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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타이탄의 파일럿

웹소설 > 자유연재 > SF, 전쟁·밀리터리

완결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20.01.05 19:21
최근연재일 :
2020.03.25 06:00
연재수 :
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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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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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글자수 :
28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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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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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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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4쪽

전령(3)

DUMMY

"후우우우우....."


워프 항해에 들어섰다는 것을 대여섯번이나 확인하고 나서야 내 긴장은 풀렸다. 그리고 그와 함께 내 다리에도 힘이 풀려. 나는 그 자리에서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대장! 괜찮습니까?"


블레이크의 장갑재를 떼어내던 크바치가 놀라 장갑재를 떨어트리고 나에게 달려왔다. 나는 크바치의 부축을 받아 다시 일어섰고. 카밀라 또한 내게 다가왔다.


"크바치. 바이올렛. 타이탄의 수리를 계속해라. 나는.... 조금 쉬어야겠다."


난 그렇게 말하며 카밀라와 같이 침실로 이동했다. 침실로 이동하는 도중에도 내 머릿속은 나와 펜타곤에게 달려들던 수백 기의 타이탄들로 가득 차 있었다.


대체 그들은 왜 이 무기를 원하고. 그렇게 기를 쓰면서까지 얻으려 하는 것일까. 길드장이 말한 것처럼 아직 천일전쟁 때의 과거를 잊지 못한 광신적인 테러집단인 것인가?


하지만 그렇다면 그냥 자기들이 만들지 어째서 굳이 가스트 재단을 습격해서 세상에 노출되는 것을 선택했을까.


퍼즐이 맞춰지지 않았다. 판은 넓은데. 퍼즐의 개수가 너무나도 적은 느낌이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가뜩이나 펜타곤의 통로도 피격당한 것 때문인지 곳곳이 일그러져 있고 전선과 배관들이 마구잡이로 튕겨나와져 있었다.


'내가 너무 오만했어. 고작 2대 1을 이겨놓고서는 기고만장해서...'


나는 아직 너무나도 미숙했다. 용병대장으로서 나의 의무는 대원들의 안전과 목숨을 안전하게 지켜내는 것. 괜히 적을 섬멸하겠답시고 지랄하다가 6명의 목숨을 전부 잃을 뻔했다.


그나마 펜타곤의 스펙이 괜찮았기에 망정이지. 내가 처음에 사려고 했던 수송선 정도의 스펙이었으면 워프 디스럽터까지 가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머리가 아파왔다. 타이탄들도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펜타곤의 손상도 심각한 상태. 이 상황에서 다시 한 번 적의 습격을 받는다면 그 때는 정말 이 용병대의 한 명 정도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워커.. 괜찮아?"


"나....난.. 괜찮아. 그냥... 혼자 있게 해줘."


나는 대장실 전용 침대에 누워서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아. 아직 나는 너무나도 약하다.


*


"우리 자치령을 얕보고 있던 건가?"


"....."


"어디 한 번 대답해 보시지. 설마 우리 자치령군이 너희 해적 놈들을 못 찾을거라 생각했나? 암흑지대에 숨으면 못 찾아낼 줄 알고?"


"...."


"흥. 침묵이 고귀함인줄 아는 머저리같으니. 끌어내라."


"예."


자치령 국군의 제 8 우주함대 사령관 모노리스 펜릴. 자치령의 개국공신 가문 중 하나인 모노리스 가문의 가주인 그는 언짢은 얼굴로 포박되어 있는 해적대장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발텐 부관."


"네 사령관 각하."


"이 사태를 어찌 생각하나?"


펜릴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옆에서 골똘히 생각에 몰두하고 있는 제레인트 발텐을 보았다. 아직은 앳되지만. 그렇기에 더욱 그라는 인재가 가치있는 것이었다.


'유년 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지? 뭐.. 유년 사관학교 수준이야 뻔하지만. 그래도 제레인트 가문의 장자니 기본적인 실력은 출중하다. 굳이 전선에 나가서 싸우는 게 아니더라도 전공을 세우는 것은 가능한 일이니까.'


