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세 드래곤즈의 외야수 차영훈. 한 여자와의 만남. 새로 부임한 팀의 감독. 모든 인연들이 얽히고, 그는 다시 한 번 야구에 대한 절실함을 가져보려 한다. ‘야구선수’로서의 마지막이 될 수 있는 1년. 차영훈의 절실한 1년이 지금 시작된다.
“자, 앞으로 남은 4경기도 확실히 끝내자. 오늘 고생했으니까 푹 쉬고, 뭐 올해하고 프로야구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내년에는 반드시 포스트 시즌 올라간다. 알겠지?”
감독의 말에 선수들은 크진 않지만 짧고 굵게 ‘예’하고 대답했다. 박형원 감독이 내년에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누구도 겉으로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마치 내년에도 함께 결승점을 향해 달려갈 전우 아니, 결승점으로 인도할 ‘리더’를 대하듯.
“아 영훈이는 잠깐 나 좀 보자.”
박형원 감독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영훈이 약간 움찔했다. 갑자기 부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2군으로 내리는 것이라면 코치를 통해서 말해도 될 일이었다. 영훈은 복잡한 머리를 안고 감독의 뒤를 쫓았다. 감독의 걸음이 향한 곳은 덕아웃이었다. 감독은 그라운드 쪽을 바라보며 감독 전용 의자에 앉았다.
“비어있는 그라운드도 참 예쁘네. 그치?”
감독이 영훈 쪽을 슬쩍 쳐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영훈의 눈에 그라운드 따위는 들어오지 않았다. 영훈이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시원하지 않게 대답했지만 감독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그래도 역시 관중석에 사람이 꽉 차고, 선수들이 서있는 것만은 못해. 많은 선수들이 은퇴한 다음 해설이 되고, 코치, 감독이 되지만 현역 때 그 느낌은 다시 느낄 수 없는 거야. 그렇다고 평생 현역으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아니까, 선수들은 최선을 다 한단 말이야. 몸은 그라운드를 떠나도 팬들의 기억에 계속 남아있기 위해서, 은퇴도 그런 의미야.”
은퇴라는 말에 영훈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라운드를 보던 감독의 시선이 영훈에게로 옮겨갔다.
“언제 어떻게 은퇴하느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기억에 다르게 남을 수 있어. 그래서 나는 네가 그나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지 않은 지금, 은퇴했으면 한다. 요즘 부진하기는 했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차영훈을 드래곤즈 최고 외야수로 뽑고 있어. 이럴 때 은퇴한다면 사람들에게 끝까지 최고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영훈은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보고 있었다. 유니폼과 스파이크를 벗고 사복으로 갈아입은 자신의 모습은 야구선수가 아니었다. 외야에서 공 하나를 잡기 위해 그것만 보고, 미친 듯이 뛰던 그 모습이 아닌, 도박판을 전전하며 나이 마흔을 향해 달려가는 평범한 이혼남이었다. 영훈에게 감독이 한 말은 앞으로 평생 이 모습으로 살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네가 지금 은퇴를 결심하면 시즌 마지막 날 홈 경기를 은퇴경기로 준비 시킬 생각이야. 구단에도 2군 타격 코치로 추천하는 중이고. 당장 답을 줄 필요는 없어. 잘 생각해보고 결정해. 후회 없게.”
감독은 일어나 영훈의 어깨를 두드렸다.
“내일 경기장 올 필요 없으니까 푹 쉬어라.”
감독의 말에도 영훈은 대답이 없었다. 감독이 덕아웃을 나간 다음에도 영훈은 한참을 그 자리에 서있었다.
-Home in, 1-1. ‘마지막’과 ‘시작’의 사이 Ⅳ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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