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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i*** 님의 서재입니다.

백의제국(RE)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2inro
작품등록일 :
2019.05.21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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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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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2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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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2.32.을묘정변(2)

DUMMY

백의제국 2.32 - 을묘정변(2)




1915년 3월 9일 오후 11시 25분 대한제국 수도 서울, 제국익문사 본부



제국익문사 내부는 적의 공격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혁은 부상 당한 요원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현장에 나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적과 만나 근접전을 벌이면서 피가 묻어 검은 양복이 더 진하게 얼룩진 상태였다.


‘점점 기습 효과가 사라지고 있다.’


본부를 기습 공격한 건 대범하다는 소리를 들어마땅한 계획이었다. 실제로 적이 건물 내부까지 쳐들어오는 데에 성공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제국익문사 요원들은 행정요원, 현장 요원 가릴 것 없이 정예 요원들이다. 적은 중화기를 앞세워 초기 공격에 성공했지만, 막상 이후의 전투가 근접전으로 흘러가니 적의 공격력이 눈에 띄게 약화되어갔다.


“입구를 틀어막아! 내부와 외부를 단절시켜야 한다!”


혁이 지시를 내리자 요원들은 명령을 이해하고 자기들이 알아서 팀을 꾸려 1층으로 내려갔다. 요원들이 건물 양쪽 끝에 몰려 돌파를 개시하자 천우협 낭인들이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다. 요원 중 절반 이상이 퇴근한 상태였기 때문에 요원 측이 수적 열세였지만, 그들은 본인의 실력을 이용해 억지로 돌파구를 만들어냈다.


“나머지는 현 위치를 고수하라!”


공격을 하러 나간 요원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적이 그들을 뒤쫓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았다. 혁 역시 일부로 자신을 드러내 적이 이쪽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도록 했다. 그때 주머니 속 핸드폰이 진동했다. 마침 약간의 여유가 있었기에 핸드폰을 꺼냈다. 그는 나현이 또 전화한 줄 알았는데, 확인해보니 전화를 건 사람은 아내였다. 안 그래도 그녀가 걱정되던 찰나였는데 잘 됐다.


“어, 자기야. 괜찮아?”


-난 괜찮은데 자기는...


그녀는 스피커 너머로 총성과 다급한 고함을 들었는지 말끝을 흐렸다.


“문 열어주지 말고, 커튼도 쳐. 내가 해결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잠깐, 더 할 말이...


그는 자신에게 달려오는 요원들을 보고 급하게 전화를 끊어야 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권총 탄창을 교체하며 그들에게 상황을 물었다.


“입구를 틀어막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작전이 먹히자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는 더이상 고민할 것도 없이 내부에 고립된 적에 대한 소탕 명령을 내렸다. 그 역시 부하들과 함께 내부 청소 작업에 뛰어들었다. 그때 바깥에서 프로펠러 소리와 경쾌한 엔진음이 들렸다. 그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창문을 열고 어두컴컴한 밤하늘을 보았다. 하늘이 워낙 어두운 건 둘째 치고, 눈보라까지 일고 있으니 잘 보이는 게 없었다. 그러나 그가 봐야 할 것은 생각보다 낮은 곳에 있었다.


“전투기?”


제국익문사 건물 위로 전투기 편대들이 저공으로 지나갔다. 그들이 향하는 방향을 보아하니 경복궁이 있는 곳이었다. 혁은 악천후에 비행기가 뜬 건 둘째치고 그들이 왜 경복궁으로 향하는지 의아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눈보라가 너무 심한데?”


전투기를 몰고 있는 조종사들은 정면 유리창 위와 좌우로 스쳐 지나가는 눈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저공으로 비행한다 해도 상공은 지상보다 바람이 더 세기 때문에 비행하는 데에 여러모로 어려움이 컸다.


-이러고서야 반군 놈들 제대로 때려잡을 수는 있을까?


-애초에 반군이 누구인지 분간하기가 어렵지 않아?


일단 상관이 경복궁 내의 반군들을 제압하라는 명령을 내려서 이륙하기는 했는데, 아군을 제대로 지원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저 멀리 보이는 경복궁은 전기가 완전히 나간 상태라 궁에서 발생한 화재가 그들의 시야를 확보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게다가 황실 친위대는 다들 통일된 검은색 군복을 입고 있다. 누가 적인지 확인하기 어려울 게 분명했다.


이윽고 그들의 걱정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경복궁 상공에 도착한 그들은 저 아래에서 번쩍이는 총염과 포염을 보며 누가 누구인지 분간하기 어려워했다. 그러기에 그 누구도 섣부르게 지상 공격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어? 어? 야! 너 뭐 해!”


