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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의 서재입니다.

구걸왕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5.11 12:25
최근연재일 :
2020.09.11 10:30
연재수 :
8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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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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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44,307

작성
20.06.16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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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음모는 멈추지 않는다

DUMMY

여빙심은 살짝 놀랐다.

자신이 비록 기세를 다한 것도 아니고, 살기를 지니고 공격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당대에서 월녀검법에 대하여 자신을 능가할 자는 없다고 자부하던 그녀로서는 개방 지부 중에서도 변두리에 속하는 쓰촨에서 자신의 검을 막을 수 있는 자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 누구냐? ”


날카롭게 검을 수발한 여빙심은 자신의 검을 막은 사내,

왕태구를 노려보았다.

평범한 낡은 삼베옷에 무골호인처럼 보이는 얼굴.

그러나 허리에는 여섯 개의 매듭.

육결제자라면 장로급에 해당하는데 장로치곤 너무 젊다.

사내는 뒤로 물러나 벌벌 떨고 있는 두 수문장의 어깨를 툭툭 치며 앞으로 나서는데 그게 위협적인 모양도 아닌 데다 두 손을 모아 공수 읍을 한다.


“ 나는 쓰촨 지부 순의단의 교두, 왕태구라 하오만. ”


사내가 저리 나오는데 더 검을 휘두르기도 민망한 일이다.

여빙심은 납검을 하며 마주 공수를 했다.


“ 북경지부 청의단 교두 여빙심입니다.

쓰촨 지부는 위아래도 없이 시비를 거는 모양입니다? ”


삐딱하게 나오는 그녀에게 왕태구는 고개를 까딱하며 인사하곤 두 수문장을 향해 엄하게 꾸짖었다.


“ 명색이 지부의 입구를 지키는 자들이 그리 가볍게 행동했다면 당연히 방규로 다스릴 일.

너희들은 임무를 교대하고 징벌방에 들어가 있거라. ”


사내가 이리 나오니 여빙심도 더 시비를 붙일 명목이 없다.


“ 미안하오. 우리 지부에서 초빙한 여빙심 교두를 대접은 못 할망정 초입부터 무례하게 대해서.

사실 여 교두를 초빙한 것은 바로 나요. ”


사내의 말에 여빙심은 마뜩잖은 표정으로 사내의 위아래를 흘겨보았다.

저 사내 때문에 내키지 않는 쓰촨행을 하게 된 것인가.

단지 육결제자라 해도 같은 교두 직급을 가진 사람이 북경지부장을 움직여 자신을 머나먼 쓰촨까지 불러 내리다니.

뭔가 다른 연유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 먼 길을 오시느라 고생이 많았겠지만, 여 교두께서 왜 이곳까지 사람을 불렀는지 궁금해하실 것 같으니 우선 저희 연무장으로 모시겠소. ”


상대방의 마음이라도 읽는 것인지 사내가 깔끔하게 정리를 해버리자,

더 할 말이 없던 여빙심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앞장서 걷는 사내의 뒤통수를 보며 여빙심은 곰곰이 생각했다.


‘ 분명 항룡십팔장이었어.

개방의 본부에서도 항룡십팔장으로 내 일 검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방주와 몇몇 장로 외에는 없지.

그렇다면 저 왕태구라는 자는 저토록 젊은 나이에 항룡십팔장을 완성했다는 말인가? ’


여빙심의 생각은 정확했으나,

그녀는 왕태구의 스승인 왕지홍이 기연을 얻어 항룡이십팔장의 원전 구결을 습득했음을 모르니 당연했다.

송 대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나며 구결들이 갈라지고 흩어져 제대로 된 항룡십팔장을 완전하게 익힌 사람은 없었으니.


“ 저 아이요. 여 교두, ”


여빙심은 왕태구를 따라와 연무장에서 한참 봉을 돌리고 있는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왕태구가 따로 지목하지 않아도 여빙심은 그가 누구를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두 아이 중 한 명.

근골이 작고 대신 팔다리가 긴 아이.

근골이 탄탄한 곁의 아이보다 체구도 작고 힘은 부족해 보이지만,

외려 보법은 재빠른 게 천생 검을 익혀야 할 아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과 같은 사람을 먼 쓰촨까지 부르다니?

