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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페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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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페
작품등록일 :
2020.02.29 00:29
최근연재일 :
2020.04.10 00:28
연재수 :
2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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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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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글자수 :
150,376

작성
20.03.09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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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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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Act 04. 가르침의 자격 <1>

DUMMY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라는 농담이 있는데, 사실 내게는 그리 와닿는 말이 아니다.


내가 학점을 가지고 어디에 취직을 할 것도 아니고, 신학자와 헌터는 힘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세계이기 때문에 내가 학점을 어떻게 받느냐는 별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중간고사가 있으면 시험을 치면 되는 것이고, 레포트로 대체하면 레포트를 적당히 써서 내면 된다.


그러다 보니 타과생이나 성적에 목을 매는 학생들만 죽는 소리를 하기 마련인데.



“재민이는 좀 큰 성당에서 신부를 하길 원하거든.”

“신부도 성적을 보고 뽑아요?”

“같은 조건이면 제일 마지막 조건으로 성적을 보기는 하니까.”



역시 교황청에 관련된 이야기는 아직 신학생인 김재민보다 김재언이 정확한 정보에 빨랐다.


지난 번에 연락한 이후, 김재언은 꽤 꾸준히 연락을 해 주었고 덕분에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만나서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곤 했다.


김재언은 말솜씨가 나쁘지 않아서, 그 편안한 분위기 그대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서 나는 그 편안한 기분을 즐기면서 꽤 일상적인 대화나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이런 일상적인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사람은 김재언이 처음이었다.


동기와도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 아니지만 장소가 대학이다 보니 한계가 있고, 중고등학교 친구들과는 연락을 잘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끔 인간 관계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애초에 없으면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었다.


과연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즐거울까, 싶지만.



“왜요?”

“시현이는 나보다 친구들 만나는 게 더 재미있을 나이가 아닌가 싶어서.”

“친구가 별로 많지 않아요. 형이랑 대화를 나누는 게 더 유익한 기분이 들고.”

“그러면 다행이야.”



김재언은 내가 그런 생각을 할라치면, 귀신같이 알아 채고 본인이 나와 있는 시간을 즐겁게 느낀다는 어필을 꾸준히 해 주었다.


왜 이렇게 편하게 느껴질까. 김재언이 가진 재능인지, 아니면 그 재주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시현아.”

“네.”

“나이가 중요한 건 아니니까, 신학생이든 누구든 비슷한 분야의 친구를 만들어 봐.”

“왜요?”



나는 너를 만나니까 좋지만. 김재언은 말을 덧붙이며 웃었다.



“나는 교황청 관련 이야기를 해 주잖아. 너와 같은 분야의 친구를 만들면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고 좋지 않겠니. 정보도 나누고 도움도 받고.”

“인간 관계는 조금 어려워서요.”

“하지만 조금 어려워도 시도하면 도움이 될 거야. 어차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혼자서는 살 수 없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실 나도 인지는 하고 있었다.

그래서 김재언을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기도 하고.


하지만 헌터. 헌터라.

며칠 전에 만난 헌터만 해도 별로 친하게 지낼 가치가 없어 보이던데.


헌터 커뮤니티에 아이디 정도는 있지만, 애초에 헌터 활동을 대외적으로 하는 게 아니어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생각을 한 적이 없다.


김재언에게 내가 헌터라는 것을 알리기도 위험한 것 같고.



“어때?”

“형 말이 맞아요. 노력해 볼게요.”

“응, 고마워.”



다정하게 웃는 얼굴을 보니 왠지 그 말을 듣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래, 뭐 큰 문제가 있으려고.

대학쪽이랑 연이 없을 것 같은 사람과 적당히 연락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며칠 전 백작급 헌터를 만났을 때, 그는 분명히 에이스 길드장에게 자신의 패인을 알리지 않을 것이라 했다.

그야 소속도 불분명한, 정체도 모를 헌터에게 얻어 터졌다는 게 자랑스레 알릴 요인도 아니었겠지.


그래서 나는 에이스 길드에 대한 인상이 아주 조금 안 좋아졌지만, 그뿐이었다.


애초에 갈까 말까 하다가 그만 둔 이유도 고질적인 이유였다.

