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셔터 누를때마다 인생샷이 쏟아져나옴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터븀
작품등록일 :
2024.07.18 17:15
최근연재일 :
2024.07.23 23:50
연재수 :
6 회
조회수 :
412
추천수 :
13
글자수 :
27,569

작성
24.07.18 17:18
조회
106
추천
3
글자
11쪽

사진작가는 아니고 찍새 (1)

DUMMY

셔터 누를때마다 인생샷이 나옴



내가 아마 셔터를 처음 눌러본 것은 초등학교 2학년때인가 그렇다.


당연하게도 스마트폰 따위 있을리가 만무한 시절.

폴더폰에 달린 카메라 라는 놈은 그냥 형체만 알아볼 수 있게 나오는 수준에,

디지털 카메라라는 놈도 꽤 값이 나가 집집마다 한 대 정도밖에 없을 시절.


엄마가 열 장정도 남은 필름이 아깝다고 일회용 카메라 들려준게 내 처음 출사였다.


‘온 관심이 다 나한테 쏠렸지.’


자기 찍어달라고 우르르 몰려드는 꼬맹이들을 보며 우쭐감이 생기는 것도 잠시.


그래서 결국 내가 누구를 찍었느냐?


뻔하지 뭐.


당시 좋아하던 여자애였는데.


- 나 예쁘게 찍어줘!


내앞에서 한번도 안 웃었던 애가 활짝 웃더라.


나중에 엄마가 사진관에서 현상인화해준 사진 건네주니 더 좋아죽더라.


‘트리거는 그거였구만.’


뭐 이제 와서는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였다.


“돌아가시죠 팀장님.”

“그래요.”


나는 실제로 사진가가 되었으니까.

셔터를 누르고, 다른 사람을 찍어주는 인간이 되었으니까.


“배터리는 미리 빼두고 충전기 물려놓고요 말 안해도 이제 잘 하시죠?”

“예.”


나는 곧바로 넓적한 기아 레이에 장비를 싣고, 운전석에 앉아 구닥다리 차키를 돌렸다.


백미러 뒤로 고급스런 삼성동 주택단지가 멀어지며, 갑갑하기 짝이없는 서울의 대로가 우리를 맞아준다.


“오전 촬영은 진짜 편했어. 실내에 빛깔이 따악 예쁘게 들어오잖아요.”

“채광이 좋아서 그런가요?”

“그쵸. 부잣집은 창이 널찍널찍해서 아무래도 맛이 달라 맛이.”


카메라에서 cf익스 카드를 뽑고 노트북으로 즉시 옮기기 시작하는 팀장님.


나는 대충 그걸 힐끗거리며 운전에 집중했다.


나름 업계에서 초대형으로 분류되는, 이은석 스튜디오에 입사한지 1년차.


이제 막 아슬아슬하게 막내 생활을 벗어나고 있는 참이다.


기재 옮기기, 옆에서 반사판 들고 돌아다니기 같은 잡일이 서서히 줄어들고, 서브카메라를 잡는 일이 많아졌다.


이 얼마나 감동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을까?


‘처음에는 완전 헬 직장인 줄 알았지.’


분명 구인공고에서 ‘포토그래퍼’라는 단어를 똑똑히 보고 지원했는데, 막상 삼개월이 지나기까지 카메라에는 손도 못 대게 하더라.


뭔 놈의 무거운 기재를 나한테만 다 떠맞기고 도와주지를 않더라.


‘탈주각 엄청 재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재기만 한’것이 나에게는 엄청난 호재로 돌아왔다.


‘근성 좀 있는데?’라며 서서히 나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그렇게 몸 쓰는 일을 시킨 이유가 있었다.


“유석씨, 요즘 일이 참 편하다 그쵸? 결혼식에, 돌잔치에, 허허.”

“그러게 말입니다. 하하.”


결혼식, 돌잔치.

쉬운 작업이 아닌 게 맞기는 맞다.


하지만 나는 이 회사가 다른 곳처럼 한 촬영분야만 전문적으로 파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산 한번 타야되는데.”

“다음에는 산 타는 일인가요?”

“좀 오래 타야 될거같은데.”


산을 탄다.


더럽고 거친 환경을, 민감한 카메라와 기재를 짊어지고서 오른다.

어려운 일을 가려 받지 않는다.


바로 이곳. 이은석 스튜디오는 그렇다.


그리고,


“대표님이 어제 초대형 하나 따왔어요. 대현차 신차.”

“···!”


초 거대기업조차 사람의 돈다발을 싸놓고 일을 맡기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이제 유석이도 슬슬 대형 프로젝트 맛좀 볼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

“···진짭니까?!”

