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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퍼 : 귀신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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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로열
작품등록일 :
2013.01.22 00:54
최근연재일 :
2014.05.23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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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4.28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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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화. 차세연

DUMMY

귀전에서 나온 치훈은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 쪽으로 향했다.

보수동 사거리에서 대청로를 따라 해안가로 향하면 바로 부산항이 보인다. 그곳 여객터미널 앞 주차장 근처를 보면, 컨테이너 창고가 쭉 늘어서 있는 곳이 있다. 그것 중 가장 왼쪽에 있는 주황색 컨테이너가 바로 치훈의 소유였다. 그 컨테이너 창고는 중개인에게 의뢰해서 얻은 것이었다. 비용은 3천만 원 가량 들었다.

끼릭-

커다란 열쇠로 문을 열자, 내부가 훤히 드러났다.

창고는 제법 넓었다. 한쪽 벽에는 온갖 종류의 도검류가 빼곡히 걸렸고, 구석에는 묘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나무상자들이 쌓여 있었다.

길쭉한 철재 선반 위에는 갖가지 기묘한 물건들이 어지럽게 올려져 있었다.

무엇보다 눈길이 가는 것은 중앙에 떡하니 자리한 ‘머스탱 쉘비 GT500KR’ 였다. 그것은 답답한 컨테이너 안에서도, 직선 사이에 숨어있는 곡선 특유의 멋스러움을 한껏 뽐냈다. 외형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는 근육질 남성의 마초적인 모습이었다.

크르릉-

차 키를 돌리자, 머스탱 특유의 거친 엔진음이 울렸다. 마치 수사자의 울음 같았다.


차를 몰고 치훈이 향한 곳은, 학장동 은하아파트가 있는 곳이었다.

대신동을 지나 구덕터널을 통과하면 좌측, 승학산자락 아래 아파트가 있었다. 그곳에 도착한 치훈은 한껏 흥분해 아직까지 그르렁대는 차를 진정시키고 아파트 부지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곧, 102동 앞 화단에 쳐져 있는 폴리스라인을 발견했다. 그 안쪽으로 검붉은 핏자국이 아직 뚜렷이 남아 있었다.

주위에 사람은 없었다.

저 멀리 분리수거함이 있는 곳에 할머니 한 분이 기웃거리며 폐지함을 뒤적였고, 오래된 아파트답게 경비원은 경비실 안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다.

주인 없는 개새끼 한 마리는 빨빨대며 돌아다녔고, 검은고양이 두 마리가 근처 화단 아래 자리를 잡고 엎드려 있었다.

정오를 막 지난 태양이 아파트 외벽을 강하게 때렸다.

사고가 난 그 장소에서 눈을 찌푸리며 문제의 아파트 위를 올려다보던 그가, 무언가 발견한 듯 한곳에 집중했다.

‘저건, 사람인데?’

옥상 난간 쪽으로 얼핏얼핏 드러나는 모습이 분명 형체가 뚜렷한 사람이었다.


첫 번째 고비가 될 거라 생각했던 출입문은 전자식 도어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쉽게 통과했다. 그러나 뜻밖에 고비가 바로 찾아왔다.


"제길......"


치훈은 ‘고장’이라는 글이 붙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잠시 망설이다, 결국 계단을 선택했다.

평소 담배를 즐기고, 뛰는 것 보다는 간단한 근력 운동으로 체격을 유지하던 그였다. 20대 초중반이야 누구보다 건강했지만, 30중반을 바라보는 지금에는 부질없는 과거였다.

10년 전 그 일이 있은 후 부터였을 것이다. 그 자신이 이렇게 체력관리에 나태해진 것이.......

그가 비오듯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마지막 13층 비상구 표시가 있는 층을 지나쳐 옥상으로 이어진 철제문 앞에 섰다.

철컥-

치훈은 옥상 문 손잡이를 잡고 잠시 숨을 고르다가 문을 열었다. 녹이 슨 이음매가 삐걱-소리를 내며 열리고, 강한 태양 빛이 정면에서 비춰들었다.


키는 160초반.

하얀 얼굴에 어깨에 살짝 닿는 단발머리.

십 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자아이.

보라색 무릎이 늘어진 츄리링에 커다란 뿔테안경.


난간 근처에 서서 그를 향해 돌아보는 표정이 놀람과 당황이 가득한 것을 비춰봤을 때, ‘이 아파트에 사는 아이가 담배 한대 피려고 옥상에 올라왔다.’ 정도로 정리가 되었다.