그렇게 펜릴이 생각하고 있을 때. 펜릴은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소관이 생각했을 때. 아마 이 사태는 외국의 개입이 있을 것이라 사료됩니다."


"호오. 흥미로운 추측이군. 그 이유는?"


사실 외국의 개입이야 펜릴 사령관도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고작 해적 무리가 군용 장비인 워프 디스럽터를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 사실을 알자마자 10년 전 자료까지 뒤져가며 워프 디스럽터의 손망실을 조사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으니. 자연스레 외국의 개입설에 더 무게가 실렸다.


"워프 디스럽터 건이야 사령관 각하께서도 잘 아실테니 넘어가도록 하고. 가장 큰 이유는 이 장소에 있습니다."


"암흑지대 말인가?"


"아닙니다. 저는 워프 항로를 말하는 것입니다."


"워프 항로?"


기본적으로 워프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함선을 이동시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성계와 성계 사이의 드넓은 거리에서 소행성도 없고 파편도 없고 이상현상도 없는 일직선 상의 통로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무한한 우주에서도 그런 공간은 극히 한정되어 있었고. 그 중에서도 일직선상으로 뻥 뚫려있는 공간은 극히 희귀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대량의 함선 이동이 가능한 통로는 군용 항로로서 민간 이용과 정보 열람이 불허되어 있어. 대부분의 민간 함선들은 그보다 좁은 민간 워프 항로나. 각 성계에 배치되어 있는 하이퍼게이트를 이용하고는 했다.


"저들이 정말 평범한 해적이었다면. 가장 많은 상선들이 오가는 항로들을 선택하거나 아니면 가장 빠른 항로를 선택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저들은 어째서인지 가장 멀리. 가장 느린 항로에서 진을 치고 있었고. 비록 반파됐다고는 하나 상당한 규모의 소행성 기지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즉. 저 해적들이 정치적인 사주를 받았다?"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희나라도 타국의 해적들에게 사략 먼허를 발급한 후에 군 보급선이나 요인 수송을 방해하고 있잖습니까? 외국들도 같은 수법을 쓰지 않으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저들은 군용 통로에 있어야 하지 않나? 굳이 우리에게 토벌될 각오를 하고 민간 통로에 죽을 치고 있던 이유가 설명이 되지 않네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목표가 저희가 아니었던 거지요."


"..즉. 민간 함선을 목표로 했다?"


"민간 함선 중에서도 특정 함선을 고른 테러.. 즉. 상당한 정보력과 실행력을 가진 조직이 있다는 것입니다."


펜릴 사령관은 발텐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천일전쟁 이후 3국의 지배력이 닿지 못하는 성계에서는 아직도 군벌들과 해적단.그리고 사이비 종교단체가 난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지원을 해주겠다면서 접근하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기 때문에. 천일전쟁과 자치령 독립 전쟁이 끝난 후 현대의 전쟁은 대부분 그런 군벌 단체들을 이용한 대리전의 양상을 띄었다.


그 많은 군벌들 중에서 정보력이 뛰어난 군벌도 있을 터이니. 발텐이 말한 것은 거진 맞는 말이라 봐도 좋았다.


"좋은 지적이군 부관. 그렇다면 일단 본국에 보고하는 것이 좋겠어."


*


파지지직!


한 줄기 자줏빛 섬광이 우주의 암흑지대로부터 뻗어나왔다. 그리고 빛과 함께 나타난 오각형의 함선. 펜타곤이었다.


"대장님. 워프에 성공했습니다."


"수고했다. 카렌. 벨과 교대하도록."


"알겠습니다."


4일간의 기나긴 항해 끝에. 우리는 드디어 카스트랄레스 자치령의 수도 성계인 노이에란트에 도착했다.


고대 지구 시절 중부 유럽어로 '새로운 땅'을 뜻하는 이 성계는. 70년의 세월 동안 자치령의 중심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대장님. 자치령 외교부로부터 전문이 왔습니다."


"화면에 띄워."


메인 스크린에 말쑥한 정장 차림의 젊은 남자가 나타났다. 더티 블론드의 머리색을 가진 남자는 아무런 흔들림 없는 눈동자를 하고서 서서히 입을 열었다.