굳이 내 신분을 벌써 밝히고 싶지는 않다는 것.


숨길 이유도 없지만 나는 적어도 시끄럽게 살고 싶지는 않다. 연예인처럼 활동하는 헌터도 많고 인터넷 BJ 중에도 헌터는 많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돈을 벌고 싶은 것도 아니고, 나는 그렇게 하기에는 불편한 점이 많다.


신성력은 최상급이고, 타고난 힘 자체가 보통 헌터보다 강한데 거기에 공작과도 맞붙을 수 있는 공작급 헌터?


그건 그냥 대놓고 한 순간에 제일 유명한 헌터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신성력과 헌터의 힘을 동시에 가지기도 힘든데 그 각각의 능력치가 높다는 건 이례적이다.


타고난 건 감사하지만, 그걸 가지고 스타덤에 오르면 내 인생은 피곤해질 것이 분명했다.

나는 피곤하게 살고 싶지 않으니까.

적어도 그게 밝혀진다면 최소한 대학을 졸업해서 내가 속한 그룹이 없을 때가 편할 것 같았다.



‘같은 분야의 친구를 만들어 보렴.’



김재언은 내가 아는 유일한 어른에 가깝다.

적어도 내가 지금 만날 수 있는 어른 중에는 유일하지.

그리고 틀린 말도 아니어서 그의 말을 듣고 싶지만······.


또 막상 본격적으로 누굴 만나고자 하니 고민이 된다.

아, 차라리 김재민한테 소개팅이나 받아 볼걸.

그 정도의 마당발이면 신학자나 헌터도 좀 알 텐데.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내가 알아서 찾겠다고 했지.

일반적인 인간관계도 어려워하는 주제에.


집에 와서 레포트를 반쯤 쓰고 인터넷 창을 켰지만, 막막했다.

헌터넷이라는 가장 큰 헌터 커뮤니티에 접속해서 이런저런 글을 훑고 있었다.


헌터넷에는 수많은 헌터가 있다. 길드 소속팀도 있고 아닌 프리 헌터도 있다.

공략팀을 꾸리는 헌터도 있고, 정보도 주고받고, 아예 정말 인간 관계를 맺길 원하는 사람도 있고.

항상 접속해서 눈으로만 훑었기 때문에 활동을 한 적이 없는데, 막상 시작하자니 손이 움직이질 않는다.


······.

뭐, 급한 것도 아니니까 사냥이나 할까.


얼마 전에 사냥을 망친 적이 있으니 오늘은 기분 전환 삼아 사냥이나 하자 싶어 장비를 챙겼다.


나는 기본적으로 옷을 가볍게 입는다. 악마의 가죽을 이용한 장비를 입으면 방어력도 높고 좋겠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위험한 악마를 만나는 일은 없어서.


이전에 공작을 상대할 때 장비를 구입한 적은 있지만 쓰임새에 비해 값이 지나치게 비싸서 선호하질 않는다.

그냥 활동성이 좋은 옷을 입고 거기에 가죽 자켓이나 한두 개 걸치고 반장갑 정도면 충분한 장비다. 거기에 모자와 마스크를 소모품으로 쓰고 있으니 이런저런 장비를 갖추기도 귀찮은 일이다.


기능이 좋은 장비는 값도 값이지만 브랜드값이 있다.

즉, 유명하다.

유명한 장비의 경우에는 반드시 그만큼의 유명세가 붙고, 그런 건 당연히 일회용이 아니다 보니 있으면 자주 입는 게 좋다.


자주 입으면 복장이 노출이 될 거고, 아주 자연스레 네임드가 될 것이다.

그건 바보같은 짓이지.


자주 쓰는 무기와 포션을 포켓에 넣고, 옷을 입은 뒤 거울 앞에서 한 번 옷차림을 점검했다.

이 정도면 잊은 건 없겠지.


후작이나 공작 같은 상급은 바라지도 않으니 백작이나 자작 정도라도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바깥으로 나가 건물 옥상들을 이용해 나름대로 내가 기반을 다진 사냥 영역에 도착했다.


일단은 사람도 없지만 지나치게 조용했다. 한두 마리 정도는 보이기 마련인데.