역시나 뒤로 감춘 손에서 희끗한 연기가 솔솔 피어올랐다.


“안녕, 학생.”


치훈이 녀석을 구슬리기 위해 다가갔다. 이대로 무턱대고 쫓아내면, 녀석이 홧김에 경비를 부를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담배 피우니?”

“네?......”


그가 별것 아니라는 듯 가볍게 툭 던진 말에 녀석이 콧등에 걸쳐진 안경을 치켜 올리며 반문했다. 치훈의 행색을 살피듯 아래위를 흘낏하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누구세요? 첨 보는 것 같은데......”

“아, 난, 저 301호. 나도 한 대 피려고 왔지.”


너무 위층을 선택하면, 혹시나 저 여자아이의 집일 가능성이 높았기에 그는 낮은 쪽 층수를 말했다. 여자아이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그런 그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담배 필거면 내려가지, 왜 여기까지 올라와요? 엘리베이터도 고장 났는데, 멍청하게......”


‘뭐, 멍청해?’

치훈은 조그만 녀석의 당돌한 말에 잠시 울컥함을 느끼긴 했으나, 중요한 일을 앞두고 이런 사소한 것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기가 싫었다.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운동도 좀 할 겸 해서 겸사겸사 올라왔지, 봐라. 전망도 좋고 이렇게 탁 트인 곳에서 한 대 피면 그 맛이 또 다르잖니?”

“뭐……. 그래요.”


이해했다는 듯,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된 거 정말 담배 한 대 피고 일을 해야겠다, 생각한 치훈이 담배를 꺼내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러나 재킷 주머니에 있어야 할 담배가 없었다.

차안에 두고 내린 것이 뒤늦게 떠올랐다.


“왜요, 없어요?”

“아, 그래. 깜빡하고 두고 나왔구나.”

“진짜 바보 같애.”


뭐가 그리도 웃긴지, 왼손으로 입까지 가리며 녀석이 큭큭 대었다. 그 와중에 녀석이 오른손에 들고 있는 담배가 슬쩍 보였다. 저런 조그만 녀석에게 얻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아주 잠시 고민을 하던 치훈이 그것을 보자마자 표정을 굳혔다.


“너. 그거. 어디서 난거지?”

“네?”


녀석도 그의 정색하는 표정을 보며 뭔가를 느꼈는지 웃음을 뚝 그쳤다.


“그 담배, 어디서 난 거냐고.”

“뭐, 편의점에서 샀겠죠?......”


치훈은 녀석의 모습에서 거짓말의 증거를 쉽게 잡아냈다.

마주 보지 못하고 다른 곳을 바라보는 눈동자, 살짝 깨무는 입술, 이미 알고 있는 담배를 굳이 다시 뒤로 숨기는 행동 등등이었다.


“너 뭐야, 펍 소속이야?”


치훈의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이번에는 녀석이 정색하는 얼굴이 되었다. 마른 침을 꼴깍 삼키고,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그, 그런데요……. 누구세요? 어떻게......”

“어이가 없군.”


치훈은 대답 없이 바로 행동했다.

녀석의 오른팔을 낚아채 끌어당겼다. 악-하는 비명이 들렸으나, 상관치 않았다. 녀석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분명 담배형태의 대 귀충용 아이템인 귀목연(鬼目煙)이었다.


“나이를 보면 아직 수습인 것 같은데, 여기가 어디라고 혼자 와있지? 펍에는 알린 건가, 아니 당연히 알리지 않았겠지.”

“저, 저기요......”


치훈이 몰아치듯 말하자, 녀석이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수습은 맞지만, 여긴 제가 사는 곳이고, 그리고 수습이긴 해도 곧 정식 파이퍼로 등록될 거기도 하고, 그리고……. 그리고, 전 충주 파이퍼교육원 수석수료 했단 말이에요!”


결국 녀석이 울음을 터트렸다. 글썽거리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입술 아래가 바들바들 떨렸다. 녀석의 손에 들린 귀목연은 어느새 끝까지 타버려 꽁초처럼 아랫부분만 남았다.

치훈이 잡고 있던 손을 놓아줬다. 빨갛게 자국이 생긴 손목을 만지며, 녀석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약간 머쓱한 표정으로 그런 녀석을 내려다보던 치훈이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교육원 수석이든, 정식파이퍼 등록을 앞두었든, 현재 수습이면 지켜야 할 규정이 있잖니. 굳이 그것을 어겨가며 이런 곳에 이렇게 와있는 건 옳지 못한 행동이야. 그렇지?”


