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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페의 서재

신이 쓰는 예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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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페
작품등록일 :
2020.02.29 00:29
최근연재일 :
2020.04.10 00:28
연재수 :
2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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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6
추천수 :
103
글자수 :
150,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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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5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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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Act 08. 성흔 <3>

DUMMY

성흔.

스티그마타Stigmata.


과거 기독교에서, 그리스도가 십자가형을 당할 때 몸에 생긴 상처. 또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성한 힘에 의해 그리스도인들의 몸에 생겼다고 전해지는 상처.


뜻은 알고 있다.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지를 안다.


하지만 고작, 이런 문신이 성흔이라니.

악마를 잡고 피가 나고 아팠다고 해서.

이게 성흔이라는 말은 지나친 억측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



백찬의의 눈은 진지했다.

마치 내게서 무언가를 찾으려는 것처럼 한 번 깜빡이지도 않고 나를 본다.



“단언할 수 없지.”



질문의 형태지만 답을 바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목소리 떨린다, 너. 지금.”



스스로 인지하고 있던 것이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목소리가 미약하게 떨렸던 것이다.


왜?


그럴 리가 없다면서 왜 목소리가 떨리지?

대체 무엇이 두려워서?



“네 성격상 그걸 직접 새겨 달라고 어딜 갔을 리는 없고.”

“왜 단언해?”

“너는 성녀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잖아. 그러면서 성경 구절을 몸에 새길 리가 있나. 그것도 그렇게 심장과 가까운 것에.”



세 문장 모두가 틀린 점이 없어서 반박할 수가 없다.


성녀에게 큰 호감이 없-오히려 거북하면 거북하지-는 것.

그래서 성경 구절을 문신으로 하지 않는 것.

더군다나 그 위치가 심장과 가까운 것.


확실히 나라면 절대 할 리가 없는 짓이다.



“누가 새겼고 언제 생긴 거야, 그거?”

“몰라.”

“몰라?”



나는 까닭도 없이 참담한 심정을 느끼며 말했다.



“그냥, 있었어. 어릴 때부터. 어릴 때는 그냥 긴 상처 같았는데······. 자라면서 알았어. 이게 무슨 문장이라는 거. 성경의 한 구절이라는 것도.”

“그냥 있었다고? 어릴 때부터? 확실해?”

“확실해. 내 몸에 칼을 댄 적은 날 때부터 한 번도 없으니까.”



태생적인 헌터일 경우 잘 아프지도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남들 다 앓는 홍역이나 수두는 물론 감기에도 잘 걸리지 않았다.


그것에 대해 다행히 주위 사람들은 그냥 내가 참 튼튼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기억하는 아주 어릴 때.

고작 서너 살 된 아이에게 문신을 새길 미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가 기억도 못 할 정도로 어릴 때라면 굳이 커가면서 글씨라는 걸 보이게 작게 새기진 않겠지.”

“그래, 그건 맞는 말이네.”



내 말에 백찬의는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말했다.



“내가 성흔이라고 말한 건, 그냥 던진 말이 아니라.”

“······.”

“네 말대로 날 때부터 있던 상처라면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넌 헌터잖아.”



‘넌 헌터잖아.’


날 때부터 몸도 잘 아프지 않으면서, 그런 상처가 괜히 있을 리가 없다는 뜻.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냥, 있는 걸 수도······.”

“그럼 거기서 갑자기 피가 왜 나.”

“······.”

“네가 정말 별거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애초에 나한테 말을 하지 않았겠지.”



오늘따라 팩트 폭행이 심하네.

내가 할 말이 없어서 그렇게 느끼는 건가.


나는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한참이 지나자 의문이 떠올랐다.

나는 그걸 여과할 생각도 없이 흘렸다.



“그게 정말로, 성흔이면.”



침묵이 지나치게 무겁다.



“왜, 나한테, 그런 게 있는 걸까.”

“······.”



백찬의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말했다.



“성녀 때문에.”

“뭐라고?”

“직접적으로 성녀가 어떻게 했다기 보다는.”



손가락을 펴더니, 하나씩 접으며 이야기한다.



“너는 신성력과 헌터를 두 가지 타고 태어난 희귀 케이스고. 그 신성력이 상당히 강하고. 희귀한 공작을 사냥하자 성흔에서 피가 났다. 그리고, 그 공작이 신이 신이라는 말을 네게 언급했다고 했지.”

“응.”

“그 모든 게 성녀와 관련이 되어 있잖아. 완전히 무관한 일은 아닐 거야.”

“그런가.”



뭔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죄를 지은 기분이 들었다.

하필이면, 성녀라니.

이렇게 무엇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공작, 사냥한 거 말인데.”

