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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도로당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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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도로당
작품등록일 :
2019.12.26 00:08
최근연재일 :
2020.01.05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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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5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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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5화

DUMMY

5.


도로시 암페어는 유로도리아 태생의 이세계인였습니다(여기서는 편의상 이세계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만, 실제로 이세계인이라는 말을 언급하는 것은 대단히 차원-차별적인 언사로써 무례해 보일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겨드랑이께까지 내려오는 금발은 끝이 아주 살짝 말려있는 것을 제외하면 자기주장이 대단히 강하여 결코 곱슬거리는 일이 없었고 눈동자는 하늘이라도 삼킨 것처럼 푸르렀어요. 코는 어찌나 그렇게 선명한지 스펀지케이크 위를 화룡점정으로 장식한 생크림같았고 홍옥같은 입술을 묘사하기에는 지면의 여백이 모자라는 그런···. 아무튼 대단한 미인이었습니다.


바로 옆에 앉아있는 정수미의 자유분방한 분위기에 대비하면 도로시 암페어의 모습은 그야말로 전시장 속의 인형같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었습니다.


왜 이런 미인이 정수미의 ‘동료’로 함께 행동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과거 이야기를 해야할 것입니다. 도로시 암페어가 정수미를 만난 것은 약 5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때는 무더운 어느 여름날, 유로도리아의 깊고 깊은 깡촌 ‘서울’ 지방의 유서깊은 존폐위기대학 서울마법대학교에 재학중이던 도로시 암페어가, 자신의 중간고사 성적표를 받아든 채로 세상이 내일쯤 멸망하지 않으려나 바라고 있던 날이었습니다(이 지역의 이름이 마늘-차원에 존재하는 어느 공화국의 수도와 똑같은 이름인 것은 순전히 우연의 일치입니다).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었어요. 어렸을 적에는 자신을 마법 신동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 부모님을 포함한 일가친척 모두는 그녀가 손에서 조그만한 빛무리를 내뿜기만 해도 까무라칠것처럼 즐거워하며 그녀를 칭찬했었거든요.


그 지나치게 과도한 칭찬 리액션이 실은 ‘내 아이를 기죽지 않게 키우는 법 38가지’라는 책에 실린 교육전략 중 한가지일 뿐이며, 그녀의 객관적인 마법재능은 볼 것도 없이 형편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대학입시 시기가 임박했을 때였습니다.


여지껏 한껏 꾸며진 칭찬만 들어왔던 그녀의 마법재능이라는 것은 대학입시라는 벽에 부딪히자마자 먼지처럼 흩어졌습니다. 그녀는 기껏해야 평범한 마법사였던 거에요. 서울마법대학교에 합격한 것도 정말 간발의 차였습니다.


그리고 그 유서깊은 존페위기대학 서울마법대학교 안에서도, 도로시의 성적은 결코 높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저 그랬어요.


그녀는 우울한 감상에 젖은 채 뜰 구석 벤치에 앉아 손바닥에 무의식적으로 빛무리를 만들어내며 대체 어디서부터 뭐가 꼬인것일까 하며 고뇌했습니다. 손에서 빛무리를 만드는 것은 일종의 습관이었어요.


살면서 가장 처음 터득했던 마법이 바로 그 마법이었고, 어렸을 적 친척들에게 둘러쌓여 그들의 텅 빈 칭찬을 유도해 냈던 것도 바로 그 마법이었으며, 익숙해진 탓에 술을 마시지 않아도 너끈이 시전할 수 있게 된 것도 바로 그 마법이었습니다. 너무 자주 사용해서 자신의 감정이 표정보다도 더 쉽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그 마법이었지요.


그때 갑자기 도로시의 등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어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난생 처음보는 복식의 한 여성이 상당히 곤란해하는 얼굴로 무언가 말하고 있었습니다.


화염을 형상화한 것만 같은 독특한 붉은 무늬가 인상적인 상의에 빛이 바랜 것 같은 회청색 반바지를 입은 여자 아이였는데요, 그녀가 말하는 것은 단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겠는 것이, 아마 다른 차원에서 온 사람인 것 같았습니다.


