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도덕적 판단능력이란 감성이자 이성이다. 그리고 이 두 부분은 흔히 느끼는 것 이상으로 분리되어 있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자. 한 사람을 죽여야만 다른 열 사람이 살 수 있다. 선택지는 단 둘이다. 열명이 살고 한 명이 죽거나 그 역 뿐이다. 그 열 한 명은 모두 죄없이 선량한 사람들이다. 이때 대부분의 사람이 한 사람을 죽여야 한다고 볼 것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그렇게 판단하는 이에게 칼을 쥐고 직접 그 사람을 죽이라고 해 보자. 더해서 그 사람이 무척 선량한 인상의 호인이고, 그의 눈을 보면서 직접 살해해야 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는 그 한 사람을 죽여 다른 열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사이코패스나 되지 않고서야.
2.이러한 도덕적 감성주의와 이성주의는 윤리에 대한 판단의 중요한 두 축을 이룬다. 이성주의의 극치는 잘 알려진 칸트의 정연명령이다. 네 의지의 격률이 보편적 왕국의 법칙이 되도록 하라. 이 의견은 흔히 모든 종류의 자의성을 제거한 그야말로 수학적인 도덕법칙을 추구하는 것이라 여겨지지만 실은 그 반대다. 이것은 의외로 니체의 '영원회귀'와도 같은 사고를 반영한다. 보편의 왕국의 법칙이 되도록 판단하라는 것은 네 자유로서 최대한의 이성적 능력을 발휘해 '모든 경우'에서도 그것이 올바르다고 말할 수 있는 있는 최적인 도덕결단을 하라는 것이지, 기계처럼 굴라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이것은 진정한 도덕은 '자유'만이 구현할 수 있다는 절대적인 자유에 대한 옹호의 선언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하여 너의 자유로운 이성이 보편의 왕국에 적합한 규율을 이루었다면 망설이지말고 언제나 따르라. 칸트의 '절대'적인 윤리는 이런 맥락이지. 차갑고 기계적인 도덕로봇 인간을 추구한 것은 아니다. 물론 그러한 기계적 윤리의 세계가 결과로서 나타날 수는 있지만 그런 세계의 개개인은 사실 자신들의 자유를 최대한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3.도덕적 감성주의의는 저러한 절대적 도덕, 그리고 거대한 도덕에 대한 시도를 포기한다. 그 대신 그들이 내어놓는 것은 작은 도덕, 주변을 사랑하는 도덕이다. 현대 철학에서 이러한 도덕의 가장 열렬한 옹호자는 리처드 로티이다. 그는 절대적이고 큰 도덕은 어차피 개개인에게 와 닿지 않고, 자칫 하면 거대한 비극을 부를 수 있기에 오히려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가 작은 도덕을 옹호하게 위해 내어놓는 설명은 절절하다. 이차대전때 유대인을 구한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왜 유대인을 구햇을까. 인류로서 그것이 보편타당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 그들이 그 유대인을 구한 것은 그들이 자신과 같은 어머니이거나 아버지이고, 근처에 살던 동네의 이웃 이었고, 성실한 일꾼이자 친구였기 때문일 뿐이다. 도리어 그들에게 보편적인 민족상으로서 '유대인'에 대해 물어보면 아마도 호의적으로 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4.양자는 물론 분리되어 있을 뿐, 충돌하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어느 한 쪽을 선택한다고 해서 다른 쪽을 포기하고 폐기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도덕이라는 영역을 관장하는 두 방식이 분리되어 있고 때로는 심각하게 충돌할 수 조차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마음을 쓸쓸하게 한다.
5.칸트는 아마도 2, 3과 같은 구분을 부정할 것이다. 그의 기획에 따른다면 숭고함을 느낄 수 있는 미적 판단 능력은 그것을 통해 이 양자의 분리를 진실로 통합해낼 힘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자유를 극단으로 밀어붙인다는 것이 일상적이고 작은 것에 대한 판단을 보편으로 끝까지 확장시킨다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칸트의 이러한 기획은 참으로 장대해서 아마도 현실의 기획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의 현실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6.클라우스 학원 이야기는 2, 3번을 주제로 쓰여진 글임. 어, 스포일런가!
7.구매하신 분들의 책에 대한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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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라우스 학원 이야기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희망을 위한 찬가' 게시판의 공지글들을 참조하시면 되겠습니다. 아니면 쪽지 주셔도 됨. 이상 광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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