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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민 님의 서재입니다.

꿈 속에서 꿈을 꾼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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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민
작품등록일 :
2022.06.01 15:08
최근연재일 :
2024.01.19 20:30
연재수 :
2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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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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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글자수 :
158,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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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5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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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붉은 머리 입단 시험 (2)

DUMMY

***



개인의 몽력은 자신에게 가장 편한 형태로 발현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 몽력은 아마도 번개나 불꽃, 얼음 따위가 아닌 순수한 검, 그 자체일 것이다.

평생 검만을 잡아 온 나는 검이 가장 편하고 익숙하다.


그렇기에 나의 발현은 검에 관련된 것일 것이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검이 아닌 다른 것은 흥미도 없고 원하지도 않기 때문에.

하지만 몽령의 섬에 오기 전까지 허수아비를 몇 번이고 베었음에도, 아쉽게도 나만의 발현은 찾지 못했다.


그러나 몽령의 섬에 온 지금,

김 혁의 말에 힘입어 완전한 기본 발현에 성공한 지금.

드디어 내가 이뤄내야 할 발현이 조금 보인다.


양옆에서 몽령 두 마리가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당장이라도 거리를 벌리고 싶지만, 어느새 다시 발을 묶은 이 넝쿨 식물은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아마 몽령의 기다란 손톱은 곧 내 목을 꿰뚫을 것이다.


그런데 왜일까, 이토록 마음이 평온한 건?

나만의 발현을 찾지 못했음에도 차분한 내 마음은 곧 검으로 이어진다.


그래, 나만의 발현을 모르면 어때?

몽력이라는 힘은 불가능하던 움직임을 가능하게 해주는데.

이미 그것만으로도 내 검은 이미 한 단계 진화했다.


나의 상상을 토대로 몽력을 흘려 넣는다.

황금색 몽력이 검을 타고 빠르게 흘러 들어간다.


내가 떠올린 검의 움직임.

그것은 엄청난 속도로 첫 번째 몽령을 벰과 동시에 두 번째 몽령의 목을 베는 검.

몽력에 잔뜩 휩싸인 검은 내 뜻을 이해했다는 듯 웅웅-거린다.


준비는 끝났다.

이제 할 일은 몽령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셋, 둘, 하나.


손에 들려 있던 검이, 내가 휘둘렀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속도로 휘둘러졌다.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상행하는 검은 자신의 길을 우아하게 개척해 나갔다.

검은 그대로 첫 번째 몽령의 목을 벰과 동시에 두 번째 몽령의 목으로 향했다.


콰악-

두 번째 몽령이 손으로 내 검을 붙잡았다.

몽령의 손에서 검은 피가 뚝뚝 떨어진다.

첫 번째 몽령을 베면서 살짝 힘이 떨어진 건가.


“꺼져”


검을 다시 힘껏 휘두르자 몽령의 팔이 그대로 잘렸다.

내 검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몽령의 목을 관통했다.

몽령은 그대로 쓰러져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겼··· 커헉”

마른기침과 함께 피가 토해져 나왔다.

머리가 어지럽고 심장이 엄청나게 빨리 뛰기 시작한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몸에 힘이 안 들어가.


“몽력을 너무 많이 사용한 거야. 몽력이 거덜 나면 그렇게 돼. 이 상태에서 적이 나타났으면 너 죽었어.”

김 혁이 옆으로 다가오며 내 손을 가리켰다.

언제부터인지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고작 한 번의 움직임으로 몽력이 거덜 났다고?

내 몸에는 몽력이 그렇게나 조금 들어있는 거야?


“사용법이 미숙하니 필요한 양보다 더 사용한 거야. 몽력은 써야 할 곳에만 써도 모자라는데, 계속 쓸데없는 곳에도 사용하니 당연히 부족할 수밖에 없지”


내 생각이라도 읽었는지 김 혁이 말을 이었다.

근데 쓸데없는 곳이라고?

방금 난 검을 휘두르는 것 이외의 다른 곳엔 몽력을 쓰지 않았는데?


“먹어”

김 혁이 내게 무언가를 건넸다.

김 혁의 손바닥 위에서 영롱하게 빛나고 있는 검은색의 구슬.

이건,


“영옥이잖아?”

“용케 안 까먹었네”

“미안한데 내 기억력이 그렇게 안 좋진 않아. ··· 근데 이거 먹는 거 맞아?”

“내가 못 먹는 걸 먹으라고 하겠어?”


진짜 말하는 꼬락서니 하곤.

근데 진짜 먹을 수 있는 거 맞아?

어딘가에 아직도 그때의 검은 피가 묻어있는 듯한 느낌은 왜 드는 건데.


여전히 떨림이 멈추지 않는 손으로 영옥을 받아 들었다.


