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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좋은 날 어느 노천카페

파이퍼 : 귀신잡이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카페로열
작품등록일 :
2013.01.22 00:54
최근연재일 :
2014.05.23 22:55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37,190
추천수 :
703
글자수 :
104,931

작성
14.05.09 18:39
조회
975
추천
15
글자
8쪽

24화. 솔로몬의 헥사그램

DUMMY

평소에도 인적이 드문 곳이다.

등산로에서 한참 벗어난 지역이기도 했고, 너무 가팔라 동물들도 쉽사리 지나다니지 못하는 곳이었다. 그 덕분에 각종 관목과 작은 나무들이 얽히고설켜 우거졌다.

위로 더 올라가서 돌아가면 좀 더 편할 길이다. 그러나 치훈과 유리아나는 정면으로 그것들을 뚫고 달렸다.

가파른 내리막길 아래 세연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위험해!”


유리아나가 외쳤다.

세연 뒤쪽으로, 달빛을 혼자 독차지한 것 같은 텐구가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고 있었다.

세연을 쫓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그녀가 놈의 동선에 있는 것인가.

의문은 금방 해결되었다. 텐구 뒤쪽으로 수 명의 인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제야 세연이 고개를 들어 뒤를 살폈다. 딴생각을 하며 걷고 있었던 것이다.

거리는 30m.

25m.

20m.

급속도로 둘 사이의 간격이 가까워졌다.

그때였다.

갑자기 일대의 대기가 불안정하게 뒤틀렸다. 마치 고기압에 주변의 공기가 빨려 들어가고, 지진에 지반이 요동치는 것 같았다.

숲 곳곳에 몽우리 져 있던 작은 사념체들은 그대로 터져버렸고, 산 깊숙이 숨어있던 귀물들은 산불을 피해 도망가듯 구덕산을 벗어났다.

그런 현상이 일어난 이유는 간단했다. 여기저기서 동시에 발동된 각종 술법들이 충돌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유리아나, 최군, 오송희, 구카이 등이 저마다 술법을 시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치훈도 다르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다급히 도망치는 세연의 모습과 맹렬히 뒤를 쫓듯 달려오는 텐구의 모습이 맺혔다.


“천세의 술(術)......”


그의 입에서는 뜻 모를 술어(術語)가 숨죽여 흘러나왔다.


째깍째깍-손목에 채워진 시계의 바늘이 느려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멈춰버렸다. 불던 바람은 얼었고, 흔들리던 나뭇가지는 굳었다.

시간을 싹둑 잘라 그 단면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그 단면에 새겨져 있는 영상은 다음과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게 멈춘 것은 아니었다.

치훈의 입.

그의 입만은 유일하게 움직이며 예의 그 술어를 계속해서 쏟아냈다. 그리고 마지막 모음을 끝으로 그의 입이 닫히고, 시곗바늘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건......”


최군이 시전 하려던 술법을 멈췄다.

그는 텐구 바로 근처까지 당도해 있었다. 그랬기에 누구보다 더 정확하게 그것을 목격했다.

하늘이 열렸다.

시커먼 하늘 중앙에 구멍이 뚫리고 그곳으로 빛이 내려와 땅에 닿았다. 그리고 그 빛 기둥은 텐구를 집어삼켰다.

폭풍처럼 질주하던 놈이 돌 턱에 걸린 것처럼 땅바닥에 고꾸라졌다.

놈을 둘러싼 강한 빛에 안쪽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최군은 몇 발자국 더 다가갔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쓰러졌던 텐구가 막 일어나던 참이었다.

놈이 괴성을 지르며 처절히 울었다. 일그러진 얼굴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거칠게 머리를 흔들었다.

무엇이 그렇게 고통스러운가.

최군의 시선이 빛 기둥을 따라 하늘로 향했다.

그리고 그는 보았다.

빛 기둥을 따라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존재의 모습을…….

그 존재는 일순간 텐구의 몸체를 관통하고는 다시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


“맙소사......”


상황은 그렇게 끝나버렸다.

꺼진 횃불의 불티처럼 빛 기둥은 아스라이 사라졌다. 열렸던 하늘이 닫히고, 남은 건 시커멓게 타버린 텐구의 사체뿐이었다.


“헥사그램......”


