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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련하 님의 서재입니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연재수 :
290 회
조회수 :
378,266
추천수 :
7,321
글자수 :
2,467,752

작성
22.02.22 07:40
조회
1,252
추천
31
글자
19쪽

193화. 또 다른 생계 녹성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새로운 별에서 금방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잘 정비된 도로(道路)였다.

물론 천인족도 환시나 신시 등 성내나 경작지(耕作地) 등에는, 길이 잘 만들어져 있었다.

그러나 근거지에서 멀리까지는 아직 제대로 된 길을 만들지 못했다.

최근에는 표국(鏢局)이나 상단(商團)에서 각 성과 이종족까지 표행(鏢行)과 상행(商行)을 다니면서, 점차 길이 만들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마차 한 대가 겨우 다닐 정도일 뿐, 아직 험한 곳이 많아서 길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랬다.

그런데 이곳은 주거지에서도 제법 멀리 떨어진 곳임에도, 마차 두 대가 비켜 갈 정도로 잘 정비된 길이 있었다. 모래와 자갈이 깔린 제대로 된 길이.

이것은 그만큼 오가는 교통 수단이 많이 발달했다는 것이고, 운행이 많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일 터!

쥬맥은 기대감을 가지고 길을 따라서 천천히 이동하며, 문명을 이룬 생명체를 찾아 나섰다.

#

그러기를 두 식경.

벌써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있는데, 하늘에는 철새들인지 수천 마리가 떼 지어 서로 지저귀며 상공을 날아간다.

그리고 마침내 저 멀리에 제법 큰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대충 보아도 수백 가구는 되어 보이는데······.

저녁을 짓고 있는지 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집이 많았다.

그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 펼쳐진 넓은 경작지. 잘 손질된 그 논밭에는 천인족과 비슷한 벼나 밀, 그리고 여러 가지 채소들이 무성하게 자란다.

잡초들을 깨끗이 뽑아낸 것은 그만큼 정성을 들여서 가꾸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겉 모습만 봐서는 어릴 때 아리별에서 보았던 모습들과 꼭 닮았다.

‘여기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궁금증을 느낄 때, 그 경작지 옆으로 흐르는 하천에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농사를 짓는 데 쓰이는지 맑은 물이 굽이져 흐르는 제법 큰 하천이다.


한 송이 꽃처럼 해맑은 목소리들! 그 소리에 이끌려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외양이 천인족과 똑같이 생긴 아이들이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물고기를 잡기도 하면서······.

“깔깔깔깔!”

천진난만하게 웃어 대는 웃음소리! 그 속에는 한 점의 구김살도 없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니 온 세상이 다 제 것인 양 행복해 보인다.

‘내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벌써 아득하게 멀어진 옛적에······.

새삼 저 아이들이 부럽고 그 시절이 그립다. 그런데 이 녀석들은 해가 서산으로 기우는데 왜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일까?

조금은 궁금도 하여 그 자리에 멈추어서 노는 모습을 바라보는데······.

한 녀석이 마을에서 부지런히 뛰어왔다. 신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치더니 하천 변에 자란 버드나무 위로 기어올라가 아래를 향해서 손을 내젓는다.

“비켜! 비켜! 모두 비켜!”


그러더니 옷을 입은 채 그대로 물속으로 ‘풍덩!’ 하고 뛰어들었다.

“비켜라! 비켜! 임금님 나가신다!”

물속에서 개헤엄을 치면서 크게 외치더니, 이제는 사투리가 튀어나온다.

“오메, 시원헝거! 이제야 살겄네 잉”

좋아서 활짝 웃자 입이 귀에 걸렸다. 그때 아무렇게나 벗어 던진 신발이 물에 떨어져서 아래로 동동 떠내려간다.

“내 신발이 떠내려간다! 빨리 잡아 줘! 빨리~”

안타까움에 작은 발을 동동 구르니, 모두 쳐다보고 ‘호호호! 히히히!’ 하면서 웃어 대는데······.

결국 신발은 물살에 휩싸여서 아래로 떠내려가 찾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아이고, 큰일 나부렀네 잉. 집에 가먼 아부지한테 혼날 텐디.”

해맑게 웃던 얼굴이 갑자기 울상이 되니, 순식간에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결국 포기를 했는지 그래도 웃으면서 개헤엄을 치고 놀았다.

결국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깔리려고 하자···, 하천에서 뛰어놀던 어린아이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중에 둘은 형제인지 동생이 형에게 따지듯이 말한다.