“지금 제일 먹고 싶은 게 뭐야?”

“아이스 아메리카노”


1초도 걸리지 않아 대답이 나왔다.

난 커피를 너무나 사랑했다. 아니, 아직도 사랑한다.

그렇기에 몽계에 들어와 단 한 잔도 커피를 마시지 못한 지금, 커피에 대한 그리움은 최고조가 되어 있었다.

딱 지금 한 잔만 마실 수 있다면.


손바닥 위에 올려져 있던 영옥의 느낌이 달라졌다.


“뭐야?”


어느새 내 손엔 유리잔이 들려 있었다.

그것도 얼음이 동동 띄워진 커피가 들어있는.


이거 진짜야?

조심스레 입을 가져다 댔다.


아, 산미가 전혀 없는 이 달콤하고도 고소한 원두.

거기에 삼킨 후 혀에 남는 탄 맛.

가히 최고다.


게다가 몸에 다시 넘쳐 흐르는 몽력.

온몸에 몽력이 퍼지며 다시 힘이 샘솟는다.


“그렇게 먹는 거야. 영옥”

“말도 안 돼”

“뭐가?”

“이렇게 좋은 거라고?”


먹고 싶은 음식으로 변하는 구슬이라니.

맛있는데 심지어 몸에도 좋다.

역시 귀하고 비싼 데는 이유가 있다.


“내가 줄 수 있는 도움은 이게 마지막이야. 다음은 없어”

김 혁이 검을 다시 휘두르자 내 발을 감싸던 넝쿨 식물이 잘게 분해됐다.

아예 뿌리까지 잘게 조각난 식물은 다시는 재생하지 않았다.


저 입만 닫았어도 참 고마워했을 텐데.


“오늘 안에 안 끝날 거 같아서 말해주자면, 아까 내가 한 말을 잘 생각해”

김 혁은 그 말을 끝으로 입을 열지 않았다.


아까 한 말이라.

쓸데없는 곳에 몽력을 사용한다고 했던 말인가?


···.

잠깐, 그런 뜻이었나?


지금 내게 필요한 건 거대한 버섯을 찾기 위한 감각.

그것은 아마도 오감 중 시각.

시각을 제외하면 굳이 다른 감각을 위해 몽력을 활성화할 필요는 없다.


지금까지 나는 굳이 몸의 모든 감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거다.

몽력이란 것은 필요할 때에 필요한 곳에만 사용하면 되는 거였는데.


최소한의 몽력만을 유지한 채, 모든 몽력을 시각에 집중한다.

몽력이 눈을 감싸자 눈이 넓게 뜨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아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땅을 기어 다니는 벌레들, 나뭇잎의 잔주름, 그리고 저 너머의 것들.


“뭐, 그런 방식이야. 빨리 깨달았네. 더 걸릴 줄 알았는데”

“덕분에”


같은 눈으로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된 느낌.

기분이 오묘하다.


이제 남은 건 시간이군.


“키엑-”


아, 그만.



***



계속해서 튀어나오는 몽령들을 죽이며 섬 전체를 돌았다.

이제는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다.


근데 대체 거대한 버섯은 어디 있는 거야?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전투를 할 때가 아니면, 모든 몽력을 시각에 집중하여 섬을 탐색했다.

웬만한 곳은 구석구석 보았을 텐데 이렇게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설마 숨겨져 있는 거야?”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닌가 보네. 명색이 시험인데 버섯이 나 좀 보세요 하고 밖에 나와 있겠어?”

“아, 그런가”

“그래도 몽력으로 시각만 강화해서 찾는 건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어”


방금 그건 김 혁의 칭찬.

긍정적인 감정을 잘 표출하지 않는 김 혁에게는 저 정도의 말이 최고의 칭찬이다.


“참고로 난 10분 걸렸어.”

“거짓말”

“내가 너한테 거짓말을 왜 하겠어? 너한테 무슨 얻을 게 있다고”

“진짜 넌 나보다 약했으면···”

“?”

“아니다”


주먹이 파르르 떨린다.

언젠가는 이 녀석의 머리에 꿀밤을 놓고야 말겠다.


근데 10분 걸렸다고?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빙산의 일각 알아?”

김 혁이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알지”

“그럼 됐어.”


뭐야?

갑자기 왜 물어보는 건데?

상식 테스트도 아니고.


“슬슬 힘들어 죽겠네”

한숨 쉬며 검을 땅에 내리꽂았다.

그 순간, 발밑의 땅이 강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어?”


검이 꽂힌 곳을 바라보니 작은 버섯 하나가 있었다.

작은 버섯은 내가 내리꽂은 검에 의해 두 동강이 나 있었다.


“우어어어-”


갑자기 고함과 함께 발밑의 땅이 갈라졌기에 나는 재빨리 옆으로 몸을 던져 피했다.

