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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 님의 서재입니다.

내일도 해가 뜰까요?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팬픽·패러디

완결

부정
작품등록일 :
2013.08.31 22:56
최근연재일 :
2013.09.17 22:29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14,887
추천수 :
277
글자수 :
128,429

작성
13.09.10 13:37
조회
209
추천
5
글자
8쪽

D-11

DUMMY

[세영의 이야기]


“오 예! 너구리 월드!”


총소리를 듣고 뛰는 경주마처럼 입구를 지나자마자 그녀가 내 손을 잡고 달려 나간다. 어찌나 힘이 강한지 산책을 시키는 건지 끌려가는지 모를 커다란 개와 그의 주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개 같다고 그러면 좀 그러려나?


“자기야. 일단 이런 곳은 바이킹부터 가는 거야!”

“그거 꼭 타야해?”

“왜! 바이킹!”


사실 난 고소공포증이 심하다. 내가 올라간 건 당연히 무섭고 남이 올라간 것만 봐도 무섭다. 심지어 높은 곳에서 찍은 사진도 무서워한다. 더 심한 것은 뭔지 아는가? 어렸을 때의 일이다. 아마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것이다. 비온 다음 날이었다. 바닥에 빗물이 넓게 고여 있었다. 고인 물엔 하얀 구름이 낀 파란 하늘이 비쳐보였다. 난 그 하늘에 빠질까봐 빗물을 밟지 못했다.


“알았어. 타자.”


어쩔 수 없이 바이킹을 탔다. 평일 오전이어서 그런지 얼마 기다리지 않아도 쉽게 탑승할 수 있었다.


“으으.”


신음소리가 절로난다. 태연이는 뭐가 신났는지 연신 싱글벙글이다.


“완전 기대된다.”


바이킹이 출발한다. 올라갈 땐 하나도 안 무섭다. 내려갈 때가 문제다.


“으악!”


심장은 그대로 위에 두고서 나머지 몸만 내려오는 느낌. 이 때 심장에 영혼이란 글자를 써 넣어도 된다. 넋. 그래 넋 괜찮아. 젠장.


“오빠 한 번 더! 지금 줄에 사람 없어!”


난 어쩔 수 없이 몇 번을 더 타고 말았다. 나중엔 다리를 벌벌 떨고 말았다. 하얗게 질린 채 벌벌 떠는 내 모습에 놀란 태연이 내손을 잡고 한쪽의 벤치로 가 한 동안 앉아 있고서야 몸의 떨림이 멈췄던 것 같다.


“미안해. 그냥 무서워만 하는 줄 알았는데 고소공포증 같은 거야?”

“어? 어. 어……. 어. 어.”


나는 내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지도 몰랐다. 살짝 공황상태에 빠졌나보다. 정신을 차렸을 땐 내 앞에 주저앉아 그녀가 울먹이고 있었다.


“미안해. 내 생각만 해서. 그렇게 못 탈 것 같으면 말 하지.”

“난 말 했는데.”


내 대답에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보통 때 같았으면 그녀를 감쌌겠지만 왜인지 지금은 그러기 싫었다.

그렇다고 이 분위기를 이어나갈 수는 없었다. 원래 나는 다 맞춰주는 편이지만 내가 아니라고 생각한 선에서는 절대 타협을 안 하는 옹고집 같은 면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에겐 처음이자 마지막 놀이공원일 수가 있었다.

그녀를 당겨 꼭 안았다. 달래주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굳은 내 얼굴을 보여주기 싫었다. 내 마음을 들킬 것 같아서였다.


“미안. 내가 놀라서 그래.”

“오빠. 나도 미안해.”

“뭐야. 내가 좀 그랬다고 바로 애칭 안 쓰고 오빠라고 그러는 거야?”

“미안해.”

“우리 다른 거 타러 가자. 나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만 아니면 다른 건 잘 타.”


애써 그녀를 다독인 후 근처의 커피 잔 모양의 놀이기구로 갔다.


“이거? 재미없어 보이는데? 그냥 의자에 앉아서 빙글빙글 도는 거 아냐?”

“아냐. 이거 의외로 재밌어. 이거 타자. 나 타고 싶어.”

“그래. 그럼.”


태연이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기구에 올랐다. 이곳을 잘 모르는 그녀는 모를 테지만 이 기구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바로 가운데 있는 원반 모양을 돌리면 잔이 더 빠르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남자 한 셋 정도가 정신 놓고 돌리면 그 무엇보다 미친 기구가 된다.

나는 소 앞에 선 최배달 같은 마음가짐으로 원반을 잡았다.

가자! 7년 웨이트 트레이닝의 결과를 오늘 이 땅에 보여주리라! 돌아라! 이것이 남자의 복수다!


“이게 뭐야!”


어지러운 것에 약한지 태연이 질린 얼굴로 기구에서 벌벌 기어 나온다.


“어때! 재밌지!”

“치! 일부러 그랬지!”


나는 주저 앉아있는 그녀를 안아들었다.


“그럼 우리 일대일이니까 다 잊고 재밌게 놀자. 알았지?”