“형은 왜 오늘 소 깔(풀)도 안 베고 놀았뿌러? 나만 개고생 했구만, 집에 가면 아부지한테 혼날 텐디?”

“야! 아침에 한 망태 볐단 말이여. 다 했당께.”

“아부지가 하루에 두 망태씩 벼라고 혔는디 형은 못 들었당가?”

아마 부모로부터 받은 일과(日課)가 있는데 안 하고 놀아 버린 모양이다.


신발을 잃어버린 녀석은 그 뒤를 따라가는데, 어깨가 축 처져서 코가 석 자나 나와 있었다. 집에 들어가면 신발을 잃어버렸다고 야단을 맞을 생각에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인 모양이다.

‘아니, 저 녀석은······.’

아이들이 모두 돌아갔다고 생각했는데 한 아이가 혼자 남아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는데···, 왜 저 아이만 외롭게 홀로 남아 있는 것일까?

어른으로서 걱정이 되어,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고 가만히 지켜보았다.

홀로 남은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모두 마을을 향해 떠나자, 물에서 나오더니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아이들을 부러운 듯이 멍하니 바라보고 서 있다.

이제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

그 눈에 슬픔이 어리고···, 뒤이어 눈에 습막이 차오르더니···, 한 줄기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그러기를 한참. 마침내 두 주먹을 아프도록 움켜쥐더니, 고개를 숙이고 처량한 모습으로 뒤돌아선다.

‘저 아이는 갈 곳이 없는 것일까?’

혼자서 마을과 반대 쪽으로 터벅터벅 걷더니, 통나무를 하천에 박아서 우마차가 건너다닐 수 있도록 놓은 나무다리에 걸터앉았다.


마침내 해는 서산에 지고······.

온통 붉은 노을만 가득한 하늘.

그렇게 노을빛을 따라 어두운 서글픔이 밀려오는데···, 한 줌 밝은 빛은 어둠에 밀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아무도 없는 텅 빈 들녘. 그것을 눈물을 글썽인 채 홀로 바라보는 아이.

그 아이의 눈 속에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허무가 담겼다. 아무것도 없이 온통 텅 비어 있는 눈빛 말이다.

그렇게 나무다리에 앉아서 허허로운 눈으로 어두워져 가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일어나더니 다리 밑으로 들어가는데······.

그곳에는 거적때기 몇 개와 개 밥그릇 같은 그릇이 몇 개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중 하나에는 먹다 남은 것인지 잡곡이 섞인 식은 밥이 말라붙어 있었고.

그 식은 밥을 들고 하천가로 가서 물을 담더니, 손으로 주물러 몇 번 떠먹자 이제는 덩그러니 빈 그릇만 남았다.


텅 빈 눈으로 빈 그릇을 보는 눈에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다시 터덜터덜 걸어서 거적을 깔고 자리에 앉더니, 듣는 이 없는 말을 홀로 중얼거렸다.

“엄마! 아빠! 나 오늘도 잘 버텼지? 하늘나라에서 보고 있는 거야? 아이들이 부모 없는 호래자식이라고 놀리는데, 나도 엄마 아빠가 하늘나라에 있잖아? 인현이는 이제 울지 않을 거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인현이는 자신도 모르게 코를 훌쩍거리며 운다. 그 모습이 꼭 쥬맥이 어릴 때 홀로 산속에 버려진 모습이라, 너무도 가슴이 아파서 더 이상 바라보기가 힘들었다.

울던 아이는 좌정을 하고 앉더니, 토납술로 운기조식을 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도 토납술 비슷한 것이 있는 모양이고, 그걸 어디서 배운 모양이다.

한쪽 구석에 나무로 깎아 만든 엉성한 목검이 하나 굴러다니는 것으로 봐서는 혼자서 검술도 익히는 것 같고.

쥬맥은 이 아이가 마치 자신인 것 같아서, 언젠가 유체 수행을 할 수 있으면 반드시 다시 찾아와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이 인현이라고 했던가? 조금만 기다리거라. 우린 꼭 다시 만날 거야.’

#

다리 밑을 나와서 이번엔 아이들이 돌아간 마을을 향해서 다가갔다.

이미 사위에는 어둠이 내리는데······.

마을의 중앙에는 고급 목재로 지은 20여 채의 기와집이 있고, 나머지는 짚단으로 이엉을 만들어 덮은 토담집이나 돌담집이 대부분이었다.