최군이 멍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는 하늘이 닫히기 바로 직전 희미하게 빛나던 술법의 흔적을 알아보았다.

그것은 솔로몬왕의 육망성이었다.

하늘에 닿는 지혜로 결국 하늘의 진을 읽어버린 유일한 인간, 솔로몬.

그가 남긴 헥사그램은 훗날 수많은 영술사들에 의해서 계량되고 발전해 지금껏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조금 전 하늘에 나타났던 헥사그램은 솔로몬의 원형 그것이었다. 교육을 받으며 각종 주술서에서나 보았던 바로 그 술법이었다.

최군이 다급하게 주위를 살폈다.

그의 시선은 아직까지도 상황 파악이 안 된 왓처들과 오송희는 그냥 스쳐 지났고, 저기 앞쪽에 주저앉아 있는 차세연도 지나쳤다.

그의 눈이 언덕 위쪽에 멈췄다.

손전등 빛이 언뜻 스치고, 흐릿하게 몇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그중 넷이 비탈길을 타고 아래로 내려왔다. 그들 중 선두에 선 이는 펍 로열 소속의 유리아나였다.


* * *


“디에르고상에게 허락 받았으므리다.”

“알게 뭐야. 그리고 여기 책임자는 나야. 마담이 직접 오지 않는 이상 이곳은 내 소관이라고.”


텐구의 사체를 앞에 두고 구카이와 오송희가 설전을 벌였다.

오송희는 지금 상태 그대로 펍 까지 이송할 계획이었는데, 구카이가 그 앞을 가로막았다. 자신들이 잠시 놈을 살펴볼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거기까지는 송희도 모른 척 고개를 돌려주려 했다. 그러나 그들이 꺼내든 도구가 그녀의 뒷머리를 잡아끌었다.

끝이 뾰족한 말뚝 6개, 날이 얇아 낭창낭창 휘는 연검 두 자루, 큰 사발과 피 냄새가 흘러나오는 물통 그리고 벼루와 붓 등이었다.

한눈에 봐도 그들이 그냥 살피는 게 아니라 무슨 의식을 행하려고 하는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잡은 요괴에 다른 나라 영술사들이 침을 바르게 둘 수는 없었다.


“아, 최군!”


구카이가 최군을 발견하고는 도움을 바라는 눈으로 그를 불렀다. 오송희와는 안면식이 없었지만, 뒤늦게 지원군으로 합류했던 최군과는 펍에서 서로 인사를 한 사이였다.

그러나 최군은 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지나쳐갔다.


“곤란하므니다......”

“우리가 고생한 게 얼만데, 뒤늦게 와서 빨대를 꽂아? 헛소리 말라고. 물러서. 어이, 음양사 거기 손대지 마!”

“오노카나(어리석은)!”

“뭐? 이런......”


음양사의 말을 들은 송희가 발끈했다.

일본어를 전혀 배운 적 없는 그녀였지만, 부산에 살면서 약간의 일본어는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고노마마데하야바이(이대로 두면 위험해)!”

“헛소리 마!”


누가 봐도 이미 죽은 사체다.

위험하다고 해 봤자, 아직 흩어지지 않는 귀기나 사념 정도였는데, 저렇게 홀라당 다 탈 정도면 그것들도 이미 모두 소멸했을 가능성이 컸다.

실제로 왓처들이 귀측기로 주변을 재고 있지만, 딱히 위험한 수준의 수치는 나오지 않고 있었다.

상황이 생각대로 되지 않자, 망설이던 구카이가 소리죽여 입을 열었다.


“조또……. 혹시라도 제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디에르고상이 이 말을 전하라고......”


그가 좀 더 송희 가까이 다가가 귓속말을 건넸다. 얼굴을 가까이 대고 대화를 하는 게 불편했던 송희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다 곧 눈을 크게 뜨고는 자신이 더욱 그의 입으로 귀를 가까이했다.


“그게 사실인가요?”

“그러하므니다.”


잠시 입술을 베어 물고 미간을 찌푸린 송휘가 결국 왓처들에게 물러나라 손짓했다.


“십분 드리죠. 그 안에 끝내세요.”

“알겠스므니다.”


구카이가 환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감사를 표했다.

대화가 잘 통한 것을 눈치 챈 히로마사와 이타코가 자신들의 도구를 챙겨 들고 텐구의 사체 옆에 가서 섰다.

