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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 님의 서재입니다.

내일도 해가 뜰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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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부정
작품등록일 :
2013.08.31 22:56
최근연재일 :
2013.09.17 22:29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14,889
추천수 :
277
글자수 :
128,429

작성
13.09.08 20:01
조회
339
추천
9
글자
10쪽

D-14

DUMMY

[세영의 이야기]


우리는 11시가 넘어서야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숙취와 격정으로 인해 컨디션이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아기야. 일어나. 12시 전에 나가야 해.”

“웅. 조금 더 자고 싶은데.”

“지금 씻어야 시간 맞춰 나가지.”


손으로 그녀의 등을 쓸어주자 고양이 같은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켰다. 잠시 뒤척이던 그녀는 이내 부끄러웠는지 이불을 애벌레처럼 돌돌 말며 침대 위를 뒹굴었다.

포식자를 피하는 애벌레처럼 처절하게 내 손을 밀어내는 그녀를 안아들고 겨우 씻겼다. 술기운이 없는 대낮이라 그런지 어젯밤 같은 그런 분위기는 없었다.

오히려 그녀가 자꾸 내 코에 물을 뿌려대는 통에 코만 매웠다. 덕분에 복수하느라 화장실이 온통 물바다가 되었지만 뭐……. 이럴 땐 도망만이 살길이다. 그래도 뭐 세면대가 떨어졌다거나 하진 않잖아?

장난을 치느라 시간이 너무 흘러 급히 나와야 하는 통에 머리를 제대로 말릴 수 없었다. 그래서 태연이의 머리엔 아직 물기가 머금어져 있었다.

얼굴을 살짝 숙이고 나오는데 마침 맞은편 카페에 앉아있는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놀란 듯 얼굴을 확 돌렸다.

그 여자의 행동을 태연이도 봤는지 얼굴이 살짝 붉어진다.


“어젯밤보다 더 민망하다. 막 대낮에 나오려니까. 심지어 카페도 바로 있어. 완전 통유리.”

“그러게. 우리 아기 머리 젖어서 나오는 거 보고 다 알겠다.”


내 말에 놀란 태연이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고 울상이 된다.


“머리 다 말리고 나올 걸. 진짜 이상하게 보겠다.”

“에헴. 그럼 내 사람 인증인 건가?”

“뭐야 그게. 하여튼 남자들은 이래.”

“죄송합니다. 아기님.”


어깨를 안고 볼을 꼬집자 태연이 귀엽게 나를 흘긴다. 이내 포기했다는 듯 편한 얼굴로 씩 웃는다.


“에라 모르겠다! 누가 나 알아볼 것도 아니고. 다시 볼 것도 아닌데.”


그러더니 내 엉덩이를 마구 두들긴다.


“뭐야.”

“뭐 어때 내 남자 엉덩인데.”

“역시 변태연.”

“뭐!”


마구 쫓아오는 태연을 피해보려 했지만 좁은 길이라 쉽게 피하지 못하고 잡혀 등짝을 두드려 맞았다. 고사리 같은 손이 제법 맵다.

아이 같은 표정으로 날 한참 두드리던 그녀가 이내 지쳤는지 헥헥거린다.


“배고파.”


허기가 진 듯 배를 움켜쥐고 앓는 소리를 하는 그녀를 달래 택시를 탔다.


“근처에 순댓국집 많던데 어디까지 가는 거야?”

“신길역 있는데. 거기 진짜 맛있는데 있어. 이 동네 순댓국은 그냥 맹물 같단 말이야.”

“배고픈데.”

“이왕 참는 거 조금만 참자.”


젖은 그녀의 머리를 살짝 넘겨주며 그녀를 달랬다.

당산역과 신길역 사이는 가까워서 금세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우린 맞은편에 있는 순댓집으로 갔다.


“여기 되게 낡았다. 포스 있는데?”

“내용물도 실해.”


이곳의 보통 분식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순대가 아니다. 창자를 그대로 쓰는지 순대를 감싸고 있는 내장의 두께가 두껍고 안에도 단순히 당면을 넣은 것이 아닌 야채랑 뭐 그런 게 들어가 있다.