얼마 전에 백작급 헌터를 반죽음 상태로 보냈으니 다른 헌터가 있을 리가 없고.


그래도 너무 좀, 조용하지 않나?

이렇게 조용하면 둘 중 하나다.


이미 모든 악마가 사냥을 당했거나, 지나치게 강한 악마가 근처에 있거나.


하지만 전자라기에도 후자라기에도 좀 애매한데.

여기는 내가 꽤 오랜 시간을 들여 기반을 다진 영역이다.


다른 헌터가 벌써 또 노리고 왔을 리도 없고.

강한 악마가 있다고 하기에는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게 이상한데.


나는 고개를 두어 번 꺾고 근처에서 가장 높은 건물에 올라가서 전경을 둘러 보았다.


역시, 안 보이는데?



“뭐야, 이대로 허탕인가······.”



모처럼 기분 전환이라도 하려고 나왔더니 허탕이라.

입맛이 쓰다.


그리고 그 순간.



“뭘 찾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좀 도와도 될까.”



아주 차분한 저음이 들렸다.

신사적이고 정중한 말투는 하급 악마나 헌터가 쓸 것이 아니었다.


돌아 보니 악마라고 하기에는 너무 인간적인 인영이 보였다.


하필이면 달을 등지고 있어 얼굴이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넥타이 핀까지 완벽한 쓰리피스 정장에 새하얀 트렌치 코트.

빈 손으로 코트 주머니에 손을 꽂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것 같지만 제대로 모양이 잡힌 연갈색 머리카락은 달빛 때문인지 잿빛이 감돌았다.

눈동자까지 보이는 거리는 아니었다.

키가 상당히 컸다. 나보다 조금 더 클 수도 있겠는데.

태도 자체가 아주 여유로워 보였다.

나잇대는, 글쎄. 김재언과 비슷해 보였다. 김재언보다 조금 더 많거나 적거나.

많지 않을까. 목소리가 너무 낮아서.


서로 옥상 끝과 끝에 서 있어서.


인기척도 느끼지 못 했는데.



“설마 악마는 아닐 거고.”

“여기에서 공작이나 후작이 나타났다는 제보는 나도 받은 적이 없거든.”



그렇겠지.

그렇게 헌터가 몰릴 만한 장소에 내가 사냥터를 잡을 이유가 없으니까.

그러면 헌터일 것이다.



“누구야, 당신?”



남자가 웃었다. 웃는 목소리도 마찬가지로 아주 낮고 차분하게 울렸다.

남자가 천천히 걸어오는데, 구두가 아스팔트와 부딪히는 울림이 둔중했다.



가까이 온 남자가 지척에서 멈췄다.

이제야 보이는 남자의 눈동자는 투명한 아이스 블루였다.

서양계의 외모는 아닌데, 혼혈인가.

여전히 달을 등지고 있어 남자의 모습이 명확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내 길드의 헌터가 신세를 끼쳤다고 해서 와 봤지. 그렇게 약한 헌터는 아니었거든.”



와, 설마.



“에이스 길드?”

“내 책임하에 있는 길드의 이야기라면 맞아.”



진짜 본인이라고?



“모습이 안 보일 거리는 아닌데 섭섭할 정도로 모른체를 하는군.”

“여기까지 당신이 나올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서.”



설마 진짜 그깟 헌터 하나 팼다고 복수를 할 생각으로 온 건 아니겠지.

내 경계심을 느낀 건지, 입술이 조금 더 명확한 호선을 그렸다.



“싸울 생각으로 온 건 아니었지만.”

“누가 봐도 얘기하자는 타이밍은 아닌데.”

“뭐.”



남자가 주머니에서 손을 꺼냈다.

어느새 포켓에서 무기를 꺼낸 것인지 남자의 손에 무기가 들려 있었다.


TV에서도 헌터가 언급될 때 반드시 언급되는 남자라 그의 주무기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체술도 근거리 무기를 비롯해 모든 무기에 대해 기본 이상은 다루지만 그가 주로 사용하는 무기는 활이었다.

활 자체도 그렇지만, 신성력이 담긴 새하얀 화살을 날리며 악마를 원거리에서 저격하기로는 따라갈 실력이 없는 남자다.


