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엘민 님의 서재입니다.

꿈 속에서 꿈을 꾼다는 것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엘민
작품등록일 :
2022.06.01 15:08
최근연재일 :
2024.01.19 20:30
연재수 :
29 회
조회수 :
2,160
추천수 :
72
글자수 :
158,188

작성
24.01.17 20:02
조회
33
추천
0
글자
11쪽

구름 영탈전 (4)

DUMMY

***



발현 : 기류하 검도관.

배희연이 오직 차현우를 위해 만들어낸 발현이었다.

몽력이 아닌, 검술로 자신이 차현우보다 뛰어남을 증명하고자 했던 배희연이 만들어낸 발현.

몽력이 제한되는 이곳에서는 오로지 검술만이 자신의 목숨을 부지할 길이었다.


그런 검도관 안에서 검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둘은 마치 검으로 대화하듯, 계속해서 자신의 검을 상대에게 휘둘렀다.


“나 꽤 늘지 않았어?”

배희연이 매섭게 검을 찔러 넣었다.


“원래 잘 했잖아. 근데 왜 검을 그만둔 거야?”

차현우가 가까스로 검을 피하며 말했다.


“차현우, 넌 내 목표이자 우상이었어. 알아? 그리고 웃기게도 내가 검을 내려놓았던 것도 너 때문이었고”

“말해줘, 내가 네게 무슨 잘못을 한 건지”

“본래 남의 꿈을 짓밟는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짓밟았는지 모르는 법이지. 그 사람에겐 너무나 작은 티끌이라 보이지도 않거든.”


다시 한번 휘둘러지는 배희연의 강한 검.

하지만 차현우는 당황하지 않고 공격을 흘려보냈다.


“설마 너, 두 번째 대련 때문이야?”

차현우가 무언가 생각난 듯 주춤거렸다.


“그렇다면?”

“대체 그 대련이 뭐라고···”

“말했잖아. 짓밟는 사람에겐 티끌이라고. 너에겐 사소했던 그 승리는 내겐 엄청난 패배였어”


배희연이 줄곧 들고 있던 검을 내렸다.

마치 검을 다시는 휘두르지 않을 것처럼.

그리고는 바로 차현우에게 달려들며 검을 위로 올려쳤다.


‘이런 식으로 방심을 유도하는 건 희연이 특기였지’

차현우는 그런 배희연을 알고 있었기에 방심하지 않고 막아냈다.


“차현우, 어때. 옛날 생각 좀 나?”

“많이. 넌?”

“나도 좀 나네”


둘은 서로의 검을 맞댄 채 한참 동안 힘을 겨뤘다.


“흐아앗!”

그러던 중, 배희연이 맞닿은 검을 강하게 밀어냈다.

이에 차현우가 뒤로 밀려나며 벽에 등이 닿았다.


“이건···. 야, 이런 것까지 구현할 필요는 없었잖아”

차현우의 눈동자에 벽에 그려진 무언가가 새겨졌다.


아주 오래전, 둘이 장난스레 낙서한 벽의 그림.

그림 속 차현우와 배희연은 해맑은 미소를 유지한 채 검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차현우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걸 그릴 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치?”

배희연이 다가오며 물었다.


“난 너를 뛰어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어. 근데 노력하는 수재는 노력하는 천재를 이길 수 없더라고”

“너도 경기 나갔다 하면 우승하고 그랬잖아. 다시 말하지만, 넌 이미 충분히 검을 잘 다뤘어.”

“그딴 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 나도 말했듯이 내 목표는 널 이기는 것이었으니까”

“··· 희연아”

“그리고 내 모든 걸 맞부딪혔던 그 날. 너와의 격차를 너무나 실감했지. 그건 내게 처음 겪는 커다란 절망이었어. 꽤 네게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넌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 서 있었던 거야”


배희연의 말에 차현우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잠시 둘 사이에 적막한 공기가 흘렀다.