그리고는 갈라진 땅속에서 무언가가 등장했다.

그건, 거대한 버섯.


근데 왜 살아있는 건데.

그것도 무서운 얼굴을 하고서.


거대한 버섯은 잔뜩 화가 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버섯의 머리엔 두 동강 난 작은 버섯이 매달려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내 머리카락이···”

“우와, 버섯이 말한다”

“용서하지 않는다! 우워어어어-”


버섯의 몸에서 팔이 자라났다.

아니, 근데 그 작은 버섯이 머리카락이었냐고.

정말 알 수가 없는 세계다.


“저 버섯은 몽령의 한 종류야. 특이형 몽령이지”

김 혁이 무표정으로 버섯을 가리켰다.


“저게 몽령이라고?”

“네가 지금껏 봤던 인간형의 형태의 몽령을 일반형 몽령, 저렇게 다른 형태를 가진 몽령들을 특이형 몽령이라고 불러”

“근데 ‘특이형’이라는 건···”

“맞아. 일반형보다 몇 배는 더 강하다는 거지”

“미치겠네”


우지끈 소리에 앞을 바라봤다.

거대한 버섯이 나무를 뽑아 들고 있었다.

던지려는 건가?


슬프게도 꼭 이런 추리는 틀린 적이 없었다.


“큭”

검으로 날아온 나무를 겨우 튕겨냈다.

나무는 옆으로 날아가 다른 나무에 부딪히며 산산이 조각났다.


손이 얼얼하다.

엄청난 힘.


앞을 보니 다시 또 다른 나무가 날아오고 있다.


이번엔 팔에 모든 몽력을 집중해.

튕겨내지 않고 벤다.


황금색의 몽력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몽력은 내 검을 아름답게 휘감으며 더욱 길고 날카롭게 만들었다.


곧, 나무와 검이 충돌했다.


팔을 빠르게 움직여-

이곳을 베다가도 저곳을 베며, 끊임없이 나무를 벴다.


성공이다.

조각난 나무토막들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었다.

거대한 버섯이 나무를 뽑아 든 채로 나에게 달려들었다.

버섯은 나무를 마치 검처럼 휘둘러댄다.


한방 한방이 위협적인 공격.

제대로 맞으면 최소 골절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속도가 빠르지 않다는 것.


순간 버섯이 팔을 높게 치켜들며 내게 나무를 내리찍었다.

나는 공격을 피하며 그대로 버섯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까앙-

버섯의 다리를 자를 작정으로 휘두른 검이 간단하게 막혔다.

무슨 버섯이 이렇게 단단한 건데.


하지만 못 벨 정도는 아니다.

힘을 더욱 실어 강하게 휘두르자 검이 버섯의 다리를 파고들었다.


콰앙-.

한쪽 다리를 잃은 버섯이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나는 그런 버섯의 몸통을 밟고서 위로 올라갔다.


“미안. 악의는 없었어.”


내 검은 그대로 버섯의 목을 갈랐다.

버섯은 비명도 없이 그대로 눈을 감았다.

괜히 미안하네.


“하아, 하아”

저절로 가쁜 숨이 나왔다.

몽력도 이제 한계다.

이 이상 사용하면 아까의 증세가 다시 나타날 게 뻔했다.


그나저나 단검은 어디에 있는 거야?

저긴가?

버섯의 심장 부근이 유난히 붉게 빛나고 있었다.


죽은 버섯의 몸은 보통의 버섯처럼 부드럽게 변했다.

덕분에 검으로 가슴을 가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갈라진 버섯의 몸속에 작은 단검 한 자루가 붉은빛을 발하고 있었다.


“가자”

어느새 옆에 다가온 김 혁이 발걸음을 돌렸다.


그래.

너한테 칭찬은 바라지도 않았···


“고생했어”


어?

내가 방금 잘못 들은 건가?

저 무거운 입에서 고생했다는 말이 나왔다고?


“돌아가면 푹 쉬도록 해”

김 혁이 걸어가며 무심하게 말했다.


“같이 가”

달려가 김 혁의 옆에 붙었다.


“근데 아까 뭐라고 했어?”

“뭐?”

“조금 전에 한 말”

“내가 뭐라고 했는데?”

“기억 안 나는 척하네. ‘고’로 시작하는 거”

“고···”

“키에에에엑”


환상적인 타이밍이네.

끝까지 곱게 보내주지를 않는구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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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서윤이를 만난 날 24.01.14 40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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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가면 술래잡기 (3) 24.01.14 37 0 11쪽
17 가면 술래잡기 (2) 24.01.14 3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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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각자의 길 23.12.04 7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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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머리 입단 시험 (2) 23.11.25 103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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