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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원북스 님의 서재입니다.

던전의 무신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팔복
작품등록일 :
2021.03.22 10:13
최근연재일 :
2021.04.13 19:00
연재수 :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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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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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
글자수 :
136,653

작성
21.03.2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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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화. 강서호(2)

DUMMY

그것은 본능이었다.

일반인의 비명이 들리자 서호의 생각은 단순해졌다.

운전대를 잡고, 액셀을 밟았다.

“끄아아아악!”

더 가까워진 비명과 함께 반파된 택시와 그 근처에서 웅크리고 있는 여인의 모습 그리고 그 주위를 둘러싼 수십 마리 짐승들이 보였다.

“...”

강서호는 말없이 액셀을 더욱 힘차게 밟았다.

부우우웅!

당장에라도 터질 듯이 괴성을 내지르는 엔진.

콰아앙!

거세게 흔들리는 차체.

몇 마리인지 알 수 없는 숫자의 짐승들을 깔아뭉갠 차가 반파된 택시 앞에서 멈췄다.

가까이서 보는 현장은 더 처참했다.

흥건한 핏자국,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체들...그 사이에 홀로 남은 피로 흠뻑 젖은 유일한 생존자.

강서호는 차에서 내려 유일한 생존자 여성에게 다가갔다.

“괜찮습...”

“사, 살려주세요!”

“...”

그제야 그는 자신의 행색을 떠올렸다.

깊이 눌러쓴 모자에 검은색 선글라스. 몬스터도 위험하지만 이런 차림을 한 인간도 대게 위험하긴 매한가지다.

그러나 익숙한 반응이다. 그렇기에 경계심을 푸는 방법도 덕분에 잘 알았다.

“크르르르.”

차에 치였던 라이칸슬로프 중 하나가 몸을 일으켰다.

인간이라면 죽었을 부상을 회복해 내는 경이로운 재생력이다.

저 재생력 때문에 라이칸슬로프는 기본 B급으로 분류된다.

“꺄아아악!”

여자가 다시 비명을 질렀다.

좋지 않은 행동.

비명은 몬스터의 공격성을 부추긴다.

“크허허헝!”

라이칸슬로프가 땅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마력이 담긴 포효성에 여자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아..아아...!”

여자는 두 팔로 얼굴을 가리고 눈을 질끈 감으며, 이어질 고통을 상상하며 주저앉았다.

“커허허헝!”

터지는 비명.

자신의 것이 아닌 비명소리에 여자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보이는 것은 수상하기 그지없는 그 남자의 등이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검을 쥔 강서호의 앞으로 두 동강이 난 짐승이 누워 있었다.

“헌터...신가요?”

여자가 물었다.

“네.”

강서호가 대답했다.

그걸로 충분했다.

날카롭게 서 있던 정신의 끈을 놓치기엔 말이다.

강서호는 쓰러지는 여자를 조심히 안아 들어 뒷자리에 태우고 돌아섰다.

“크르르르.”

동족을 잃은 수십 마리의 라이칸슬로프들의 장벽은 도망갈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아우우우-

사방에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라이칸슬로프들은 코가 예민하다. 그리고 귀도 밝다.

스스스스.

무수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의 것이 아니라 네 발로 달리는 짐승의 소리. 그리고 어둠 속에서 나타나는 수십, 수백 개의 안광들.

문득 사무실에서 보았던 TV 속 영상이 떠올랐다.

우위창이라 했던가.

아마 지금 이 상황. 몬스터는 달라도 던전 등급은 비슷하리라.

“48점도 후했군.”

강서호는 검을 들었다.

“뭐, 식후 운동으로 적당하겠지.”

우우웅.

검이 울기 시작했다.

찬란한 빛이 검신을 덮었다.

TV 속 우위창의 그것보다 더 아름다운, 마치 밤하늘의 별빛처럼 아름다운 빛이 어둠을 밝혔다.


* * *


이아린은 올해 26살의 평범한 사회초년생이었다.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대학교 4년을 끝마치고 1년 전 일본으로 해외 취업을 나섰다가 몇 달 전 귀국해서 새로운 직장을 구한 지 일주일이 되었다.

오늘은 신입 환영식이라며 시외에 자리한 백숙식 집에서 회식 후, 직장 동료들과 함께 돌아가던 길이었다.

정말 평범한 인생.

그나마 특이한 점을 찾으라면 대학교 2학년을 끝마치고 1년을 휴학하고 아프리카로 단기 선교를 다녀온 것이 전부인 그녀의 인생이다.