“항상 저기서 사범님이 우릴 보고 있었는데”

배희연이 시선으로 어딘가를 가리키자 차현우가 같은 곳을 보며 끄덕였다.


“아, 맞다. 기 사범, 몽계에 살아 있어.”

배희연이 장난스레 말했다.


“어? 정말? 사범님이?”

“응. 최근에 만났어. 그 인간 정도면 이미 도치자들을 꺾고도 남았을 텐데 본인은 그런 건 관심 없다나 뭐라나”

“기 사범님 답네”

“자기는 그냥 몽계에서 유유자적 살다가 죽고 싶다 하더라고”

“그거마저도.”


차현우와 배희연의 눈이 맞닿았다.

둘은 같은 미소를 품고는 검을 들었다.

그리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까앙-

두 금속이 만나며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두 검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의 몸을 상대에게 부딪혔다.


항상 차현우보다 속도가 우위였던 배희연의 공격은 이번에도 역시 끊어질 줄 몰랐다.

하지만 차현우 또한 방어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틈을 보며 한 번씩 내지르는 공격은 꽤 위협적으로 배희연에게 다가갔다.


“봐주는 거야?”

배희연이 검을 휘두르며 물었다.


“그럴 리가”

“그럼 왜 사용하지 않는 건데?”

“뭘?”

“알면서 물어? 기 사범 기술”


배희연이 거리를 벌리고는 손가락을 까닥했다.


“참고로 나도 이제 사용할 줄 알아”

“아까 붉은 머리 모두를 벴던 것도 1번 자세였지?”


2라운드 시작과 동시에 붉은 머리를 베기 전.

배희연이 찰나에 취했던 그 자세.

그건 차현우에게 너무나 익숙한 자세였다.


“역시 알아봤구나?”

“내 눈을 의심했어. 그 자세를 그런 곳에서 보게 될 줄 몰랐으니까”

차현우가 씁쓸하게 웃었다.


“아마 이 밖에서 네 길드장과 붉은 머리가 서로 피 터지게 싸우고 있을 거야”

배희연이 손가락으로 건물 밖을 가리켰다.


“뭐?”

“구름 영탈전의 두 번째 시련은 ‘망자의 시련’. 도치자에게 도전했다가 죽은 모두가 망자로 변해 태어나거든.”

“너, 그걸 알면서도···!”

“너와 단둘이 검을 맞대고 싶었어.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네 길드장 성격이면 아마 붉은 머리의 망자들을 베지 못할 테니까 시간 여유는 거의 무한이라고 생각했지”

“··· 배희연, 너 왜 이렇게 변한 거야?”

“변한 건 이 세상이야. 난 이 세상에 맞게 살아가고 있는 거고”

“모든 게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그런 건 없어. 모든 건 변해”


배희연의 단호한 말에 차현우가 이를 꽉 물었다.


“여기선 강함이 법이야. 알잖아?”

“그렇다면 내 검으로 이제부터 질서를 바로잡겠어. 이 빌어먹을 세계를 내 손으로 바꿀 거야”

“그 알량한 정의가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 기대할게.”

“흐아아앗!”


처음으로 차현우의 검이 먼저 휘둘러졌다.

공격성이 실린 검은 앞을 향해 매섭게 나아갔다.

배희연이 그런 검을 막기 위해 방어 자세를 취했지만, 차현우의 검은 예상보다 더 강하고 빨랐다.


촤악-

배희연의 가슴팍에서 피가 솟구쳤다.

사선으로 곧게 뻗은 상처가 붉게 물들었다.


“큭-”

“야, 괜찮아?”

차현우가 당황했는지 검을 내리고 배희연에게 다가가려 했다.


“차현우! 다가오지 마. 다시 검 들어”

“희연아···”

“너 바보야? 방금 확실하게 벨 수 있었잖아”

“너라면 벨 수 있겠어?”


