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체육대회 - 풋살
5월 24 (월)
다시 한주의 시작. 주말에는 아프다는 핑계로 지영이는 만나지 않았다. 이곳 저곳 상처가 있고, 맞아서 얼굴도 잔뜩 부어 있어서 걱정도 할 테고, 왜 이렇게 다쳤냐고 물어보면 자세히 설명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집에 온 이후에도 자꾸 한민지가 생각나고 연합 엘티에서의 여러 일들이 떠올라서 다시 마음을 추스릴 시간도 필요했다. 게다가 축제 때처럼 술 취한 것도 아니었는데 키스까지 했으니······지영이한테 너무 미안한 마음이 자꾸 들어서 도저히 만나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겨우 겨우 마음을 다 잡고 다시 월요일이 돼서 학교에 왔다. 전공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체육대회 공지를 위해서 한민지가 나와서 말했다.
“얘들아. 이미 소문 들은 사람도 있겠지만 내일 인문대 주최 인문대 체육대회가 있어.”
“오~체육대회!”
“영문과, 일문과, 중문과와 대결이야.”
“마치 미국, 일본, 중국과 대결하는 것 같네.”
“그렇지? 그런데 매년 우리 국문과가 꼴찌 했데.”
“아~남자가 없어서 그런가?”
“그렇겠지. 어쨌든 출전 종목은 5개야. 남자는 풋살, 농구. 여자는 피구, 발야구. 그리고 다 같이 계주.”
“오~이길 수 있을까?”
“이겨야지. 이번엔 1등이 목표야. 항상 1등은 영문과가 해왔는데, 이번엔 우리가 1등해야지. 일단 참가자를 뽑아야 하는데 풋살은 6명, 농구는 5명이라 남자는 무조건 다 출전 한다고 생각해. 계주도 남자 넷, 여자 넷 출전이니까 남자들은 웬만하면 다 한다고 생각해. 진호 선배랑 동진 선배도 다 출전해야 될 거야.”
난 운동은 잘 못한다. 그냥 달리는 건 잘하긴 하는데, 특히 공 갖고 하는 건 정말 잘 못해서 학창시절 체육대회 때 축구나 농구는 선수로 나간 적이 없었는데······여기선 다 출전 해야겠네.
“여자 발야구는 9명, 피구는 7명 출전이야. 공 좀 차고, 던지는 사람은 주저 말고 나한테 얘기해줘. 알았지? 아, 계주도 나가야 하니까 달리기 잘 하는 사람도 말해줘. 참고로 나는 다 출전 할거야.”
여자들 중에 누가 운동을 잘 할까? 그러고보니 지영이는 운동 잘 하나?
5월 25 (화)
드디어 체육대회. 오늘 경기는 여자 발야구, 남자 풋살, 여자 피구, 남자 농구, 계주 순으로 진행 된다. 막상 자진해서 출전하는 여자들이 없어서 한민지가 거의 독단으로 멤버를 구성했다.
첫 경기 여자 발야구는 중문과와 대결. 한민지의 엄청나게 강한 킥에도 불구하고 다들 공도 잘 못 차고 수비도 못해서 큰 점수 차로 탈락하고 말았다.
이제 이어서 풋살. 인문대는 남자가 부족하고, 특히 우리과는 남자가 없어서 축구가 아닌 인원이 적어도 되는 풋살로 바꿨다고 했다. 아무튼 우리 과 1, 2학년 남자 6명은 전월 출전을 했다.
장강호 키퍼, 나 우재영 수비. 진호 선배 중앙. 홍태준 동진 선배가 공격이었다.
풋살 토너먼트는 첫 상대는 인문대 체육 강호 영문과 였다. 경기 시작 전 주장인 진호 선배가 우리를 다 모아놓고 얘기했다.
“얘들아. 너네 솔직히 축구 어느 정도 하냐? 나 진짜 웬만큼 찬다 하는 사람?”
“······.”
“그럼 농구는 어느 정도 하냐? 장강호, 우재영 너희는 키가 좀 돼서 잘 할 것 같은데.”
“네. 전 항상 센터 봅니다.”
“장강호, 넌 그럴 것 같다. 든든해. 우재영 넌?”
“저도 농구는 축구 보다는 잘 해요. 주로 포워드 했어요.”
“오~좋아! 홍태준은?”
“저는 그렇게 잘 하지는 않아요. 슛은 좀 쏴서 종종 슈팅 가드 했어요.”
“와~좋네. 대박이다. 강한민 너도 좀 해?”
“······전 그냥 후보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우리 풋살은 참가에 의의를 두고, 농구에 힘을 쏟아 붙자.”
“네.”
“아, 그래도 우리 지더라도 1골만 놓자. 우리 작년에도 1골도 못 넣고 졌거든······.”
“네. 1골! 그럼 파이팅 하시죠!”
“그래. 패기 좋다. 홍태준. 자! 파이팅!”
“파이팅!”
내 역사상 첫 체육 대회 선발 출전. 후보에도 못 드는 실력인데, 사람이 없어서 선발이라니.
어느덧 심판 휘슬과 함께 경기가 시작 되었다.
“국문과 파이팅!”
“박진호, 백동진, 강한민, 홍태준, 우재영, 장강호! 파이팅!”
여기저기서 여자들의 응원이 들려오니까 힘이 더 나는 것 같다. 특히 지영이가 날 보면서 웃으면서 손을 흔드는데······멋지게 플레이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골!”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시작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단 번에 뚫리면서 한 골 먹혔다.
“자, 자, 괜찮아. 1골 넣자.”
