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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민 님의 서재입니다.

꿈 속에서 꿈을 꾼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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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민
작품등록일 :
2022.06.01 15:08
최근연재일 :
2024.01.19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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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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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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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58,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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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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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각자의 길 (3)

DUMMY

***



내가 솜사탕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노을이 하늘에 번지는 중이었다.

구름 화살표는 솜사탕 마을의 도착과 동시에 사라졌다.

하늘을 덮은 주황빛의 구름이 마을을 같은 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정말 아기자기한 마을이다.

귀여운 풍차가 마을의 곳곳에 세워져 있었고, 마을 전체에 빵 굽는 냄새가 향긋하게 퍼졌다.

아무리 봐도 그렇게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마을은 아닌데.


먼저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볼까.

마을이 꽤 넓지 않아 보이니 돌아보는 건 일도 아니겠네.


그나저나, 여기에 붉은 머리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일단은 그 사람과 만나는 게 먼저야.

근데 어떻게 만나지?


“어이”

“깜짝이야”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누구세···”

뒤를 돌아보자, 먼저 보인 건 얼굴이 아닌 검이었다.


검의 주인은 머리를 포니테일로 높게 질끈 묶은 여자였다.

여자의 붉게 빛나는 머리카락이 노을빛을 반사했다.


“네가 신입이야?”

“머리카락 색 보면 알지 않나? 이거 좀 치워주지?”

손으로 검을 툭 건들자 여자가 검을 내렸다.


“이름은?”

“차현우. 넌?”

“신입 주제에 반말?”

“채리랑 친구라며?”

“몽계에서 나이는 상관없어. 강한 게 전부야”

“네, 네”


성깔 있다고 했던 게 이런 뜻이었나.

왜 이 여자에게서 김 혁이 보이는 건지.

임무가 끝날 때까지 골치 좀 아프겠는데.


근데 김 혁도 그렇고 얘도 그렇고 왜 하나같이 성격이 이 모양이야?


“선배로서 정식으로 인사할게. 난 김유리 ‘님’이야.”

“김유리?”

“님”


채리는 얘랑 왜 친구를 하는 걸까.


“일단 따라와”

김유리가 앞장서서 어딘가로 향했다.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의 한구석에 세워진 교회에 도착했다.

교회에 들어가자 수많은 사람의 눈동자가 우릴 반겼다.


“안녕하십니까”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노인이 인사하며 내게 다가왔다.


“전 솜사탕 마을의 촌장 챠르모라고 합니다. 마을을 도와주러 오신 것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무려 붉은 머리 길드에서 두 분이나 오시다니”

노인이 내게 고개를 푹 숙였다.


“촌장님, 고개 들어주세요. 전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녜요. 그래도 부족한 힘 최대로 보태보겠습니다”

난 무릎 꿇은 채 촌장의 눈을 바라봤다.

촌장의 작은 눈에는 눈물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매달려있었다.


그나저나 마을에 아무도 없더니 여기에 다 모여있었구나.


“근데 왜 모두가 교회에 모여있는 거지?”

“바로 어젯밤. 마을 주민이 죽었어. 지금까지 사람이 죽은 적은 없었는데 말이지”

“그 말은···”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는 거야. 뭔가 이게 시작일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그래서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내가 교회로 사람들을 모두 모아 달라고 요청한 거야”

김유리가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래도 늦었지만, 범인과 접촉할 수 있었고 나름의 위치 추적 장치도 해놨어. 혼자로는 무리일 것 같아 널 기다린 거야”

김유리가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손바닥에는 장미꽃의 꽃잎이 올려져 있었다.


저 꽃잎이 위치 추적 장치라는 건가?


“아무쪼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마을은 제가 태어난 곳입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여기 있는 모두가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죠. 그런 마을이 망해가는 모습을 더는 보기가 힘듭니다. 제가 촌장으로서 마을을 지키지 못해···”

“그런 말씀 마세요. 촌장님 잘못 하나도 없으니까요. 잘못은 그 개자식이 한 거죠”

김유리가 촌장의 손을 어루만졌다.


