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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룡 님의 서재입니다.

용사의 제자, 역적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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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룡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2
최근연재일 :
2023.05.26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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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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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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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9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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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 왕립묘지의 모녀

DUMMY

포르타는 그대로 죽지 않았다. 제7중대가 제때 복귀하지 않자, 왕국에서는 급히 수색대를 꾸려 7중대의 행방을 쫓았다. 결국 수색대는 산중 어느 곳, 한때는 어느 난민 무리의 마을이 있던 곳에서 바로 그곳에서 십여 구의 시신과 포르타를 수습하였다.


‘뭐지? 어째서 내가 살아있는 것이지? 이게 대체 어찌 된···? 잠시 간의 유예?’


분명 비술의 반동을 느꼈다. 그래서 분명 이건 죽겠구나 싶었다. 아닌 게 아니라, 포르타가 수색대에 의해 구조될 당시 -다른 부대원들과 마찬가지로 이미 죽은 것으로 여겨졌을 만큼- 포르타의 몸은 만신창이였고, 그 숨결은 너무나도 미약했다. 하마터면 살아있는 상태로 다른 7중대원들과 함께 장례를 치를 뻔하였다. 여하튼 포르타는 급히 왕성으로 옮겨졌고, 그로부터 일주일이 되던 날 깨어났다. 또 그로부터 얼마간의 시일이 지난 후 포르타는 군부의 조사를 받게 된다.


“죄송합니다. 그 뒤로는 기억이 전혀 나지 않습니다.”


포르타는 정체 모를 괴한이 나타났다고 대충 둘러댔다. 그리고 그 외의 것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생사를 오간 충격으로 기억이 날아간 척을 한 것이었다. 포르타는 그저 성가신 마음에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지껄인 것뿐이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옳은 결정이었다. 조사관은 의외로 순순히 포르타의 이 어설픈 거짓말과 연기를 수긍하였다. 오히려 포르타가 구체적으로 이것저것 지어내 말이 길어졌으면 의심을 받았을 것이다.


조사관은 포르타가 나머지 부대원들과 함께 마법으로 추정되는 공격을 받았고 그로 인해 비록 심각한 부상을 입었으나, 운 좋게 겨우 목숨만은 건진 것으로 결론내렸다. 그렇게 오해할 만큼 포르타의 몸 상태는 매우 심각하였다. 벼락을 맞고 근맥과 혈관이 타 버린 7중대원의 시신들과 그리 차이가 없어 보일 정도였다. 또한 포르타는 모르겠지만, 일주일간 의식 없이 누워있는 동안 생사의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었다. 그러니 조사관도 포르타에게 이것저것 추궁은 하였으나, 포르타에게 달리 혐의를 두지는 않았다.


“부사관 1명이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았소. 이에 대해 혹시 아는 것이 있소?”


“아, 아니요. 죄송합니다. 그것 또한 기억이 없습니다.”


“어허, 이것 참. 이것도 저것도 다 모른다고만 하니, 답답하군요.”


“죄, 죄송합니다.”


“뭐, 됐소. 이쯤 합시다. 여하튼 그간 조사에 협조하느라 고생했소. 난 이만 가볼 테니 몸조리 잘하시오.”


“네, 감사합니다. 살펴 가십시오.”


작별을 고하는 조사관에게 포르타는 침상에 누운 상태 그대로 천정을 바라보며 대답하였다.



***



포르타가 왕국으로 귀환한 지 다시 몇 개월이 지났다. 그리고 그제야 포르타는 스스로 일어나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오, 드디어···.”


본구스타는 눈물을 닦았다. 비록 더디고 무거운 발걸음이지만 포르타는 스스로 걷고 있었다. 본구스타는 그간 두려웠었다. 이대로 포르타가 다시 일어나지 못할까 노심초사였다. 특히나 부상을 입고 돌아온 포르타는 한동안 더는 삶에 미련이 없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울지 마세요. 아저씨.”


“고마워, 고맙다.”


“아니, 제가 아저씨에게 감사해야지. 뭔 소리람?”


포르타가 본구스타에게 몸을 의탁한 지 대략 3개월 정도 되었을 때, 본구스타는 그동안 애써 참아 왔던 말을 내쏟았다.


- 야 이놈아! 네 놈에게는 네 사부인 용사님밖에 없더냐! 나는 정녕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냐? 네 놈이 이대로 삶을 포기하면 내 속은 어떨 것 같으냐? 너는 내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거야?


