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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 님의 서재입니다.

내일도 해가 뜰까요?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팬픽·패러디

완결

부정
작품등록일 :
2013.08.31 22:56
최근연재일 :
2013.09.17 22:29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14,888
추천수 :
277
글자수 :
128,429

작성
13.09.03 13:55
조회
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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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9쪽

D-23

DUMMY

[세영의 이야기]


“여기가 그 유명한 덕수궁 돌담길인가?”

“응 우리 아버지 세대 사람들이 많이 걸었다고 하더라.”

“그런데 여길 같이 걸으면 헤어진다는 전설이 있다며.”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길을 따라 걸어가면 가정법원이 나왔데. 그래서 그래.”

“그게 뭔 상관인데?”

“이혼을 하려면 법원에 가야하니까.”


내 대답에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태연. 날이 제법 풀려 맨투맨 하나만 입고 나와서 그런지 딱 붙어 걷는데 손끝에 느껴지는 그녀의 굴곡이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오빠 은근히도 아니고 너무 만지는 거 아냐?”

“응, 응?”

“손이 막 위아래를 오가네. 누가 보면 첼로연주라도 하는 줄 알겠어.”

“그러면 안 돼?”

“치.”


혀를 차는 모습도 귀엽다. 가느다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도심을 걷는 것은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었다.


“요기 바로 옆에 전시관도 있어. 거기도 갈래?”

“무슨 전시관?”

“유명 화가 그림인 것 같은데 솔직히 잘 몰라.”

“하긴 나도 그래. 헤헤.”

“그래도 한 번 가보자. 나 한 번도 안 가봤어.”

“오~. 완전 문화 시민이야.”


표를 구매하고 전시관에 들어갔다. 어디서 들어봄직한 화가의 이름. 지나가다 한 번쯤 봤을 법한 그림이 한 두 개씩 발견된다.


“저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아?”

“정말 달력에서 본 것 같아.”


전에 여자 친구가 있을 때도 찻집과 영화관, 식사의 단조로운 데이트 코스가 아니라 무언가 다른 코스를 따라 데이트를 하니 색다른 즐거움이 생긴다.


“여기 커플들도 많이 온다.”

“그러게.”


손을 잡고 그림을 감상하는 그들의 모습.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귓속말을 주고받는다. 여자 쪽이 그림에 대해 많이 아는지 설명하는 듯 보였고, 남자는 연신 고래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쳐주고 있다.


“이런 분야도 미리 관심을 가져둘 걸 그랬나? 그래야 우리 아기한테 멋들어지게 설명도 해주고 그러지.”

“그럴 필요 있나. 그냥 보면 되지. 나 공부할 때도 그게 아쉬웠어. 작가는 그저 표현할 뿐인데 우리는 너무 역사와 의미를 부여해서 이론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하긴. 황석영의 소나기에서 보랏빛 꽃물이 죽음을 상징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작가가 보라색을 좋아했다는 말도 있잖아.”

“그냥 읽었을 때 좋으면 되는 것 같아. 그것이 내 마음을 울리고 무언가가 느껴지면 그걸로 족하는 거지.”


[태연의 이야기]


말을 하면서 느낀 점이 생겨난다. 그래 예술은 마음으로 느끼고 개인이 판단하는 것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라 느낀다.

그저 같이 있을 때, 떨어져 있더라도 상대를 생각할 때 무언가가 느껴지고 그것이 나에게 영향을 준다면 그 모습, 바로 그것이 사랑이리라.

나는 그동안 시간에 쫓긴다는 생각에 무언가 오빠의 작은 행동 같은 것에도 의문과 의미를 붙이려 했던 것 같다.

그저 행복하면 그만인 것을.

가만 보면 오빠는 그렇게 하고 있는 것 같다. 솔직하고 순수한 사람. 생각이 깊지만 나에 대해서만은 적나라할 정도로 즉흥적이고 가감 없이 마음을 여는 사람.


“오빠는 덕수궁 와봤어?”

“아니.”

“오빠 서울 토박이였다며.”

“서울 사람이 오히려 더 몰라. 서울이 관광지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하긴 나 중학교 때 체험학습 이런 거 온 적 있었어. 서울로. 정신없더라. 건물들은 다 높고, 사람이랑 차도 많고. 우리 동네는 안 그러니까. 오죽하면 나 처음 지하철 탈 때 카드 대는 것도 무섭더라고.”

“정말?”

“응. 개찰구 앞에서 막 벌벌 떠는데 사람들이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거야.”

“체험학습은 어디로 갔는데?”

“국회의사당이랑 63빌딩 뭐 이런데? 오빠는 영등포 살았으니 잘 알겠네.”

“응. 집에서 바로 보이는 곳이니까. 그냥 의사당이랑 남의 회사 건물일 뿐이었지.”

“난 그것도 신기했으니까. 오히려 전에 봤던 불국사보다 63빌딩이 더 신기하게 느껴졌어.”


내 말이 재밌었는지 오빠가 웃으며 내 머릴 쓰다듬어준다. 조금 민망하고 부끄러웠지만 뭐 그래도 그의 손길은 언제나 좋다.

잠시 벤치에 앉은 우린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 나 중학교 몇 학년 때더라. 아무튼 그 때 사생대회라고 그림을 그리는 행사가 있었거든. 그걸 경복궁에서 하기로 한 거야. 그런데 우리학교가 뭐만 하면 학생들 보고 알아서 찾아오라고 하거든. 하긴 차를 대절하면 비용이 더 커지니까. 그런데 내가 은근히 길을 잘 못 찾아. 그래서 친한 친구인 재훈이한테 나랑 같이 가자고 했거든.”