그때 전투기 서너 대가 하강하며 지상을 향해 기관총을 갈겨댔다. 그걸 본 동료들은 깜짝 놀라며 당장 사격 중지를 외쳤지만, 먼저 사격을 한 조종사들은 상관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며 사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어쩔 줄을 몰라하던 몇몇 조종사들이 추가로 지상 공격에 참여했다.


“야, 쏘지 말라고!”


-쏘지 말라니까 뭐 하는 짓거리야!


제대로 정신이 박힌 조종사들은 무전기로 사격 중지를 외쳐대며 동료들을 말려보았지만, 상황 판단력이 흐려진 동료들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씨발 왜 쏘고 지랄이야!”


간신히 왕비와 원주군, 정 씨를 구해낸 김흥광은 아무나 쏴대고 있는 전투기들을 보며 쌍욕을 박았다. 지금 그들이 쏘고 있는 친위병들은 대부분이 반군에 가담하지 않은 친위병들이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돼가는 거예요?”


겁에 질린 정 씨가 잔뜩 움츠러든 채 벌벌 떨었다. 박승환은 이마를 쓸어넘기며 이걸 어떻게 해야 할 지 난감해했다. 그러다가 상공을 향해 총을 쏘는 부하들을 발견하고 사격 중지를 외쳤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공격을 받은 전투기 두 대가 이쪽으로 머리를 돌려 전속력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야, 니들도 피해!”


김흥광은 원주군을 등에 엎은 뒤 두 여자의 손목을 잡고 그들이 있던 건물로 힘껏 달렸다. 박승환 역시 부하들에게 흩어지라고 외치며 김흥광의 뒤를 따라갔다.


-타라라라라라락!


총알이 친위대를 덮쳤다. 미처 피하지 못한 친위병들이 단말마를 지르며 하얀 눈 위에 검붉은 피를 뿌렸다. 건물에 거의 다다른 김흥광도 코앞에 총알이 떨어지자 그대로 나자빠졌다. 다행히 앞으로 쓰러진 덕분에 원주군이 깔리지 않았다. 원주군은 지금 이 상황이 재밌는지 까르르 웃으며 박수를 쳤다.


“다시 온다!”


크게 한 바퀴 돈 전투기들은 다시 그들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박승환은 전투기들을 보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시야 확보가 안 되어도 왕비가 입은 옷의 실루엣이 친위대의 것과는 확연히 다르기에 사격이 중단되어야 하는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일부 전투기들이 지상 공격에 참여하지 않는 것도 그렇고, 저들이 왕비를 집요하게 노리는 걸 보아하니 항공대 내에도 반군이 섞인 듯했다.


“어서 들어가십시오!”


김흥광은 원주군을 정 씨에게 맡기고 소총을 들어 전투기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제발 한 발만 맞기를 간절히 바라며 침착하게 방아쇠를 당겼다. 그때 그 전투기의 옆에서 무언가가 날아왔다.


-콰앙!


엔진이 폭발했는지 그 전투기는 공중에서 그대로 폭발했다. 그 뒤를 따르던 전투기는 공격을 중단하고 재빨리 머리를 돌려 피했다. 친위병들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그들의 머리 위로 새로운 전투기들이 나타났다. 지상에서 발생한 화재가 만들어낸 빛이 전투기를 비추었는데, 그들의 동체는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옆구리에 이화 문양이 박혀있었다.


“친위 항공대다.”



“역적을 처단하라!”


경복궁에서 정변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은 친위 항공대 소속 전투기들이 경복궁 상공을 뒤덮은 수도 항공대 소속 전투기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어두운 밤과 매서운 눈보라는 그들을 숨겨주기에 최적의 환경이었고, 이 상황에서 이루어진 기습으로 한 번에 전투기 다섯 대를 격추했다.


-수방사까지 반란에 가담한 거야? 판이 너무 커진 거 아니야?


-쟤네들은 공격 안 하는데?


전투에 뛰어든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감지했다. 일단 지상을 공격하는 상대편을 적으로 지정해 교전을 펼치고 있지만, 공격에 참여하지 않고 경복궁 주변을 도는 기체가 여럿 보였다.


“뭐야, 그러면 저기에도 반군이 섞여 있는 ··· 으악!”


잠시 교전을 피해있던 친위 조종사들이 상대방에게 공격을 받았다. 그리고 개중 격추되는 전투기가 나오자 친위 조종사들은 일단 살기 위해 공중전을 벌였다.