결국, 고였던 차현우의 눈물이 흘러내린다.

눈물은 뺨을 타고 내려와 검으로 흘렀다.

도신에서 만난 눈물과 피가 한 방울로 융화되어 땅으로 추락했다.


“벨 거야. 그래야만 하니까”

“거짓말”

“벨 거야.”

“거짓말”

“차현우, 정신 차려. 여긴 추억에 젖어 살아갈 만큼 한가한 곳이···”

“내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떻게 너를 베? 내가 검을 계속해서 잡을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네 덕분이었어. 그래서 네게도 난 분명···”

“그래서 뭘 어떻게 할 수 있는데?”

“뭐?”

“그런 약해빠진 소리 하면 지금 뭐가 달라지냐고!”


배희연의 비명과 같은 외침에도 차현우는 아무 대답 하지 못했다.


“난 이 세계에 들어온 순간 모든 감정을 버렸어. 그게 유일하게 살 수 있는 길이었거든. 그래서 지금 난 널 벨 거야.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서”

배희연이 차가운 표정으로 검을 다시 들었다.


“어디 막아봐, 내 검”

그리고는 무릎을 살짝 구부린 채 검을 꽉 쥐었다.

곧, 정신을 집중한 배희연의 팔이 움직였다.


“하(河)류 극의검 1식 - 하늘 내려 베기”

엄청난 힘과 속도로 배희연의 검이 하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새였다.

같은 자세를 취한 차현우의 검이 올곧게 수직으로 상승했다.


“하(河)류 극의검 1식 변형 – 땅 올려 베기”


서걱.

차현우의 검은 힘겨루기를 하기는커녕 배희연의 검을 그대로 갈랐다.

깔끔하게 두 동강 난 배희연의 검과 함께 선혈이 공중으로 치솟았다.


“커, 커흑”

배희연이 입에서 피를 토해내며 무릎을 꿇었다.

힘이 풀린 손에서 검이 떨어졌다.

올곧게 갈라진 배희연의 심장 부근에서 피가 솟구쳤다.

차현우의 검에서 배희연의 피가 흘러내렸다.


“그래도 나, 꽤 늘었지?”

배희연이 차현우를 올려다보며 힘겹게 미소를 띄웠다.


“바보야. 지금 그게 중요해?”

차현우는 그런 배희연의 앞으로 가 무릎을 꿇고 얼굴을 마주했다.


“인정할게. 내가 졌어. 몽력이란 게 없으면 난 이렇게 약했구나”

“아냐, 넌 약하지 않아. 단지···”

“위로는 됐어. 꼬맹이가 언제 이렇게 큰 거야? 울면서 콧물 질질 짜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리고 두 번째 대련 때랑은 또 다른데? 역시 전 세계 국가대표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데는 이유가 있었어.”

배희연이 힘겹게 말을 내뱉을 때마다 입에서 피가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네가 검을 놓은 그 순간, 난 더욱 검을 세게 움켜쥐었어. 네게 빛이 되고 싶었어. 너의 어두운 그림자를 다 걷을 수 있도록”

“걱정 마. 넌 언제나 내게 태양이었으니까. 그것도 너무나 눈부신···.”

“말하지 마, 상처 벌어지잖아”

“야, 차현우. 꼭 이 세계에서도 최고가 되어줘. 너라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힘에 부치는 듯 가쁜 숨을 내뱉으며 말하는 배희연.

그런 배희연을 바라보는 차현우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응”

“약속한 거다. 내 우상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모두에게 증명해주라고. 위에서 지켜보고 있을게”

“응”

“그럼 정말로 안녕.”


배희연이 슬프게 웃었다.

가늘게 휘어진 눈에서 눈물이 곱게 흘러내렸다.


차현우가 그런 배희연의 손을 붙잡으려는 순간,

배희연이 손에 들고 있던 검으로 자신의 심장을 찔렀다.