"본 영상은 녹음된 영상입니다."


... 뭘까. 마치 포르노를 볼 때 사이트 앰블럼이 나오는 듯한 이 느낌은.


"데이비드 용병대 대장 데이비드 워커 외 5명을 포함한 용병대의 신원은 현 시간부로 저희 외교부 사법 부대가 경호하도록 하겠습니다. 귀하께서는 큐브를 가지고 외교부 청사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지이이잉-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영상은 끝이 났다. 이 밑도 끝도 없는 간결함은 자치령의 그것.


쿠우우우웅!


"대장. 사법 부대가 왔습니다."


"회선 열어."


펜타곤에 옆으로 자치령 국군이 운용하던 구형 전선 3척이 따라붙었다. 구형이기는 하지만. 사법 부대가 운용하기에는 차고 넘치는 스펙이다.


"데이비드 워커님이 맞으십니까?"


회선을 열자 앳된 목소리 하나가 전해져왔다. 아마도 3척 중 한 척의 함장인 듯 했다.


"그렇습니다."


"현 시간부로 귀하의 신원을 보호하도록 하겠습니다. 따라오십시오. 외교부 청사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뭐랄까. 전함 3척의 호위를 받고 외교부 청사까지 이동하자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자신이 역사의 한 순간에 와 있는 기분이 바로 이런 것일까?


"저... 대장님."


"크바치냐. 뭐지?"


"저. 이번 일이 끝나면 노이에란트에 있는 국립 조병창에 갈 수 있을까요?"


"조병창? 국립 자치령 타이탄 조병창 말이냐?"


"네! 라스푸틴에도 자치령 조병창은 있었지만. 여기는 본사잖아요! 라스푸틴의 지사도 라스푸틴에서 가장 큰 업체였는데.. 수도 성계인 이곳에 있는 본사는 얼마나 웅장한 지 꼭 보고 싶습니다!"


"뭐.. 좋아. 요즘 고생하기도 했으니. 기왕 이렇게 된 거 노이에란트 구경이나 좀 하다 가자고."


딱히 내가 자치령인이라 그런 건 아니지만. 수도성인 노이에란트는 참으로 아름다운 별이다. 무려 사계절이 있는데다가 하늘에는 7개의 위성들이 웅장하게 떠 있었다. 유년 사관학교 시절 수학여행으로 한 번 와 본 적이 있기에 나는 이 별이 아름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구같이 유서깊은 별은 아니지만. 개척 초기 시절부터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행성 전역에 깔린 계획도시들은 아름다운 야경으로 유명했고. 15개의 테라포밍 타워들은 지금은 타워형 생태공원으로 개조되어 성층권부터 폭포수를 구경할 수 있었다.


자치령 300억 인구중 약 100억명이 노이에란트에. 그리고 또 100억명이 노이에란트 주위를 공전하는 7개의 위성에 살고 있다. 과히 자치령의 중심이자 황실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노이에란트. 자치령의 수도인 것이다.


*


내가 우려하던 일-습격이라던가 습격이라던가 습격이라던가-는 다행히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긴. 3척이나 되는 전함이 있고. 수천만명이 지키고 있는 이 노이에란트에서 어느 미친 놈이 습격을 하겠냐만은.


우리는 전함의 호위를 받은 채 안전하게 착륙했다.-전함은 크기 때문에 외교부 청사 위에서 둥둥 떠있어야 했지만 말이다- 펜타곤이 외교부 청사 앞에 착륙하자. 나는 다시금 내 다리에 있는 작은 가방에 큐브가 들어있는 걸 확인하고 사진을 찍었다.


"워커님. 가시죠."


"안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절 따라오시면 됩니다."


영화에서 본 것 같이 생긴 선글라스를 낀 검은 정장들이 우르르 몰려와 나를 경호했다. 카밀라도 나를 따라오려 했지만. 역시 선글라스 정장들이 카밀라를 막아섰다. 겨우 계집이 낄 자리가 아니라는 뜻이다.


위잉!


