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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의 서재입니다.

구걸왕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5.11 12:25
최근연재일 :
2020.09.1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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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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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307

작성
20.06.25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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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종친

DUMMY

” 나는 개황 丐皇 이다. “


개방에서도 보기 드문 거지 중의 상거지 꼴을 하고 나타난 사내.

머리는 언제 손질을 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봉두난발에,

걸친 옷은 팔다리가 다 나올 정도로 짧은데 그나마 삭아서 너덜너덜.

더운 지방인 쓰촨이라곤 하지만 금정사는 높은 고도에 있어서 제법 싸늘한 편이다.

그런데도 사내는 맨발로 나타났다.

그런 데다 수염도 제대로 손질이 안 된 상태로 듬성듬성하니 몰골이 영,

거지들의 단체인 개방도들도 이 정도는 아니었었다.

그런 사내가 뜬금없이 자신을 향해 ‘ 개황’이라고 하니 좌중의 모든 인물이 어리둥절.

특히 포달랍궁의 승려들은 더더욱 어리둥절하다.


그때,

괴인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던 왕방이 울먹이며 소리쳤다.


” 치우야! 너 치우 맞지? “


왕방의 외마디에 이번에는 금의위 황보 태우와 라마승 람림,

그리고 여빙심과 왕위,

멀리서 몰래 접전을 주시하던 금정사의 세 승려가 각각 다른 의미로 깜짝 놀랐다.


” 네가 강치우냐? “


” 치우야! 너 왜 여기 나타났어! “


앞서 소리를 지른 것은 황보 태우,

뒤에 소리친 것은 왕위였다.


” 오랜만이다. 친구들.

여 사부님. 처음 뵈오. “


좌중의 인물 중 치우의 이전 모습을 알고 있던 사람은 왕방, 왕위 둘뿐이다.

그들의 앞에 적절치 않은 상황에 적절치 않은 모습으로 나타난 치우는 그들이 알던 이년 전 치우와는 너무나 달랐다.

키는 훌쩍 컸지만, 피골이 상접한 모습.

헝클어져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얼굴은 과거 발그레하던 미소년의 모습이 없어지고 형형한 눈빛이 사람을 찌를 듯하지만,

얼굴 반쪽에 남아있는 화상의 흔적은 그가 강치우임을 증명했다.

하지만 왕위의 생각에 시기가 너무 나빴다.

어릴 때부터 눈치가 빠르고 상황 판단이 정확하던 그가 보기에,

홍모교의 무리는 그의 스승인 왕태구나 사조인 왕지홍이 함께 있었다고 해도 감당하기 어려운 무리였다.

개개인의 무공은 아닐지 몰라도 그들의 숫자와 탄탄한 조직력은 절대로 극복하기 어려워 보였다.

게다가 금의위 위사장.

그는 당연히 초 공공의 명으로 치우를 생포하라는 명을 받고 있을 터였다.


” 난 개황 강치우가 맞다.

그렇게 말을 하는 너는 누구냐? “


치우는 담담하지만, 산문을 가득 채우는 우렁우렁한 음성으로 물었다.


” 나는 금의위 위사장 황보 태우다.

너는 반역죄로 현재 수배 중이니 당장 무릎을 꿇고 오라를 받아라. “


금정사의 산문 주변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 반역’이라는 단어가 나온 순간 그곳은 이제 국법이 지배하는 공간이 된 것이다.

심지어 나라도 다른 포달랍궁의 무리조차 조용해졌다.

잠시 후 치우가 그 정적을 깼다.


” 너, 황실의 개.

개라서 사람의 말을 못 알아듣는 모양이구나.

내가 조금 전 개황이라고 말하는 것을 못 들었느냐?

나는 중원 천지 걸인들의 황제다.

내겐 내 나름의 법이 있다는 말이지.

즉, 내가 곧 법이다. “


오연한 그의 말에 산문은 다시 고요함 속에 빠져들었다.

개황이라는 말의 뜻과 무게를 알고 있는 여빙심, 왕위, 왕방은 치우가 왕지홍의 바람대로 개황의 경지를 이루었는가 하는 마음을,

아미파의 승려들은 무슨 말인가 어리둥절을,

금의위의 황보 태우는 감히 ‘황 皇’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 그의 불경스러움에 분노를,

포달랍궁의 라마승들은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어리둥절이 각자의 마음을 오갔다.


” 감히 황 자를 올려?

금빛 비단을 쓰는 것도 황제 외에는 대역죄인으로 치는 마당인데!

네가 상거지 꼴이니 거지 중의 황제라 그런 말이냐? “


” 네가 한 일은 아니지만 초 공공 그놈은 내 일가와 가문을 하룻밤에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지. “


갑자기 치우가 조용하게 말하자 좌중은 무슨 소리인가 싶어 침을 꿀꺽 삼켰다.


” 그리고 개방 쓰촨 지부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쑥대밭이 되었더구나.