포르타는 여러 의미로 깜짝 놀라고 말았다. 본구스타 이 양반은 감히 파트리오토를 언급하고 있었다. 왕국에서 대역죄인으로 낙인찍힌 자를 여전히 용사라고 부르고 있었다. 행여 다른 사람이 들으면 어쩌라고 저런 말을 함부로 하다니, 아니 그 이전에···.


- 아저씨,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마십시오.

- 어린놈이 지랄하고 자빠졌네. 역적이라고? 그리고 배신자라고? 난 믿지 않아. 아니, 내가 믿고 아니고가 문제가 아니지. 내 말이 틀렸다면 지금 이대로 관부로 가서 나를 신고해! 그리고 지금은 그것조차 중요한 문제가 아니야. 너 이 새끼야, 이대로···. 정말 이대로···. 세상 다 산 그런 눈빛을 계속하고 있을 거야?


포르타는 순간 본구스타를 의심하였다. 혹시라도 군부가 본구스타를 포섭하여 자신을 시험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그런 의심이었다. 그러나 이내 그런 자신이 우스웠다. 아무렴 어떤가? 애초에 죽을 생각이 아니었던가? 이제 와 무슨 미련이 있다고···.


- 이 새끼가! 그러지 말라는 대도, 또 또 그런 눈빛!

- ···.

- 언제가···. 비록 지나가는 투였지만, 용사님이 나에게 너를 부탁한다고, 아직은 어린 네 놈을 잘 부탁한다고 말씀하셨다.

- ···!

- 순간 감정이 격해져 너에게 윽박지른 것은 미안하다. 하지만 내가 너에게 아무것도 아니더라도 용사님을 생각해서라도···. 살아가자.


정녕 눈빛으로 마음을 알 수 있다는 말인가? 허튼소리다. 눈빛 따위는 얼마든지 속일 수 있다. 그저 살기 위해서라면 영혼이 없는 듯 그런 눈빛은 얼마든지 꾸며낼 수 있는 것이 인간이었다. 내가 그 증인이다. 그렇게 사람 마음을 잘 안다면 요리점이 아니라 점집을 하는 게 돈벌이에 더 좋지 않겠는가?


- 눈빛이 어쩌고저쩌고 대체 아저씨가 뭘 안다고! 무슨 독심술이라도 부리···!


그러나 포르타는 곧 말문이 막혀버렸다. 포르타가 악에 받쳐 본구스타를 노려본 순간, 그제야 포르타는 본구스타의 눈에 맺힌 커다란 슬픔과 분노 그리고 자신에 대한 애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



거구의 사내가 짐짓 인상을 구기며 소년을 노려보고 있었다.


“요 꼬맹이가 어디 도둑질이야? 돈이 없다면 몸으로 때워야겠지?”


사내의 으름장에 소년은 입가에 묻은 음식 부스러기를 닦으며 각오를 다졌다. 사고무친(四顧無親)의 고아가 거리를 떠돌다 보면, 매를 맞는 일이 일상이었다. 이번처럼 음식을 훔쳐 먹다 걸리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인사불성의 주정뱅이나 개털이 된 노름꾼 따위에게 재수 없게 걸려 괜한 화풀이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나마, 길거리 생활이 길어질수록 그에 비례하여 눈치가 늘어난 것인지, 주정뱅이 등에게 걸리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나 문제는 배고픔이었다. 매를 맞는 일이 몸을 상하게 한다는 것을 어찌 모르겠느냐마는, 당장의 배고픔을 이길 순 없었다.


“야, 이리 와봐!”


사내는 사람들의 시선이 없는 가게 뒤편의 으슥한 골목길로 소년을 끌고 갔다. 목덜미를 잡힌 채 버둥대던 소년은 사내의 매타작이 심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애써 뱃속에 집어 놓은 음식을 다시 게워내는 일은 제발 없어야 했다. 바람대로 된다면 그리 나쁘지 않은 일진(日辰)일 것이다.


“저거 보이지?”


사내의 손가락을 따라가 보니, 음식물 쓰레기로 가득 채워진 짬통 몇 개가 보였다.


“오늘 영업이 끝나기 전까지 모두 치워. 버리는 곳이 어디인지는 알지? 그걸로 음식값을 대신해주마.”


“예? 정말로요?”


“뭐야? 도둑놈 주제에 불만인가 보지?”


“아, 아뇨. 합니다. 해요.”


“꾀부리지 말고, 제대로 해. 알겠어?”


“네, 열심히 하···.”


“쯧, 마음에 안 들어.”


사내는 소년의 대답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뭐가 불만인지 고개를 연신 흔들며 자신의 가게로 홱 하고 들어가 버렸다. 사내가 다시 가게의 쪽문을 열고 뒷골목으로 나온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서였고, 사내는 조금은 놀라고 말았다.


