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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퍼 : 귀신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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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로열
작품등록일 :
2013.01.22 00:54
최근연재일 :
2014.05.23 22:55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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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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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3
글자수 :
104,931

작성
14.04.28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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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글자
11쪽

4화. 공노인(孔老人)

DUMMY

“깨우지 마.”


소녀가 말했다.

치훈은 반사적으로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는 ‘아차’ 하며 허전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무기가 없다면 손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이곳에 귀신이 나돌아 다니는 것이지?”


치훈은 소녀에게 물으면서 뒷걸음질 쳐 좀 더 거리를 벌렸다.

질문도 딱히 대답을 바라고 던진 것은 아니다. 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그는 지금 무척 당혹스러워 하는 중이었다.

같은 귀(鬼)자를 쓰긴 하나 도깨비와 귀신은 엄연히 다른 존재들이다.

그들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사고 판단이 가능한 도깨비와 귀신들은 서로 거리를 두는 정도지만, 뭇도깨비나 지박령같이 오직 본능과 한으로 움직이는 존재들은 서로 물고 뜯을 만큼 적대적이다. 귀전에서 이렇게 나돌아 다니는 귀신을 보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한 것이다.


“할배. 깨우지 마. 열흘 만에 첨 자는 거란 말이야.”

“할배? 공노인 말이더냐.”

“공노인? 몰라.”


귀신이 고갤 갸웃하더니 말을 이었다.


“여긴 망태기할배 집이야. 망태기할배가 주인이다.”


그리고는 건물 구석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은 것을 가리켰다.

공노인의 정체가 망태기도깨비였던가, 치훈은 처음 알게 된 사실에 놀라면서도 현재 상황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서 골몰했다.

둘이 서로 대치하는듯한 형상이 몇 분 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소녀가 갑자기 박수를 치더니 뭔가 생각이 났다는 표정을 지으며 두 손으로 탁자를 가리켰다.

이어, ‘어서 오세요.’ 라는 말을 덧붙였다.


* * *


커다란 원석을 다듬어 만든 탁자를 사이에 두고 귀신과 치훈이 마주 앉았다. 의자는 뿌리가 박혀 있는 나무 그루터기였다. 아무런 대화 없이 둘은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귀전에 귀신이라......’


치훈으로서는 귀신에게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귀충(鬼蟲)이나 귀수(鬼獸) 그리고 지박령같은 것들은 귀기를 사용하는데, 그것은 응집된 사념의 다른 형태라 볼 수 있었다. 오랜 시간 연구되어져, 결국 그것을 측정할 수 있는 수단이 만들어졌고 좀 더 쉽게 인간이 대항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귀신은 그보다 한 차원 높은 신기를 발현하는 존재였다. 일반적인 귀측기(鬼測器)로는 젤 수 없는 그런 막강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파이퍼에게는 가장 위험한 적이었고, 그 둘은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그런 사이였다.


“어험.”


그렇게 반시간 가량 지났을까. 구석에서 걸걸한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분명 공노인의 목소리였다.

스윽-

탁자로 다가온 그가 손을 휙휙 저었다.


“치......”


귀신이 뾰로통한 표정을 짓다가 스르륵 뒤로 미끄러지듯 물러나 사라졌다. 그때까지도 치훈은 귀신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형체가 모두 사라지고 서늘하게 느껴지는 귀감마저 더는 느껴지지 않게 되어서야, 그가 고갤 돌려 공노인을 바라봤다.

후줄근한 개량한복에 허연 턱수염을 길게 늘어트린 모습이었다.

단춧구멍 같은 두 눈은 작지만 매서웠다. 자글자글한 주름이 가득한 얼굴에선 꼬장꼬장함이 줄줄 흘러내렸다.


“절 만나자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여러, 달갑지 않은 상황의 연속이어서 치훈은 인사도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지치기도 했지만, 이곳에서 빨리 나가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있어보게. 자네 물건을 가져올 테니. 일이 우선 아니겠는가.”


쪽문으로 작업실로 들어간 공노인이 곧 치훈의 물건을 들고 나왔다. 탁자 위에 그것들을 늘어트렸다. 2급 귀측기, 귀기 흡착기, AI(attack incorporeal)나이프 두 자루, 리볼버 등이었다.


