇게 잘한다니 어디 대학가요제에서도 잘하는지 보자. 너라면 대학가요제, 상 하나는 타오겠지?”

“네, 그것도 잘 아시네요.”


아버지는 생전 제 말이라면 순종적으로 받들던 기현이 갑자기 반항적으로 나오자 완전히 당황하고야 말았다.


“이, 이 자식이··· 그래. 상도 못 타오면 네 재능은 고작 거기까지밖에 안 되니, 가수하겠다고 설치던 건 깔끔하게 접고, 잠자코 교사 하는 거다.”

“좋아요. 그러죠.”


아버지와의 내기가 성립되었다.


*


요새 들어 합주를 시작하면 합주실 바깥으로 점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교수, 학생, 할 것 없이 합주실 바깥에 모여들어 합주를 듣다가 합주가 끝나면 뿔뿔이 흩어졌다.

이건 다 그 남자, 기현이 부린 마법이다.

그 남자가 오기 전까지, 합주실 바깥으로 사람들이 합주를 구경하는 이런 진풍경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온 것 같아.’


성현은 합주실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을 흘끗 바라보았다. 공간만 분리되었을 뿐, 합주실 복도는 완전히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기현이 기타를 쳤을 때, 성현은 압도적인 재능의 차이를 절감했다.

기현이 노래를 부르고 편곡을 했을 때는 그 재능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다.


성현은 기현이 20년 이상 기타를 치고, 21세기 대한민국화 된 작곡과 입시에 길들여진 남자라는 것을 일절 모를 터였다.


‘저게 재능이구나.’


성현은 제게도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비교적 배우는 게 빨랐고.

기타에 감각 있다는 칭찬도 받곤 했었고.

기타를 잘 치기도 했었으니까.


하지만 그의 기타를 듣자, 자신의 재능은 재능도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비로소 ‘재능’이라는 단어를 이해하게 된 순간이었다.


숭고할 정도로 찬란한 재능에 질투 하나 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터.

성현은 그의 발끝이라도 따라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밤새 기타를 붙잡고 씨름을 하고, 그처럼 쳐봐도 계속 고꾸라지기만 할 뿐이다.

성현은 기현의 옆에서 묵묵히 기타를 쳤다.


오늘은 다섯 곡을 다 부르고 난 뒤에도 사람들이 바깥에 꽤 모여있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듯 서성거리는 사람들 앞으로 가장 문 가까이 있던 성현이 나섰다.


“무슨 공연 준비하시는 거예요?”

“저희 입학식 때 공연해요.”


아니나 다를까, 문을 열자마자 질문이 쏟아졌다.


“노래 너무 잘 들었어요. 노래 부르시는 분 노래랑 기타 정말 미쳤던데.”

“그렇죠? ···저도 저희 보컬 기타 정말 좋아해요.”


성현이 기타를 치는 한, 그는 기현의 기타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불가항력적인 일이었다.


*


-마지막으로, 한국대학교의 그룹사운드 서클, 대중음악연구회의 축하 공연이 있겠습니다.


대중음악연구회 멤버들은 무대 바로 뒤에서 차례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공연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무대 뒤에서 차례를 기다릴 때면 항상 긴장감이 올라왔다.

그게 어떤 무대든, 긴장이 됐다.


‘하지만 기분 좋은 긴장이다.’


이 정도 긴장이라면 충분히 즐길 만하다.

특히 오늘 공연은 80년대로 온 이후로 처음 갖는 무대. 가슴이 세차게 두근거렸다.


“우리 구호라도 한 번 외치고 들어가요.”


들뜨는 고양감에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구호? 구호는 뭐로?”

“아자 아자 파이팅?”

“에이, 그건 너무 평범하다.”


구호 한 번 외치고 가자는 기현의 제안에 대음연 멤버들이 한데 모였다.


-대중음악연구회, 10초 뒤 곧 순서입니다!


순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구호 따위 정할 시간이 없었다.


“아자 아자 파이팅!”

“대중! 음악! 연구회!”

“대음연! 파이팅!”


급한 마음에 하나로 통일되지 않은 각양각색의 구호가 자기들 멋대로 입에서 튀어나왔다.


-지금 나가세요!


한국대학교에서의 새 출발을 기대하는 신입생들이 모여있는 이 체육관에서 대중음악연구회가 축하 공연을 갖는다.


‘이쪽 세계에서의 첫 공연···.’


기현은 눈을 꾹 감고 크게 숨을 훅 내쉬었다. 저 많은 사람들이 오로지 자신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도 기대되지 않는다는 눈빛이다.


‘그래, 기대되지 않겠지. 하지만 그 생각 뒤엎어주겠어.’


기현의 마음속에서 투지가 불타올랐다.

대학생 서클? 다 거기서 거기지, 하는 생각을 보기 좋게 뒤엎어주리라.


병철이 드럼스틱을 네 번 치며 곡의 시작을 알렸다.


탁, 탁, 탁, 탁!


배꼽에서부터 끌어올린 성량으로 첫 번째 가사를 내지른다.


시원하고 짜릿한 고음.

기현은 관객들에게 주문을 걸었다.


이 노래를 들으면 가만히 있을 수 없을 거야.

너도 모르게 그루브를 타고 리듬을 타게 될 거라고.

그러니, 나랑 함께 춤추자.


도입부만 들었을 뿐인데, 이제는 어떤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진다.


이제껏 총장과 내빈들의 축사에 지쳐 있던 학생들의 시선이 무대로 순식간에 이끌린다.


기대하지 않았던 눈빛이 순식간에 기대감으로 가득 찬다.

가라앉았던 장내가 콘서트장마냥 일순 후끈 달아오른다.

난생처음 듣는 곡임에도, 몸은 자꾸만 리듬을 타며 움찔거렸다. 기현의 주문이 통했다. 이 노래를 듣고도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새학기의 첫 공연.


이 정도로 많은 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노래를 귀 기울여 들어준 적이 있었던가.


23년의 장기현은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다.


관객들은 외면하지 않고, 돌아서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을 바라보며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미인에서는.


강렬한 드럼 비트 위로 첫 소절이 얹히자, 함성이 울렸다. 환호하고 있었다.

모두에게 익숙한 노래가 나오자, 사람들은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따라 불러주고 있어. 이게 가능한 일이었나?’


공연장을 방불케 할 만큼 폭발적인 반응이 일었다.


이 광경 앞에서 기현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80년대의 장기현의 몸으로 빙의한 일도.

다시는 23년의 장기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도.


‘이젠 상관없어.’


제 노래만 들려줄 수 있다면.


신입생들뿐만 아니라 그에게도 새 출발이 되는 공연.


기현은 더 이상 제 본 모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뻤다.


이곳에서는 노래를 마음껏 들려줄 수 있으니까.

지금처럼.


그러니, 그래. 이건 80년대에 장기현이 왔음을 고하는 선언이다.


작가의말

오늘의 곡

OK GO- Here it goes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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