그중에 세 번째 집으로 들어가 보니 하천에서 놀던 형제네 집이다. 형은 소 먹일 풀을 다 베지 않고 놀았기 때문인지, 밥을 못 먹고 윗목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두 손을 들고 있었다. 아마 벌을 서는 것이리라.

동생 녀석은 그런 형을 마치 약 올리기라도 하듯이, 냠냠 소리를 내면서 밥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부모와 두 형제가 사는 모양인데 생활이 그리 어렵지는 않는 모양이다. 밥에 쌀과 잡곡이 반반 정도 되었다.

“이놈아! 놀더라도 소 먹일 깔(풀)은 베고 놀아야제.”

“아침에 나도 소 깔을 한 망태(망태기) 벴었단께라우.”

“이노무 자석아, 소가 몇 마린디 시방 그 한 망태 가지고 되냐 잉?”

“내일부터 두 망태씩 벨텡게 배고파서 죽겄는디 밥 좀 주랑께.”

“정말로 약속 헐꺼제? 이제 일 안 하믄 밥도 없다 잉?”

“알었어라우. 인제 꼭 할께라우.”


“약속 지킬라믄 요리 와서 밥 묵어.”

결국 약속을 하고 밥상에 앉더니 밥을 퍼서 허겁지겁 입에 욱여넣었다. 아마 농사를 지으면서 가축을 키우고 평범하게 사는 집인 모양이다.

어머니인지 소박한 아낙은 수저를 들지 않고 옆에서 자식들이 허겁지겁 먹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릇이 비자 자신의 밥을 더 덜어준다. 그러자 그것을 바라보던 남편이 눈을 부라리며 나무랐다.

“뭐여? 임자는 밥을 안 먹어도 사는 사람이여? 먹어야 일을 할 것 아니여. 그러다가 병나믄 어쩔라고 그려.”

“나는 아까 하지감자랑 강냉이도 몇 개 먹었어라우. 걱정 마쇼 잉.”

“온종일 나랑 같이 붙어 있었는디 무슨 거짓뿌렁이어 시방.”

그러면서 자신의 밥을 덜어서 주는데, 나무라듯 하는 투박한 말속에 잔잔히 흐르는 정(情)이 느껴졌다.

쥬맥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행복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봤다.

#

그 집을 나와서 안쪽으로 들어가 제법 큰 집으로 들어갔다.

그 집은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창고 같은 세 채의 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창고에는 곡식이나 소중한 것들이 들어 있는지 자물쇠가 채워져 있어서, 사랑채로 들어가 보니······.

늙은 노인이 뼈만 앙상하게 남아서 목침을 베고 벽을 향해 누워 있었다. 아들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부채질을 해 주는데, 옆에는 밥상이 놓여 있고.

“아니, 아부지! 아무리 입맛이 없어도 한술 뜨셔야제. 요렇케 곡끼를 끊어 불먼 어쩔라고 그런다요. 그만 노기를 푸시고 한술 뜨셔라우.”

“일없다 이눔아. 느그들이나 잘 묵고 잘 살아뿌러.”

그러면서 밥상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아마 뭔가 단단히 틀어진 모양이다. 몇 번을 권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자 남자는 포기한 듯 안채로 들어가더니, 손을 들고 꿇어앉아서 벌을 서고 있는 아들에게 화풀이를 하듯이 말했다.

“손 똑바로 들어라 잉. 며칠 전에 사 준 신발을 또 잃어뿌러야? 인자 다시는 신발을 안 사줄랑께 너는 앞으로 맨발로 댕겨라 잉.”

“아부지! 잘못했어라우. 다시는 안 그런당께.”


“너는 혼이 나봐야 정신을 차링께 고로코롬 밤새 손들고 있어.”

그러더니 슬그머니 아랫목에 누워 있는 노모에게 다가간다.

“어무니! 이러다가 아부지가 굶어서 돌아가시게 생겼어라우. 제발 가서 좀 미안흐다고 한마디 허시고 화 좀 풀랑께라우. 이러다가 줄초상을 치르것네. 아니, 나이 드신 분들이 어째 전부 고집이 쇠심줄이여.”

그러자 돌아누우며 쏘아붙이는 노모.

“일없당께. 굶어 죽든지 말든지. 아니, 늙은 마누라가 장에 가서 윗동네 어릴 적 칭구랑 밥 한끼 묵었다고 무슨 남자가 못나빠지게 저런다냐.”

“아, 어릴 때 첫사랑 이람서라우. 뭐할라고 만나서 이 사단을 만드요 이. 다 잊어불고 살아야제.”

