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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브러쉬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캘리그래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feelbrush
작품등록일 :
2021.06.21 16:06
최근연재일 :
2021.07.10 18:57
연재수 :
63 회
조회수 :
2,931
추천수 :
7
글자수 :
373,867

작성
21.06.3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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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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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29) 시험 - 캘리그래퍼 서우(書優)

DUMMY

나는 아이의 옆에 앉았다.


“형아! 이거!”

아이는 바닥에 있던 크레파스 하나를 나에게 건넸다.

아이를 보며 웃으며 말했다.

“그래, 고마워.”

“난 여기서 그릴래. 형아는 저쪽에서 그려!”


손에 든 크레파스를 바라보았다.

“크레파스라.”


사각. 사각.

어느새 아이는 다시 벽에 그리기 시작했다.

아니 벽에 글자를 적고 있었다.

건네받은 크레파스를 손에 쥔 채 아이가 그리고 있는 벽을 바라보았다.


“가족.”

벽에는 크게 가족이라는 글자를 쓰고 있었다.

쓰고 있는 글자 주위로는 다양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풀들 사이로 나비와 고양이가 있고, 물가에는 거북이가 헤엄치고 있었다.


다른 한쪽 벽에는

벽에는 그려진 그림에는 엄마와 아빠로 보이는 두 사람 사이에 손잡고 있는 아이가 그려져 있었다.

그려진 사람 아래에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아빠, 엄마, 진호.


나는 옆에 있는 아이를 다시 바라보았다.

네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쪼그마한 체구.

벽에 그림을 그리는 모습.

낯이 익은 얼굴.


‘아! 이 아이는!’

어릴 적 나였다.


‘대체, 왜?’

아이는 집중해서 즐거운 듯 벽에 글자를 쓰고 있었다.

나는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어릴 적 내가 있던 방이었다.


부모님이 바쁘셔서 안 계시면 홀로 방안에서 온 벽에 낙서를 자주했다.

그리고 부모님은 벽에 덧대어 놓은 종이를 버리곤 새로운 종이로 교체해놓곤 하셨다.


나는 다시 아이가 낙서를 하고 있던 벽을 바라보았다.


아이의 글씨체로 쓰인 글자가 보였다.

손으로 천천히 따라 읽었다.


“기역. 디귿. 사랑. 희망. 글자, 친구······.”

어릴 적 아련한 추억에 빠진 듯 희미한 미소가 나도 모르게 퍼졌다.


‘어릴 때 이렇게 글자를 그리면 무척 행복했었지.’

벽을 따라 아이가 적은 낙서를 따라 읽던 순간 내 시선은 한곳에 멈추었다.


분명 아이가 쓴 글씨체인데 내용은 전혀 아이가 쓴 내용이 아니었다.


글은 무엇인가?


쓴다는 건 무엇인가?


그린다는 건 무엇인가?


캘리그래피는 무엇인가?


크레파스로 삐뚤하게 쓰인 글의 내용은 분명 사무실 컴퓨터 화면에서 보았던 내용이었다.


“이것인 건가. 선명의 시험이란 것이.”

나는 고개를 돌려 열심히 벽에 글자를 쓰고 있는 어린 시절의 나를 바라보았다.


어릴 적 나는 글자들이 내 가족이었고 내 친구였다.


‘내가 그린 글자들을 보며 마치 글자들이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아!’

부모님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시던 어느 날 벽에 한가득 적힌 내 낙서를 보고 왜 이렇게 그리냐고 물어 봤을 때 대답했었다.


내손에 쥐어진 크레파스를 들고 질문이 적혀진 벽에 대었다.

그리고 진중하게 답을 적어내기 시작했다.


벽에 적힌 첫 번째 질문은 보았다.

- 글은 무엇인가?


나는 손에 쥔 크레파스로 [나] 라고 적었다.


‘글은 나의 생각, 나의 의지를 나타내는 또 다른 나’

내가 가지고 있는 나의 의지, 사상, 생각, 자아가 곧 글이었다.


쿠르릉.

첫 번째 질문에 답을 적고나자 방안이 슬쩍 흔들렸다.


벽에 적혀진 질문의 대답을 하는 것이 이방을 나가는 열쇠였다.


흔들림에도 개의치 않고 두 번째 질문을 읽었다.

- 쓴다는 건 무엇인가?

두 번째 질문에 나는 크레파스를 쥐고 [글을 구체화하는 것]이라고 적었다.


나의 생각은 형태가 없는 무형의 의지.

내 자아를 글로 쓰는 것으로 구체화해서 단단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이다.


쩍.

쩌 억.

두 번째 답을 벽에 적자 주변에 흔들림과 함께 금이 가며 갈라졌다.

내가 벽에 적힌 질문의 답을 하나씩 써 내려갈 때마다 공간이 부서지는 듯 했다.


나는 아래 세 번째 문제를 읽었다.

- 그린다는 건 무엇인가?

세 번째 질문에 나는 크레파스를 쥐고 벽에 [나의 의지를 강력하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적었다.