“그래서?”

“그런데 이 재훈이 놈이 만날 늦는데 대장이거든. 오죽하면 넌 죽는 것도 늦어서 100살 넘게 사 거라고 할 정도니까. 역시나 이 날도 만날 시간이 지났는데 감감 무소식인거야. 난 늦을 것 같아 걱정 되서 죽겠는데.”

“하긴. 오빠가 은근 성격이 급한 면이 있지.”

“그 때는 핸드폰도 없을 때라 연락도 안 되고. 그래서 애라 모르겠다하고 나 먼저 출발했어. 혼자서.”

“길 잃으면 어쩌려고?”

“늦을 수는 없었으니까. 그런데 운 좋게도 중간에 국사선생님을 만났지. 지하철역에서. 완전 기뻤어. 국사선생이니까 경복궁 찾는 건 떡먹기겠네 했으니까.”

“응? 경복궁역에서 경복궁 거의 바로지 않아?”

“내 기억에 그 때는 좀 떨어져 있던 것 같아. 5호선 타고 갔으니까. 아무튼 난 생각지도 못하는 문제에 봉착하고 말았지.”

“무슨 문제?”

“그 선생님이 경복궁을 못 찾는 거야. 완전 대박. 요리사가 밥을 못 하는 거 같은 그런 충격이었어.”

“뭐야 그 선생님.”

“그 선생님도 엄청 당황하더라.”

“헤엄 못 치는 물고기네. 그런데 그 재훈이란 사람도 궁금하다.”

“내 친구는 왜?”

“그냥 오빠 친구니까. 오빠 친구도 보고 싶어. 나 소개시켜줘.”


정확히는 사랑하는 사람이 날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소개시켜주는 것이 보고 싶었다. 그런 자리 기분 좋은 긴장이 들 것 같았다. 그 뿐 아니라 주변인에게도 나란 사람의 존재를 알리는 행위이니까.


“그래. 언제 한 번 같이 만나자.”

“나도 오빠한테 내 친구 소개시켜줄게.”

“친구 별로 없다고 하지 않았어?”

“서울에 두 명 있어. 대학 때 친구가 없었지. 고향친구들은 있지.”

“다 서울에 있나봐?”

“아무래도. 일을 하려면 전주보단 서울이 자리가 많으니까.”

“그래. 언제 한 번 소개시켜줘.”


친구들에게 알리고 싶다. 이런 좋은 사람이 내 곁에 있다고. 나 가는 길 외롭지 않을 거라고.

그런데 뭐라고 친구들에게 말하지? 머릿속이 복잡하다. 부모님에게도 말해야하는데.

오빠와 있다 보면 이런 고민 안하게 되다보니 자꾸만 잊게 된다. 언젠가는 넘어야 할 산인데 그 산을 오를 엄두가 안 난다. 채비를 갖추고 마음먹는 것조차 힘들다. 오빠가 함께 해주면 좀 더 수월할까?


“저기 봐. 뭐 하나보다.”


손을 잡고 걸어 나오는데 교대식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되어 수문장이 교대를 하는 그런 것인 것 같았다.


“서울 살면 이런 건 좋아. 은근히 문화생활이나 문화체험하기 좋은 거 말이야.”

“아무래도 그런 게 있지. 시간이랑 돈만 있으면 서울만 한 곳도 없으니까.”

“저 사람들도 고생 많네. 남들 놀 때 서있어야 되잖아.”

“공익으로 알고 있어.”

“정말? 어찌 보면 저것도 나름 보람 있겠다. 의미도 있고.”

“그렇지. 한국을 알리는데 이바지하는 사람들이니.”


오빠와 함께 걷는 길은 늘 생소함을 가져다준다. 나도 서울에 올라와 산지 몇 년. 놀러 다닌 일은 없지만 제법 많은 곳을 걸어 다녔다.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생소함만이 느껴진다.

사람들이 바삐 걷는다. 시간을 확인하고 휴대폰을 확인한다. 손에 든 서류가방 안에는 무게 보다 무거운 짐이 들어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어깨엔 보이지 않는 짐이, 마음엔 잴 수 없는 돌덩이가. 발목엔 보이지 않는 손이.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떨쳐버린 듯 후련하고 편안하다. 바삐 돌아가는 세상 속에 우리 둘만 멈춰있는 기분. 마치 영화나 CF속의 한 장면처럼. 이것은 관조(觀照).


“나 또 해보고 싶은 거 생겼어.”

“우리 아기 뭐 해보고 싶은데?”


날 돌아보는 오빠의 얼굴을 잡아 당겨 키스한다. 짧지 않은 성인의 입맞춤.

이곳은 횡단보도 위. 많은 이들이 우리를 쳐다보며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난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롭다. 세상이 만든 기준은 이제 나완 안녕이다.

이것이 나의 의지이며 기준이다. 오롯이 내 마음이 그에게 향한다고 세상을 향해 선언한다.

오늘부터 이것이 나의 사랑이다.


작가의말

글을 쓰면서 옆동네 팬팍란에 연재되는 ‘나는 흑마다’라는 작품과 제 글을 자꾸 비교하게 됩니다.

기술적인 면을 떠나서 먹먹하고 가슴아린 분위기를 잘 연출하시고 장면에 감성을 담을 줄 아시더군요. 전 와우에서 레이드하는 장면과 케릭터가 폴짝거리며 뛰는 장면이 그렇게 슬픈줄은 처음 알았을 정도니까요. 윤아의 비밀번호도 그렇고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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