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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똘

1980 밴드천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김규똘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08.26 17:04
최근연재일 :
2023.09.29 19:20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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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1,704

작성
23.08.27 10:2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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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80년, 동명이인 장기현

DUMMY

장기현.

1980년 기준 24살. 며칠 뒤 81년이 다가오니, 한 살을 더 먹는다.

서울 소재 한국대학교 2학년생.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학생.


그가 80년 장기현의 몸으로 며칠 살면서 자연스레 알아낸 것들이었다.

아버지는 한국은행에 다니고, 어머니는 평범한 주부. 누나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출신 재원.


“생각해보니 그린 듯한 가족이네. 이상적인 가족이잖아.”


장기현의 방을 둘러보았다.

몬테크리스토 백작 같은 고전 문학 소설과 한국 소설, 눈에 띄게 많은 시집들, 드문드문 섞인 교양서적과 전공 서적이 엇섞여 책장에 꽂혀 있었다.

그리고 먼지 쌓인 통기타. 분명 몇 번 쳐보지 않았을 것이다.

특이점이라고는 없는 아주 단조로운 방이었다.


이 몸의 주인께서 다이어리를 성실히 작성해주신 덕에 장기현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체득할 수 있었다.

다이어리에는 장기현의 하루 일정이 적혀 있었고, 또 국문학도답게 그동안 쓴 창작 시도 몇 편 있었다.


‘제법이네.’


다이어리를 뒤적거린 결과 이 녀석은 시인이 꿈인 듯했다.

하지만 과연 아버지가 이 녀석이 시인이 되도록 가만히 두었을까 싶기는 하지만.


장기현의 생활은 아주 평화롭게 흘러갔다.

다이어리를 살펴본 결과, 강의가 있는 날에는 강의를 가고, 도서관에 간다. 요즘 같이 강의 없는 날은 도서관에만 가는 전형적인 내성적 범생이.

물론 마냥 용돈만 타먹지는 않고, 일주일에 세 번 세무서 사무 보조 부업도 했다.


게다가 그 며칠 사이 장기현을 찾아오는 친구 한 명이라도 있을 법했지만, 아무도 없었다.

내성적 범생이에 아싸라니.

80년대에 사는 동명이인 장기현은 이름만 같을 뿐, 23년의 장기현과 완전 다른 타입의 사람이었다.


바른 생활 사나이인 80년 장기현과 달리, 그는 원래부터 영 바른 생활 사나이는 못 됐다. 군대 다녀오고 난 뒤에도 정오까지 퍼질러 잠을 자곤 했으니까.

23년의 장기현은 바른 생활 사나이에 빙의했어도, 늘 그렇듯 해가 중천일 때까지 늘어지게 잠을 잤다.


“······.”


까치집을 진 채 멍청하게 침대에 앉아 있으니, 누나가 툭툭 말을 걸고 사라졌다.


“기현이 이제 일어나니? 요즘 너 이상해. 맨날 일찍 일어나던 애가 늦게 일어나고.”

“···응. 방학이잖아.”

“방학 때라 그렇다고? 그래도 그렇지. 지금 일어나면 어쩌니? 시간이 12시가 다 됐는데. 나는 벌써 오전에 할 공부 다 끝냈는데. 누나가 누누이 얘기하지만, 공부는 오전에 해야 잘 돼.”


누나를 겪게 된 지 며칠 되지 않았음에도, 며칠 사이에 누나의 이 잔소리를 귀에 딱지 앉도록 들어, 벌써 익숙해지고 말았다.

기현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듯 건성건성 답했다.


“응··· 미안.”

“요즘 정말 이상해. 내가 알던 장기현이 아닌 것 같아. 무슨 바람이 들었길래 그래? 너 나쁜 친구들 만나니?”

“아냐···.”


정신이 아주 몽롱했다. 갓 일어난 탓이다.


“얼른 와서 점심 먹어. 엄마가 너 좋아하는 청국장 끓이셨어.”


기현은 자리를 털고 비척비척 걸어 나와, 앉은뱅이 식탁에 양반다리를 하고 철퍽 앉았다.

이 양반은 청국장을 좋아했던 모양이지.

물론 그도 청국장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한식보다 피자,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를 더 선호해서 문제지.


이때··· 롯데리아가 있었나.

기현은 불고기 버거 생각이 간절했다.