잠시 후, 구카이가 텐구 주위에 말뚝을 박고 은줄로 말뚝을 연결했다. 히로마사는 놈의 머리맡에 앉아서 사발에 핏물을 가득 채우고 벼루와 종이 그리고 붓을 들었다. 이타코는 연검 두 자루를 손에 쥐고 아래로 늘어트렸다.

그녀가 겉옷을 벗자, 하쿠이(白衣)라는 상의와 히바카마(緋袴)라는 붉은색 하의가 드러났다. 소매에는 소데쿠쿠리(袖括)라고 불리는 붉은색 띠가 박음질 되었고, 그녀의 발에는 어느새 짚으로 만든 조리(草履)가 신겨져 있었다.

챙-

히로마사가 사발의 끝 부분을 작은 쇠막대기로 두드렸다.


“하지메떼미요우까(시작해 볼까)?”


그가 말했다.

그러자, 긴 머리를 내려트린 이타코가 안개처럼 허공에 흩어지는 달빛의 빛무리 속을 걷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사실, 이타코는 2부의 히로인 이기도 합니다.

글이 중도에 엎어지지 않으면 일본편을 생각하고 있기도 하거든요. 일단 한국편을 잘 마무리 지어야 되겠지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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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91 파유예
    작성일
    14.05.09 21:37
    No. 1

    잘 보았습니다. 텐구를 한 방에 제압해서 살짝 놀랐습니다. 과연 주인공은 어떤 역경을 지나쳐 왔길래 저런 힘을 가질 수 있었는지 점점 흥미로워지는 것 같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카페로열
    작성일
    14.05.09 21:52
    No. 2

    감사합니다.^^
    사실 저 기술은 후유증이 대단합니다. 스포가 될 내용이라 말씀 드리지는 못하지만, 저 기술 자체가 애초에 인간세상에 사용하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도....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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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7화. 세연의 자격정지 14.05.23 885 18 7쪽
26 26화. 스폰 14.05.18 1,127 32 8쪽
25 25화. 태태평요성(太太平妖聲) 14.05.16 1,011 17 6쪽
» 24화. 솔로몬의 헥사그램 +2 14.05.09 975 15 8쪽
23 23화. 불문율(不文律) 14.05.08 1,381 18 8쪽
22 22화. 잘 모르겠스므니다. 14.05.06 1,340 19 6쪽
21 21화. 펍 로열 +3 14.05.02 968 19 11쪽
20 20화. what? 14.05.02 991 22 7쪽
19 19화. 유리아나와 차세연 +2 14.05.01 1,015 22 9쪽
18 18화. 각자의 선택 14.04.30 1,344 22 11쪽
17 17화. 구힌 텐구 14.04.29 1,234 20 9쪽
16 16화. 파해도식(破解圖式) +3 14.04.28 1,033 22 6쪽
15 15화. 제길! 똥 밟았어. +1 14.04.28 1,218 19 8쪽
14 14화. 노괴와 도혜진 +1 14.04.28 1,835 37 12쪽
13 13화. 풍기는 냄새 +1 14.04.28 1,199 22 9쪽
12 12화. 제한그룹 +2 14.04.28 1,227 24 9쪽
11 11화. 까짓거 죽기밖에 더해? +2 14.04.28 1,448 26 9쪽
10 10화. 요괴(妖怪) +2 14.04.28 1,256 24 11쪽
9 9화. 앙굴마라경(央掘魔羅經) +2 14.04.28 1,627 38 8쪽
8 8화. 설악산 메아리굴 +2 14.04.28 1,255 25 10쪽
7 7화. 우리 좋은 팀인것 같죠? +2 14.04.28 1,514 27 8쪽
6 6화. 구속결계와 디텍팅(detecting) +2 14.04.28 1,520 32 12쪽
5 5화. 차세연 +3 14.04.28 1,405 34 12쪽
4 4화. 공노인(孔老人) +4 14.04.28 1,834 37 11쪽
3 3화. 귀전(鬼廛) +1 14.04.28 1,836 35 8쪽
2 2화. 귀문의 낮도깨비 +2 14.04.28 1,875 38 7쪽
1 1화. 외출 +4 14.04.28 2,463 39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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