그런데...그런데...

아우우우우-

들렸다.

늑대의 울음소리가.

“크허허헝!”

그리고 거대한 늑대의 이빨이 택시 창문을 깨고 나타나 기사의 머리를...

“꺄아아악!”

비명과 함께 눈을 번쩍 든 이아린이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쿵!

“아야!”

그러나 곧 머리가 자동차 천장에 부딪히며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꿈?”

이아린은 자동차 뒷좌석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아~ 꿈이었구나~”

그래. 꿈을 꾼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몬스터의 습격을 당하다니. 요새 공포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에 악몽을 꾼 게 분명했다.

“다들 어딜 간 거야?”

그녀는 고개 좌우로 돌리며 다른 사람들을 찾았다. 함께 탔던 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술을 그렇게 먹더니 결국 취해서 잊고 내린 건가?

그럼 신입사원 환영식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그녀는 자신을 버린 선배들을 욕하며 택시 뒷좌석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여기가 어디야? 설마 택시 기사님 집은 아니...!”

찰박!

차갑고 찝찝함이 신발을 덮고 발목을 적시는 감각에 이아린은 비명과 같은 소리를 질렀다.

“이거 새로 산 건데!”

“그렇게 소리 지르면 별로 안 좋습니다.”

“엄마야!”

이번에는 진짜 비명이었다.

“미안합니다. 깨우지 않는다고 조심했는데, 너무 시끄러웠나 보군요.”

낯선 남자의 음성이 사과했다.

“누, 누구세요?”

혹시 택시 기사인가?

그런 생각에 해본 질문에 낯선 남자가 대답했다.

“그게 지금 상황에서 할 질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제 이름은 강서호라고 합니다.”

“강...서호?”

모르는 이름이다. 택시 기사도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음성이다. 왜지?

그때, 구름에 가렸던 달이 얼굴을 드러내며, 그 빛으로 남자의 모습을 그녀 앞에 드러냈다.

깊이 눌러쓴 모자와 선글라스 그리고 손에 든 한 자루의 검...기억이 났다! 라이칸슬로프 무리에 둘러싸여 잡아 먹히기 직전에 나타났던 바로 그 헌터였다.

“아! 그 헌터님...!!!”

이아린의 얼굴이 창백해진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차가운 달빛은 남자를 비추고 그가 선 대지의 어둠 또한 거둬냈다.

그렇게 드러나는 아스팔트 위는 한바탕 소나기라도 내린 듯 젖어 있었고, 그 위에는 악취와 함께 쌓인 시체와 시체들이...

“우욱!”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에 이아린이 주저앉아 속에 있는 것들을 게워냈다.

그녀는 그제야 자신의 발을 적신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역한 피비린내가 코끝을 찔렀다.

“꾸, 꿈이 아니었어.”

전부 진짜였다.

도로에서 몬스터 무리를 만난 것도, 그 몬스터들이 택시 기사를 물어 죽이고, 선배들도 찢어 죽인 것도, 전부 다 진짜였다.

“우욱!”

다시 한 번 고개가 아래로 쳐지며 어깨가 크게 들썩였다.

역한 냄새에 또 다른 역한 것이 섞였다.


강서호는 침묵했다.

다가가서 위로해 줄 수도 있고, 마력으로 육체를 진정시켜 줄 수도 있지만, 그저 가만히 있었다.

매정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어설픈 선의보다 차라리 침묵이 낫다. 조금이나마 스스로 진정할 수 있을 때까지 한발 떨어져서 지켜주는 것이 더 옳다.

목숨을 구해 줬다고는 하나, 타인.

그 정도가 적절하다 생각했다.

툭.

그렇기에 저 멀리 숲 속에서 얼굴을 들이미는 짐승이 머리를 잃고 쓰러지는 소리조차 침묵시켰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하아! 하아! 하아...”

숨을 크게 몰아쉬던 여자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졌다.

강서호는 빠르게 다가가 쓰러지는 그녀를 안아 들었다. 정신을 잃은 듯 고개가 축 처졌다.

후웅!

그의 고개가 시내 방향으로 돌아갔다.

몬스터가 아니라 인간의 것. 강력한 마력이 도로를 질주하며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헌터인가? 잘 됐네.”

강서호는 정신 잃은 여인을 다시 자동차 뒷좌석에 태우고 문을 닫았다.

후웅~

도로 왼편, 산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짙은 마력의 향기를 전해준다.

