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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의 서재입니다.

구걸왕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5.11 12:25
최근연재일 :
2020.09.1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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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5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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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황제순의단

DUMMY

“ 글쎄 우리가 왜 그런 걸 배워야 하는데요? ”


왕지홍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신이 누군가.

명색이 개방의 쓰촨성 지부 지부장이자,

숨겨진 신분으로는 황제 순의단의 단장이다.

그런데 쓰촨에서도 변두리에 속하는 민강 현에서도 아주 변두리에서 올라온,

그야말로 새카만 거지새끼가 바락바락 대들다니.

그것도 나가서 구걸을 하라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속한 순의단에 들어와서 무공을 배우는 직전 제자가 되라는 데도 저리 덤비는 천방지축이라니.

과거 자신의 지휘 아래 왕필호가 들어왔을 때도 버르장머리라곤 손톱만큼도 없던 놈의 행패에 영 거슬렸었는데 그 부하라는 놈들도 저 모양이다.

하긴, 보는 대로 배우는 게 아이들이라던가.

기가 막힌 왕지홍은 앞에 서서 단호한 표정으로 어울리지 않게 튕김 질을 하는 거지 아이, 왕위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 야, 이놈아.

너희들 주제로는 평생 민강 현에서 그냥 땅 그지로 살다 죽을 팔자야.

니들 개방에 들어온 지 몇 년인데 아직 일결 제자도 못되었잖아?

그게 다 니네 두목이던 왕필...아니 왕호가 니들 돌보지 않아 그런 거라고.

그걸 내가 거두어준다고 하면 엎드려 절을 해도 모자랄 판에 뭔 튕김 질이냐? 튕김 질이? ”


왕지홍이 짐짓 눈을 부릅뜨며 고함을 지르자 뻗대고 있는 왕위의 뒤에 있던 왕방이 왕위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 야, 그래도 지부장님이신데 그렇게 함부로 하면 안 되지···. 너 겁을 상실했냐? ”


왕방이 왕위의 귀에 대고 소곤거리지만, 고수인 왕지홍에겐 이미 다 들리는지라,

왕지홍은 역시, 하면서 씨익 웃었다.

그 순간, 왕위가 바로 산통을 깬다.


“ 모르는 소리 마. 지금까지 왜 우리를 두목이 일결 제자로 올리지 않았겠어.

결국, 개방도 제자로 대강 올라가 봐야 앞에서 화살받이 하다가 끝난다니까?

그냥 말단 거지 생활이 차라리 낫다고.

원래 대충 나서봐야 우리는 그냥 거지보다 더 명도 짧아진다는 거지.

어차피 흙수저도 못 갖고 나온 우리가 금수저를 타고 나온 강치우 같은 애들처럼 상승무공을 배울 리도 없고 말이야. ‘


소곤거리며 왕방이라는 얼굴 예쁘장한 거지 아이에게 귓속말이랍시고 하곤 있지만,

저 영악스러운 놈이 그게 자신에게 들릴 거란 걸 모를 리는 없으니 저 꼬마 거지 놈이 자신에게 빗대어 비꼬는 말이라는 것은 당연하다.

왕지홍은 분기가 솟아서 머리에서 김이 날 지경이었다.


” 야! 이 거지 자식아!

어디서 속아서만 살았더냐?

니들에게 내가 아무렴 그렇게 야박하게 굴 것 같으냐?

난 단순히 쓰촨 지부장 정도가 아니다!

너희들이 내 제자가 된다면 최소······.“


꽥 소리를 지르는 왕지홍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왕위가 눈을 반짝이며 바로 대꾸한다.


” 그러시면 지부장께서는 저희에게 항룡십팔장 이라도 전수해 주실 건가요? “


갑자기 꼬마의 입에서 ’항룡십팔장’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자 왕지홍은 말문이 막혔다.

저 되바라진 녀석이 뭘 알고 하는 소리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제 딴 데도 개방 최고의 무공들이 무엇인지는 아는 모양이었다.


” 지부장께서 저희 둘에게 항룡십팔장을 가르쳐주신다면 저희도 생각을 바꿔보겠습니다.