“넵!”
하지만 공격 연결은 도저히 되지 않았다. 우리가 못하기도 했지만 영문과는 정말 잘했다. 어느덧 전반전이 4-0으로 마무리 되었다. 진호 선배는 다시 우리에게 작전을 설명했다.
“얘들아. 우리 더 먹혀도 되니까 한 골만 넣자. 강한민, 우재영 너희 엄청 나게 수비 안 해도 되니까 최대한 공격해. 올라 와. 너희 둘 마크가 덜 할 테니까 기회 되면 무조건 때려.”
“네.”
“파이팅!”
후반전이 시작 됐고, 여학생들의 응원도 더 커졌다.
“박진호! 백동진! 강한민! 홍태준! 우재영! 장강호! 파이팅!”
좋아. 이렇게 된 거 골 넣어보자. 기회만 와서 차면 내가 넣을 수도 있을 거다.
이런 생각 하는 사이, 어느새 영문과 공격수는 또 내 앞에 와 있었다.
아~계속 뚫리기도 싫다. 좀 막아 라도 보자, 라고 생각하면서 달려 들어서 막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공이 얼굴로 날아왔고 내 코에 정통으로 맞았다.
“악!”
강한 공을 코에 정통으로 맞으니까 순간 어질 어질 했다.
“꺅! 어떡해? 강한민.”
멀리서 여학생들의 걱정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괘, 괜찮아요? 죄송합니다.”
내 얼굴에 공을 맞춘 영문과 학생이 다가와서 괜찮냐고 물어봤지만 아픈 걸 떠나서 쪽팔려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괘, 괜찮아요.”
“어라?”
“네? 왜요?”
“코, 코피 나요.”
“네?”
아······코피까지 나다니, 너무 쪽팔린다. 지영이가 날 뭐라고 생각 할까······.
“야~강한민 코피나.”
“꺅! 어떡해?”
“채지영 어떡해~?”
여기저기서 내 걱정은 물론, 지영이 걱정하는 소리까지 들려온다. 아~너무 쪽팔리다. 젠장.
난 바로 코를 틀어 막고 화장실로 뛰어 갔고, 어느 정도 지혈이 된 다음에 다시 복귀했다.
“와~강한민. 왔다!”
“부상 당해도 하네. 부상 투혼이다.”
“괜찮아! 괜찮아!”
지나친 응원이 날 더 쪽팔리게 하는 것 같다. 이렇게 된 이상 골을 넣는 거 외에는 이미지를 만회 할 방법이 없다.
“경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난 수비는 아예 제쳐두고 앞으로 나가서 볼을 받을 준비를 했다. 하지만 공은 오지 않았고 골만 더 먹혔다. 스코어는 벌써 8-0.
난 장강호에게 가서 한 가지 요청을 했다.
“장강호. 무조건 멀리 쭉 차. 날 향해서.”
“해 볼게.”
이제 시간은 1분 남았다. 이번 공격 기회에서 무조건 넣어야 한다.
볼은 진호 선배가 일단 뒤로 백 패스를 했다. 동진 선배가 드리블로 치고 나가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아서 다시 우재영에게 패스 했고 우재영은 공을 뺏길 것 같아서 바로 장강호에게 패스했다. 이 상황에서 난 이미 공격 진영으로 혼자 한참 올라가 있는 상황이었다. 이걸 보고 장강호는 바로 나에게 롱패스를 날렸다.
“받아라 강한민!”
패스한 공은 정말 운 좋게도 내 앞에 바로 떨어졌다. 게다가 노 마크. 골키퍼 1대1 찬스. 반대편에서 수비수가 달려오고 있다. 어차피 패스 할 사람도 없고 시간 끌수록 손해다. 바로 슈팅이다!
“슛!”
정확히 맞았다. 마치 누군가 내 발을 조정한 것 마냥 정말 잘 찼다. 느낌이 온다!
“골!”
내가 찬 볼은 정확히 골문으로 향했고 골키퍼 손을 뻗기도 전에 골망을 흔들었다.
“와!”
믿기지 않는 골에 우리 남자들은 모두 서로에게 달려가 부등 켜 안았다.
“와! 강한민. 대박! 진짜 잘 찼다. 진짜 잘 했어!”
“장강호의 패스가 좋았어요.”
“그래도 한 골 넣어서 다행이다. 분위기 탔어. 이 분위기 농구로 이어 가자.”
“네!”
이렇게 스코어는 8-1로 마무리 되었지만 국문과 체육대회 역사상 거의 몇 년 만에 넣은 골이라 참 의미가 깊었다. 하지만 그 보다 코피로 인해 쪽팔렸던 게 귀중한 한 골로 덮어져서 다행이다.
“그럼 축구와 발야구 결승을 시작 하겠습니다. 탈락한 과는 점심 식사 하시고 있다 오후에 농구, 피구, 계주 함께 하겠습니다.”
축구와 발야구 모두 1회전 탈락한 우리 과는 바로 점심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관중석에서 지영이가 엄청 걱정 된 표정으로 나한테 달려왔다.
“한민아. 괜찮아?”
“하하! 괜찮아. 괜찮아. 그 보다 나 골 넣은 거 어땠어?”
“완전! 완전 너무 멋졌어!”
“코피는 잊어줘. 알았지?”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정말 괜찮아? 코 아직도 빨개.”
“괜찮아. 진짜. 가자. 점심 먹으러.”
“응응.”
나에게 선발 출전과 골 행운을 준 국문과에 또 다시 감사. 국문과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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