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인연살해]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바로 '빌 사이커'라고 하시는 노친네이십니다. 보통 판타지에서 나오는 주인공격 존재들은 아예 인외의 존재이거나 무협지의 절대고수가 아닌 이상에는 대개 십대 중반에서 20대 초중반까지가 일반적인 것을 생각하면 특이한 부류라고나 할까요?
이런 소릴 한대로 빌 사이커는 딱히 먼치킨적 절대고수 같은 것도 아니고, 미소년인 것도 아닙니다. 아마 역사에 나오는 우락부락한 도끼 든 바이킹이 늙은 모습을 상상하시면 대략 맞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해적일도 하시는 모양이니까요. 배도 많이 타시고. 이야기에서 나오는 것은 해적이라기보다 용병일이라고 보는 편이 맞겠지만.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진짜 신화시대의 말기입니다. 신이 몰락하고, 마법이 아직은 명맥을 유지하면서 주요 권능으로 세상을 좌지우지하고, 인간의 세력이 한창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렇기에 매우 위험한 시대이기도 하지요. 여러 부분에서 분란이 많은 시대입니다.
그런 시대에서 빌 사이커는 과거에 선왕과 함께 활약했었던 노병으로, 분명 훌륭한 전사입니다. 하지만 그뿐으로 일반적 서사시 같은 데서 나오는 영웅이라고 할 정도의 인물은 아닙니다. 그 용맹은 잘 알려져 있지만, 그 명성에 비해 범인이지요.
이 세계관에서 나이가 상당히 들었음에도 전사로서의 능력은 아직 걸출하십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영웅급 전투력을 가지신 것은 아닙니다. 왕의 신하된 입장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거대한 세력을 거느리고 있는 것도 아니지요. 훌륭한 인품을 가지고 있다고 하기도 그렇고, 그 외에도 평균 이상은 되지만 뭔가 독보적이라고 할만한 부분을 찾기는 힘든 위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해내야 하는 일은 어떻게든 해내고, 최상의 결과는 아니어도 최선의 결과는 반드시 이끌어낸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성과를 보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의 임기응변을 지니고 있지요. 조건에 상관없이 최후에 가서는 결과적인 승리를 이끌어내는 것에 익숙합니다. 덕분에 왕도 나름의 편애랍시고 이런저런 곳에 마구 부려먹지요. 그런 그의 행보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다만 그와는 별개로 도덕성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부분은 그다지 높지 않다고 봐야 할겁니다. 적어도 현대인의 감각으로 보면 용인하기 힘든 부분의 사고방식과 일을 하는 부분도 많지요. 그런 점을 포함해서 참 인간적이기는 합니다만. 또 그의 행보를 따라가면 이 소설의 제목처럼 '인연살해'가 생겨납니다. 단순히 사람이 죽이고 다닌다는 것이 아니예요. 물론 그런 일도 하기는 합니다만.
솔직히 이런 식으로만 설명하면 많이 부족합니다만, 그 이상은 어설프게 설명을 듣는 것보다 직접 보시는 것이 훨씬 좋을 겁니다. 그리고 빌에 매력이 빠져드시는 거죠. 물론 위에서 이야기한 빌의 외견이나 성향 등으로 호불호는 상당히 갈릴 거 같은 느낌이 듭니다만, 그럼에도 이 글은 상당히 수작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저도 도끼를 사용하는 노인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고 있기에 동질감 비슷한 것을 느껴서 더 좋기도 하고 말이지요.ㅋㅋㅋ
추가로 이야기하면 현재 이 글에는 히로인이라고 할만한 존재는 없습니다. 주인공인 빌 사이커가 이미 노인인데다가 결혼을 해서 자식까지 본 상황이기에 새삼 히로인을 둔다는 것도 어지간해선 힘든 일일테고요. 굳이 찾자면 하나 있기는 한데, 그걸 히로인이라고 말하기에는 많이 껄끄럽지요. 지금도 서로 죽이지 못해서 안달인 상황이니까 말입니다.^^;
일종의 원한관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이리저리 얽히면서 결판을 내지도 못한 채 질질 끌고 있는 형편이지요. 같이 여행을 다니기도 하고, 때론 협력을 하기도 합니다. 단순하게 적이라고만 하기에는 조금 기묘한 관계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느낌은 비단 그 여성분만이 아니라, 빌 사이커가 얽히는 다른 여러 캐릭터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분명 아군일텐데도 적대하거나 싸우기도 하고, 적일텐데도 호의적으로 다가가거나 협력해 같이 일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때론 서로 간의 관계를 확실하게 정의하기 애매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부분이 이 이야기를 조마조마하며 더욱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게 만들어준다고 봅니다.
이 글을 읽다보면 비교적 초반에 그가 어째서 늙은 몸으로 지금까지 용병일을 하고 있는지, 대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것을 보면 그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범인이자, 얼마나 인간적인지 느껴집니다. 처음 그 부분을 읽었을 때는 좀 찐하기도 했었지요.
개인적으로는 그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뤘으면 싶지만, 현재로서는 아직 요원합니다. 이루지 못할 가능성도 높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앞으로도 왕의 밑에서 해야 할 일이 산더미입니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여기까지. 그럼 여기서 제 [인연살해]에 대한 추천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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