“알잖아요. 일손 부족한거.”

“···.”


혹자들은 말한다.


사진 일을 시작할거면 그냥 대충 사업자 하나 내고 프리렌서로 시작하면 되지 않느냐고.


다만 이 업계를 아는 사람은 안다.


그래서는 돌잔치, 개인스냅을 벗어나는 일을 받기 힘들다고.


‘··· 이왕 할거면, 끝까지 가보고 싶어.’


내가 사진 시작하겠다고 마음 먹었을 당시에 했던 결심이었다.


사진은 누구나 찍을 수 있으니,

그 어떤 누구도 찍을 수 없는 사진을 남겨야 ‘사진작가’라고 불릴 수 있지 않겠는가.


그를 위해서라면 업계 그 어떤 사람에게라도 인정받는 위치에 올라야 했다.


“저번에 사장님이 로우파일로 색감샘플 모집했잖아요? 그거 반응이 괜찮더라고.”

“···! 진짭니까?”

“오프로드라던데, 각오해요.”

“옙!”


나와 팀장님은 신사동에 있는 스튜디오로 돌아갔다.


은화 스튜디오는 중대형 상가 2,3층을 통째로 빌려쓰고 있었는데, 2층은 촬영 스튜디오, 3층은 사무실이었다.


입지가 입지다 보니 웬만한 중소기업은 꿈도 못 꾸는 월세가 나갈텐데, 사장은 별 끄떡이 없어 보였다.


그야 그럴것이,


“셀렉 3시까지 하고, 프리셋 4번 베이스로 알아서 색감 잡아놓으면 돼요.”

“넵!”


포토 파트 영상 파트 합쳐 직원만 50명.

외주 인력까지 합치면 움직일 수 있는 인력이 80명에 달한다.


한국에서 이정도 규모의 사진, 영상을 포괄하는 회사는 아주 적다.


뭐랄까, 처음에는 개좆소블랙기업으로 오해를 했지만, 알면 알수록 대단한 곳인 걸 알게된달까.


월급은 이 업계가 그렇듯이 짜지만 서도 열심히 해서 팀장급으로 올라가면 나름 굶어 죽을 걱정은 없을 것 같고.


“좋아.”


나는 내 자리로 돌아가 일을 시작했다.


외장 ssd를 컴퓨터에 연결하고, 라이트룸을 켜고,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흐음 ···”


많이들 오해하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사진사가 사진만 띡 찍으면 끝나는 줄 안다는 것이다.


당연히 아니다.


촬영은 사실상 ‘전반’작업.

대부분의 시간을 날려먹는 것에는 색을 조정하고, 얼굴을 보정하는 ‘후반’작업이다.


‘타임슬립하는 기분이지.’


연사로 드르륵 갈겨놓은 사진을 하나씩 빠르게 넘기면서, 눈감은 사진, 흔들린 사진, 표정이 괴랄한 사진을 모두 걸러낸다.


B급을 추리고, 그중에서 A급을 추리고,


A급에 색을 입히고.


솔직히 그냥 개노가다라고 본다.


특히 이렇게 ‘색’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잡혀있는 대형 스튜디오의 경우에는 더더욱.


“아. 어디 카메라 회사에서 스노우 필터 안넣어주나. 쩝.”


모니터를 들여다본지 2시간.


옆에 있는 3년차 선배가 중얼거리자, 나는 드디어 밥 때가 됐다는 것을 알게됐다.


“삼성이 카메라 사업 안접었으면 벌써 나오지 않았을까요.”

“삼성이 안접었으면 스노우랑 포토샵이랑 라이트룸이랑 카메라에서 다 돌아간다. 낄낄.”


길다란 머리카락을 손바닥으로 마구 비비며 쭈욱 기지개를 켜는 김현지 주임.


나는 같이 기지개 켜는 것을 따라하다가, 같이 밥이나 먹으러 갔다.


출장이니 스튜디오 촬영이니 직원들 밥시간이 제작각이라, 개별행동을 하는 것은 이 업계에서 자연스러웠다.


언제나 가는 곳은 회사 앞의 순대국집.


김현지 주임은 오늘도 내 순대국에 깍두기 국물을 드리부었다.


쪼르르륵-


“아 안 돼!”

“맛있다니까.”


개시발!


쌍욕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초인적인 평정심을 유지한 채 간신히 참아냈고,


용서할 수없이 시큼한 국밥국물을 입에 쑤셔박았다.


“크흠.”

“맛있지?”

“···.”

“그래, 얌전히 선배말 들으니까 얼마나 좋아.”