그리고 북경의 본부에서도 그 요청을 허락하다니?

궁금증이 일었다.


“ 그런데 저 아이가 재질이 있다곤 해도 굳이 나를 이곳으로 부른 거죠? ”


지방으로 내려온 게 못마땅하던 여빙심의 목소리가 뾰족했다.

왕태구는 빙그레 웃으며 여빙심을 바라보았다.


“ 여 교두는 황제 순의단을 알고 있지요? ”



“ 그 망할 거지 왕초를 어떻게든 해결 해야 한다. ”


황궁의 외곽에 자리 잡은 커다란 전각은 어둠에도 불구하고 건물의 곳곳에 밝힌 와등으로 환하게 빛난다.

그 전각을 둘러 검은색 관복을 입은 무사들이 몇 걸음 간격으로 삼엄하게 경계를 서고 있는데,

전각의 처마 밑에는 검은색 바탕 오동나무 위에 황금색의 글자가 선명하게 빛났다.


‘동창’


우는 아이도 울음을 그친다는 환관 조직의 최고봉.

동창의 본부다.

내전에는 오히려 경계를 서는 무사 한 명도 안 보이는데,

전각 내부 깊숙한 전실에 바단 휘장이 둘려 있고 휘장 안에서 방금 노기 어린 말이 흘러나왔는데,

그 휘장의 밖에는 바짝 움츠린 태감 한 명이 연신 머리를 조아린다.

그는 현 황실에서 가장 세력이 강하다는 동창의 수반,

초 공공이었다.


“ 그가 단순한 거지 두목은 아니고 개방 내 황제 순의단의 단주 인지라···.

그와 연계된 황실 세력들이 만만치 않아 쉽게 손을 못 쓰고 있으니 황송합니다. ”

초 공공의 말은 정중하나 비단 휘장 안의 인물에게 완곡한 거부를 표하는 셈이다.

아니나 다를까.

비단 휘장이 흔들릴 정도로 노기가 찬 음성이 터져 나온다.


“ 무슨 소리!

감히 거지 소굴에 황제라는 이름을 붙인 것만 해도 가당치 않은데,

거기에 황실과 연관이 되어 있다?

오랑캐들이 들으면 한창 비웃을 소리 아닌가? ”


거친 여인의 음성에 초 공공은 의례적으로 고개를 수그렸다.


“ 하오나 금의 위 나 동창의 힘으로 그들을 억지했다가는,

이번 일이 크게 드러날 우려가 있어서 황제 폐하의 시선을 끌 수도 있어서.”


초 공공의 말에 휘장 안에서는 ‘끙!’하고 마뜩잖은 침음이 들렸다.


“ 그러면 초 공공은 어찌했으면 좋겠느냐? ”


사실 초 공공은 이렇게 말이 나오기를 기다린 참이다.


“ 태후께서 황제 폐하께 간언하시어 월국 ( 지금의 베트남 )과의 변경을 단단히 굳히기 위한 군사를 일으키도록 해주소서.

그리하시고 신을 그 정벌군에 지휘권을 주신다면 어차피 쓰촨은 월국으로 가는 길목 근방이니,

정벌을 핑계 삼아 그 지역의 개방도들을 군사로 징발하여 세력을 약화 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 난리 중에 놈의 세력을 잡는다면 눈에 띄지 않게 놈들을 잡을 수 있겠지요. ”

초 공공의 말이 끝나자 비단 휘장 뒤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긴 한숨이 흘러나오며 가라앉은 여인의 음성이 들린다.


“ 초 공공은 다 계획이 있었구먼?

이렇게 나를 흥분하게 만들고는 어차피 자신이 생각한 방향으로 이끌 것을···.


여인의 말에 초 공공이 황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 아니옵니다. 태후 전하! 신이 감히 그런 생각을······.

단지 군대의 그늘에서 일을 벌이는 것이 나으리란 생각에···.“


” 되었다. 어찌하건 너나 나나 목적은 같은 것 아닌가?

이번에 질기게도 내려온 황실의 숨은 줄기를 모조리 쳐내야 하네.

