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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퍼 : 귀신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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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로열
작품등록일 :
2013.01.22 00:54
최근연재일 :
2014.05.23 22:55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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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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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3
글자수 :
104,931

작성
14.04.28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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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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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글자
8쪽

9화. 앙굴마라경(央掘魔羅經)

DUMMY

치훈은 부산에서 출발하기 전, 구봉산 깊숙한 곳에 있는 승덕사(昇德寺)를 찾아갔었다.

승덕사는 현밀교(顯密敎)의 한 갈래였다. 현밀교는 초기 불교 내에서 성립되어 비전(秘傳)된 종파였는데, 그들은 불교의 일반적인 교리를 따르지 않았다. 산 자들을 위한 법문을 설파하지 않았다. 죽었으나 죽지 못한 자들, 살아있으나 이미 죽은 자들을 개도하고 처단하는 역할을 했다.

승덕사의 주지는 오성법사였다. 깨끗하게 밀어버린 머리와는 달리 턱에는 덥수룩한 털이 가득했고, 왼눈 가에는 길쭉한 칼자국까지 나 있었다.


“앙굴마라경(央掘魔羅經)이나 읊어 줄까?”

“뭐든, 효과 좋은 걸로 해주면 됩니다.”

“허허. 그놈 참.”


mp3 플레이어를 오성법사 턱 아래에 들이밀고 치훈이 재촉하자, 그가 턱수염을 쓱 만지면 목을 가다듬었다.


“아, 요즘 우보살(禹菩薩)이나 아라한(阿羅漢)이 한적해하는데, 어찌 데려가 보겠느냐?”

“사양하겠습니다. 그 사람들하고 거기 들어갈 거 생각하면 뒷목이 서늘해서 안 되겠습니다.”

“그놈들 그래 보여도 수양이 깊은데......”

“자, 어서.”


치훈의 재촉에 이번에는 정말로 그의 입에서 진중한 분위기의 경전이 흘러나왔다.


“......사위성에 한 브라만(婆羅門 :인도 특유의 신분 제도인 카스트의 네 가지 신분 중에서 가장 높은 위치인 승려 계급)이 있었는데, 그에게는 세간현(世間現)이라는 제자가 있었다. 어느 날 브라만이 집을 비우고 외출을 하자, 브라만의 아내는 음심이 발동하여 모든 예절을 잊어버리고 세간현 앞에 가까이 가서 옷을 잡았다. 그러나 세간현은 그것을 뿌리치고......(중략)......아내의 농간에 속은 브라만이 세간현에게 말하였다. ”너는 악한 사람이다. 높은 이를 욕보였으니 너는 지금부터 참다운 브라만이 아니다. 사람 천 명을 죽여야만 브라만이 될 수 있다. 사람을 죽일 때마다 손가락을 끊어 둥글게 엮어서 머리에 쓰고 돌아오너라.“ 이 말을 들은 세간현은 괴로웠지만, 스승의 가르침을 절대적으로 믿고는 상대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이고 손가락을 잘라 모았다. 사람들은 이 살인마를 "앙굴마라(央掘魔羅)" 라고 불렀다. 드디어 살인마 앙굴마라는 999명을 죽였다. 이제 한 사람만 더 죽이면 천 명을 채울 수 있어 눈을 부릅뜨고 사람들을 찾아 헤맸다. 그때 앙굴마라의 어머니는 아들이 배가 고플 것이라 생각하고 스스로 네 가지 맛있는 음식을 가지고 와서 주려고 하였다. 아들은 어머니를 보고, '우리 어머니를 천상에 나게 해야 겠다' 하고서, 칼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 어머니의 목숨을 끊으려고 했다. 그가 어머니를 죽이려고 하는 순간, 길 저편에 서 있는 부처님을 발견하고는 부처님을 향해 칼을 휘두르며 달려갔다......(중략)......그 때 부처님께서는 마치 거위 왕같이 침착하게 일곱 걸음씩 걸으시며 사자처럼 돌아보시면서 앙굴마라를 위하여 게송을 말씀하였다.

『거기 멈추어라, 앙굴마라여. 그대는 깨끗한 계행에 머무를지어다. 나는 바로 등정각(等正覺)인데 그대에게 지혜 칼의 세(稅)를 내리라. 나는 남이 없는[無生] 진리에 머무르고 있는데 그대는 그것을 모르는구나. 그대 앙굴마라여, 나는 바로 등정각이라네』"


* * *


경전 자체가 귀물을 쫓아내는 힘을 발휘하지는 않는다.

그것을 듣는 이들 스스로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단단히 해, 귀기의 침범을 막는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경전을 듣고 읊더라도 그 사람의 마음이 올바르지 않다면, 아무런 효능이 없다. 믿고 말고의 문제는 아니다. 그저 경전이 전해주는 것을 세이경청(洗耳傾聽)하고 거부하지 않고 내 안에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쿵-쿵-쿵-

오송법사의 목소리 사이사이에 북소리로 추임새를 넣듯, 치훈의 심장이 요란하게 뛰었다. 피가 온몸을 빠르게 돌고, 머리끝까지 열이 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씨발......”


툭 튀어나온 욕설에 그 스스로가 놀랐다. 마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것인 마냥, 그것은 낯설게 들렸다.