그의 말에 녀석이 훌쩍이며 고갤 끄덕였다. 시선은 바닥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름이 뭐지?”

“세연이요. 차세연.”

“그래. 세연이 어디 펍 소속이지?”


치훈의 물음에, 세연의 떨리던 어깨가 굳었다.


“걱정 마. 굳이 펍에 알리지는 않을 테니까. 다만, 또 이런 일이 있을 경우에 바로잡아 주지 않으면 분명 사고가 생길 거야. 그러니......”

“하아. 좀 그냥 대충 넘어가 주시면 안 돼요?”


바닥으로 향해 있던 세연의 시선이 치훈에게 똑바로 향했다. 눈물 자국은 뚜렷이 남았는데, 어디서도 불안해하거나 잘못에 대한 반성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을 대하며 그동안 상대의 거짓말을 파악했던 그의 경험이 무색해졌다. 너무나 당돌한 세연의 거짓말에 그가 깜빡 속아 넘어갔던 것이다.

이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었던지, 치훈은 그저 헛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아저씨. 솔직하게 말 할게요. 저 실력 쌓고 싶어요.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그동안 틈틈이 귀충도 잡았어요. 틈귀(隙鬼)나 시각귀(視覺鬼) 같은 하급령도 몇 번이나 처리했고요. 그러니 어리바리한 다른 수습들 같은 취급은 안 해주셨으면 해요.”

“너 말이야. 여기 들러붙어 있는 것이 뭔지나 아는 거야?”


치훈이 손가락으로 난간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세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지박령이겠죠. 아아. 그렇게 무섭게 노려보지 말아요. 저도 지박령이 위험하다는 것 쯤은 안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냥 살펴보려고만 한 거예요. 그래서 디텍팅(detecting)도 하지 않고 그냥 귀목연만 피웠잖아요.”

“어떻게 확신하지?”

“뭘요?......”

“지박령이 널 보지 않는다는 것을, 귀목연이 놈을 자극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네가 안전할 거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하느냐는 말이다.”

“그, 그건 그냥......”

“다 그렇게 죽는 거야!”


치훈의 고함에 세연이 이번에는 정말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놀람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와 똑같이 그녀도 무서운 표정으로 소리를 내질렀다.


“누가 죽는 게 무섭데! 난 안 무서워. 하나도 안 무섭다고! 내가 잡을 거야, 지박령이고 귀신이고 간에 내가 싹 다 잡을 거라고!”


이전과는 다른, 진짜 눈물이 세연의 눈에서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녀가 진정하는데 반시간이 걸렸다.

울음을 터트린 그녀를 치훈은 굳이 달래려 하지 않았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자신이 그녀의 어떤 상처를 건드렸다고 생각했다. 무슨 상처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애써 달래고 상처를 만져주려 하다가는 덧날수도 있는 것이다.


“다 울었냐?”

“누가 울었데, 안 울었거든요.”

“뻔뻔하기는.”


세연이 입술을 삐죽 내밀고 눈을 흘겼다. 치훈은 그런 그녀를 지긋이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생각하던 것에 대한 결정을 내렸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너, 나랑 같이 잡자. 여기 붙어 있는 지박령.”

“무, 무슨?”

“이대로 쫓아내도, 또 어디 가서 위험한 짓거릴 해댈게 뻔 하니. 이참에 내가 좀 지도해 주겠다는 말이야. 왜, 싫어?”

“뭐, 싫다기 보다는……. 전 아저씨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남치훈이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지는 마. 내세울 만큼 유명한 사람도 아니니 아마 모를 거다.”


세연이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다가, 그의 말이 끝나자 눈을 찌푸렸다.


“그게 다예요? 그게 무슨 소개예요.”

“나이는 서른넷, 성별은 남자, 사는 곳은 중앙동, 좋아하는 건 귀신잡이, 더 필요해?”

“나이는 열여덟, 성별은 여자, 사는 곳은 여기, 좋아하는 건....... 귀신잡이! 그럼 딜(deal)?”

“그래. 딜이다.”


세연이 환히 웃었다.

치훈은 참 깨끗한 웃음이다, 그리 생각했다.


“그런데 아저씨. 제가 사는집이 301호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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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1화. 까짓거 죽기밖에 더해? +2 14.04.28 1,448 2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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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화. 앙굴마라경(央掘魔羅經) +2 14.04.28 1,627 38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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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화. 귀문의 낮도깨비 +2 14.04.28 1,875 38 7쪽
1 1화. 외출 +4 14.04.28 2,463 39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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