“잠시 굶은 보람 있는데?”


웃으며 밥을 먹는 태연의 모습이 복스럽다. 그녀의 수저 위에 깍두기를 얹어주자 무척이나 신나한다. 저렇게 복스러운 아이가 왜 일찍 가는 것인지. 하늘도 무심하시지. 가끔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신이 너무 아껴서 일찍 데려간다고 하던데. 항문으로 엿 먹는 소리하고 있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밥을 먹으며 무언가를 검색하던 태연이 날 보며 조심스럽게 말한다.


“오빠 점(占) 보는 거 싫어해?”

“점? 무당 이런 거?”

“응. 밥 먹고 뭐할까 싶어서 검색해보는데 이 근방에 용한 점쟁이가 있다는데 우리 점 보러 가 볼까?”

“엥? 웬 점이야? 뭐 보통 커플이라면 모르겠는데 우리는 좀 다르지 않아?”

“그냥. 신기하잖아. 재미로 보는 거지. 응? 우리 궁합 같은 것도 보자.”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쏘는 그녀를 차마 외면할 수 없어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뭐.”


남은 밥을 싹 비운 우린 떨린 마음을 안고 점집을 찾았다. 주택가에 있는 점집의 특성상 찾기가 쉽지 않았다. 더구나 이 간방은 오래된 연립이나 다세대 주택이 난립하고 있는 곳이라 더 그랬다. 어느 정도냐면 소방차도 못 들어올 정도다. 가운데 불이 나면 아마 다 탈 때 까지 기다려야할 지도.

스마트폰이 아니었다면 찾을 수 없을 위치에 있는 점집을 겨우 찾아낸 우린 긴장감에 침을 삼키며 문을 두드렸다.

그 안엔 접수인 같은 사람도 있었고 몇몇의 점을 보러 온 사람이 있었다. 정말 유명한가 보다.

차를 마시며 상당한 시간을 기다리자(지루했지만 특유의 무거운 분위기 때문에 우린 제대로 된 대화조차 할 수 없었다.) 우리 차례가 되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진한 화장을 한 중년의 여성이 상 앞에 앉아 우리를 보고 있었다. 매체에서 봄직한 특유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고, 눈빛 또한 강했다.


“뭐야. 커플이야? 왜 왔어? 무슨 문제라고. 둘이 알콩달콩 아주 깨가 쏟아지는구만.”


목소리와 기세에서 특유의 위압감이 흘러나왔지만 태연인 괜찮다는 듯이 적극적으로 다가섰다.


“저희 궁합 좀 봐주세요.”

“볼 것도 없어! 아주 찰떡궁합이네. 남자가 큰 사람이야. 네가 잘 잡아야해. 너도 속이 깊지만 아직 영글지 않아서 흔들려. 그럴 때 저 남자가 다 잡아줄 거야. 그러니 넌 저 남자만 믿어. 그러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니까.”

“생년월일 같은 것은 필요 없어요?”


그러자 무당의 얼굴에 노기가 서린다.


“내가 무슨 사주쟁이나 사기꾼인 줄 알아?”


서슬 퍼런 기세에 우린 위축이 되었다.


“그럼 뭐 조심해야 할 것은 없나요?”

“그럴 것도 없네. 운이 아주 틔었어. 백년해로 할 거야.”

“네? 백년해로요?”

“그래. 자식복도 많네. 넷은 낳겠어. 금슬이 좋으니 되는 대로 낳아 그냥.”


순간 당황했던 내 이성이 차갑게 돌아왔다. 백년해로에 자식복도 많다니. 우린 그럴 시간이 없는데.

그 때 무당이 갑자기 내게 말을 걸어 왔다.


“넌 부모 복이 없네. 혼자 살지? 양친 일찍 돌아가시고.”

“네.”

“아니지. 부모 복이 없다고 할 수 없지. 풍족하진 못했어도 화목하겐 살았잖아. 안 그래?”

“맞습니다.”