TV에서만 보던 새하얀 활이 보였다.

아직 그 활에 화살이 걸려 있지도, 나를 향하지도 않았지만 그건 시간 문제다.


세계 랭킹 1 위의 공작급 헌터.

속도에서 내가 밀릴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중상급 헌터를 손쉽게 전투 불능으로 만들 헌터에 대해서는 궁금하기는 했지. 이름도 없는 헌터가 말이야.”

“그래서, 친히 복수를 하러 오셨다?”

“단지 궁금해서 얼굴이나 보러 왔을 뿐이야. 하지만 보니까 더 흥미가 생겨서.”



남자의 얼굴에서 미소가 지워지지는 않았지만, 그게 그렇게 친절하기만 한 미소는 아니었다.


누가 봐도 아주 흥미로운 사냥감을 앞둔 얼굴이었다.

나는 저런 얼굴을 알고 있다.

내가 악마를 보면 저런 표정을 지을 테니까.



“어차피 상급 헌터라면 말로 하는 것보다 이쪽이 더 빠르겠지.”

“재미로 합을 겨루기에는 시간 낭비일 텐데.”

“오래 걸리지는 않을 테니까.”



저게 허언은 아닐 것이다.

그 중상급 헌터와는 달리, 그의 실력에 대해서는 내가 워낙 잘 알고 있어서.


하필이면.



“길드 이름이라도 거시려고?”

“글쎄,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내 얼굴이야 이미 알고 있을 텐데.”

“싫을 정도로 잘 알지.”



이런 강한 헌터를 상대로 싸우고 싶은 기분은 전혀 아니었다.



“백찬의.”

“자기 소개는 나중에 받지.”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포켓에서 검을 꺼내 쥐며, 나는 땅을 박찼다.


작가의말

코로나19가 조금씩 잠잠해진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게 진실이면 좋겠네요. 월요일입니다. 한 주의 시작을 함께 해 주셔서 고마워요, 독자님들. 월요일은 모두가 피곤한데 오늘 제 글이 조금의 위안이 되셨다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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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Act 09. 조각 모음 <3> 20.03.29 37 3 11쪽
25 Act 09. 조각 모음 <2> 20.03.28 35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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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Act 08. 성흔 <2> 20.03.24 48 3 13쪽
21 Act 08. 성흔 <1> 20.03.23 63 4 12쪽
20 Act 07. 공작 <5> 20.03.22 37 3 12쪽
19 Act 07. 공작 <4> 20.03.21 39 2 12쪽
18 Act 07. 공작 <3> +2 20.03.20 46 2 13쪽
17 Act 07. 공작 <2> 20.03.18 40 3 11쪽
16 Act 07. 공작 <1> 20.03.17 48 2 12쪽
15 Act 06. 시험 <2> 20.03.16 51 3 11쪽
14 Act 06. 시험 <1> 20.03.15 51 4 12쪽
13 Act 05. 벚꽃의 꽃말 <2> 20.03.14 64 4 12쪽
12 Act 05. 벚꽃의 꽃말 <1> 20.03.13 57 3 12쪽
11 Act 04. 가르침의 자격 <3> 20.03.12 65 4 12쪽
10 Act 04. 가르침의 자격 <2> 20.03.11 77 4 12쪽
» Act 04. 가르침의 자격 <1> 20.03.09 84 5 13쪽
8 Act 03. 영역 싸움 <2> 20.03.09 80 5 12쪽
7 Act 03. 영역 싸움 <1> 20.03.08 91 6 11쪽
6 Act 02. 가장 어두운 빛 <2> +2 20.03.04 117 4 11쪽
5 Act 02. 가장 어두운 빛 <1> +2 20.03.03 124 3 12쪽
4 Act 01. 낮과 밤의 세계 <3> +3 20.03.02 140 3 10쪽
3 Act 01. 낮과 밤의 세계 <2> +2 20.03.01 162 6 12쪽
2 Act 01. 낮과 밤의 세계 <1> +2 20.02.29 271 7 16쪽
1 Prologue. 믿음의 반댓말 +8 20.02.29 418 5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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