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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렉스 님의 서재입니다.

로봇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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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렉스
작품등록일 :
2021.05.17 11:45
최근연재일 :
2021.05.23 17:47
연재수 :
7 회
조회수 :
333
추천수 :
7
글자수 :
37,534

작성
21.05.17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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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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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1쪽

죽든 살든 넌 나와 함께 간다

DUMMY

동화 속의 이야기 같았다.


생각치도 못한 죽음의 위기를 겪고, 생각치도 못한 사람의 도움을 받아 살아남는 그런.


10년 전, 2086년의 이야기다. 그 당시 나는 앞가림 따윈 하나도 못하고, 그저 어머니의 치마자락 아래에서 살던 소년이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소년이었으나, 당시의 상황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전쟁, 종교들 사이에 거대한 전쟁이 일어나 전세계가 휘말리게 되었다는 듯했다.


전장의 포화는 내가 사는 지역까지 덮쳐왔고, 법률 따위로는 멈출 수 없는 압도적인 폭력이 시작되었다. 모든 것이 산산히 터져나가고,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평화로웠던 나날도 그렇게 끝이 났다.


마을은 순식간에 무법 지대가 되었고, 부모님은 포화를 뚫고 음식을 구해와야만 했다.


그리고 내게 집을 잘 지키라 해놓고 둘이서 문을 열고 나갔는데, 그 순간, 그 포화에 의해 한 줌의 재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아니, 재 조차도 남지 않았다.


나는 오열하며 부모님을 외쳤지만 이곳엔 나 혼자였으며 도와주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그 말은 즉 이제 나 혼자서 살아나가야 한다는 뜻이었지만, 바로 아까까지 부모의 말에 죽고 살던 내게 그런 것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혼자 책상 밑에 쭈그려앉아 절망을 곰씹던 도중, 누군가가 현관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현관문에 난 창을 통해 밖을 보니, 흰 머리를 가진 내 부모 또래의 사내가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흰 머리라고는 했지만 얼굴과 머리칼의 대부분은 피칠갑이 되어 붉은색이었다.


나는 곧바로 두려움에 빠져 그에게서 등을 돌렸지만, 무슨 바람이 분 건지, 저 아저씨를 그냥 놔두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문을 열어주고 말았다. 나는 집을 잘 지키라는 부모님의 유언조차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 불효자가 되고 말았지만, 그는 이미 집 안으로 들어온 뒤였다.


그는 고맙다고 하며 응급 처치 키트가 있으면 내어달라고 하였고, 나는 그가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그는 원하는 것도 많았다. 물, 음식······ 나는 그의 시중 그 자체였다.


그렇게까지 하고 나니 드디어 그가 입을 열었다. 그의 이름은 '마용'이었으며, 광불교光佛敎의 보살들과 싸우다가 다쳐서 이곳으로 흘러들어오게 된 것이라고 하였다.


말하는 것의 대부분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는 그가 미웠다. 어른들이 전쟁 같은 걸 일으키지만 않았어도 부모님은 죽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그는 사과는 못할 망정, 뻔뻔히 웃으면서 고맙다고, 이 은혜는 잊지 않겠다고 할 뿐이었다.


그가 천마신교天魔神敎라는 종교의 교주임을 알게 된 것은 그 직후였다.


"천마신교 교주, 45대 천마 마용! 이곳에 있는 걸 알고 있다. 셋 셀 동안 나오지 않으면 집과 함께 날려 버리겠노라."


낮선 목소리가 사내를 재촉하고, 그는 "보살들이 왔군." 하고 중얼거리더니 내게 주먹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미 한 번 죽은 거나 다름없는 목숨, 또 한 번 버리게 되더라도 너 하나만큼은 반드시 지켜내겠다."


그는 그렇게 붕대를 칭칭 감은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부모님, 못 지켜드려서 미안하다."


그런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서 말이다.


그는 나가자마자 능청스런 목소리로 멀리서 싸우자고 하는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폭발이 일어났다. 보살들이 그를 기습한 것이었다.


나는 집을 나가자마자 폭사한 부모를 떠올리고 공포에 빠지려 헀지만,


"아프잖아, 인마."