그래야만 너도, 그리고 나도 장래가 있을 것이니. “


태후의 말에 초 공공은 고개를 조아린 채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 그렇지. 서로의 목숨이 걸린 일이니 당연히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



치우는 청석 문 곁에 손바닥 모양이 새겨진 황색 대리석에 손을 올렸다.

이것으로 열 번이 넘는 시도였다.

시간의 흐름은 알지 못했다.

천정에 뚫린 용암 공으로 이따금 낙엽이 날아들고,

때로 눈발이 은가루처럼 흩날렸다.

신기한 것은 그런데도 동굴 내부의 온도는 늘 변치 않았다.

온천의 덕분인지 과거 용암이 흘렀던 흔적 탓인지 동굴은 늘 비슷한 온도를 유지했다.

치우가 입고 있던 옷은 이제 거의 삭아서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있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동굴 내부를 비추는 태양의 각도가 조금씩 달라져서 그 태양 빛이 옮겨가는 구도에 따라 또 다른 채소들이 돋아났다.

그동안 내력이 얼마나 쌓였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청석 문에 새겨진 손바닥 자국에 장심을 대고 내력을 불어넣는 방법밖에 없었다.

지난번까지는 전혀 꿈쩍도 하지 않았었다.


치우는 장심에 내력을 모았다.

용광동은 개황동의 첫 번째 수련장이라 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치우는 권, 장, 각, 보법들의 구결들이 암각되어있는 것을 읽고 초식을 익혔다.

잠룡대황력으로 일깨워진 상단전은 복잡한 초식들도 수월하게 치우의 뇌리에 자리 잡도록 도와주었고,

보통의 무인들로도 참오하기 힘든 과정들을 수월하게 익히게 했다.

그러나 내력이란 잠룡대황력의 힘으로도 쉽게 쌓이는 것이 아니었다.

동굴이 요구하는,

실제로는 선대의 황제가 요구하는 내력을 쌓아야만 이곳을 벗어나 두 번째 단계를 넘을 수 있었으니.


‘ 기운은 땅에서 비롯되어 하늘에 닿으니 이는 천지현황의 기운이라···.’


치우는 잠룡대황력의 구결을 마음속으로 암송하며 서서히 두 팔에 잠력을 끌어 올렸다.

발바닥의 족심에서 시작된 작은 불씨는 하단전을 두드려 깨우고,

혈도를 따라 치솟아 명문혈을 거쳐 두정 頭頂으로 올라 다시 전신의 세 맥 細 脈으로 흐른다.

치우의 전신에 은은한 금빛 서기가 어렸다.

황실 비전의 내가 기공, 대황금기 大皇金氣가 발현된 것이다.


‘ 그그긍···.’


마침내 치우의 손바닥이 밀어내는 대로 황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두 장의 돌덩이가 치우의 팔목 깊이까지 밀려들러 갔다.

치우는 소리를 지를뻔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힘을 거두어 손바닥을 떼었다.

최초 개황동 문을 열었을 때와는 달리 그가 손을 떼어도 청석 문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갸웃거리며 청석 문을 지나쳐 다음 동굴에 들어서자마자,

그가 들어왔던 청석 문은 굉음을 울리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치우는 새로운 동굴에 들어서서도,

자신이 용광동을 통과했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감격스러운 마음을 애써 누르며 고개를 쳐든 치우의 눈에 새로운 동굴의 정경이 들어왔고,

치우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다.


” 맙소사!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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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모는 멈추지 않는다 +1 20.06.16 435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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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보은 +5 20.06.12 465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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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배반자 20.06.11 448 3 8쪽
37 개황동 20.06.10 448 4 8쪽
36 역모 20.06.10 452 4 9쪽
35 만력제 萬曆帝 +2 20.06.09 474 4 7쪽
34 항룡십팔장 +2 20.06.09 489 6 7쪽
33 금의위 +2 20.06.08 468 6 8쪽
32 고문 20.06.05 458 3 8쪽
31 지부 20.06.05 463 4 10쪽
30 비밀 20.06.03 477 3 10쪽
29 당묘 20.06.02 488 3 9쪽
28 부두 +2 20.06.02 497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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