지부장께서 지부장 ’정도‘ 가 아니라 하셨으니 뭔가 더 대단한 숨겨진 직책이 있으실 거고,

그건 또 저희가 정식 제자가 되지 않는 한 안 가르쳐주실 것이고. 맞죠? “


왕위가 단단히 못을 박자,

왕지홍도 이제 달리 도리가 없는 셈이다.


” 이런 썩을···. 좋다! 너희들에게 항룡십팔장을 전수해 주마.

단, 무공을 익히다 힘드니 죽겠느니 따위 엄살은 사절이다.

알겠나?

너희들은 이제부터 내가 죽으라면 죽는시늉까지 해야 하는 게다. “


왕지홍이 끄응 소리를 내며 답을 하자 기다렸다는 듯 왕위는 왕방의 머리통을 붙잡고,

두 아이가 동시에 세 번 절을 거듭한다.

그 꼬락서니를 보는 왕지홍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대체 세파에 얼마나 시달렸으면 이제 십몇 세에 불과할 저 꼬맹이가 저리도 영악스러워진 것일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짠해졌다.

그런 왕지홍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뒤이어 떠들어대는 왕위라는 놈의 말에,

조금 측은스럽던 왕지홍의 마음은 송두리째 날아갔다.


” 자, 사부님.

그런 이제부터는 구걸 다닐 틈은 없는 거지요?

어릴 때부터 무공을 배운 것이 아니니 당장 따라잡으려면 매일 수련을 해도 모자라겠지요? “


’헐‘



” 너희들에게 왕호···. 아니 황필호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

왕필호가 따로 무공구결을 전수하지 않고 일결 제자로 등록을 하지 않은 것은 다 그 나름의 이유는 있다. “


왕지홍은 낡은 장원의 햇살 가득한 정원에서 두 아이를 앞에 두고 훈시를 하고 있었다.

두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초롱초롱 빛나는 눈을 왕지홍에게 보낼 뿐이다.

흠,흠!

헛기침을 한 왕지홍은 목이 말랐는지 연신 허리춤의 호로병을 들어 독한 죽엽청으로 목을 축인다.


” 왕필호의 신분은 너희도 들었을 터.

그가 신분을 숨기곤 있었어도 명색이 황실의 무인이다.

그런 그가 너희들을 제자로 받을 수도 없을뿐더러, 너희들은 엄연히 개방에 적을 둔 아이들이라서 그의 마음대로 일 결, 이 결 같은 지위를 올릴 수도 없었다. “


왕지홍이 그들이 오랜 시간 왕호의 밑에 있었음에도 개방의 정식 제자가 못되었던 두 아이의 상황에 대해 말을 하자,

모처럼 입을 다물고 있던 왕위가 잽싸게 대꾸했다.


” 그러면 사부님.

만약 그 선대의 유훈대로 당대에 강치우란 아이가 민강으로 오는 기연이 없었다면,

저나 왕방은 꼼짝없이 개방의 직전 제자도 아닌 보통 변두리 거지 아이로 늙었겠네요? “


왕위가 묻자 왕지홍은 다시 역정이 나려고 했으나,

따지고 보면 옳은 말이라 달리 할 말은 없었다.


다시 흠, 흠! 하며 헛기침을 한 왕지홍은 얄미운 말만 골라서 하는 왕위를 힐긋 노려보고 다시 죽엽청으로 입을 적셨다.


”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자고로 줄을 잘 서야 한다고 했으니.

그리고 또 다른 말로 인생 만사 새옹지마라고 하지 않더냐?

어떻든 너희들은 그 덕분에 개방의 직전제자,

그것도 황제 순의단의 제자로 들게 되었으니 그게 바로 고진감래 苦盡甘來 아니겠느냐? ”


사부의 권위를 세워보려고 왕지홍이 큰 혜택을 베풀 듯 황제 순의단의 이름을 말하자 이번에는 잠자코 있던 왕방이 대뜸 질문했다.


“사부님. 황제 순의단이 무엇입니까?

개방에 오의단(汚衣團) 순의단(巡衣團) 청의단(靑衣團)이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황제 순의단은 처음 듣는걸요. ”


얼굴이 예쁘장한 아이가 말도 참 예쁘게 한다고 왕지홍은 생각했다.

자신이 어차피 해줄 말의 말머리를 이런 식으로 끌어내는 것은 아이가 다른 면에서 영특하다는 뜻이니까.


