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고 하드를 뽀개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드를 뽀개버리면 그 글을 끝까지 읽을 수가 없어서 좀 보류하기로 했습니다.
독자이기 이전에 저 자신도 판타지를 끄적거리는 사람으로서, 이 글은 몹시도, 몹시도 질투가 나는 글입니다.
봄바람이 꼬리를 말고 달아나는 혹한의 땅 에실모니아.
그 척박한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는 바다마저 얼려버릴 극한의 심장을 가졌으며, 그런 그녀가 사랑했던 유일한 남자는 태양 처럼 뜨거운
사냥꾼이었습니다.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은 어미의 정은 알지 못하고 아비의 손에 자라나 칼 바람에도 굴하지 않는 견고하고 강인한 성정을 지녔습니다.
아이는 원치 않는 군주의 피를 타고 났으나, 누구보다도 혹한의 땅을 다스릴 군주에 어울리는 존재입니다.
모멸에 패하는 것을 미워하고 제가 옳다고 믿는 것은 황소 같은 고집으로 밀어 붙이며, 때로는 짐승처럼 흉폭하게 날뛰기도 하는 등 그녀가 지닌 존재감은 여타 소설의 남자 주인공 못지 않습니다.
지독하리 만치 뚜렷하게 뇌리에 박히는 그 존재감은 소설속 인물들을 매혹시킬 뿐만이 아니라 독자들의 시선 역시 옭아매고 있습니다.
고삐풀린 망아지 같던 그녀가 점차 군주의 후계자로서 변화해 가며, 힘과 힘이 맞부딪히는 치열한 권력의 전장을 헤쳐나가는 모습이 매우 기대가 됩니다.
작가 모미님의 숨막힐 정도로 수려한 필체에 반했고, 뚜렷한 캐릭터에 다시 반했으며, 10부 연작을 치밀하게 준비한 그 대단한 상상력과 참신함에 트리플 어택을 당해 KO당한 독자가 여기 하나.
하드를 뽀개 버리고 싶었습니다, 왜냐구요?
이렇게 멋진 글을 보고 나면 자신의 얕은 밑천이 드러나 견딜 수 없이 부끄러워 지기 때문입니다. (하드를 새로 살 돈이 없어 참기로 했습니다, 훌쩍)
무서운 글입니다, 동시에 몹시도 질투가 나는 글입니다.
보다 많은 분들이 이 무섭고도 뛰어난 글에 빠져들기를 원합니다.
하여 부족한 글재주로 감히 정연란의 '쐐기풀왕관' 추천해 봅니다.
사족, 여자 주인공은 싫으시다구요?
그런데 과연 주인공 오슈드가 '여주인공'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인물인가 좀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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