“자네 흡착기는 3000pul 이지만 너무 오래된 거라서 실제로는 2500pul 뿐이 안 된다네. 앞으로 그 점 유념하시게. 자칫 초과되어 폭발할 수 있으니. 그리고 나이프는 이번에 새로 나온 도료를 발라두었어. 효과는 만족할게야. 이 리볼버는 좀 조심히 다루게. 이젠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 없는 골동품인데, 이렇게 막 쓸 거면 차라리 비싼 값에 팔아버리고 다른 기기를 구입하는 게 더 낫다 싶네.”

“그럴 수는 없죠. 선물 받은 것인데. 아무튼 고생하셨습니다.”


치훈이 감사 인사와 함께 붉은색 작은 카드 하나를 같이 건넸다. 공노인이 탁자 아래에서 제법 묵직한 기계를 꺼내더니 치훈의 카드를 그곳에 넣었다.


“요즘 귀기 시세가 좀 올랐네. 자네 흡착기에 들었던 것이 2800pul이니, 1700귀전(鬼錢) 가량 쳐줌세. 수리비는 650귀전이네.”


숫자 패드를 눌러 ‘1050’을 입력하자, 삐비빅-소리를 내며 기계가 작동했다. 잠시 후, 액정 가장 아래쪽에 ‘2118’이라는 숫자가 표시되었다. 귀전화폐와 한국화폐는 1:1만의 비율이라서, 2118귀전은 2118만원에 해당했다.


“일전에 크게 다쳤다고 하던데……. 몸은 다 나았는가?”

“크게 다친 것은 아니고요. 벌레에게 종아리를 물렸습니다. 도망치는 귀수를 따라 폐사찰로 뛰어들었는데, 거기가 집음지(集陰地)더군요. 떼로 덤벼드니......”

“한손이 열손 못 당하는 법이지.”

“뭐, 못 당하지는 않았습니다. 거기에 몰려 있던 벌레들은 모조리 죽여, 흡착기에 담아 왔으니까요.”


치훈이 탁자 위에 빈 귀기흡착기를 들어, 이리저리 살폈다. 작은 책 크기의 네모난 상자형이었는데, 재질은 티타늄합금이었다. 겉면에 빽빽이 들어찬 온갖 도형과 무늬들이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풍겼다.

흡착기를 다시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그가 공노인의 눈을 바라봤다.


“이제 말씀 하시죠. 지금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게 바로 그것인 듯한데.”

“알았네. 그러지.”


공노인이 고갤 끄덕이다 말을 이었다.


“네, 자네에게 부탁할 것이 있네. 불편하다면 의뢰라고 해도 괜찮아.”

“저에게 의뢰라......”


귀전의 터줏대감으로 많은 파이퍼들과 인맥이 있을 그가, 겨우 두 번 정도 만남을 가진 자신에게 어려운 부탁을 하는 지금 상황을 치훈은 쉽게 납득하지 못했다.

자신도 모르게 표정을 찡그렸는지, 그를 바라보던 공노인의 말이 빨라졌다.


“이해하네. 너무 뜬금없을 것이야. 하지만 지금 부탁할 수 있는 가장 적격의 인물이 자네라서 그러네.”

“펍에 의뢰하시는 게 더 확실할 텐데요?”

“알지 않은가. 그들은 귀전을 멀리하네. 설령 일을 받는다 하더라도, 거기 애들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다네.”

“펍 소속 파이퍼들의 수준을 저보다 낮게 보시다니, 이거 영광입니다.”

“짜 맞춰진 프로그램대로 교육을 받고 돌발 상황마저 하나하나 배움으로 익히는 그들이야, 그런 건 제대로 된 실력이라 할 수 없지. 그건 자네도 잘 알지 않은가, 몸담았던 적이 있으니.”

“옛 일 까지 들춰내십니까?”

“미안하이.”


공노인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그러다 곧 손바닥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차, 내 정신 보게. 손님에게 술 한 잔 대접 안 하고 있었으니……. 잠시 있어보시게.”


뭐라 대꾸할 새도 없이 그가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AT나이프를 재킷안쪽에 넣고 나머진 등에 메고 온 통에 쏟아 부으며, 치훈은 조금 전 귀신을 다시 떠올렸다. 무기가 없을 때야 허둥대었다지만, 지금은 달랐다.

‘공노인에게 물어 봐야겠어.’

특별한 인연으로 묶여 있다면 그도 모른 척 넘어갈 것이다.

공노인 말마따나 펍소속 파이퍼들은 융통성이 없어서 그러한 것을 그냥 넘기지 못한다.