“야! 이노무 자슥아. 늙어도 아직 맴은 이팔청춘이여! 삭신이 늙는다고 맴까지 늙는다든. 너도 늙어 보랑께. 글고 밥만 묵었당께. 이건 정말이여.”

이 집은 돌아가는 꼴이 어째 조금 이상하다.

#

이번에는 마을 중앙에 있는 큰 기와집들이 즐비한 곳으로 가 보았다.

커다란 대문 앞에는 무사들이 네 명이나 서서 집을 지키고 있었다. 검을 찬 모습이 제법 위풍당당하다.

대문을 보니 현판이 걸려 있는데, 멋진 글자인지는 알겠으나 글자를 모르니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다.

대문 양쪽에는 돌로 만든 십이지 신상이 나란히 늘어서 있고, 한 자루 멋진 검을 새겨 놓았다. 그리고 문 앞에 검을 찬 무사가 지키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세가나 무력 조직인 모양이다.

“이제 밤이 되었응께 그놈들이 안 오겄제 잉?”

“고것들이 겁탱이가 없제. 어떻게 우리 기천문을 우습게 본단 말이여.”

두 무사의 대화를 들으니, 여기는 기천문이라는 곳이었다. 그리고 지금 다른 적대 세력이 노리고 있는 상황이고.

“아이고, 슬슬 졸린디 느그들 둘이 망 봐라 이. 우리는 쬐끔 쉴랑께. 느그들까지 졸먼 큰일 낭께 절대 졸면 안 된다 이.”

고참 무사 둘이 대문 경비를 두 후배 무사들에게 맡기고, 자신들은 앞 석대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러자 눈치를 보던 두 후배도 잘되었다는 듯이 서서 꾸벅꾸벅 덩달아서 같이 조는데······.

그때 멀리서 희미하게 말발굽 소리가 들리더니,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두두두두두두두!!

그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어느새 지축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걸로 보아 그 수가 수백 마리는 되는 듯 요란하기 그지없었다.

조금 지나자 말이 투레질을 하는 소리까지 들려온다. 그런데도 대문 앞을 지키는 무사들은 모두 정신없이 졸고 있었다.

밤이 제법 깊었지만 아직은 삼경(11시~)에 접어들기 전이다. 그런데 산적 떼 같은 건장한 남자들이, 수백 필의 말을 타고 기천문의 대문을 향해서 질주해 왔다. 무기를 뽑아 들고 말이다.

말 떼가 대문 근처에 거의 이르러서야, 졸다가 겨우 알아차린 무사가 허겁지겁 소리를 질렀다.

“비상! 마적 떼가 왔다! 마적 천풍련이 왔다! 비상! 비~상~”

이어서 졸음이 덜 깬 눈으로 대문 앞에 달린 종을 사정없이 치기 시작했다.

땡땡땡땡땡땡!!!

그러자 안에서 여기저기에 불이 켜지기 시작하고, 비상이 걸렸는지 허겁지겁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대문의 석단에 앉아서 졸고 있던 무사 둘도 허겁지겁 일어나 앞을 바라보는데, 그때는 이미 마적 떼가 거의 대문 앞에 이르렀다. 바로 코앞에.

그리고 들려오는 서슬이 퍼런 목소리!

“쳐라! 우리의 무서움을 보여 주자!”


“동지들이여! 천풍련의 위력을 보여 주라! 살아 있는 것은 모두 죽여라!”

“개새끼 한 마리 남기지 말고 살아 있는 것은 모두 죽여라!”

여기저기서 외치는 소리와 함께, 대문을 지키는 무사들과 바로 싸움이 벌어졌다.

그러나 몇 합 지나지 않아서, 대문을 지키는 무사들의 목이 떨어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뒤에서 긴 통나무에 철갑을 씌운 파선추 같은 것을 끌고, 말이 빠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대문을 부수려는 것이다.

“앞에 비켜라! 대문을 부숴라!”

말 여섯 필이 바퀴가 달린 원추형 통나무를 좌우에서 끌고, 힘차게 달려왔다. 그리고 마침내 대문과 충돌하는 소리!

꽈앙!!

그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커다란 대문은 빗장이 부러지며 활짝 열리고 말았다.

그러자 말을 탄 마적 떼가 우르르 안으로 쳐들어간다. 그때 내부에 있던 무사들이 방어에 나서자, 곳곳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뒤따라 들어가던 마적들은 대문에 기름을 붓고, 횃불을 던져 불을 붙였다. 태우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주변을 밝히기 위함이다. 상대를 겁주기 위한 것도 있었고.