나의 보이지 않는 의지를 보이는 모습으로 구체화 시키고 구체화된 글에 의지를 불어 넣는 것.


나의 의지를 더욱 강하게 주장하는 힘이 되는 것 그것이 그리는 것이다.

획의 두께, 획의 굵기, 글자의 크기를 그려내어 더욱 나의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다.

세 번째 질문까지 답을 적어 나가자 내 손에 쥐고 있던 크레파스는 붓으로 바뀌어있었다.


그리고 주변에 갈라진 틈에서 조금씩 부서져가기 시작했다.


나의 시선은 마지막 질문에 멈추었다.

- 캘리그래피는 무엇인가?

‘이것이 마지막 질문.’

붓을 쥐고 벽에 답을 적으려는 순간 손을 멈추었다.


‘캘리그래피라······.’

주마등처럼 나의 인생을 과거부터 되돌아보았다.


과거 어린 시절 나의 놀이이자 즐거움.

성인이 된 후 나의 천직이 된 캘리그래피.

지금 다른 세상에 와서 세상을 구하는 힘.


내가 하고 싶은 말. 나의 생각. 나의 의지 이 모든 것이 글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해 내는 것 그것이 내 행복이고 내 전부이다.


멈추었던 손을 움직여 나의 답을 적었다.


[캘리그래피는 곧 나 자신이다.]


콰지직.

벽에 금이 간 틈으로 빛이 새어 나왔다.

벽들은 큰 소음과 함께 곧 부서졌다.

아이는 아직도 앉아서 무너지는 벽에 그리고 있었다.

고작 과거의 기억을 재현한 공간이라도 눈앞의 아이를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위험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아이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답을 찾았구나. 형아!”

아이는 몹시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파아앗!

순식간에 덮쳐오는 빛에 눈을 감았다.


“으윽!”

눈을 뜨자 처음에 있었던 사방이 하얀 공간이었다.

그리고 눈앞에 문이 있었다.


‘다시, 새로운 시험인건가?’


나는 눈앞에 있는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끼이익.

문을 열자 제일 먼저 눈에 보이는 건 숲이었다.


‘여기는 어디지?’

주변을 둘러보며 숲길을 걷자 멀리 집이 보였다.

발걸음을 집을 향해 걸어갔다.


문 앞에 도착해도 안에서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안에는 사람이 없는 건가?’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문은 저절로 반쯤 열렸다.


‘음, 일단 들어오라는 건가?’


스윽.

문을 밀어서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실례합니다. 누구 안 계세요?”

집안에 누구하나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넓은 마당은 연못과 과수들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잘 꾸며진 마당을 지나자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긴 복도가 보였다. 복도를 지나 방하나가 보였다.


‘이 넓은 집에 방이 하나라니.’


아무리 봐도 수상한 집이었다.

‘이곳도 선명을 받기위한 시험의 장소이겠지?’


시험에 대한 고민을 하며 걷자 금새 방문 앞에 도착했다.

문 너머 방안에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뭐가 있든 꼭 시험을 통과하겠어.’


드르륵.

심호흡을 하고 방문을 열었다.

천천히 방안으로 들어가자 먹향이 코끝을 스쳤다.

생각보다 방안의 공간은 몹시 넓었고, 안은 서재처럼 꾸며져 있었다.


주변에는 책장과 서책들을 지나쳐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신선들이 입는 복색을 한 채 붓을 들고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말 걸기 어려운 분위기에 가볍게 인기척을 냈다.


“흐음.”


일부러 낸 나의 인기척에도 무관심하게 종이위에 무언가를 적던 그는 다 적었는지 붓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어!”

나는 놀라 몸을 굳은 채 그대로 서 있었다.

그는 나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미래의 너야.”

나를 향해 웃으며 그는 말했다.


“무. 무슨!”

당황스러움에 그를 바라보자 미래의 나는 다시 말했다.

“나는 이진호. 화우다.”

나와 같은 얼굴 그는 미래의 나였다.


“네가 아니 내가 화우라구?”

얼떨떨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맞아. 넌 시험을 통과했고 이건 구슬의 힘으로 너의 미래를 잠시 이어놓은 거야. 너에게 선명을 말해줘야 하니까.”

나는 그의 말에 몹시 당황스러웠다.


“그럼 시험은 통과한 건가?”


미래의 나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시험은 끝났어. 들어온 문으로 도로 나가면 화우로써 선명을 받게 될 거야. 앞으로 우를 잘 부탁해.”

미래의 이진호는 나에게 축하한다는 듯이 웃었다.


“그래. 시험이 끝났구나.”


나는 뒤돌아 문을 향해 걸어갔다.

‘내 선명이 화우였구나.’


그런데 무언가 위화감이 들었다.

선명을 받아들이기에 무척 이상했다.


「본인 스스로가 ‘나는 화우다’라는 느낌이 들어요?」

문득 창우누나가 나에게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그런데 내가 화우라고?

나는······.


멈칫.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나는·······아니다.

“나는 화우가 아니야!”


아직 내 시험은 끝나지 않았다.

나는 미래의 나를 향해 다시 걸어갔다.