-지원 병력이 오는 중이다! 곧 제공권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무전에서 친위 항공대에서 지원 병력을 보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공권을 쉽게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저 멀리에서 벌떼처럼 날아오는 수도 항공대 소속 전투기들이 합세하여 더 큰 전투가 벌어질 것 같았다.



“휘우, 어마무시하구만.”


머리 위를 지나가는 수도 항공대 소속 전투기들을 창밖으로 보고 있던 박제순은 밖에서 총성이 들리자 움찔했다. 그와 함께 있던 정보원은 즉시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았다.


“대, 대신님?”


문 너머로 겁에 질린 여비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박제순은 정보원에게 문을 열라고 했다. 정보원이 문을 열자 무장한 자유 인민당 당원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그들은 박제순이 자신의 최고 상관인 걸 모르고 있기 때문에 당장 무릎을 꿇고 항복하라고 했다. 정보원은 그들에게 사실을 알려야 하지 않겠냐는 눈빛으로 그를 보았지만, 박제순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쳇.”


정보원은 권총을 바닥에 내려놓고 그들 쪽으로 밀었다. 그리고 박제순과 함께 천천히 두 손을 들고 무릎을 꿇었다.


“스스로 수갑 정도는 찰 수 있겠지?”


박제순 앞에 수갑이 던져졌다. 그는 군말 없이 본인 손목에 수갑을 채우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정보원을 보았다. 정보원에게는 수갑이 주어지지 않았다.


“저자는?”


박제순이 묻자 그들을 이끌고 온 간부가 권총으로 정보원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갑작스러운 총격에 움찔했으나 이내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통이 날아간 정보원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불쌍한 녀석.”


당원들은 그의 팔뚝을 잡고 밖으로 끌고 갔다. 기획재정부 건물 밖에는 트럭 한 대가 시동을 킨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거의 모든 대신이 수갑에 채워진 채로 있었다. 다들 표정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국방부 대신은 보이지 않았다.


“국방부 대신께서는 안 잡히신 겁니까?”


트럭에 탑승한 박제순이 바로 옆에 앉아있는 내부대신에게 묻자 그는 소곤소곤 대답했다.


“국방부는 저항이 심해서 아직 뚫지 못한 모양입니다.”


박제순은 속으로 짜증을 냈다. 이 트럭에 각 부의 대신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탑승해 있어야 나중에 일을 처리하기가 쉬워진다. 그러나 그 짜증은 얼마 가지 않아 사그라들었다. 트럭 저 구석에는 제일 먼저 잡혀 온 이범진 총리가 앉아있었다. 노환 때문에 지금 이 상황이 많이 힘들어 보였다.


‘제일 늦게 잡힐 줄 알았는데, 제일 먼저 잡혔네?’


그는 속으로 좋아하면서 바깥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트럭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질문했다.


“혹시 바깥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분 계십니까?”


“제국 의회가 장악되었고, 신문사, 중앙경찰청, 철도역 등도 장악된 모양인 듯합니다.”


교육부 대신은 세상 심각한 얼굴로 답했다. 일이 계획대로 돼가고 있어 좋았지만,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 일부러 표정을 어둡게 만들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제국군 최고사령부가 떠올랐다. 건물 구조 자체는 다른 행정부 건물보다 조금 큰 편으로, 전체적으로 별 차이가 없지만 그래도 명색의 제국군 최고사령부이니 그쪽으로 좀 많은 사람을 보내도록 계획했다. 지금 즈음이면 제아무리 최고사령부라도 함락이 되거나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혹시 제국군 최고 사령부는 어떻게 되었는지...”


하지만 이들 중에서 최고 사령부의 상황에 대해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더욱이 그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당원이 권총을 뽑아 그에게 닥치라고 협박하는 바람에 입에 지퍼를 채울 수밖에 없었다.


‘흠, 그래도 잘 되고 있겠지.’



응급 처치를 끝낸 나현은 양진여에게 권오를 부탁하고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다행히 회의실이 있는 층까지 놈들이 올라오지는 못한 상황이었다. 다만 아래층에서는 여전히 총성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폭발로 인해 검게 그을린 계단으로 부상 당한 사람들이 계속 한 두 명씩 올라오고 있었다.


‘내가 굳이 내려갈 필요가 있나?’


계단 앞에 선 그녀는 저 계단을 내려가는 게 망설여졌다.