살아남은 개방도는 영문도 모르고 전선에 끌려간 사람들뿐이고,

그들도 물론 남만의 밀림에서 이유도 모르고 다 죽어가겠지만. “


치우는 말을 하고, 황보 태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 오랜 시간,

뼈와 살을 깎아내며 생각했다.

대체 내가 무슨 잘못이 있어서 이런 비극을 지켜봐야 하는지 말이다. “


” 네 이놈!

네가 감히 총독을 욕하는 것인가?

너는 명의 백성이니 당연히 공공의 뜻을 따라야 하는 법······.“


” 이놈! “


갑자기 엄청난 사자후 獅子吼가 치우의 입에서 터져 나오자,

그의 정면에 버티고 서 있던 황보 태우와 라마승들 태반이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천왕문의 기왓장들이 후드득 떨어졌다.

멀리 뒤에서 지켜보던 아미파의 세 승려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 감히 환관 따위가 황제를 현혹하여 국법을 사칭하다니.

그리고 황제의 뜻과는 상관없이 사리사욕으로 국가를 어지럽히고 거병까지 하며 세 외 세력을 끌어들여 백성을 핍박하다니.

그게 바로 반역죄란 것이다.

그리고 나는. “


잠시 말을 끊고 치우가 황보 태우와 라마승들을 둘러보자,

그의 시선을 받은 무리는 저도 모르게 주저앉은 자리에서 엉거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그건 라마승들 중 치우의 사자후에 버티던 람림이나 가챠도 마찬가지였다.


” 내가 출두하면 나를 핍박하고 내 주변의 인물들에게 위해를 가한 자들은,

이제부터는 한 명도 살려두지 않기로 했다.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면 결국 더 커다란 죄를 지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


치우는 말을 마치자,

천왕문을 안에서 잠그는 데 쓰이는 걸쇠를 한 손으로 쭉 뽑아 들었다.

얼핏 보아도 그 걸쇠는 무쇠로 만들어진 것이라 스무 관( 75kg )은 넘어 보이는데,

제대로 다듬은 것은 아니라 사람의 팔뚝만 하고 울퉁불퉁한 것을 두 손가락으로 가볍게 뽑아 드니 람림과 황보 태우는 가슴이 서늘하다.


” 나는 불법은 잘 모른다만 이곳은 천년 불교의 성지 아미산이니,

이것을 금강저 金剛杵라 부르기로 하지. “


무슨 말인가 좌중이 어리둥절 한데,

치우는 마치 이년 간 홀로 동굴에서 누구와의 소통도 없던 시절을 한풀이하듯 계속 혼자 읊조린다.


” 물론, 너희와 같은 악인들을 깨뜨릴 때는 금강저요,

그게 끝나고 나면 다시 걸쇠로 돌아갈 것이다.

너희들은 이곳에 올라오면 안 되었다. “


말을 마친 치우의 전신에서 은은한 황금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그가 한 손에 들고 있던 산문의 걸쇠마저 금빛으로 물드는데,

람림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곤 주저앉은 홍모교 라마들을 일어나라 손짓했다.


” 어서 만다라 曼茶羅 결계를 쳐라!

놈의 기운이 심상치 않다! “


그동안 연습을 거듭해 왔던지 중앙에 람림을 두고 라마승들이 빙빙 돌아가며 원형진을 구성하는데 일사불란하다.


” 소용없다.

심검은 모든 것을 꿰뚫는다. “


치우는 사람 하나의 몸무게만 한 걸쇠를 마치 가벼운 목봉처럼 끄트머리를 쥔 채,

검술이라도 연마하는 듯 빙빙 돌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뒤에서 이 활극을 지켜보는 여빙심은 갑자기 나타난 치우라는 자가,

그가 듣던 것과는 달리 지나치게 오만방자한 모습에 어리둥절했는데

그 커다란 걸쇠를 수수깡 다루듯 휘두르며 앞으로 걸어가는 모습에 기가 막혔다.


” 저건······. 마치 몽둥이처럼 잡고 있지만 분명 검술이야···.“


이제 치우가 휘두르는 걸쇠는 더 이상 산문을 걸어 잠그는데 쓰는 쇠막대로 보이지 않는다.

금빛 찬란한 거대한 검이 수십 명의 라마승이 결계를 친 방진 앞으로 쇄도해 갔다.

멀리 전각의 지붕에서 그것을 지켜보던 금정사의 승려들은 개황이라 자칭하는 자가 보여주는 신위에 기가 질려 입을 다물었다.


” 장문, 저···. 저자가 펼치는 검법이···?“


부들부들 떨며 먼저 입을 뗀 사람은 무공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소문난 무광, 무령 사태다.

무오 사태는 금빛 찬란한 치우의 검을 바라보며 나직이 경을 외운다.


” 아미타불······. 어찌 저런 무공이 저자의 손에서······.