“시킨 일 다 했어요. 그럼 이만 가볼게요.”


사내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소년은 작별을 고했다.


“자, 잠깐 기다려!”


사내가 급히 짬통을 확인해보니, 모든 통이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어린아이의 몸으로 짬통 몇 개를 치운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 쥐방울만 한 녀석이 고분고분하게 짬통을 치울 거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음식을 훔쳐먹은 벌로 일을 시키기는 했지만, 감시는 하지 않았다. 한가로이 그러고 있을 시간도 없었다. 시킨 것을 내팽개치고 도망가도 상관없었다. 처음부터 그저 겁을 조금 주어 쫓아낼 생각이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눈앞의 이 꼬맹이처럼 어린 떠돌이들이 몰래 가게의 음식을 훔쳐먹는 것은 간혹 있었던 일이었다. 고작 음식 한 그릇 때문에 부모 잃은 고아들을 닦달한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마냥 만만하게 보일 생각은 없었다. 비록 음식값은 못 받았지만 한 번 도망갔던 녀석들이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너 우리 가게에서 일해볼래?”


너무나 즉흥적인 제안이었다. 사내는 자신이 말해놓고도 깜짝 놀랐다.


‘딱히, 일손이 더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내가 왜···.’


“...”


소년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대답이 없었다.


“너무 경계하지 말고, 일단 들어봐. 너한테 뭐 거창한 걸 시키지는 않아. 기본적인 숙식 제공에 약간의 용돈 정도는 주마. 하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관둬도 돼.”


“...”


여전히 묵묵부답. 소년은 꽤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매를 맞을 위험을 감수하고 음식을 훔친 주제에 막상 일자리 제안은 의심하고 있었다. 아마 길바닥을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일을 겪었을 것이다.


“어때?”


이쯤 되니, 어째 사내가 소년에게 사정하는 모습이 돼버렸다.


‘어이쿠, 이런. 이러다 괜히 의심만 사겠는걸.’


“좋아요.”


한참 만에 소년이 대답하였다.


“그래, 뭔가 선뜻 믿기 어렵겠···. 응? 한다고?”


“예.”


“그래···. 뭐, 잘됐네.”


“...”


“어이, 꼬맹이! 너 이름이 뭐니?”


“포르타···. 입니다.”



***



바깥 거동이 어느 정도 가능해지자, 포르타는 왕립묘지를 찾았다. 한 때 제7중대원의 일원으로서 찾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포르타는 의심을 사지 않게 자신이 죽인 자들을 참배하러 가는 이 괴상한 짓을 하고 있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이제 와 죄책감을 느낄 생각은 없다. 이깟 참배 따위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막상 눈앞의 소녀가 자신의 품에 안겨 서럽게 울자 포르타는 마음이 복잡하였다. 소녀의 어미는 왕립묘지에서 우연히 포르타를 발견하고는 아는 체를 해왔다.


- 혹시 포르타 중위님 아니십니까?

-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를 아십니까?

- 제 남편이 저기 저 사람입니다.


여자는 가리킨 곳에는 제7중대의 중대장이 누워있었다. 그렇다. 이 어린 소녀는 중대장의 딸이었다. 확실히 산중에서 만난 퓨라보다도 어린아이였다. 포르타는 이 순진무구한 아이를 어떤 말로 속여 넘겨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침묵하는 비겁함을 선택했다. 그저 소녀의 등을 토닥거린 것이 다였다. 그마저도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감사합니다.”


남편과 아비를 잃은 모녀는 포르타에게 인사를 건넨 후 왕립묘지를 빠져나갔다. 멀어져 가는 모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면 포르타는 얇게 지껄였다.


“씨바, 좆같은!”


그리고 그런 포르타를 멀리서 바라보고 있던 자들이 있었다.


“저 빌어먹을 놈은 살아서 멀쩡히 돌아다니는데, 우리 아들은! 이건 뭔가 크게 잘못된 거야. 그래 이건 부정의(不正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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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007. 피똥 싸봤냐 23.05.12 9 0 13쪽
6 006. 간다르바의 저주 23.05.11 10 0 12쪽
5 005. 올레오의 항아리 23.05.10 12 0 13쪽
4 004. 절뚝거리는 지팡이 23.05.10 11 0 12쪽
3 003. 마지막 밤 23.05.10 21 0 13쪽
2 002. 용사의 휴식처 23.05.10 12 0 14쪽
1 001. 마법연구원의 어느 조교 23.05.10 32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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