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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의 서재입니다.

구걸왕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5.11 12:25
최근연재일 :
2020.09.11 10:30
연재수 :
87 회
조회수 :
39,822
추천수 :
460
글자수 :
344,307

작성
20.06.09 15:20
조회
474
추천
4
글자
7쪽

만력제 萬曆帝

DUMMY

“ 선대의 유훈대로 번천 飜天 의 계 計 는 시작 되는가······.”


왕지홍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가운데 옆구리에 끼인 채 눈을 굴려 폐허를 이모저모 살펴보던 치우는 의문이 들었다.

’번천‘ 이라니.

하늘을 뒤집겠다는 뜻만으로도 역모에 몰릴 말이다.

뭔가 연유는 모르지만 억울하다 생각되는 역모죄로 멸문을 당하고 쫓김을 당하는 지금,

조상의 유훈에 따라 찾아온 개방의 지부장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일이었다.


“ 지부장님. 무슨 말씀이세요? ”


옆구리에 끼고 있던 치우가 묻자 그의 존재를 잠시 잊고 있었다는 듯 왕지홍이 새삼스러운 눈길로 치우를 내려다보더니 가볍게 손을 뒤채어 뻣뻣하게 굳은 치우를 그 자리에 세웠다.

그러더니 왕지홍은 갑자기 공손하게 세워져 있는 치우의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읍을 한다.

당황한 치우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 소장은 개방의 쓰촨 지부 지부장을 하고 있는 사천개 왕지홍이라 하오.

그러나 진짜 신분은 황제 순의단 皇帝巡衣團의 단주 왕지홍입니다.

황제 순의단은 황제의 막후조직이며,

비밀리에 이어 내려온 황실의 두 번째 혈족을 보위하는 것이오.

강치우 도령은 그 두 번째 혈족의 마지막 남은 후손.

이제부터 황제 순의단은 선대가 남긴 유훈에 따라 강 도령을 개황 丐皇으로 옹립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입니다. ”


개황 丐皇이라니.

거지의 황제가 되란 말인가.

치우는 잠시 어처구니가 없는 말에 뭐라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치우가 그러거나 말거나,

왕지홍은 진지하게 다음 말을 이어 나간다.


“ 본래 황족에게 봉사라는 이들은 그에 걸맞게 예우를 해야 하나,

개황을 하기 위해서는 소신이 스승으로서 강 도령을 대할 수밖에 없으므로 예의 없음은 추후에 따지기로 하고,

지금은 스승으로 강 도령을 대하기로 하겠소이다. ”


말을 마친 왕지홍은 다시 다짜고짜 치우를 옆구리에 끼고 폐허가 된 장원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장원의 내부는 밖에서 보던 대로 수풀들이 뒤덮여 마치 작은 밀림에 들어온 것 같았다.

왕지홍은 장원의 후원으로 걸어가더니 역시나 잡초와 나무 덩굴들이 뒤엉킨 가산 假山앞에 이르러,

독특한 걸음으로 방위를 밟았다.

그렇게 몇 번 걸음을 밟자 주변의 풍경들이 흐릿해지면서 뭔가 다른 공간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치우는 그것이 말로 전해 듣던 ’진법‘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갑자기 넝쿨이 무성하던 주변 풍경이 휙 뒤로 물러나는 듯하더니,

지금 치우의 눈에 보이는 것은 잡초 하나 없이 단단한 청석으로 바닥이 깔린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청석이 깔린 정원 중앙에는 누런색으로 부글대는 연못이 있었다.

연못의 중앙에서는 물이 끓어오르는 듯 거품이 부글거리고,

그 거품이 터질 때마다 달걀이 썩는 것 같은 고약한 냄새가 풍겼다.


“ 이 유황 지옥 탕 流黃地獄蕩 은 지하에서 유황온천이 올라오는 곳이다.

이 온천의 효능은 몸에 쌓인 독기를 빼내어 치료하는 것이지만,

그 열기가 대단하여 보통의 인간이 버티기는 어려우나 네가 유아 때부터 익혀온 양생 기공으로 충분히 버텨낼 수 있으니 물속에 들어가는 대로 양생 기공을 운기 하도록 해라. ”


말을 마친 왕지홍은 인정사정없이 치우를 누렇게 거품이 일고 있는 유황탕의 한가운데에 던져 넣었다.


’ 철썩! ’

첨벙 할 줄 알았던 치우는 철썩하는 소리에 물에 던져진 와중에도 의아함이 들었다.

연못은 보는 것과는 달리,

물이 아닌 진흙탕 같은 것이었다.

걸쭉한 유황 진흙 속에 던져진 치우는 서서히 탕 속으로 가라앉는 것이다.