마용의 능청스런 목소리는 여전히 건재했다.


어째서 보살들이 그를 습격했는가,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이유는 2가지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다.


광불교 입장에선 어느 곳에서 싸우든 인명 피해가 나오는 것은 똑같기 때문에.


아니면, 마용이 무방비하게 말을 건네는 순간을 노려야 할 정도로, 천마라는 것이 강력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의 주먹에 보살 한 명의 골통이 날아가고, 그 직후 이제껏 본 적 없는 격한 폭발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아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책상 밑에 숨으려 했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의 싸움을 지켜 보고 싶다.


내가 갖지 못한 강함에 대한 동경, 단순 호기심을 넘어선 의무감, 본능에 가까운 감각. 나는 어느새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에 붙잡여 현관문의 앞에 달라붙어 있었다. 천장의 잡동사니들이 떨어지는 동안, 현관문에 난 창으로 마용의 싸움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전했다.


비록 최후의 최후에는, 마용과 보살 한 명이 서로 부딪치며 일으킨 강렬한 빛과 충격에 의해 기절해 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마용이 싸우던 모습은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전후사정 같은 것들은 다 집어치우고, 그냥 그의 싸움이 순수하게 아름다웠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내가 깨어났을 때 마용은 사라지고, 집 천장도 사라지고, 우리 집이 있던 자리를 제외하고는 모조리 폐허가 되어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살아 나가야만 했다. 보이지 않는 미래에 금새 좌절감이 들긴 했지만, 나는 마용이 나를 지키기 위해 맹렬히 싸우던 그 모습을 떠올리며, 더 이상 숨거나 도망치지 않고 살아나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 망해 버린 세상에서 살아 나가면서,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그의 용맹한 모습을 떠올리며 버텼다.


수많은 양아치들이 내게 시비를 걸었고, 많이 맞고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다.


그리고 나는 그때마다 마용의 싸움을 흉내내며 위기를 헤쳐나갔다. 왜냐하면 그가 지금까지 내가 본 것 중 가장 강한 사내였기에.


그가 쓰던 무공의 이름이 천마신공天魔神功이었다는 건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었다.


천마신공의 흉내에 불과하던 초식과 무공은 실전으로 경험을 쌓음에 따라 서서히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어 갔다. 그래봤자 천마신공을 어중간하게 따라하고 있을 뿐이었기에, 결코 신공神功은 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천마공'이라고만 불렀지만, 천마공은 나를 생사결生死決의 순간 속에서 몇 번이나 구해내 주고, 승리의 영광을 안겨 주었다.


그렇게 10년을 살아남았다. 몸뚱아리를 제외하면 여전히 쥐뿔도 없었지만, 언제부턴가 내게는 천마에 버금간다는 의미의 아천마亞天魔라는 칭호가 함께했다.


내가 동경하던 마용에게 조금이나마 가까워진 것이었다.


기뻤다.


그리고 더욱 기쁜 순간이 찾아왔다.


바로 오늘 지금, 내가 그와 같은 최후를 맞이할지도 모르게 된 것이었다.


내 뒤에 있는 것은 어릴 적의 나와 같은 작고 연약한 소년.


그리고 내 앞에 있는 것은 이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거대한 무림인의 무리.


어림잡아 100명은 될 듯 싶었지만, 당연히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나는 살면서 최고로 미친듯이 싸웠다. 죽고 죽이는 살육의 현장. 억지로라도 웃지 않고서는 도저히 헤쳐나갈 수 없는 광기의 현장.


온몸이 피칠갑이 되고, 뼈는 하나 둘씩 부러져 가고, 힘도 점점 빠지고, 죽음의 어둠은 점점 가까워졌다.


그런데도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때 마용이 어떤 기분이었는지 이해가 되었기에. 그와 한 몸이 된 듯했기에.


그렇게 내 인생의 막이 내려오는 동안에도 나는 소년을 지키기 위해, 마용과 같아지기 위해 싸우기만 할 뿐이었다.


이윽고 최후의 한 명과 단 둘이서 마주하게 되었을 때,


"죽든 살든 넌 나와 함께 간다."