최초 인지했을 때보다 짙어지는 마력은 아직 검을 되돌릴 때가 아니라고 말하는 듯 했다.

“그래. 던전은 보스를 죽여야 사라지지.”

수백 번은 더 가르친 것을 나지막이 중얼거리고, 강서호의 오른발이 밝고 선 대지를 내리찍었다.

쿠웅!

땅을 울리는 소리.

아스팔트 위에 선명한 족적이 남는다. 다음 순간, 강서호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 * *


쐐애애액!

S급 헌터는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를 2시간 안에 주파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름도 모를 산을, 그것도 고작 중턱까지 오르는 데에는 몇 분이면 충분하리라.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짙어지는 마력은 바위 사이에 가린 지하로 뚫린 동굴에서 용천수처럼 마력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여기군.”

무심한 감상과 함께 강서호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무성히 자란 풀 속으로 스마트폰을 던지고, 동굴 속으로 뛰어내렸다.

타닥.

가벼운 착지.

어두컴컴해야 할 동굴이나, 시야 확보에는 문제가 없었다.

던전 브레이크가 터져버린 게이트의 붉은 빛이 동굴을 밝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거대하고도 불길한 게이트 앞에 한 마리의 늑대인간이 앉아 있었다.

“찾았다.”

갈색이나 회색이 아닌 은백색의 늑대인간, 실버 라이칸슬로프. 오늘 본 그 어떤 짐승들과도 비교할 수 있는 마력의 향기.

이 던전을 구성하고 있는 핵.

보스였다.

“크르르르.”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실버 라이칸슬로프가 몸을 일으켰다.

아니, 일으키려고 했다.

쐐애애애액!

콰직!

보스보다 앞서 움직인 강서호의 손에 목을 붙잡히지 않았다면 말이다.

쾅!

보스의 목을 붙잡고 그대로 머리를 동굴 바닥에 처박는다.

우르르릉!

바위가 깨지고 동굴 전체에 균열이 인다. 한 번만 더 힘을 주면 무너질 듯 보였다. 아니, 확실하게 무너진다.

“귀찮게.”

강서호는 혀를 차며 보스의 목을 붙잡은 손에 힘을 풀었다. 동시에 보스의 복부를 걷어차 붉게 타오르는 게이트 속으로 던져 넣고, 그 뒤를 쫓았다.

쿠웅!

게이트를 통과하는 순간, 전신을 짓누르는 마력의 파장을 물리치자 던전이 나타났다.

던전은 숲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크르르르.”

그 짧은 시간, 상처를 재생한 것인지. 실버 라이칸슬로프가 수백미터는 될 듯 거리를 벌린 채 강서호를 노려보고 있었다.

여유가 넘치던 종전과는 전혀 다른 만반의 태세. 흉흉한 마력이 전신에서 아지랑이 폈다.

“인간...대단하군. 이 자칸이 죽음을 떠올리게 만든 적은 네가 처음이다.”

땅을 박차려던 강서호의 동작이 순간 정지했다.

“...?”

‘말을 했다?’

“크르르. 하지만 너는 내 숲에 들어오지 말았어야 했다!”

잘못 들은 게 아니다.

쇠를 긁는 듯 갈라진 음성. 그러나 또렷하게 전달되는 의미. 놀랍게도 보스, 스스로를 자칸이라고 말하는 실버 라이칸슬로프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인간의 언어였다.

아우우우우!

보스가 포효했다.

스스스스슥.

숲이 울기 시작했다.

사람의 것이 아니라 네 발로 달리는 짐승의 소리. 그리고 어둠 속에서 나타나는 수십 개의 안광.

삽시간에 나타난 수십 마리의 짐승 무리가 보스와 강서호 사이를 가로막았다.

“나의 자식들이다! 인간, 네가 죽인 잡것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혈통이지!”

과연, 지금 나타난 짐승들은 강서호가 죽인 라이칸슬로프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더 광포한 마력을 줄기줄기 뿜어내고 있었다.

던전의 정예.

보스의 친위대다.

“죽여라! 나의 자식들아! 저 인간의 살과 피를 내게 가져와라! 가져와 나의 힘이 되게 해라!”

“크허허허헝!”

보스가 포효하고, 보스의 자식들이 움직였다.

그리고 강서호는...

“끝난 거냐?”

“...뭐?”

콰직!

내리찍는 진각에 땅속에서 접근하던 짐승의 머리가 터졌다.

“죽을 놈이 말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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