“그게 다 네 부모님 공덕이야. 그러니 항상 감사하며 살아.”


다시 태연일 돌아본다.


“넌 고생이 많았네. 그래도 가족은 화목하네. 그래서 그런가? 둘 다 잘 맞아. 서로 빛과 물이 되어 줄 거야. 그래도 금전운이 부족했네. 그거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을 거고. 생긴 것 보다 나이도 많은 것 같고.”

“맞아요.”

“이 남자 만나서 막혔던 운이 트였네. 그러니 이젠 못 먹던 것도 먹을 거고, 못 해본 것도 해볼 거야. 그러니 잘 잡아.”


그 외의 다른 여러 말들을 무당이 해주었다. 그가 말을 할 때 마다 머리가 더 복잡해진다.

태연이의 얼굴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운 그녀의 콧잔등엔 주름이 늘어났다.

방을 나와 복채를 계산하고, 근처의 찻집으로 들어왔다.


“오빠.”

“왜?”

“용하긴 용하더라. 사주나 뭐 이런 거 말도 안 했는데 알아서 척척 맞추잖아.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오빠 만나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내 것도 잘 맞추더라.”

“그런데 딱 하나만 못 맞췄어.”

“백년해로. 자식도 많다는 거.”

“맞아. 우리 미래.”


처음엔 그냥 입에 발린 말을 하는 사기꾼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생각은 점점 더 모호해져 갔다.

태고의 신비를 갖고 있는 무속신앙보다 MRI와 임상병리로 무장한 현대의학이 좀 더 정확하다. 아니 매우 더 정확하다.

혹시 몰라 우리 둘은 한 번 더 병원에 갔었다. 그 때 똑같은 진단명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러운 희망이 눈을 뜨려한다. 좋지 않다.


“오빠.”

“응?”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재미로 본 거잖아. 우리가 어디서든 잘 어울리고, 늘 함께 한다는 이야기 아니겠어? 그냥 그렇게 생각하자.”

“그래. 그러자.”


그녀가 웃으며 내 엉덩이를 토닥였다.


“이그. 우리 자기. 귀가 팔랑귀셨군요! 이거 조심해야지. 귀 얇은 남편 만나면 여자가 완전 고생한다는데.”

“응? 우리 아기 나 자기라고 애칭 부른 거야?”

“왜? 다시 오빠라 그럴까?”

“아니. 자기 좋다. 자기.”

“그래. 우리 자기.”

“그런데 아까 다른 말도 들은 것 같은데. 남편이라고?”

“그건 못 들은 걸로 해.”

“왜? 나 들은 것 같은데.”

“아냐. 착각이야.”


복숭아 같이 변한 얼굴을 흰 손으로 가리며 부끄러워하는 그녀의 모습에 마음이 편해진다. 두 팔을 벌려 그녀를 꼭 품에 안았다. 내 가슴에 귀를 기울인 채 심장소리를 듣는 그녀를 보니 기분이 좋다.


“아기야. 한 번만 더 불러주라.”

“자기야.”

“한 번만 더.”

“자기야.”


복잡한 생각은 머리에서 지우자. 오직 내가 원하는 것은 품에서 느껴지는 이 온기뿐이다.

손을 들린 목걸이를 바라봤다. 둘에게 좋을 거라며 권한 나무 조각 목걸이. 나무판엔 초서체처럼 보이는 한자가 흘리듯 써져있었고 반대편엔 익숙하지 않은 문양이 조각되어 있었다. 꼭 같이 생긴 두 개의 목걸이를 번갈아 보는데 태연이 하나를 가져가 자신의 목에 걸며 말한다.


“뭐 어쨌든 커플 목걸이네.”


나머지 하나를 내게 걸어주는 그녀.


“원래 이런 건 남자들이 해주는 거라던데.”

“커플 목걸이 치곤 특이하네.”

“우리가 원래 특이하잖아. 하나밖에 없는 사랑.”


하얀 목에 걸린 고동색 목걸이. 심플하지만 심란하기도.

내 맘속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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