그리고 순간 굳어진 몸뚱이로도 엄청난 열기가 느껴졌다.

치우는 왕지홍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가전의 양생 기공을 머리에 떠올렸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자신이 배운 양생 기공은 태극권처럼 몸을 움직이며 하는 것인데,

지금 자신은 온몸이 굳어버린 상태 아닌가?

다급히 왕지홍에 구원을 요청하려고 입을 벌린 치우는 소리를 지를 수 없었다.

끓어오르는 유황의 공기들이 입과 코로 왈칵 들이닥쳐 말을 할 수 없었다.

황급히 입을 닫으니 이제 숨을 쉴 수도 없고,

다시 콧구멍을 열으니 매캐하고 비린 유황의 냄새들이 폐부를 가득 채운다.


“ 기운은 아랫배로부터 나오니 그 기운을 양팔과 다리로 보내어 공기를 휘감고······.”


왕지홍은 유황 연못의 앞에 앉아 태평스레 노래 같은 것을 흥얼거린다.

다시 소리를 치려던 치우는 왕지홍이 읊는 시조 같은 것이 바로 자신의 가문에 내려오는 양생 기공의 첫 소절임을 깨닫곤,

급히 본래 하던 방법대로 양팔로 기운을 보냈다.

툭, 툭.

마치 꼭 감겨있던 미세한 밧줄들이 끊기는 듯한 느낌이 들며 당묘로부터 제압당한 이후 처음으로 팔이 움직인다.

뛸 듯이 기쁜 치우는 다음의 구절대로 기운을 양다리로 흘려보냈다.

이어서 다리와 전신을 속박하던 것 같던 기운들이 툭툭 연이어 끊기며,

뜨거운 유황온천 속에서 치우의 전신은 흐늘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치우는 전신의 맥이 탁 풀리는 나른한 느낌에 저도 모르게 일전에 가문의 지하 통로로 도망칠 때 보았던 알 수 없던 문구들이 떠오르며,

그 문구에 적힌 대로 온몸의 혈도들이 개방되어 내달리는 것을 느꼈다.


“ 이미 그릇은 오래전에 갖춰져 있으니 이제 그 그릇을 채울 좋은 물만 갖추면 거칠 것이 없으리니······.”


왕지홍이 알 듯 모를 듯한 문구들을 계속 읊고,

치우는 저도 모르게 자유로워진 팔다리를 무거운 유황 진흙 속에서 구절이 이어지는 대로 따라 휘저었다.

치우의 전신이 부풀어 오르듯 팽창하다가,

다시 오그라들기를 반복하기 수십 번.

끊임없이 노래를 부르듯 구결을 읊던 왕지호의 얼굴에도 땀방울이 비처럼 흐르고,

뜨거운 유황 지옥 탕에서 얼굴이 달아올랐던 치우는 오히려 안색이 하얗게 변한다.


백여 년 전,

만력제 萬曆帝 신종 神宗은 아버지 육영제가 태자의 사부로 붙여준 장거정과 황제의 측근 환관이었던 풍부로 인해 사생활을 엄격하게 통제당했으며,

만 9세의 나이로 황제가 된 후에도 매달 3·6·9가 들어가는 날 오전에만 신하들의 상주를 받고 나머지 날은 공부를 해야 했다.

거기다 이들은 자성 황태후의 후원을 받았기에 만력제는 황제가 된 이후에도 이들에게 기를 펴지 못할 정도였다.

심지어 자성 황태후가 심하게 화났을 때는 " 형제였던 노왕潞王을 황제 시킬 걸 그랬다." 하면서 조상들에게 석고대죄하여 만력제로 하여금 싹싹 빌도록 만들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본래 등이 굽고 다리가 짧아 신체적 약점까지 가졌던 만력제는 환관과 정치가들에 대해 깊은 원한을 가지게 되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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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18 테드창
    작성일
    20.06.09 15:27
    No. 1

    안녕하세요. 재미있어요! 쾅 누루고 갑니다.
    재미있게 잘 보고 갑니다.

    제 소설도 한번 들려서 읽어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6 타티스
    작성일
    20.06.09 16:33
    No. 2

    추천 꾹 눌렀습니다. 다음회도 기대할게요.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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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역모 20.06.10 452 4 9쪽
» 만력제 萬曆帝 +2 20.06.09 475 4 7쪽
34 항룡십팔장 +2 20.06.09 489 6 7쪽
33 금의위 +2 20.06.08 468 6 8쪽
32 고문 20.06.05 458 3 8쪽
31 지부 20.06.05 463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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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당묘 20.06.02 489 3 9쪽
28 부두 +2 20.06.02 497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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