어머니가 먼저 식사를 시작하면, 그제야 숟가락을 들었다.

불고기 버거 생각을 하며 갓 끓인 청국장을 후룩후룩 머금었다.


“너 곧 있으면 복학이잖아. 계획해 둔 건 있는 건 있어?”

“글쎄··· 못했던 서클을 좀 해보려고.”


청국장과 밥을 비벼 입으로 쏙 집어넣었다. 우물우물 입안 가득 씹으며 웅얼거렸다.


“서클 좋지. 경험 넓히는 데에도 좋고.”


누나는 아무래도 기현이 영어 회화 서클이나, 사회 봉사 서클 같은 뜻깊은 서클에 가입할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진짜 장기현이라면 물론 그랬겠지.


하지만, 설마 기현이 그럴 리가. 밴드맨은 당연히 밴드 서클을 들어야지.


“이상한, 맨날 술 퍼먹고 그런 서클 들면 안 돼. 물론 알아서 잘 하겠지만.”


그럼 당연하지. 술 안 먹고 밴드 해줄게.


“엉.”


누나는 성실한 모범생 딸이었다. 품행도 바르고 똑 부러져서, 어딜 가나 모범이 되는, 서울대생 딸.


“그나저나 오늘 부업 있니? 아니면 학교 도서관 가서 공부하니?”

“오늘은 학교. 이거 먹고 바로 갔다 오려고.”

“몸조심해.”


이곳 장기현은 아주 단란하고 화목한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듯했다.


집안도 누나와 기현 모두 대학교까지 보낼 정도로 제법 넉넉했다. 아버지는 비교적 엄한 편이었고, 어머니는 자상했다.

어찌 보면 평범하다고도 할 수 있는 집이고, 또 어찌 보면 자기소개서에나 나올 그린 듯한 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집이다.

어찌 되었든 그런 집이 바로 기현의 가족이었다.


기현은 한 그릇을 다 비우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뱉은 말은 지켜야 한다고, 도서관 가기 귀찮아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녀올게요.”

“늦지 않게 와.”

“네에.”


12월. 한창 동장군이 기승일 날씨. 대충 옷을 껴입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80년대에 살던 장기현은 조금 앳되게 생겨, 아무리 봐도 군필 24살 남성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버스 창에 얼굴을 비춰보며 고뇌에 빠졌다.


‘음, 어디 좀 삭고 지쳐 보여야, 아 얘 기타 좀 치는구나 싶은데. 밴드맨으로서는 영 꽝이구만.’


이러나 저러나. 연주자는 연주로 보여주면 되는 법. 20년을 넘게 기타를 치고 노래했다. 실력 하나는 자신이 있었다.


80년대의 한국은 산울림과 신중현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대학가요제와 강변가요제에서 밴드 음악이 쏟아지던 시기였다.


어디 대한민국뿐인가. 비틀즈는 70년대에 들어서면서 해체 수순을 밟긴 했지만, 폴 매카트니가 그 빈 곳을 채워주고 있었고, 롤링스톤즈와 퀸이 왕성하게 활동하며 밴드 부흥을 이끌었다. 그야말로 이 시대는 밴드의 시대였다.


‘한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


통기타 하나로 학생 여럿이서 신중현의 미인을 열창하는 시대.


기현에게는 꿈이 하나 있었다.


2007년부터 선정되는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거기에 당당히 제 음악이 선정되는 것.


음악방송 1위? 음악 차트 1위? 욕심 나지 않았다.

그것보다도 오랫동안 사랑받고 인정받는 명반이라는 타이틀이 더 탐이 났다.


소박하다면 소박하고 크다면 큰 꿈이다.


어쩌면··· 여기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기현은 삼삼오오 모여 한가롭게 음악을 즐기는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리드미컬한 멜로디가 귓가를 쿵쿵 울렸다.


밴드부, 밴드부에 가입하자. 밴드부에 가입해 대학가요제에 나가자.


쇠뿔은 단김에 빼고, 칼은 뽑았으면 무라도 베라고 했다. 이렇게 결심했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갈 수야 있나.

기현은 무모하게 학교 교내 서클실이 모인 학생회관으로 향했다.

도서관? 물론 근처에도 안 갔다.

누나가 본다면 지체 없이 등짝 스매싱을 날릴 것이다.


‘거기가 여기였나···.’


