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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법, 혹은 꼼수


[작법, 혹은 꼼수] 프롤로그에 대한 집착을 버려라

 

원래, 프롤로그는 전통적 글 쓰기에 포함되지 않는 옵션이다.

그럼에도 많은 습작가들은 프롤로그가 소설에 없어선 안 되는 필요불가분의 요소라고 착각한다.

실상 프롤로그는 소설이 아닌 영화, 특히 장르적인 영화에서 관객들의 흥미를 이끌기 위한 장치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영화는 소설과 달리 제한적인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고, 객석에 앉는 순간부터는 상영이 종료될 때까지 수동적으로 영화를 즐길 수밖에 없다. 소설처럼 아무 때나 읽고 싶을 때 집어서 책장을 펼칠 수 없고,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지면에 할애하는 여유 따윈 더더욱 없다. 그런 태생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론 중 하나가 극적인 '프롤로그'다.

흔히 상업영화에서는 '5분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즉, 영화상영 시작 이후로 5분 안에 관객의 흥미를 끌어들이지 못하면 그 영화는 망한다는 속설이다.

이러한 경향은, 소설매체에도 영향에 미치고 있다.

프롤로그는, 거의 장르 소설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장치'이다.

영화를 보고 자란 영상세대들이 자연스럽게 소설에 도입한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영화의 '프롤로그'는 시나리오(타임라인)의 일부분이다.

다시 말해서 철저하게 계산된 '장치'라는 이야기다.

어떤 감독이나 작가도 즉흥적인 멋을 부리기 위해 프롤로그를 쓰진 않는다.

프롤로그는 앞서 말했듯 관객을 영화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치밀한 덫인 것이다.

거듭말하지만, 영화는 소설처럼 인물이나 배경을 친절하게 설명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떤 면에선 '프롤로그'는 전문가들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많은 편집자들은 초보 작가들에게 '프롤로그'를 쓰지 말라고 당부한다.

어설프게 꾸민 프롤로그는 오히려 독소로 작용하여 '글'을 망치기 쉽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들'이 쓴 프롤로그는 굳이 없어도 될 정도로 의미 없는 지면 낭비가 많다.

영화에서 '프롤로그'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꼭 있어야 장치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쓰는 '프롤로그'도 '반드시' 있어야할 부분인가, 하는 물음이 필요하다.

오히려 프롤로그를 써야한단 강박증이 많은 걸 놓치게 만든다.

소설의 시작은 어떻게해야 하는가? 하는 원천적인 질문을 해봐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결국 소설은 '인물'에서 시작해서 '인물'로 끝나는 구조다.

그러므로 프롤로그를 쓰겠다고 어깨에 힘을 줘야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독자들에게 내가 만든 인물의 첫 인상을 '잘' 심어줄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해야한다.

가장 나쁜 프롤로그의 예는, 이런 인물을 빼먹고 쓸데없는 배경 설명의 나열만 가득한 경우다.

독자들이 작가 머릿속에만 있는 소설의 배경을 전부 알아야할 이유는 없다.

소설은 작가가 만든 세계/배경을 설명하는 안내서가 아니다. 누가 그런 글을 읽겠는가.

작품에 대한 사전정보가 전혀 없는 독자에게 억지로 '내'가 만든 정보를 주입하려 들지 말라.

그건 연애를 시작하기도 전에 소개팅 상대에게 자기 이력을 지루하게 줄줄 읊어대는 꼴이다.

그런 대상에게 누가 호감을 느끼고 연애를 하려고 들겠는가? 결국 상식의 문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분은 근사한 프롤로그를 쓰겠다고 바둥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 허튼 짓이다.

이미 만들어놓은 이야기가 있다면 그냥 '바로' 시작하면 그만이다.

헛심을 쓰지 말고, 독자에게 '내'가 만든 인물을 소개하는 일에 더 집중하라.

프롤로그는 선택의 문제이지, 필수항목이 아님을 명심하자.

호흡이 긴 글일수록, 딴에는 공들여 쓴 '프롤로그'가 묻혀버리는 건 시간문제다.

실상 대부분의 독자들은 프롤로그를 기억해주지 않는다.

항상 이야기를 하지만 독자들이 기억해주는 건, '인물'이다.

 

지금 당장 서가나 도서관에 가서 세계문학전집 중 아무 책이나 뽑아보라.

그중에 '프롤로그'를 쓴 작가가 몇이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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