그녀는 조만간 전역해서 권오와 함께 편안한 인생을 살아갈 몸이다. 편안하고 행복하며 풍족한 인생은 그녀가 어릴 때부터 꿈꾸던 인생이다. 만약 저 아래로 내려간다면 목숨 걸고 적과 싸워야 한다. 당장 주변에 그녀 말고도 싸울 사람이 많은데 굳이 위험한 도박을 해야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이놈들이랑 짱깨랑 연결되어 있다고 했지?’


고민을 하던 중에 이전에 혁이 알려주었던 조사 내용이 떠올랐다. 그러자 부모님과 자신의 경제를 파탄내버린 중국인에 대한 혐오감과 그들과 동업하는 반역자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그래, 총에 안 맞으면 되잖아? 이 시대에 온 이후로 행운의 여신은 쭉 우리 편이었어.’


그녀는 전역하기 전에 화끈하게 한 판 뛰기로 마음먹고 권총을 장전했다. 그때 바깥에서 포성이 울려 퍼졌다. 그녀는 적이 포까지 끌고 온 줄 알고 서둘러 창밖을 보았다. 거리에는 전차들이 포진해 있었고, 입구로 몰려드는 적을 향해 포와 기관총을 갈겨대고 있었다. 부대 마크를 보니 안중근이 이끄는 21 기갑연대였다. 나현은 씩 웃으며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1915년 3월 9일 오후 11시 30분 대한제국 경기도 수원, 백군 본부



수도에서 쿠데타가 벌어졌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전국의 각 부대로 전해졌다. 동시에 지방 곳곳에서 천우협 낭인들이 작은 경찰서나 신문사를 습격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왕호광은 백군의 행동을 논하기 위해 휘하 연대장과 대대장을 불러모았다.


“반란을 일으킨 놈들이 성공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저희는 물론이며 저희 가족들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서울로 북진하여 황실을 구해야 합니다.”


80 보병연대장이 북진을 외치자 강호 항공대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희가 서울로 올라가는 동안 상황이 정리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현 위치를 고수하며 수원이 어지러워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항공대대장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1개 사단급 규모인 백군이 서울로 북진하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게다가 그들의 유일한 이동 수단은 철도인데, 급하게 이동하려면 전투기나 대포 같은 중화기는 다 놓고 가야 했다. 더욱이 서울의 철도역들이 장악된 상태라고 하니 자칫했다가 병사들이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었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왕호광은 복잡한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며 의자 등받이에 등을 붙였다. 그러다 한 자리가 비어있다는 걸 깨달았다. 부사단장 왕준의 자리였다.


“부사단장은 어디 있나?”


“어? 그러게 말입니다.”


그들 역시 그가 말하고 나서야 왕준이 이 자리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면서 왕준이 들어왔다. 왕호광은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왕준의 뒤로 들어오는 무장한 장교들을 보고 멈칫했다. 연대장과 대대장도 그들을 보고 당황했다.


“이. 이게 무슨 짓인가!”


왕호광은 왕준을 똑바로 응시하며 이마의 핏줄이 곤두설 정도로 소리쳤다.


“이 나라가 우리를 위해 그동안 해 준 게 있는데, 그걸 피로 갚겠다는 건가!”


왕준은 묵묵히 왕호광을 바라보고 있다가 조용히 무장한 장교들의 뒤로 물러갔다. 그러자 장교들이 씩 웃으며 그들에게 권총을 겨누었다. 그들은 이제 죽었다는 생각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부디 총알이 머리를 정확히 꿰뚫어 고통 없이 가기를 기도했다.


“총 내려!”


그때 왕준의 외침이 들려왔다. 무장 장교들은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뒤로 돌아보았다. 그들의 뒤에는 왕준을 비롯하여 무장한 병사들이 소총으로 그들을 겨누고 있었다. 그가 배신했다는 걸 깨달은 무장 장교들이 그에게 소리치려고 입을 벌렸다. 그 순간 왕준이 가차 없이 사격 명령을 내렸다.


“쏴!”


-타타타타탕! 타타탕!


장교들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병사들이 방아쇠를 당겼다. 동시에 사격하니 기관총을 쏠 때처럼 연달아 총성이 울려 퍼졌다. 무장 장교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왕호광은 지금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 왕준을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괜찮으십니까?”


왕준이 권총을 권총집에 집어넣으며 그에게 달려갔다.


“어떻게 된 건가?”


그가 묻자 왕준은 얼굴에 묻은 피를 손수건으로 닦아내며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이놈들은 반란군입니다. 화마라는 군사 조직이 있는데, 법씨라는 자의 명령을 받고 움직이는 자들입니다. 대한제국에 반감이 있는 청나라 2, 3세들이 포섭된 상황이었습니다. 저 역시 몇 년 전에 법씨로부터 해당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자네는 이들과 한 편이었다는 건가?”