지금 이곳에 그들이 있다면, 공노인이 뭐라 하든 말든, 떼로 덤벼들어 귀신을 잡아내고야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일을 처리하는데, 가장 효과적이고 또 동료들의 안전을 최우선시할 수 있는 모범답안으로 볼 수도 있다.

문제라면 답안이 도출되지 않는 상황과 마주했을 땐, 위험에 적나라하게 노출 된다는 것이었다.

탁-

돌아온 공노인이 작은 항아리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뚜껑을 열자, 향긋한 냄새가 주위로 퍼져 나갔다. 그것은 도깨비들이 빚는다는 귀주(鬼酒)였다. ‘십년귀주는 천하에 이름을 알리고, 백년귀주는 천하에 향기를 퍼트린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쪽 세계에선 유명했다.


“백년이 넘은 것이네. 맛 한번 보시게.”


공노인이 조롱박으로 술을 퍼 올리자, 그 향기가 더욱 짙어 졌다. 그것은 마치 질감이 있는 것처럼, 진득하게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치훈은, 그것을 잔에 담아 내미는 공노인의 어색한 웃음을 보며 절로 고개를 흔들었다.

공노인의 부탁은 간단했다.

어떤 귀수를 처치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과거 공노인의 도깨비가족을 해쳤던 놈이라 했다. 누군가 설악산 메이라굴에서 등에 커다란 창을 꽂은 귀수를 보았다고 한다. 공노인의 말에 따르면 그 창은 자신의 것이었고 그 공격에도 놈은 죽지 않고 도주했다는 것이다. 그 후로 오랫동안 놈을 찾아 헤맸지만, 결국에는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동안 아마 죽었을 것이라 그리 여기며 살았는데, 이번에 놈의 꼬리를 잡은 것이다.

‘메이라굴이라......’

그곳은 치훈 역시 얼핏 들어본 적 있는 곳이다.

설악산 메아리굴은 정부 쪽 기관에서 직접 관리하는 주요 장소 중 하나였다. 과거 70~80년대까지만 해도 자주 입굴 허가가 나왔으나 요즘은 어렵다. 뚜렷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굴은 의지가 약한 이들의 이지(理智)를 상실하게 만든다. 동굴의 어둠에 광기가 녹아 있다는 말도 있었다. 때론 이지를 상실한 이들은 미친 듯 주위 동료를 공격했고, 종래에 자해를 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래서였군......’

공노인이 어째서 자신에게 일을 맡기려 하는지 치훈은 대충 짐작이 갔다.

이번 일을 펍에서 맡아 줄 리가 없었고, 세월이 만들어낸 인맥을 활용하기에 그곳은 너무 위험한 곳이었다. 팀을 짜서 들어갈 수 없으므로 철저히 혼자 해결해야 곳이기도 했다.

외로운 이리처럼 십여 년간 홀로 파이퍼 생활을 하고, 부산 지역에서 손에 꼽히는 실력에 설령 죽더라도 큰 손실로 느껴지지 않는 파이퍼인 자신이 공노인에게는 아주 적격이라 여겨졌을 것이다.


“당장은 안 되고, 십일 후 출발하겠습니다.”


치훈의 대답에 공노인이 환한 웃음을 보였다.


"그런데 조금 전 그 귀신은……."


치훈이 묻자, 공노인이 입술에 침을 발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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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4화. 노괴와 도혜진 +1 14.04.28 1,835 3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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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1화. 까짓거 죽기밖에 더해? +2 14.04.28 1,448 26 9쪽
10 10화. 요괴(妖怪) +2 14.04.28 1,256 24 11쪽
9 9화. 앙굴마라경(央掘魔羅經) +2 14.04.28 1,629 38 8쪽
8 8화. 설악산 메아리굴 +2 14.04.28 1,255 25 10쪽
7 7화. 우리 좋은 팀인것 같죠? +2 14.04.28 1,514 27 8쪽
6 6화. 구속결계와 디텍팅(detecting) +2 14.04.28 1,520 32 12쪽
5 5화. 차세연 +3 14.04.28 1,405 34 12쪽
» 4화. 공노인(孔老人) +4 14.04.28 1,835 37 11쪽
3 3화. 귀전(鬼廛) +1 14.04.28 1,836 35 8쪽
2 2화. 귀문의 낮도깨비 +2 14.04.28 1,875 38 7쪽
1 1화. 외출 +4 14.04.28 2,463 39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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