서클 등록 기간도 아닌데 무턱대고 찾아가는 꼴을 누군가 보면 미친놈이라고 말할 것이다. 심지어 지금은 학기 중도 아니었고, 기현은 복학을 앞둔 휴학생이기도 했다.


한국대학교의 밴드부는 세 곳 있다.


첫 번째는 풀뿌리.

이곳은 당연히 이름만 밴드부인, 사실상 학생 운동하는 곳이다.


두 번째는 뮤즈.

여기는 술 먹고, 술 먹고, 또 술 먹는 곳이다.


세 번째는 대중음악연구회.

비록 이름은 이래도, 여기는 제대로 된 진또배기 밴드를 하는 곳이다.

분기마다 공연을 열고, 꾸준히 대학가요제에 참가 신청을 하는. 하지만 지금까지 유의미한 성과는 내지 못한 듯했다.


‘대중음악연구회라는 팀명은 대학가요제 본선에 진출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해. 아마 예선에서 탈락했거나, 아예 참가하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겠지.’


대중음악연구회가 한창 연습하고 있을 합주실 쪽으로 향하면 어른어른 음악 소리가 들렸다. 악기의 소리가 퍽 조화로웠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보컬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기현은 깊게 생각하지 않고 아주 충동적으로 합주실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안에서 문이 열렸다.

여자 한 명이 아주 수상하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야마구치 모모에처럼 세련되고 도회적인 스타일의 여자였다.


“서클 가입하려고요.”

“지금 날짜가 며칠인데. 가입 기간 아닌데요?”

“알아요. 그래도 당장 가입하고 싶어서 이렇게 왔습니다.”

“저희 인원이 부족하긴 한데, 잠시만요. 당황스러워서.”


여자는 홱 뒤를 돌더니 밴드부원들과 머리를 맞대며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여자를 제외한 밴드부원 넷은 모두 남자였다.


“···쟤 미친 거 아니야?”

“저 남자··· 눈이 맑아요, 누나.”


베이스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겁에 질려있었다.

난 아무 잘못 없는데, 대체 왜?


“어떻게, 안 된다고 돌려보내?”

“뭐하고 싶은지나 들어보죠. 부족한 건 사실이니까요.”


머리를 빡빡 깎은 우직하게 생긴 드러머가 기현을 흘끗거리며 말했다.


“여기 와서 뭐 하고 싶은데요?”

“노래요. 기타도 치고요.”

“완전 범생이처럼 생겼는데···.”


영 믿지를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가 보기에 기현이란 사람은 완전히 공부만 아는 범생이 그 자체였다.


“기타 있어요?”


그러고 보니 기타가 없었다. 집에 있는 기타라고는 낙원상가에서 샀던 통기타뿐.


“아뇨.”


아주 자신 있게 아니라 말하자 대음연의 밴드부 사람들은 기현을 아주 미친 사람 보듯 바라보았다.


“에? 칠 줄 안다면서요.”

“네. 잘 쳐요.”


근거 있는 자신감이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그가 기타도 없는데 무작정 잘 친다고 우기는 줄만 아는지, 아주 얼이 빠진 표정이었다.


“그 기타, 쳐 봐도 되죠?”


기현이 기타를 손으로 가리키자, 여자가 기타 주인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이 대중음악연구회의 서클 회장인 모양이다.


“잠깐만 쟤 빌려줘.”


그녀는 얼마나 해보나 보자는 마음이 컸다. 얼마나 자신이 있기에 이렇게 자신만만한 건지 궁금하고 알고 싶었다.


기현은 기타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펜더의 텔레캐스터 모델이었다.


‘이 시대 땐 구하기 어려웠을 텐데, 신기하네.’


전에도 이 모델을 썼었다. 셈을 해보면 그다지 오랜만도 아니었지만, 왜인지 굉장히 오래된 느낌이었다.


지이잉-


스트링을 부드럽게 치자 엠프를 타고 울리는 울림이 듣기 좋았다.


무슨 곡을 할까.

그래 역시 그게 좋겠다.


작가의말

오늘의 곡

함중아와 양키스- 풍문으로 들었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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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중음악연구회 +11 23.08.28 4,576 121 9쪽
» 80년, 동명이인 장기현 +10 23.08.27 4,860 121 11쪽
1 1980년에 떨어졌다 +11 23.08.26 5,989 13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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