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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의 서재입니다.

구걸왕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5.11 12:25
최근연재일 :
2020.09.11 10:30
연재수 :
8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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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805
추천수 :
460
글자수 :
344,307

작성
20.06.02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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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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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당묘

DUMMY

세 명의 소년이 빙탕후루를 배가 터지도록 먹고,

쓰촨의 성도에 이르는 마차를 찾아 올라타기까지를 은밀히 지켜보던 시선은 마차가 성도를 향해 출발한 이후 어딘가로 사라졌다.


도로는 넓고 평탄했다.

대체로 산지가 많고 고원이 많은 쓰촨 지역에서도 청두에 이르는 길은 평원인 데다 관도로 닦여있어서 제법 넓고 깨끗한 편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차라는 것을 타게 된 왕위와 왕방은 잔뜩 흥분상태였다.


“ 야, 여기 쓰촨 지역이 옛날 삼국시대 때는 촉나라 땅이었던 거 아냐? ”


왕방은 머리를 가로젓고, 치우는 빙긋 웃었다.

속으로 왕위는 아차 싶었다.

글자도 배우지 못한 자신에 비하면 치우는 부잣집 도령이라 훨씬 배운 게 많을 터였다.

그래도 어차피 내친 김이었다.


“ 송나라 때 왕소파(王小波)의 난, 이순(李順)의 난이 일어났었고 금나라와 몽골과 싸운 게 오백 년 동안이라서 먹고 살기 힘들 정도로 백성 숫자가 줄었었다는 거야.

홍무(洪武) 대제 때부터 조정에서 대규모 이민 운동을 해서 이를 '호광전사천'(湖廣塡四川)이라 하지.

그 덕분에 살기가 좋아지고 서장지역으로 가는 상단도 발달했다곤 하는데,

따지고 보면 나나 왕방도 그때 유입된 유민들의 뿌리중 하나이니 쓰촨 본토박이는 아니라고 할 수 있지. ”


말을 마친 왕위는 왕방과 치우의 표정이 마치,

‘ 그래서 어쩌라고 ’ 라 말을 하는 듯 시큰둥해 보인 탓에 서둘러 말을 둘러댔다.


“ 흠, 흠! 말하자면 뭐 금수저가 따로 있는 건 아니라는 거지.

뭐 나라에서 나라님이 이리 가라면 가고, 저리 가라면 가는 게 백성이잖아.

자기 조상 대대로 덕을 쌓아온 고향을 떠나 완전히 새로운 땅에 가서 자리 잡는 게 얼마나 힘들겠어?

그러니 뭐 우리는 다 거기서 거기인 처지라 이거야.

어디 가서든 잘 적응하고 살면 되는 거지 너무 깊이 고민 말라고. ”


갑자기 마차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왕방과 왕위는 왈칵 앞으로 쏠려서,

소리를 치며 마차 안 의자 손잡이를 붙들고서야 간신히 나뒹굴지 않을 수 있었다.

치우는 말이 급히 멈추자 반사적으로 하체가 무거워지면서 손잡이를 붙잡지 않고도 단단하게 앉아 있었다.


“ 아이~ 아저씨. 왜 마차를 이렇게 몰아요! ”

소리를 치며 마차 문을 열려는 왕위를 치우가 가만히 손짓으로 제지했다.

“ 누군가 앞길을 막았어. ”

치우의 말에 왕방과 왕위는 조금 전까지의 희희낙락은 간데없고 순식간에 사색이 되었다.

이유가 어떻든, 치우를 민강의 뒷골목에서 구해준 이후론 하루하루가 온갖 공격과 사투의 연속인 탓이다.

무림과 무관한 밑바닥 인생이라 자처하며 살아온 두 아이에게는 가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밖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치우는 조용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한참 달리다 갑자기 멈춘 탓에 두 마리의 말은 투레질을 하고 있고,

마부석의 마부는 얼어붙은 듯 정면을 뚫어지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는 마치 강시처럼 혈색 하나 없는 괴노인,

바로 강시당 의 당묘가 도로를 막고 길 한가운데 서 있었다.


“ 미리 이쪽으로 와 있었군요. ”


치우는 놀라지도 않고 천천히 마차에서 내리며 두 손으로 읍을 했다.

당묘는 치우의 반응이 의외로 너무나 침착하자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천천히,

특유의 유령 같은 걸음걸이로 미끄러지듯 마차를 향해 다가오다 마차 앞 서너 장 거리에서 멈춰 섰다.

괴노인은 고개를 갸우뚱, 요리조리 흔들어가며 찬찬히 치우를 들여다본다.

검은색 육합모에 검은색 장포.

마치 강시처럼 보이는 옷차림과 용모에 마부는 바짝 겁에 질려 오줌을 지릴 판이다.

투레질하던 말들도 뭔가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꼈는지 제자리에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

음산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강 씨 꼬마. 그 사이에 무슨 기연을 얻었느냐?

제법 신태가 침착하구나. 왕 필은 마차 안에 있는 것이냐? ”


“ 두목이 문제는 아니오. 당신은 결국 나를 붙잡으려 이곳에 나타난 것 아니오? ”


치우의 냉랭한 말에 당묘는 킬킬대며 웃었다.


“ 하긴, 그렇지.

네가 필요한 거지, 다른 놈들은 관심 없다.

어떠냐, 어르신을 조용하게 따라갈 테냐?

아니면 죽도록 얻어맞고 가볼 테냐? ”


치우는 호기롭게 나서긴 했지만 그건 왕위와 왕방을 위해서였다.