저것은 과거 송 대 이전에 실전되었다는 불법 무변 佛法無邊 같구려···.“


치우의 손에 든 걸쇠는 더는 걸쇠가 아니었다.

그것은 찬란한 금빛을 발하는 거대한 거검 巨劍.

검이 휘둘러지는 반경이 무려 이 장 (6.66m)에 달했으니.

그에 맞서 대수인과 라마교의 비술로 맞선 홍모교의 무리는,

바람 앞의 촛불처럼 맥없이 스러진다.

라마승 무리와 조금 떨어져 있던 황보 태우는 기가 막혀 입을 딱 벌렸다.

거지꼴 사내의 손에 들린 것이 분명 거무튀튀하고 녹이 슨 평범한 무쇠 걸쇠였는데.

무쇠가 뭔가.

이른바 ‘똥 철’ 아닌가.

가공이 거의 안 된 철광석에서 나온 것이라 부러지기 쉽고 무르기 짝이 없는.

그래서 그저 보통의 나무막대보다 조금 낫다 싶은 곳에 쓰이곤 하는.

그런데 그것이 거지 사내의 손에 들리자 금빛 신검처럼 변했다.

정말 사내의 말대로 저것이 심검 心劍 이란 말인가.


황보 태우가 정신을 차려보니 장내에 서 있는 라마승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그들에게서는 피 냄새가 하나도 나지 않았다.

직업이 금의위 인지라,

그 와중에도 강한 호기심이 든 황보 태우는 가까이에 쓰러진 라마승의 상체를,

들고 있던 수춘도 繡春刀 를 이용해서 슬쩍 뒤집어보았다.

라마승의 얼굴에는 경악의 표정만 있을 뿐 핏줄기 하나 없고,

검에 베인 상처도 없다.

슬쩍 그의 경맥을 짚어본 황보 태우는 그 라마승의 심맥이 끊겨 있음을 알았다.


‘ 이럴 수가.

실제로 검에 베이진 않았고 그래서 피륙의 상처는 없지만, 몸 내부의 심맥들이 끊겼어.

저자의 장담대로 심검인가. ’


창백한 얼굴로 치우를 쳐다보자 금광이 사라진 거지꼴의 사내가 빤히 자신을 바라본다.


” 넌, 이 길로 돌아가면 바로 초 공공에게 보고를 해야겠지? “


황보 태우는 이를 악물고 수춘도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자신이 황보 세가의 이름으로 황실에서 금의위에 들은 이상,

저 괴물로부터 자기 목숨을 살리고자 한다면 가문이 절멸할 것이다.

그렇다고 저 괴물과 일 합도 겨룰 자신은 없다.

나름 가문의 비전으로 금의위 가운데 무공에 있어서 수위를 다투는 처지지만,

수십의 홍모교 라마승을 단칼에 베내는 검술에 대해서는 듣도 보도 못했다.

그가 비록 초 공공의 막무가내식 지시나,

포달랍 궁을 관부의 일에 끌어들인 것에 대해서는 마뜩잖긴 하지만.


” 귀인을 알아보지 못한 내 눈을 찔러 버리고 싶구려.

나는 황보 세가의 직계 셋째이며 금의위 포정위사를 맡은 황보 태우.

금의위가 아닌 황보가의 무인으로 귀하의 검을 겪어보자 하오.

당연히 귀하에게 일 초지 적 一初之敵 이 못되겠으나 무림인으로 그런 최후를 맞이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 “


치우는 새삼스럽다는 듯 황보 태우를 바라보았다.

보통 벼슬아치 라는 게 자신의 힘이 모자라도 고집을 부리며 억지를 쓰는 데는 도가 텄다는 것을 과거 강룡 금장에서도 무수히 보아왔었다.

더구나 황보 태우는 보통의 벼슬아치도 아닌,

금의위의 위사이고 유명한 황보 세가의 자손.

그런데도 자신의 실력을 깨닫고, 알면서도 죽음의 길에 나선다는 의연함.


” 제법이구나.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 “


치우가 나직한 목소리로 묻자, 황보 태우는 내심 당황스러웠는지만 아는 바를 대답했다.


” 너···. 당신은 강룡 금장의 외아들인 강치우.

모반죄로 전국에 수배가 되어있는 자로 개방파에서 몸을 숨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소. “


금의위 위사가 내막을 알 리는 없다는 것에 치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 나는 만력제의 후손이며 현 황실의 숨겨진 종친.

선대의 유훈으로 개황이라는 자리에 스스로 오른 강치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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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아미 복호 +2 20.06.22 413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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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배반자 20.06.11 448 3 8쪽
37 개황동 20.06.10 448 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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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만력제 萬曆帝 +2 20.06.09 474 4 7쪽
34 항룡십팔장 +2 20.06.09 489 6 7쪽
33 금의위 +2 20.06.08 468 6 8쪽
32 고문 20.06.05 458 3 8쪽
31 지부 20.06.05 463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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