나와 정장들은 청사의 정문이 아닌 뒷문으로 들어갔다. 정문으로 들어가면 이목이 집중되어 경호가 어려워진다고 한다.


"워커님. 큐브는 가지고 계십니까?"


"네."


"잘 가지고 계십시오. 잃어버리면 안 되는 물건이니까요."


어투는 평범했지만 나보다 수십 cm는 큰 선글라스 정장에게 들으니 그 압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게다가 물건이 담고 있는 정보가 정보이니 만큼 나는 마른 침을 삼켜야 했다.


그렇게 혹시나 모를 미행을 따돌리기 위해 무려 3시간이나 외교부 청사를 빙빙 돈 나는 겨우 외교부 차관이 기다리고 있는 응접실로 이동할 수 있었다.


"허허.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자.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넉살 좋게 웃고 있는 외교부 차관이 나를 응접실의 화려한 의자에 앉혔다. 라스푸틴과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초라했지만. 그거야 라스푸틴이 워낙 넘사벽인 것이고. 이곳도 충분히 자치령의 위엄을 지구연방과 아틀라스 연합에게 내세울 수 있을만큼 화려했다.


"자. 큐브를 넘겨주시지요."


나는 말 없이 다리에 걸친 작은 가방에서 큐브를 꺼냈다. 루빅 큐브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정육면체가 응접실 탁자 중앙에 놓였다.


꾸욱.


차관이 그 큐브의 정 중앙에 그려진 원을 누르자. 큐브의 원에서 대인 속성 무기에 관한 정보들이 차례대로 나열되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이나 심각한 얼굴로 그것을 보고 있는 차관 덕에. 나도 덩달아 심각한 얼굴을 할 수밖에 없었다.


수십분이 지난 끝에 프로젝터가 끝나자. 차관은 큐브를 은빛 상자 속에 조심스레 넣고는 정장에게 말했다.


"황제 폐하께 가져다 드려야 할 물건이다."


난 그 말에 그만 신음을 내고야 말았다. 저 것이 중요한 물건인 줄은 알았지만 자그마치 황제 폐하께 진상될만한 물건이었다니!


"이거. 정말 큰일을 해주셨습니다. 보수는 제가 아랫것들을 시켜 가져다 드릴테니..."


"아니.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할 얘기가 있습니다."


"?"


나는 그 자리에서 저번에 있던 습격을 얘기했다. 얘기를 듣는 차관의 얼굴은 또 다시 실시간으로 일그러져갔다.


그는 머리를 부여잡고는 정장에게 말했다.


"이 분을 정중히 모셔다 드려라. 보수도 2배로 지급해드리고. 그리고 장관님께 연락을 해주게. 아무래도 보통 사건이 아닌 것 같아."


나는 그렇게 말하는 외교부 차관의 모습에 그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어보고야 말았다.


"저.. 이 물건이 그렇게 가치가 있는 겁니까?"


그러더니 차관은 비장한 얼굴로 또박또박 정확한 발음으로 나에게 대답해주었다.


"전쟁의 명분이 될 물건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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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통합군(1) +4 20.02.04 271 2 14쪽
15 의뢰 완료 20.02.03 263 2 14쪽
14 무력 개입(3) 20.01.24 258 3 14쪽
13 무력 개입(2) 20.01.23 259 3 14쪽
12 무력 개입(1) 20.01.22 284 3 14쪽
11 수도. 노이에란트 20.01.21 286 2 14쪽
» 전령(3) 20.01.20 293 5 14쪽
9 전령(2) 20.01.16 307 3 14쪽
8 전령(1) 20.01.15 329 3 14쪽
7 시설 경비(3) 20.01.14 358 3 14쪽
6 시설 경비(2) 20.01.13 360 4 14쪽
5 시설 경비(1) 20.01.10 405 4 14쪽
4 데이비드 용병대(2) 20.01.09 437 4 14쪽
3 데이비드 용병대(1) +1 20.01.08 476 4 14쪽
2 데이비드 워커(2) +3 20.01.07 539 6 14쪽
1 데이비드 워커(1) +6 20.01.06 896 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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