왕호광이 그를 경계하듯이 묻자 왕준은 두 손을 절레절레 저으며 웃었다.


“절대 아닙니다. 같은 편인 척했던 것입니다. 이날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동안 누가 같은 편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사단장님께 말씀드릴 수 없었습니다. 저를 믿지 않으신다면 쏘셔도 좋습니다.”


왕준은 뒷짐을 쥔 채 자신의 운명을 그에게 맡겼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굉장히 겁이 났다. 방금 했던 말과는 달리 한동안은 진심으로 법씨 밑에서 일했었다. 무장 장교들을 이 자리에서 깡그리 다 죽인 이유도 자신이 진심으로 일 했던 게 드러날까봐 그랬던 것이다.


“잠시 둘끼리 할 이야기가 있으니 자리 좀 마련해주게.”


왕호광이 부탁하자 연대장과 대대장들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바닥에 널려있는 시체들이 거슬렸지만, 왕호광은 아래에서 올라오는 역겨움을 참아내며 왕준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터였는가?”


왕준은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 하지만 왕호광의 눈에서 분노가 아닌 평소와 같은 푸근함이 느껴졌다. 왕준은 차마 그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말할 수 없어 고개를 숙인 채 답했다.


“칭다오에서 인천으로 돌아오던 날, 저희를 반겨주던 사람들과 저를 고평가해 주신 사단장님께서 저를 변하게 했습니다.”


그는 어깨를 축 내리며 사실대로 말했다. 그러자 왕호광이 환하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잘 돌아왔네.”



같은 시각 대한제국 수도 서울, 00 비행장



시가지에서 들려오는 은은한 폭음과 비행장에서 연이어 이륙하는 전투기의 엔진음이 비행선을 지키는 의사의 귀를 괴롭게 했다. 화면에 떠 있는 식구들의 단톡방은 쿠데타가 시작된 지 50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시가지처럼 뜨거웠다.


-지금 출발했습니다. 탱크로 반군 조지고 오겠습니다.


-형, 나도 급한 대로 부하들이랑 제비 항공대로 예편해서 가는 중이야!


민호와 민아의 동생인 덕철이는 여전히 군대 이야기로 제일 소란스러웠다. 그래도 불안에 떨고 있는 식구들이 그나마 힘을 낼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이 이들이었다.


-나현 언니나 권오 오빠한테는 아직도 연락 안 돼?


-혁이도 전화 안 받아.


식구들의 최대 관심사는 전화를 받지 않는 세 사람이 멀쩡히 살아 숨 쉬고 있을지였다. 거의 1시간 가까이 연락이 되지 않고 있으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바깥이 많이 소란스럽군.”


의사의 뒤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에서 덜 깬 듯한 목소리였다. 의사는 팔짱을 낀 채 걱정 가득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그는 뒤로 돌아섰다. 의친왕이 황실에서 가져다주었던 백색 제복을 입고 있었다. 여전히 팔다리를 움직이는 게 힘들어 보였지만, 그는 묵묵히 제복을 입었다. 의사는 구석에 놓여있던 지팡이를 그에게 가져다주었다. 이재철이 생전에 사용하던 백골 지팡이였다. 그에게 지팡이를 받은 의친왕은 힘껏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다리와 팔이 미약하게 떨려왔지만, 그는 의지로 버텼다. 그리고 마침내 균형이 잡히자 의친왕은 마지막으로 제복 모자를 착용하며 비행선 출입문을 향해 걸었다.


“이제는 내 차례다.”


작가의말

그 연재 하루 쉬는 공지를 다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일정이 약간 변해서 어떻게 될 지 모르겠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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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2.34.을묘정변(4) +7 19.08.28 1,185 15 16쪽
113 2.33.을묘정변(3) +5 19.08.27 1,035 16 17쪽
» 2.32.을묘정변(2) +4 19.08.26 1,021 13 20쪽
111 2.31.을묘정변(1) +4 19.08.24 1,097 18 17쪽
110 2.30.황금문서(3) +4 19.08.23 1,014 13 19쪽
109 2.29.황금문서(2) +2 19.08.22 940 13 17쪽
108 2.28.황금문서(1) +2 19.08.22 957 11 14쪽
107 2.27.중원(4) +3 19.08.21 1,009 13 17쪽
106 2.26.중원(3) +3 19.08.20 984 12 15쪽
105 2.25.중원(2) +6 19.08.18 1,049 12 15쪽
104 2.24.중원(1) +3 19.08.18 1,043 1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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