콧노래를 부르며 국밥 한 술을 크게 뜨는 여인의 정수리가마에 쇠숟가락 을 꽂아넣고 싶었지만, 나는 참았다.

사회인이기 때문에.


“아, 유석씨 그거 들었나? 대현차.”


식고문을 하는 것 빼고는, 실제 김현지 주임은 나름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까.


“아까 팀장님한테 들었어요. 대형 프로젝트라던데···.”

“아하. 유석씨도 이번에 참가하나?”

“넵. 저번에 대표님께서 색감 샘플 모집하셨는데 제거 보고 반응이 좋으시대요!”


나름 피와 살이 되는 팁들을 많이 전수해주시는, 바람직한 선배님이니까.


다만 뭐랄까.


그녀의 표정은 오늘따라 밝지가 않았다.


“유석씨는 그, 프라이드가 강한 편이야? 뭔가 자기만의 색에 대한 고집이 있다던가, 애정이 크다던가.”

“사진가라면 다 있는거 아닌가요?”

“그렇구나.”


이 양반은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는걸까.


사진은 빛으로 그리는 그림이다.

다만, 그림과는 다르게 실제로 ‘그리는 법’을 달리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사진에 있어서 ‘색감’이란, 자신만의 개성을 나타낼 수 있는 사실상 가장 큰 수단이었다.


“그렇구나. 너무 마음 상하지는 마.”

“··· 네?”

“그냥 그렇다고.”

“아니 왜···.”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더 물어봐도 김주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 오후가 되었다.


이곳 스튜디오의 대표, 이은석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네 시 즈음이었다.


“이번 대현차 프로젝트 참가인원 호명합니다. 박석준 팀장님, 이창석 대리님, 임재율 사원님 그리고 또···.”


내 이름은 거의 마지막에 호명되었는데, 솔직한 감상으로 ‘날아갈 것’같았다.


평범한 사진가라면 발을 담가볼수도 없는 초대형 프로젝트에 껴준다는데,


지금 입이 째지지 않으면 언제 째질까?


“자, 저번에 색감샘플 모집한거 아주 잘 받았습니다. 눈에 띄게 색을 잘 표현하신 분들이 많이 보였어요. 특히 ··· 유석씨?”


대한민국 상업사진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은석 사진가가 내 이름을 저렇게 불러주는데, 기뻐하지 않고서 배길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네, 넵!”

“노력 많이하셨네요.”

“예! 하루에 네 시간씩 자면서 톤을 잡았습니다!”

“우리 스튜디오가 추구하는 방향과 결이 다르긴 하지만, 독특한 초록표현이 눈에 띄네요. 좋은 색을 좋다고 하지 뭐라 의견을 덧붙이겠어요? 자, 모두 수고하신 유석씨에게 박수!”


짝짝짝짝짝짝짝짝짝


스튜디오 전체가 쩌렁쩌렁하게 울릴 정도로 박수소리가 울려퍼진다.


근데 뭐랄까,


좀찜찜하네.


“이걸로 우리 ‘이은석 스튜디오’의 유니크한 색깔이 하나 더 늘겁니다. 여러분이 자랑스럽습니다.”


내가만든 색은 과연, ‘나’에게 돌아오는 것일까?


애초에 이 스튜디오의 이름은 ‘이은석’ 스튜디오아닌가.


“여러분의 색을 ‘참고’할수 있어서 기쁘네요.”


내가 뼈를깎아 만든 색감은 나만의 것이 아닌,


그냥 대표가 하는 ‘보정본’의 제물이 되는 것뿐이 아닐까?



- 너무 실망하지는 마.



아주 갑작스럽게, 선배의 조언이 뼈에 사무쳤다.



동시에,



띠링-!


- 당신은 사진가 이은석의 취향을 만족시켰습니다. -


이은석 : 초록이 강조되는 빛바랜 느낌을 좋아함.


당신의 명예 : +0

이은석의 명예 : +0.1


당신의 보상 : 평소에는 못 먹을 식사.




뭔가,


눈앞에 이상한 글자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오랜만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셔터 누를때마다 인생샷이 쏟아져나옴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사진물은 안될것같습니다 ... 24.07.29 30 0 -
6 대타 (2) +2 24.07.23 43 2 9쪽
5 대타 (1) +1 24.07.22 60 1 10쪽
4 능력 개화 +1 24.07.21 64 3 11쪽
3 사진작가는 아니고 찍새 (3) +2 24.07.20 64 2 11쪽
2 사진작가는 아니고 찍새 (2) +3 24.07.19 74 2 10쪽
» 사진작가는 아니고 찍새 (1) +4 24.07.18 107 3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