“치. 오늘만 봐주는 거야!”

“알았어요. 공주님!”



[태연의 이야기]


나는 오빠가 그렇게 무서워할지 몰랐다. 아니 잊고 있었다.

마지막 바이킹을 타고 난 후 오빠는 정말 상태가 심각하게 안 좋아보였다. 그저 어지러워하는 정도가 아니라 대화가 통하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오죽하면 의무실에 연락을 해야 하나 싶었다.

처음이었다. 오빠가 차가운 눈으로 나를 바라본 것은. 그것은 낯선 경험이었고, 무서운 경험이었다.

처음이었다. 남 같은 표정.

순간 서운한 마음이 들었었다. 내가 모르던 모습인 건가? 아니면 이런 모습이 원래 모습인 건가?

혼란스러운 상황에 오빠가 다시 나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전에 대화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선유도. 구름다리. 성긴 발판 아래를 봤다가 무서워 꼼짝을 못했었다고.

그저 과장된 표현인 줄만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하긴 예전에 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기사도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은 생각한다. 마음먹기 따라 아니냐고.

바보 같은 소리다. 그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전국 1등. 열심히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이 소리와 뭐가 다르냐? 말로는 누가나 빌게이츠가 될 수 있다.

인간의 뇌가 하는 작용이다. 제대로 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굳건하다고 우울증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울증은 뇌의 병이고, 굳건한 마음은 뇌에서 온다. 말기 암 환자가 조깅을 한다고 낫는 것이 아니듯이 정신적인 질환이 있는 사람에게 굳은 마음이란 결부 될 수 없는 요인이다.

공포증도 뇌 작용의 한 예이다. 내가 잘못한 일이다. 나는 그를 배려했어야했다.

미안했다. 그는 항상 나를 시선 밖으로 보낸 적이 없는데. 나는 그를 놓쳤다. 내 시야에서. 아니. 생각도 못했다. 잠시 동안.

날 일으키는 오빠의 손을 잡고 그를 다시 따라나선다. 과정은 아팠지만 결과는 나쁘지 않다. 뭐 애인이랑 싸워보는 것도 못 해본 일 중 하나이니까.


------------


“역시 마지막엔 이거지.”

“좀 아쉽긴 하다. 뭔가 관람차 같은 그런 거 생각했는데.”

“나름 열기구 느낌 나잖아.”


오빠의 귀에 다가가 살짝 속삭였다.


“둘 만 타는 게 아니잖아.”


그러자 오빠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게 말한다.


“무슨 소리야? 내 눈엔 여기 너밖에 안 보이는데?”

“피.”


오빠가 날 가만히 안아준다. 자칫 민망할 수도 있지만 여기 탄 커플들이 다들 서로 부둥켜 안고 있었기에 신경이 덜 쓰였다.

아래 펼쳐진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평일이라 그런지 가족단위는 거의 볼 수 없었지만 시간이 제법 지났기에 연인이나 친구들 끼리 온 사람들이 많이 늘어있었다.

다들 설렘과 즐거움을 얼굴에 가득 담고 기구 사이를 누비고 있었다. 다들 고민과 짐을 어깨에 얹고 있을 테[지만 지금 만큼은 모든 것을 잊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오빠의 얼굴을 바라봤다. 저 사람들을 닮은 표정. 아마 나도 그렇겠지. 그래서 사람들이 놀이동산을 찾는 것일까? 오늘 잠시 잊기 위해서. 혹은 짐 없이 홀가분했던 어린 날을 추억하기 위해서. 바글거리는 사람과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우리 아기 오늘 어땠어?”

“즐거웠어. 재밌었고.”

“아깐 쌀쌀맞게 굴어서 미안해.”

“아냐. 내가 오빠 배려 못 해줘서 미안해.”

“나 금방 용서해주고 다시 잘 따라와 줘서 고마워.”

“날 먼저 생각해주고, 배려해주어서 고마워.”


날 안고 있는 오빠의 허리를 나도 감싸본다. 두툼한 상체와 가는 허리가 품 안에 들어온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따뜻한 체온이 좋다.

눈을 감고 오빠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이 순간을 내 머릿속에 내 가슴속에 새기듯 기억한다. 조금 다행이다. 우리의 추억은 30일 뿐이라 하루하루 모두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단 1초의 순간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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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D-7 13.09.13 462 10 9쪽
23 D-8 +2 13.09.12 299 5 10쪽
22 D-9 13.09.11 269 7 8쪽
21 D-10 13.09.11 990 8 8쪽
» D-11 13.09.10 210 5 8쪽
19 D-12 +2 13.09.10 321 6 7쪽
18 D-13 13.09.09 470 8 9쪽
17 D-14 13.09.08 339 9 10쪽
16 D-15 13.09.07 346 7 11쪽
15 D-16 +2 13.09.06 392 1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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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D-20 13.09.05 368 9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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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D-24 13.09.03 2,300 34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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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D-27 +2 13.09.01 398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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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D-29 +4 13.09.01 475 1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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