나는 그 말과 함께 인생 최후의 정권을 날렸다. 그 역시 내게 정권을 날렸고,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


나는 쓰러졌다. 그리고 그 역시 쓰러지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환희 속에서 영원한 잠에 들었다.


그러나, 혹자는 이렇게 말했다. 영원한 것은 절대 없다고.


눈이 뜨였다.


저승인가? 아니었다. 이곳은 이승일 따름이었다. 나는 온갖 기계 장치들이 가득한 방 안에 누워 있었다.


그런데 내 눈 앞에서 파란색의 반투명한 글씨들과 잡동사니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깨어나자마자 정신이 없었던 나는 그것들을 어떻게든 치우고 싶어서 팔을 허우적거렸다. 팔이 전선 같은 것에 연결되어 있어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떻게 한 건지 파란색의 글씨들은 차례대로 사라져 갔는데,


[권한 승인, 자폭 시퀸스 시작. 남은 시간 60초.]


돌연 무미건조한 여성의 목소리가 머리속에서 울리더니, 사이렌 소리와 함께 눈 앞이 빨간색으로 점멸하기 시작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여성의 목소리는 분명히 자폭 시퀸스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곧 내가 터져서 죽는다는 건가?


아무리 마용과 같아졌다고 기뻐했어도, 기껏 살아났는데 또 죽는다는 건가?


죽는다니, 내가, 내가 또 죽는다니!


말도 안 된다고 어흑흑······.


"아아아! 뭐하는 짓이에요!"


그런데 또 한 번 낮선 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생기가 넘치는 소녀의 목소리.


내 눈 앞에 흰 머리를 가진 소녀의 얼굴이 들이밀어지더니, 그녀가 "일어났으면 일어났다고 말로 하면 되잖아요!" 하고 내게 성질을 냈다.


이후 그녀가 내게 한 짓은 상상을 초월하는 짓이었다. 그녀가 내 배의 가죽을 떼어 벌컥 열어젖힌 것이었다.


내 뱃속에는 전선과 기계들이 어지러이 들어차 있었고, 그녀는 능숙한 손길로 내 뱃속에 있는 무언가를 열심히 눌렀다.


그러자 붉은 빛의 점멸이 사라지며 모든 것이 평화롭게 되었다. 소녀는 한숨을 쉬더니 다시 한 번 나를 내려다 보았다. 천장의 전등 빛을 등진 그녀의 얼굴이 어둡게 보였는데 은근히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이봐요, 방금 저도 길동무로 끌고 가실 뻔했잖아요!"


은근히가 아니라 확실히 화가 난 듯했다.


아니, 그녀가 화가 나든 말든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전선, 그 끔찍하게 얽히고 섥힌 전선과, 내 눈앞을 수놓던 파란 글씨들!


"내, 내 몸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거의 비명에 가깝게 내지른 질문. 소녀는 허리춤에 손을 얹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파비야 씨는 무뢰한 100명과 싸우다 죽을 뻔 했는데, 몸을 기계로 개조해서 살아남았어요. 굉장했다고 들었어요. 내장이 거의 망가진 상태에서도 싸움을 계속했다 하니."


그러더니 느닷없이 악수를 내미는 소녀.


"오늘부터 파비야 씨의 파트너가 될 마온이라고 해요. 잘 부탁드려요."


기계? 파트너? 이 녀석 방금 뭐라고 한 거지?


몸을 기계로 개조? 사람인 나를?


"이봐······."

"네?"

"이런 꼴이 됐는데, 부탁이고 나발이고 받아줄 수 있겠냐아아아아악!"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어 버린 나의 처절한 비명이 좁은 방 안에 울려퍼졌다.


작가의말

반갑습니다, 창렉스라고 합니다.

이 글을 올리게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여러모로 생각을 해봤는데, 그냥 쓰고 싶은 대로 쓰기로 했습니다.

제가 메타에 적응하는 것이 아닌, 메타가 저에게 적응을 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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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피떡 21.05.20 27 1 13쪽
3 천마개벽권 21.05.19 34 1 13쪽
2 조립형 천마 21.05.18 56 2 13쪽
» 죽든 살든 넌 나와 함께 간다 +1 21.05.17 130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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