점점 불이 번져 마침내 화광이 충천하자, 연기가 사방으로 퍼진다.

그때 마적 두목인지 웃통을 벗은 건장한 사내가, 커다란 도를 치켜들며 외쳤다.

“기천문을 모두 불태워라!”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불길이 치솟더니, 사방이 금방 불길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기천문의 무사들 백여 명과 마적들 간에 싸움이 벌어졌다. 그러나 말을 타고 숫자도 훨씬 더 많은 마적이다. 그러니 전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마적을 막아라! 내원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모두 막아!”

그때 목청껏 외치며 앞을 막아서는 기천문의 고수들. 그들 십여 명은 모두 머리에 검은 두건을 두르고, 검은 무복을 입고 있었다.

장검을 가볍게 휘두르는 것으로 보아, 기천문의 핵심 고수들이다. 그들이 앞으로 나서서 실력으로 저지하자, 마적들이 주춤거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마적의 무리에서 십여 명의 고수들이 앞으로 나선다.


커다란 도를 들었고 모두 태양혈(太陽穴)이 툭 튀어나왔다. 그리고 웃통을 벗어젖힌 상체에 드러난 울룩불룩한 근육들······.

등 뒤에는 모두 긴 도갑을 메고 있었다.

“우리 천풍련 십이지신들의 칼 맛을 보여 줘라!”

그들이 우르르 앞으로 나서서 기천문 고수들과 싸움이 벌어지자, 그 틈에 다른 마적들이 내원(內園)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이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쩌렁쩌렁한 호통과 함께 한 중년 무사(武士)가 걸어 나와, 그 앞을 막아섰다. 그가 검강이 발현된 장검을 들고 주변을 휩쓸며 공격을 가하자, 감히 아무도 접근을 하지 못했다.

슈각! 파바밧!

“으아아악!”

"끄으윽!"

검강을 이용한 공격에, 순식간에 핏물을 쏟으며 쓰러지는 마적들!


마적들이 연이어 쓰러지자, 두목으로 보이던 건장한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말에서 내려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중년 무사를 쳐다보는데···, 그 표정에는 가소롭다는 비웃음이 역력하다.

“흐흐흐! 네가 그 천수검귀(千手劍鬼)라는 기천문의 문주 기천경이냐?”

“오냐, 네놈은 필시 파천혈도(破天血刀)라는 천풍련주 욱일기렸다.”

“으흐흐흐, 가소로운 것! 오늘 내가 하늘이 높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 주마. 내가 왜 파천혈도라고 불리는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보아라.”

“사내가 말이 길구나. 어서 들어와라!”

그러자 성질 급한 욱일기가 급히 보법을 밟으며, 기천경을 향해 치고 들어갔다. 도에서 한 자에 가까운 도강(刀罡)이 빛을 발하니 제법 고수다.

“귀도파천(鬼刀破天)!”

두 눈에서 지옥의 불빛 같은 시퍼런 귀화를 일렁이며, 번개처럼 도를 출수하는 욱일기!

그러자 사선으로 치고 들어가는 도첨이 수없이 떨리면서, 괴상한 소리가 주변으로 울려 퍼졌다. 마치 지옥의 흐느낌 같은.

끄흐으으으으~~~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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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 197화. 여래금강무(如來金剛舞) 22.02.26 1,243 30 18쪽
196 196화. 새로운 무공 창안 22.02.25 1,256 32 18쪽
195 195화. 혈천광마(血天狂魔) 탁일도 22.02.24 1,248 31 19쪽
194 194화. 월녀회혼검법(月女回魂劍法) 22.02.23 1,247 33 19쪽
» 193화. 또 다른 생계 녹성 22.02.22 1,253 31 19쪽
192 192화. 어수족과의 협상 22.02.21 1,242 32 18쪽
191 191화. 분노의 사투(死鬪) 22.02.20 1,232 31 21쪽
190 190화. 거대한 괴물 크라케 22.02.19 1,240 32 19쪽
189 189화. 어수족과의 충돌 22.02.18 1,235 29 19쪽
188 188화. 음양오행기(陰陽五行氣) 22.02.17 1,242 32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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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176화. 피바다에 떠도는 시신들 22.02.05 1,245 31 18쪽
175 175화. 같이 죽자는 몸부림 22.02.04 1,242 32 19쪽
174 174화. 스러지는 생명들 22.02.03 1,244 33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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