자신이 기연을 얻었다곤 하나,

그래 봐야 기적 같은 그 내가 기공으로 배운 것이라고는 어설픈 타구봉법과,

마찬가지로 흉내만 낸 파철권과 유령부영이 전부다.

그중 유령부영은 저 강시당의 괴노인이 보여준 것을 대충 흉내를 낸 것에 불과하니,

무슨 수를 써도 노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는 글러 보였다.


“ 좋소. 그러면 대신 저 마차는 그냥 보내주기 바랍니다. ”

결심을 굳힌 치우가 고개를 들고 결연하게 말을 하자,

당묘는 다시금 킬킬대며 웃었다.


“ 꼬마야. 거래라는 건 서로가 비슷할 때 하는 거다.

어차피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저 마차를 통째 없애는 것도 가능하고,

네놈을 반 죽여서 끌고 가는 것도 가능한데 내가 왜 거래를 하겠느냐?

다만, 내 어린놈의 의기를 높이 사서 마차와 그 안의 꼬맹이들은 그냥 놓아두도록 하지.

이래 봬도 나 역시 나라에서 인정한 운송업계의 사람이다.

무슨 마교처럼 무작정 사람들을 죽이지는 않지.

죽은 사람을 운반하는 게 본래 내 본업이니까. ”


치우는 마차 안으로 상반신을 넣고 왕위와 왕방에게 말했다.


“ 아무 소리 하지 말고 가.

알잖아. 저 노인과 다툴 재주가 없다는걸.

그냥 원래 가려던 대로 가서 내 상황을 전해만 줘. ”


왕방과 왕위는 뭐라 말을 하려다 치우의 단호한 표정을 보곤 입을 다물었다.

분한 마음에 왕방의 눈가에 눈물방울이 맺혔다.


“ 괜찮아. 너희들이 있어서 다행이었어. 난 괜찮을 거야. ”


스스로에 다짐하듯 말을 마치곤 치우는 당묘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 따라오거라. “

당묘는 관도에서 벗어나 유령 같은 보법으로 숲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치우는 그 뒤를 따라 별로 울창하지 않아 보이는 숲을 향했다.

반 시진 정도 걸어 들어가자 숲 안에 시커먼 마차 하나가 서 있고,

그 말을 이끄는 말은 온통 검은색 털로 뒤덮인 모양이었다.

마차의 옆에는 ‘ 강시당’이라는 문구가 빨간색으로 그려져 있었다.

치우는 그 마차가 이전에도 이따금 서안에서 본 적 있는 강시당의 장례 운구용 마차라는 것을 알았다.


” 왜 넌 내게 반항을 하지 않지? “

당묘가 고저장단 없는 평이한 말투로 치우에게 묻자,

치우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 어차피 노인의 힘을 내가 감당할 재주는 없지 않소.

그런 바에야 무의미한 저항을 해서 무엇하오?

자, 이제 어떻게 하면 될지 말해주시오. “


당묘는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갑자기 치우의 가슴을 향해 일장을 뻗었다.

‘팍!’

소리도 거의 안 나는 가볍게 보이는 일장이 치우의 가슴을 쳤다.

치우는 대비를 하고 있지도 않았지만,

설사 미리 대비했더라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을 정도로 당묘의 일장은 번갯불처럼 빨랐다.

그다지 힘이 실리지도 않은 손바닥이 가슴을 쳐서 어리둥절하던 치우는 이내 얻어맞은 부위에서 뻑적지근한 통증이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느끼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마치 벌에 쏘인 것 같던 통증은 전신 손끝 발끝까지 뻗어나가며,

격렬한 아픔과 함께 치우의 팔다리가 마치 강시처럼 굳어간다.

나무토막처럼 변해가는 치우를 바라본 당묘는 그제야 미소를 지었는데,

아무 혈색도 표정도 없는 괴노인의 입술만 그린 듯 호선을 보이는 건 섬찟했다.


” 영문은 알고 맞아야 할거니 설명해 주마.

네 놈은 강시 독에 중독되었다.

이제 전신이 굳어서 눈알만 굴릴 수 있을 거다.

왜냐고? 하오문 쓰레기들에게 듣기에 네가 제법 어설프긴 해도 무공을 한다고 하더구나.

그러니 네가 도망칠 수 없도록 일종의 금제 禁制를 가한 것이지.

나중에 목적지에 돌아가면 해독해 줄 거니 너무 서운해하지 말아라.

나도 너로 인해 더 피곤하긴 싫으니 말이다. “


치우는 점점 전신이 무기력하게 감각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당묘는 굳어가는 치우를 한 손으로 번쩍 들어 마차 내부의 비어있던 관에 던져 넣었다.


” 강시에겐 관짝이 제격이지.

그래 봬도 그 관은 오동나무 관이다.

관 중에 제일 비싼 관중의 하나지.

그러니 너는 그 안에서 편히 잠만 자면 된다. “

치우는 점점 굳어가는 입술을 애써 열어서 당묘에게 물었다.


” 나···. 날 어디로 데려가는 것이오? “


굳어가는 가운데서도 입을 여는 치우가 신기했던지 당묘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선선히 대답한다.


” 뭐, 몰랐냐? 동창의 초 공공 제독이 쓰촨에 도착했지.

그가 너를 데려오라고 시킨 본래의 주문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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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항룡십팔장 +2 20.06.09 489 6 7쪽
33 금의위 +2 20.06.08 468 6 8쪽
32 고문 20.06.05 458 3 8쪽
31 지부 20.06.05 463 4 10쪽
30 비밀 20.06.03 477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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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부두 +2 20.06.02 497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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