치훈이 mp3의 볼륨을 높이고 경전 속으로 최대한 빠져들려 노력했다. 사주경계(四周警戒) 절반의 비중을 차지하는 청력을 포기한 행동이었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대신 부릅뜬 눈으로 구석구석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썼다.

스윽-

가져온 커다란 손전등을 좀 더 깊숙한 곳에 비췄다. 뻗어 나가던 빛이 어느 지점에 도달하니, 어둠에 싸여 사그라졌다.

바스락-

밟히는 느낌에 마른 나뭇가지인가 싶어 내려다보니, 백골이었다. 누렇게 변색한 옷의 모양을 보면 요즘 사람은 아닌듯싶었다. 두개골 한쪽에는 구멍이 나 있었고, 그 옆에는 녹슨 망치 하나가 보였다. 스스로 머리통을 깨부쉈던 것으로 보였다.

‘뭐지?’

막 고갤 돌려 가려고 보니 그 백골 바로 옆 벽에 주먹만 한 균열이 보였다. 특이할 것 없는 평범한 구멍이 있지만, 치훈이 관심을 가진 것은 그 안에서 반짝이는 무엇이었다.

손전등을 균열 정면에서 비춰봐도 그 안쪽이 잘 보이지 않았다. 자기가 왜 그것에 이렇게 집착하는지 돌아볼 새도 없이 그는 그 구멍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좀 더 가까이, 더 가까이.

너무 어두워 오히려 광택이 나는, 그 균열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순간.

확ㅡ

뒤에서 누군가 뒷목 옷깃을 잡고 끌어당겼다.


* * *


카르르륵-

동굴 가장 깊숙한 곳.

상처 입은 짐승의 낮은 울음이 들리고, 시퍼런 빛 두 개가 어둠 한복판에 이글이글 타올랐다. 공기는 탁했다. 비릿하고 시큼한 냄새는 끈적한 질감마저 느끼게 했다.


“오랜만에, 바깥 냄새가, 맡아 져……."


먼지가 풀풀 날리는 듯한 거칠고 마른 목소리였다. 중간 중간 뚝뚝 끊기는 듯 어눌하기도 했고 또 음률의 높낮이가 없이 밋밋하기도 했다.

스르륵-

어둠 속 두 개의 이글거리는 푸른빛이 움직였다. 둘은 서로 멀어지거나 가까워 짐 없이 정확한 거리를 유지했다.


"김 서방, 인간……. 맛있는."


놈이 움직이자 주위에 귀기가 요동쳤다.

발을 내딛자, 쿵-소리와 함께 먼지가 날렸다. 그리고 등 뒤에 길쭉이 솟은 뭔가가 천장을 긁으며 콰르륵-돌 부스러기를 떨어뜨렸다.


* * *


아무도 없었다.

치훈은 돌아서며 내뻗은 나이프를 잠시 동안 그대로 들고 있었다. 그의 이마에선 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고, 나이프의 시퍼런 날에는 반사된 전등 빛이 깜빡깜빡 거렸다.

픽-

땅에 내동댕이쳐진 손전등이 기어코 꺼져버렸다. 고장이 난듯 했다. 곧, 빛 한 점 없는 어둠에 모든 것이 먹혀 버렸다.

챠르르르-

저 앞쪽이라 여겨지는 곳에서 뭔가 동굴 벽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시체 썩는 듯한 냄새와 함께 밀려드는 기묘한 기운에 온몸의 털이 모두 곤두섰다.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

일반적인 귀기와는 달랐다. 귀신에게서 느껴지는 그 서늘한 귀감과 귀수에게서 느껴지는 그 역한 냄새 그리고 찌르는 듯한 매서움 까지.

육감이 전하는 위험하다는 경고가 머릿속을 강타했다.

치훈이 가방 안에서 조심스레 캐미라이트(발광막대)를 꺼냈다.

빠깍-

그것의 중간을 꺾자, 형광이 순간 환하게 주위를 밝혔다. 그가 그것을 앞쪽으로 던졌다.

캐미라이트가 바닥에 두 번 튕겨 이십여 미터 전방에 떨어졌다.

저쪽 동굴 폭이 너무 좁은 것일까?

주위 어둠이 사라지지 않고 뚜렷한 경계를 만들며 캐미라이트의 빛을 차단했다. 치훈이 캐미라이트 하나를 더 꺼내기 위해 가방을 손을 가져갔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느낌에 동작을 멈췄다.

스윽-

고개를 돌려 다시 조금 전 던진 캐미라이트를 바라봤다. 시선을 올리니 위로 4m쯤 되는 곳에 푸른 실선 두 개가 보였다.

번뜩ㅡ

그 푸른빛이 갑자기 확 타올랐다.

‘도깨비불? 아니다. 저건 분명…….’

한 쌍의 푸른빛을 발하는 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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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화. 앙굴마라경(央掘魔羅經) +2 14.04.28 1,628 38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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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화. 구속결계와 디텍팅(detecting) +2 14.04.28 1,520 32 12쪽
5 5화. 차세연 +3 14.04.28 1,405 34 12쪽
4 4화. 공노인(孔老人) +4 14.04.28 1,834 37 11쪽
3 3화. 귀전(鬼廛) +1 14.04.28 1,836 3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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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화. 외출 +4 14.04.28 2,463 39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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