“ 그래, 오의단, 순의단, 청의단이 뭐 하는 집단인지는 아는 거고? ”


왕지홍이 모처럼 웃는 낯으로 묻자 신이 난 왕방이 종알거린다.


“ 네. 사부님.

오의단은 말 그대로 더러운 옷을 입고 다니지만 가장 무공이 센 개방의 실제 숨겨진 힘이라고 들었습니다.

순의단은 우리 개방의 핵심인 정보를 수집하는 조직이라고 들었고요.

청의단은 숫자는 가장 적지만 개방 곳곳에 숨어서 감찰하는 무서운 세력이라고 들었는데요. ”


왕방의 종알거림에 마주 고개를 끄덕이던 왕지홍이 자못 엄숙한 얼굴로 선언하듯 입을 열었다.


“ 황제 순의단은 개방 내부에서도 핵심 간부급만 알고 있는 비밀조직이다.

이름 그대로 황실과 연관이 있으며, 개방의 다른 어떤 행사보다도 우선권을 가진 집단이지.

그 역사는 백 년이 넘었으며,

개방에서도 그렇고 황실에서도 무척 특수한 신분에 속한다.

그 때문에 너희들은 내게서 개방의 가장 강력한 무공을 전수할 것이다.

왕호가 너희들에게 비록 무공을 전수하진 않았다고 하지만 자기 나름대로는,

너희들의 미래를 신경을 썼던 것이 틀림없다.

너희들에게 내공 구결을 전수하지 않은 것은 후에 너희들이 어떤 무공을 익힐지 모를 일이라 따로 전수하지 않은 것일 테고.

그리고 좀 변경되긴 했지만 원래 개방의 방주나 장로급에게나 전수가 되는 타구봉법의 기초 초식들을 너희에게 익히게끔 하지 않았느냐?

그건 바로 개방 무공의 기초이기도 하니 너희들을 그가 그냥 방치한 것은 아니다.

더구나. ”


잠시 말을 그친 왕지홍은 근엄한 얼굴로 두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 너희들도 알겠지만,

우리 개방도 중에 간부급을 제외하곤 글을 아는 자들은 거의 없다.

본래 순의단은 타고난 거지들이 아니라 국법을 어긴 죄인의 자제들이나 타락한 고관들의 후손들이 들어와 있는 곳이라서,

대체로 꽤 높은 학식들은 가진 자들도 많긴 하다만.

그런데 그런 지방의 변경 거지들에 불과한 너희들에게 왕호가 비록 주먹질을 자주 하던 나쁜 두목이라곤 하지만,

너희들이 까막눈이 되지 않게 글자를 가르쳤다는 것 자체가 언젠가는 너희에게 제대로 사부를 만들어줄 요량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


엄숙한 표정으로 왕지홍이 말을 마쳤다.

너희들이 얼마나 귀한 자리에 오른 것인지,

사부인 자신에게 얼마나 감사할 일이며 자부심을 가질 일인지를 과시하듯.

그때,

잠자코 있던 왕위가 바로 왕지홍의 말에 초를 친다.


“ 그러니까, 그 강치우라는 황실의 떨거지를 지키라는 거 아뇨.

개방 최강의 무공을 배워서.

어쨌거나 좀 더 고급지고 좀 더 강력한 화살받이 맞구만, 뭐. ”


왕지홍은 하마터면 바로 주먹이 날아갈 정도로 거지 꼬마에게 살의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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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와신상담 +2 20.06.16 436 6 10쪽
42 월녀검법 +2 20.06.15 453 4 11쪽
» 황제순의단 +6 20.06.15 446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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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무공의 구결 +8 20.06.11 488 10 7쪽
38 배반자 20.06.11 448 3 8쪽
37 개황동 20.06.10 448 4 8쪽
36 역모 20.06.10 452 4 9쪽
35 만력제 萬曆帝 +2 20.06.09 474 4 7쪽
34 항룡십팔장 +2 20.06.09 489 6 7쪽
33 금의위 +2 20.06.08 468 6 8쪽
32 고문 20.06.05 458 3 8쪽
31 지부 20.06.05 463 4 10쪽
30 비밀 20.06.03 477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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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부두 +2 20.06.02 497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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