“말인데?”

“관련이, 있을까?”



내 말투가 신경이 쓰였는지, 백찬의는 평소보다 조금 더 다정한 말투를 쓰고 있었다.



“내 생각에는 관련이 아주 없지는 않을 거야.”

“그러려나.”

“타이밍이 너무 좋으니까. 하필이면 처음 사냥하는 종류였고, 신경이 쓰이는 말을 했고, 직후에 늘 이상 없던 문신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잖아.”

“지금은 멎었어.”

“한 번이 문제인 거야. 그러니까 한 번은 확인을 해 보자는 거지. 앞으로 공작 사냥은 너와 나 둘이 갈 거야.”



나는 가만히 앉아 있다가, 시선을 들어 그를 보며 물었다.



“그거, 다른 길드에서도 알고 있다며. 독점하는 게 가능하겠어?”

“정보는 우리 길드가 제일 빨라. 다른 나라에 나오는 거라면 좀 까다롭겠지만, 글쎄. 성녀가 여기에 있으니 여기에서 나오기를 바라 봐야지. 교황이 몇 번 바뀐 적이 없기는 해도 대한민국에서 제일 오래 머무르고 있잖아.”



교황이 늙어 죽을 때까지 가지는 힘은 아니다.

교황은 성녀가 선택하고, 그녀의 선택에는 기준이 없다.

기준이 있더라도 인간은 그것을 알 수 없다.


그래서 교황의 신분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한 사람을 선택하고 늙어 죽었다고 말하기에는 몇 번 바뀐 적이 있었다.

그러므로 죽을 때까지 유지된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교황과 추기경의 신분이 밝혀지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그들의 신성력과 신앙은 오직 성녀를 위한 것.

그 기준과 유명세가 마음을 흐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공작을.

타락한 천사의 그것처럼 새까만 깃털 날개를 가진 공작을.

다시 잡는다.


그러면 이번에도 그 기분 나쁜 말을 듣고, 꿈을 꾸고, 그리고.


또, 이 수상쩍은 문신에서는 피가 흘러 나올까.



“······머리 아파.”

“너무 많은 걸 생각하지 마.”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정보가 너무 부족해. 공작도 두셋 정도 더 잡아 보고, 확실하게 이유를 알아야 뭐라도 추측을 해 보지.”



그의 말은 틀리지 않다.

이것도 저것도 확신하기엔, 사례가 너무 적었다.


그저 내 마음이 복잡할 뿐.



“혹시 다음 사냥에 뭐 알려진 거 있어?”

“아직. 나오면 얘기할게.”

“그럼 나 가도 돼?”



백찬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테이블 위를 보자 그가 준 밀크티가 얼음만 녹은 채 반도 안 줄어 있었다.

처음 마셨을 때는 분명히 달고 시원해서 좋았는데.



“괜찮아.”



백찬의는 정말로 눈치가 빨랐다.

평소 같으면 뭐, 하고 대거리라도 했겠지만 나는 지금 그럴 여유가 없다.

내가 겉옷을 입고 나가려고 하자, 백찬의가 나를 불러 세웠다.



“유시현.”

“왜?”

“매일 연락은 해.”



매일.

별일도 없는데 굳이 그럴 이유가 있나.



“왜?”

“뭐, 그냥. 혼자 앓지 말라고.”

“······징그러워.”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정말 솔직하게 반응이 튀어 나갔다.

애인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데 기대라는 식의 저 말은 뭐야.


내가 미간을 좁히며 말하자, 백찬의가 본인도 웃겼는지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뭐. 너는 내가 투자하는 사람이니까. 일종의 케어 같은 거지.”

“······.”

“헌터 관련 일로 나만큼 너한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



따로 없기는 하지.

내 공작 보상도 대신 팔아 주기로 했고.



“······없어.”

“그렇지? 그러니까 연락하라고. 아, 참. 계좌도 보내 둬.”

“응. 나 진짜 가.”



백찬의는 잘 가라며 나를 현관까지 배웅해 주었다.

힐끗 돌아보니, 내가 고개를 돌리자마자 그랬는지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특유의 미소를 짓더니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애초에 이렇게 믿을 사람도 아니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가까워졌네.


특별히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어쨌든 그의 말대로라면 나는 아직 그에게 위협이 되지 않으니까.


위협이 되지 않고, 미래를 보고 지원하고, 그래서 케어를 한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있을 생각은 없지만 나쁘지 않았다.

내가 어린 것도, 그에 비해 약한 것도 아직 사실이니까.


받을 수 있는 건 받고, 즐길 수 있는 건 즐기고.