뭐야, 이런 모습도 있어?

이런 모습만 보여주면 얼마나 좋아?


촌장은 김유리의 손을 잡고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



서늘한 밤공기가 넓은 초원에 가득 내려앉았다.


“양은 대체 왜 죽인 거지?”

텅 비어있는 목장을 보자 괜히 마음이 아파온다.


“솜사탕 양의 털에 몽력이 담겨 있거든. 영옥만큼은 아니지만”

“양털에 몽력이 담겨 있다고?”

“응. 양털을 먹으면 몽력을 얻을 수 있지. 정작 마을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몰랐던 것 같지만. 대체 그 누가 양털을 먹을 생각을 했겠어?”

“그 사실을 발견한 사람도 어지간한 미친놈인 건 확실하다”

“그리고 양의 심장은 그냥 재미로 빼내는 것 같고”

“들으면 들을수록 어이가 없어지네”


어떤 낯짝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군.


“오늘은 밤이 깊었으니 내일 해가 뜨는 대로 움직이도록 하고, 우리는 번갈아 교대하며 이 목장을 지킨다”

김유리가 가리킨 초원의 한쪽엔 자그마한 나무 축사가 있었다.


“몇 마리 안 남은 양들을 한군데에 모아놨어. 저기 있는 양들마저 사라지면 양도 마을도 정말 끝이야.”

“알겠어. 보초는 내가 먼저 설게. 넌 좀 쉬고 있어”

“그럼 맡길게. 근데 너 아까부터 말 놓는다?”

“얼른 들어가십쇼, 선배님”

“그래”


저 멀리 걸어가는 김유리를 보니 저절로 주먹이 쥐어진다.

꿀밤 순서, 김 혁 다음은 쟤다.


솜사탕 양이라.

어떻게 생겼나 보러 가볼까?



***



미친, 진짜 미치도록 귀엽네.

복슬복슬한 털에 똘똘한 눈.

양마다 모두 털 색깔이 다른 것도 너무 귀엽잖아.


“매애애애”

“매애애-”


양들은 나를 보자마자 다가왔다.

왠지 울음소리가 유난히 구슬프게 들렸다.


“그래, 그래. 이젠 형이 지켜줄게”


이렇게 귀여운 생명체를 난도질하다니.

감정이란 게 없는 건가?


“신기하군요. 낯가림이 심한 녀석들인데. 제 목숨을 지켜줄 사람이라는 걸 아는가 봅니다. 허허허”

어느새 촌장이 축사의 입구에 서 있었다.


“촌장님, 왜 안 주무시고 나오셨어요”

“두 분에게 맡기고 저 혼자 발 뻗고 잘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게 저희의 일인데요”

“비록 보수는 없지만, 언제든지 마을에 놀러 오시면 극진히 대접하겠습니다”

“나중에 여자친구랑 놀러 올게요. 여자친구가 딱 좋아할 마을이거든요”

“여자친구가 있으신가 봅니다”

“네. 지금은 잠깐 헤어졌지만요”

“그렇군요. 두 분이 같이 올 날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매애애애애!”


그 순간, 밖에서 양의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새끼 양 한 마리가 축사 밖으로 뛰쳐나갔다.


“리꼬! 리꼬야!”

촌장이 새끼 양의 이름을 부르며 뒤를 쫓았다.


무슨 상황이지?

나도 따라가야 하는 건가?

그럼 이 축사가 비게 되는데-


“끄아아악!”


이건 촌장님의 목소리다.

대체 무슨 일이···.


축사에서 나와보니, 낯선 남자가 촌장의 배에 칼을 찔러 넣고 있었다.

그 옆으로 뛰쳐나갔던 새끼 양과 어미처럼 보이는 양이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


내 불찰이다.