***



“끝이 안 보이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구름 영탈전에 도전해댄 거야?”

김 혁이 흐르는 땀을 닦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구름으로 형성된 망자들은 아직도 최소 몇백은 남아 있었다.


그나저나 커다란 검도관이 사라졌다.

거기서 느껴지던 범접할 수 없는 몽력의 기척도 함께.


그 말은 차현우와 안대를 쓴 여자 둘 중에 한 명은 죽었다는 것.

그게 차현우가 아닌, 여자이길 빌어야겠군.


잠깐, 여자가 살아나왔다면 채리가···!

지금 채리는 온전한 상태가 아닌데-


“다 꺼져”

김 혁의 검에 검은색의 몽력이 강하게 실렸다.

그리고 휘둘러진 검에서 엄청난 검기가 뿜어져 나왔다.

검기는 그대로 주위의 망자 모두를 갈랐다.


지금은 약한 척 할 때가 아니야.

당장 채리에게-


김 혁의 눈이 채리에게 닿은 순간 눈동자가 안심으로 물들었다.


“다행히 승자는 너였나 보네”

김 혁이 차현우와 민채리를 향해 걸어왔다.


“···”

하지만 차현우의 기척이 달랐다.

무언가 변화했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괜찮냐?”

김 혁이 조심스레 물었다.


“···”


어떠한 대답도 없는 차현우의 눈은 깊게 패여 있었다.

파인 골짜기에는 슬픔과 분노, 원망 같은 모든 감정이 스며들어 있었다.


상황이 안 좋다.

채리도, 차현우도 정신 상태가 말이 아니야.

여차해서는 그냥 나 혼자 영탈전을 끝내는 수밖에.


그렇게 두 번째 시련은 끝을 맺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꿈 속에서 꿈을 꾼다는 것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9 구름 영탈전 (7) 24.01.19 36 1 12쪽
28 구름 영탈전 (6) 24.01.18 44 1 12쪽
27 구름 영탈전 (5) 24.01.18 36 0 12쪽
» 구름 영탈전 (4) 24.01.17 34 0 11쪽
25 구름 영탈전 (3) 24.01.16 34 0 11쪽
24 구름 영탈전 (2) 24.01.16 35 0 13쪽
23 구름 영탈전 24.01.16 33 0 12쪽
22 서윤이를 만난 날 (3) 24.01.15 42 0 14쪽
21 서윤이를 만난 날 (2) 24.01.14 41 0 12쪽
20 서윤이를 만난 날 24.01.14 40 0 15쪽
19 가면 술래잡기 (4) 24.01.14 43 0 12쪽
18 가면 술래잡기 (3) 24.01.14 37 0 11쪽
17 가면 술래잡기 (2) 24.01.14 39 0 12쪽
16 가면 술래잡기 24.01.14 40 0 11쪽
15 검을 잡은 이유 (4) 24.01.14 40 0 12쪽
14 검을 잡은 이유 (3) 23.12.12 48 0 12쪽
13 검을 잡은 이유 (2) 23.12.10 51 0 11쪽
12 검을 잡은 이유 23.12.09 55 0 13쪽
11 각자의 길 (5) 23.12.08 60 0 12쪽
10 각자의 길 (4) 23.12.07 62 0 12쪽
9 각자의 길 (3) 23.12.06 67 0 12쪽
8 각자의 길 (2) 23.12.05 70 0 12쪽
7 각자의 길 23.12.04 72 0 12쪽
6 붉은 머리 입단식 23.11.26 96 1 13쪽
5 붉은 머리 입단 시험 (2) 23.11.25 102 1 11쪽
4 붉은 머리 입단 시험 23.11.23 113 2 11쪽
3 깨어나다 (3) 23.11.21 130 2 13쪽
2 깨어나다 (2) +2 22.06.01 300 26 14쪽
1 깨어나다 +3 22.06.01 360 38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