문득 김재언이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시현이 너는 아직 어리잖아. 누군가가 너를 돕거나 돕고자 한다면, 그냥 받으면 돼. 아무리 스물이 넘었다고 해도 아직 대학생이고 어리니까.’



다른 사람이 말했으면 어린 취급 말라고 했겠지만, 김재언의 말은 듣게 되었다.


누군가가 나를 돕고자 한다면.

그게 백찬의가 되는 걸까.


그는 분명히 말했다.

이건 ‘투자’라고.


그러니까······.

그냥 받아도 되겠지.

댓가 없이 돕는 것이 아니라, 투자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가슴을 조용히 어루만졌다.

이건 정말로 성흔일까.

이게 성흔이고, 정말로 성녀와 관련이 있다면.


기대도 불안감도 아닌 이상한 기분에 심장이 조금씩 빨리 뛰었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이것은 성녀와 나의 확실한 연결고리다.

좋은지 나쁜지는 몰라도, 그게 성녀에게 내가 할 말을 정해줄 것이다.


졸업까지 앞으로 9 개월가량.

졸업하고 여름이면 국가에서 주최하는 다른 시험들과 더불어 치는 신학자 시험이었다.

별다른 문제가 없이 통과한다면 늦어도 가을이나 겨울.


드디어 성녀를 만날 수 있다.

불과 1 년하고 조금만 더 있으면.


열여덟 살에 헌터 일을 시작하면서.

내가 남보다 배는 뛰어난 신성력이 있음을 깨닫고 나서.


나는 늘 성녀에게 많은 것을 묻고 싶었다.


내가 ‘왜 남들과 유난히도 다른지’에 대해서.

성녀가 고작 인간 중 하나인 나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 줄지는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만약 이 문신이.

정말 성녀와 공작과 깊은 관련이 있다면.

그녀는 분명히 내게 무언가를 말할 것이다.


인류의 신.

이 세상에 현신하는 신.

성녀.


그녀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다.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 눈에 보이는 것이 하나도 없는 지금.

어쩌면 이 상처가, 정말 성흔이라면.


이 성흔이, 내가 해야 할 일을 알려줄 것이다.


작가의말

날씨는 점점 좋아지는데 우한 폐렴은 여전히 말이 많네요.ㅠ


큰 사건이 터져서 사회도 뒤숭숭하고..


독자 여러분들의 마음에 제 글이 작은 위로라도 되기를 바랍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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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Act 09. 조각 모음 <4> 20.03.30 29 3 12쪽
26 Act 09. 조각 모음 <3> 20.03.29 37 3 11쪽
25 Act 09. 조각 모음 <2> 20.03.28 35 2 11쪽
24 Act 09. 조각 모음 <1> 20.03.26 36 2 12쪽
» Act 08. 성흔 <3> 20.03.25 38 3 11쪽
22 Act 08. 성흔 <2> 20.03.24 48 3 13쪽
21 Act 08. 성흔 <1> 20.03.23 63 4 12쪽
20 Act 07. 공작 <5> 20.03.22 37 3 12쪽
19 Act 07. 공작 <4> 20.03.21 39 2 12쪽
18 Act 07. 공작 <3> +2 20.03.20 46 2 13쪽
17 Act 07. 공작 <2> 20.03.18 40 3 11쪽
16 Act 07. 공작 <1> 20.03.17 48 2 12쪽
15 Act 06. 시험 <2> 20.03.16 51 3 11쪽
14 Act 06. 시험 <1> 20.03.15 51 4 12쪽
13 Act 05. 벚꽃의 꽃말 <2> 20.03.14 64 4 12쪽
12 Act 05. 벚꽃의 꽃말 <1> 20.03.13 57 3 12쪽
11 Act 04. 가르침의 자격 <3> 20.03.12 65 4 12쪽
10 Act 04. 가르침의 자격 <2> 20.03.11 77 4 12쪽
9 Act 04. 가르침의 자격 <1> 20.03.09 84 5 13쪽
8 Act 03. 영역 싸움 <2> 20.03.09 80 5 12쪽
7 Act 03. 영역 싸움 <1> 20.03.08 91 6 11쪽
6 Act 02. 가장 어두운 빛 <2> +2 20.03.04 117 4 11쪽
5 Act 02. 가장 어두운 빛 <1> +2 20.03.03 124 3 12쪽
4 Act 01. 낮과 밤의 세계 <3> +3 20.03.02 140 3 10쪽
3 Act 01. 낮과 밤의 세계 <2> +2 20.03.01 162 6 12쪽
2 Act 01. 낮과 밤의 세계 <1> +2 20.02.29 271 7 16쪽
1 Prologue. 믿음의 반댓말 +8 20.02.29 418 5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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