같이 나갔어야 했어.


검을 휘둘러 황금색의 검기를 날렸다.

그러자 낯선 남자가 내 검기를 피해 뒤로 물러났다.


뭐야, 어떻게 한 거지?

나도 모르게 검기를 날렸다.

이건 분명 김 혁이 예전에 보여줬던 그 발현인데.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일단 상황을 타개했다.


“방해꾼인가? 쳇, 아직 털도 못 벗겼는데”

남자가 나를 바라보고는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촌장님!”

재빨리 달려가 촌장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깊게 찔리진 않았다.

바로 옮겨서 응급처치를···


“뭐야? 무슨 일이야?”

김유리가 허겁지겁 달려 나왔다.

아마도 촌장의 비명을 듣고 나온 거겠지.


“미안. 내가 판단이 느린 탓에”

“사과할 때가 아니야. 사과하더라도 대상은 내가 아니고”

김유리가 냉철하게 말하고는 촌장을 들춰 멨다.


“의사에게 데려갈게. 너는 여기 남아 양들을 지켜”

“응. 걱정하지 말고 모셔 가”


“내가 다시 올 때까지 여기에서 벗어나지 마”

김유리가 말을 마치고는 교회 쪽으로 빠르게 뛰어갔다.


젠장, 젠장, 젠장.

나 때문이다.

아니, 지금은 자책할 때가 아니야.


다시는 실수하지 않는다.



***



은하수의 섬, 황홀한 평원.


“그런 일이 있었구나. 오빠가 죽지 않았을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설마 하는 마음이 계속 있어서···”

엘라가 김 혁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미안. 일이 좀 있기도 했고 찾아갈 겨를도 없어서”

“괜찮아. 이렇게라도 얼굴 보니까 좋다”

“나도야. 넌 어떻게 지냈어?”

“나야 뭐, 하던 거 계속하고 있지. 이제 거의 막바지야”

“은하수의 섬 영탈전?”

엘라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류 진 오빠는 아직도 ‘그쪽’에 있는 거고?”

“응”

“왜 나는 그냥 보내준 건지 의문이네. 왜 오빠는 그렇게 죽이려던 거고”

“그러게. 뭐 워낙 제멋대로 사는 사람이니까”

“맞아. 그래도 가끔 그때가 그리울 때도 있어. 정확히 말하자면 그 시절의 우리가”

엘라가 무언가를 회상하듯 하늘을 바라봤다.


“그래도 좋아 보이네?”

김 혁에게 시선을 옮긴 엘라가 미소를 머금고 물었다.


“응? 뭐가?”

“모르는 척하지 마.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내 눈은 정확하니까”

“무슨 말 하는 건데?”

“좋아하지? 오빠 길드장”

“어, 어?”

“맞네. 좋아하네”


엘라가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을 하고서 김 혁의 배를 콕콕 쑤셨다.


“그래서 사귀어? 며칠 됐어?”

“그런 거 아니야”

“사귀진 않는구나? 그럼 뭐야, 짝사랑?”

“그런 것도 아니야”

“아니긴 뭘. 눈에서 꿀이 떨어지던데”

“잘못 본 거겠지”

“내가 오빠를 본 게 몇 년인데. 오빠 얼굴, 태어나서 처음 보는 얼굴이던데?”

“···”

“얼굴 빨개졌다”


김 혁이 다급하게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잘해봐. 난 오빠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엘라가 김 혁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내 행복은 다 같이 원계로 돌아가는 것. 그거 외엔 없어. 이젠 절대 불가능한 일이 됐지만”

“···”

김 혁이 말없이 엘라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근데 길드장 언니는?”

“잠깐 누구 만나러 갔어. 계속해서 만나고 싶어 하던 사람이 있거든.”

“오늘 총회의에 온 거야?”

