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0년대, 브리튼제도의 연합왕국은 계속되는 대청무역적자를 타개하기 위하여 아편무역을 확대했다.
아편으로 인하여 사회문제가 심각해지자 청나라는 아편의 유통을 금지하고 강력하게 단속하였다.
이에 동인도회사는 아편무역금지에 반발하고 이에 호응한 본국정부에 의하여 아편전쟁이 발발한다. 소수의 병력에 청나라가 자랑하는 정예팔기병이 참패했다.
청나라 군대가 외세에 쉽게 패배하는 것을 목격한 한족들은 이백여년전에 멸망한 명나라의 부활을 외치며 만주족에게 항거하는 반란을 일으켰다.
그결과 청나라는 한족과 연합왕국에게 패퇴하여 멸망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러시아에게 연해주와 여순항구의 조차를 제안하여 러시아의 협력을 이끌어 냈다. 다시금 대륙은 남북조로 나뉘게 되었다.
후명을 이끌던 지도자들이 청나라와의 전투중 전사하면서 남중국은 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유력자들끼리의 내전으로 청나라에게 전선이 밀리면서 역적으로 토벌될 위기에 처하자. 남중국인들은 나라 이름을 명에서 영으로 바꾸고 브리튼섬에 있는 여왕, 빅토리아를 황제로 추대했다.
대륙의 급변하는 정세에 청나라와 영나라 중 어느 쪽에 줄을 댈지 고민하던 조선은
멀리 브리튼 제도의 런던으로 입조사를 보내기로 결정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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