“넌! 누구지? 난 화우가 아니야!”


웃고 있던 그의 얼굴이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변의 공간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쩍!

쩌어억!

내가 있던 공간은 깨어졌다.

그리고 사방에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쳤다.


“으윽!”

옷소매로 눈을 가리고 한참을 버티자 세찬 바람은 점차 잔잔해졌다.

바람이 멈추었을 때 눈을 가리던 소매를 내렸다.

책상에 사람이 앉아있었다.


‘또 나인가?’

아니야. 저 사람은!

책상에 앉아 있던 사람의 얼굴이 바뀌었다.


그는 우였다.


망우의 기억 속에서 혹은 우와 금의 조각에서 보았던 우였다.

이 세계를 창조한 선인.


- 이리 와서 앉아라.

그의 손짓에 나는 맞은편에 앉았다.


- 시험은 끝났다.

“그럼 제 선명을 받을 수 있는 건가요?”

나는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 캘리그래피라. 이계에서 와서 사용하는 단어도 독특하구나.

그는 신기한 듯 눈을 감으며 단어를 몇 번이고 중얼 거렸다.

감았던 눈을 뜨고 그는 나를 바라보았다.

- 우에 정해져 있는 자리는 창우, 기우, 준우, 능우, 화우 다섯뿐이지. 그것이 균형이 무너지지 않고 세계를 버티게 해줄 수 있는 법칙이네.

“······.”

나는 그가 더 말해주기를 기다렸다.


- 그래서 화우가 만들고 사라지지 않는 기운 모두 자연으로 되돌렸지. 새로운 화우의 자리를 내렸지만 자네는 그 선명을 거부했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죠? 금천이 아니게 되는 건가요?”


우는 잠시 아무말도 없이 진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 우의 금천으로 영원히 머무를 의지는 있는가? 아직도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은가?

“이곳에 좋은 분들이 많다는 건 알아요. 이곳에서 가족과 같은 인연도 생겼고요. 하지만 제 뿌리가 어디인지는 잊지 않았습니다.”


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자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겠네. 진짜 화우를 계승할 이를 찾아 주게.

“그러면 그 일이 끝나면 돌아갈 수 있는 건가요?”


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 새로운 화우를 찾을 때까지 그동안 화우의 기둥은 없애겠네. 그 자리를 대신할 새로운 기둥을 만들겠네. 그대의 선명은 새로이 내려 새로운 기둥으로 세우겠다.

“감사합니다.”


- 글을 그리는 자. 그대의 선명은 서우(書優)라 한다.

“서우(書優)!”


내 마음에 무언가 큰 울림처럼 다가 왔다.


나는 서우입니다.

캘리그래퍼 서우(書優)!


눈부신 빛이 터지고 깜깜한 암흑이 덮쳐졌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침대위에 누워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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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3) 혼돈 – 부상과 시공간분리 21.07.01 38 0 12쪽
32 (32) 혼돈 - 진의 부름 21.07.01 39 0 13쪽
31 (31) 변화 - 구호 요청 21.06.30 42 0 13쪽
30 (30) 휴식 - 새로운 지령 21.06.30 39 0 12쪽
» (29) 시험 - 캘리그래퍼 서우(書優) 21.06.30 39 0 11쪽
28 (28) 시험 - 선명(仙名)찾기 21.06.29 39 0 13쪽
27 (27) 시험 – 망우들 (하) 21.06.29 39 0 17쪽
26 (26) 시험 - 망우들(중) 21.06.29 38 0 15쪽
25 (25) 시험 - 망우들(상) 21.06.28 36 0 13쪽
24 (24) 인연 – 우(優)와 화우(畵優) 21.06.28 36 0 14쪽
23 (23) 인연 - 우(優)의 구슬 21.06.28 37 0 15쪽
22 (22) 인연 - 우(優)의 금천들(하) 21.06.27 41 0 16쪽
21 (21) 인연 - 우(優)의 금천들(상) 21.06.27 39 0 15쪽
20 (20) 도착 - 청금산(靑金山) 21.06.27 41 0 16쪽
19 (19) 도착 - 청금강(靑金江) 21.06.26 45 0 15쪽
18 (18) 만남 - 무환(無幻), 그리고 새로운 환(幻) 21.06.26 43 0 15쪽
17 (17) 만남 – 형님? 동생! 21.06.26 44 0 15쪽
16 (16) 만남 - 진의 조각 21.06.25 41 0 16쪽
15 (15) 만남 - 법진, 무진, 집진 21.06.25 43 0 15쪽
14 (14) 만남 - 현지산(玄地山) 21.06.25 43 0 16쪽
13 (13) 만남 - 이호와 삼접 21.06.24 44 0 15쪽
12 (12) 만남 - 가족 21.06.24 46 0 15쪽
11 (11)만남 - 진의 금천, 기진(技眞) 21.06.24 46 0 15쪽
10 (10) 만남 - 진의 금천, 의진(醫眞) 21.06.23 50 0 16쪽
9 (9) 만남 - 현천산(玄天山) 21.06.23 47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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