“응”

“우리처럼 잘 만나고 있었으면 좋겠네”

“그러게”


‘그러게’라는 건 명백한 거짓말이다.

채리는 아마 지금 단검을 꺼내 들었겠지.


서로를 너무나 만나고 싶어 하는 둘이니까.

서로가 서로를 죽이기 위해.



***



“민채리”

“내 이름 멋대로 부르지 마. 역겨우니까”


민채리가 자신의 뒤에서 다가오는 우는 얼굴 가면의 여자를 향해 돌아섰다.

가면의 여자 옆으로 푸른 망토를 두른 남자가 서 있었다.


“어머. 오랜만에 만나는 건데 말이 심하네”

“강아지는 왜 데리고 왔어?”

“걱정하지마. 이 친구는 안 움직일 거니까”

가면의 여자가 푸른 망토를 두른 남자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래도 레지네 님이 위험해지면 두고만 보고 있진 않겠습니다”

“고마워, 시드. 근데 넌 쟤 못 이겨. 너, 바로 죽을걸?”

“레지네 님, 전 예전의 제가 아닙니다. 끝없이 성장해서 검은 망토로 승급을 하기 직전···”

“알겠으니까 조용히 좀 해. 근데 뭐, 네가 움직일 일은 없을 거야. 민채리야 말로 내 말을 잘 듣는 착한 강아지거든”

우는 가면의 여자가 소름 끼치게 웃었다.


“닥쳐. 그 입 더 찢기 전에”

“우리 채리 입이 왜 이렇게 거칠어졌어? 죽이고 싶게”

“죽일 수 있으면 죽여봐. 물론 얼굴에 기스 하나 추가될 각오는 하고”

“원한다면야”

우는 가면의 여자가 품에서 검을 빼내 들었다.


“그전에-”

민채리가 단검을 빠르게 휘두르자, 붉은 번개가 날아가 순식간에 여자의 가면을 두 동강 냈다.


빠직.

우는 얼굴의 가면이 갈라지며 여자의 맨 얼굴이 드러났다.


“고맙게도 선물 잘 간직하고 있네.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길래 이렇게 꼭꼭 숨기고 다니는 거야?”

민채리가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죽여버릴 거야, 민채리”


드러난 여자의 얼굴에는 긴 흉터가 나 있었다.

이마에서 턱까지, 칼에 길게 베인 듯한 흉터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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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구름 영탈전 24.01.16 33 0 12쪽
22 서윤이를 만난 날 (3) 24.01.15 42 0 14쪽
21 서윤이를 만난 날 (2) 24.01.14 41 0 12쪽
20 서윤이를 만난 날 24.01.14 40 0 15쪽
19 가면 술래잡기 (4) 24.01.14 43 0 12쪽
18 가면 술래잡기 (3) 24.01.14 37 0 11쪽
17 가면 술래잡기 (2) 24.01.14 39 0 12쪽
16 가면 술래잡기 24.01.14 40 0 11쪽
15 검을 잡은 이유 (4) 24.01.14 40 0 12쪽
14 검을 잡은 이유 (3) 23.12.12 48 0 12쪽
13 검을 잡은 이유 (2) 23.12.10 51 0 11쪽
12 검을 잡은 이유 23.12.09 55 0 13쪽
11 각자의 길 (5) 23.12.08 60 0 12쪽
10 각자의 길 (4) 23.12.07 62 0 12쪽
» 각자의 길 (3) 23.12.06 68 0 12쪽
8 각자의 길 (2) 23.12.05 70 0 12쪽
7 각자의 길 23.12.04 72 0 12쪽
6 붉은 머리 입단식 23.11.26 96 1 13쪽
5 붉은 머리 입단 시험 (2) 23.11.25 103 1 11쪽
4 붉은 머리 입단 시험 23.11.23 113 2 11쪽
3 깨어나다 (3) 23.11.21 130 2 13쪽
2 깨어나다 (2) +2 22.06.01 300 2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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