“아, 어,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자동 번역 마법을 좀 써 볼테니.”


도로시 암페어는 재킷 안쪽에서 힙 플라스크를 꺼내서 안의 내용물을 들이켰습니다. 그러고는 그 이세계인으로 추정되는 소녀를 향해 주문을 외웠어요. 잠시 그녀의 손바닥 안에서 희미한 빛이 감돌았습니다. ‘번역의 마법’이 발동했습니다.


“다시 말씀해보세요. 무슨 일이시죠?”


“어, 아, 어. 방금 그거 뭐에요? 손에서 반짝반짝하던거.”


“어···. 이거요?”


“네, 와, 미쳤다. 뭐에요?”


“어···. 마법인데요···.”


“와, 마법이라고요? 쩐다! 대단해! 그거 어떻게 쓰는거에요?”


“어떻게 쓰느냐고 하시면 그건 복잡한데···.”


“와, 개대박, 너무 신기해. 방법 좀 가르쳐줘요!”


“아니, 저···. 저도 아직은 학생이라 가르치거나 하는건···.”


“공짜는 안 되는거에요? 과외비 드릴게요. 근데 나 지금 3만원 밖에 없는데···.”


“도, 도, 돈은 됐어요!”


“그럼 비밀이에요? 후엥.”


“아뇨, 꼭 그런건 아닌데···.”


“그럼 알려줘요! 나 이런 거 처음 봐. 진짜 대박 예쁘네.”


“아하하···. 그렇게 대단한건 아니라고 할까···.”


“어, 네. 대단한 건 아닌거 같긴 한데. 아무튼 멋져요. 나도 하고싶어.”


“앗, 어. 마법 한 번도 써본 적 없으세요?”


“써본 적 있냐구요? 전 여태 마법이 구라인줄 알았어요.”


“네···? 어느 차원에서 오셨길래···?”


“어느 차원에서 왔냐구요? 그럼 여기가 다른 차원인가요? 길가다가 트럭에 치인 것 까지는 기억나는데, 정신 차려보니까 쌩판 처음 보는 곳이더라구요.”


“아···. 이거 좀 곤란하네···. 사고로 전이당한 분이신가···.”


“여기가 그럼 이세계인가?”


“어, 음···. 아, 알겠다. 혹시 마늘-차원에서 오신 분이세요?”


“마늘-차원이요? 그게 뭔데요?”


“아뇨, 그냥···. 그런 냄새, 아니 느낌이 났어요. 실례했습니다. 그보다···. 차원을 헤매는 것 같은데···. 일단 도움을 좀 받아야 할 것 같아요. 차원 파출소에 데려다 드릴게요.”


“파출소요? 제가 미아인 줄 아세요?”


“미아 맞는 것 같은데요···.”


“파출소는 별로인데.”


“저, 곧 해가 지니까, 늦기 전에 가는 쪽이···.”


“좋아요, 그럼 이렇게 하죠. 저한테 그 마법 알려주세요. 그럼 제가 파출소에 순순히 끌려가 드리죠.”


“아니 무슨 그런···.”


“조건이 별로에요?"


"조건을 따지는게 아니라고나 할까···."


"욕심이 많으신 분이시네. 그럼 파출소에 순순히 끌려가는 것에 더해서, 저도 뭔가를 알려드릴게요. 저한테 뭐 배우고 싶은거 없어요?”


“네, 네? 별로 딱히···.”


“진짜 없어요? 곤란하네.”


“아, 알겄어요, 알겠어요! 그렇게 해요. 으, 어, 어쩌지···. 그, 그럼, 마늘-차원에 제일 유행하고 있는 노래라도 알려주세요!”


“아까부터 마늘-차원이 뭐길래 대체?”


“아, 아하하하, 그쪽이 있었던 차원의 이름이 아마 마늘-차원 일거에요. 이곳은 유로도리아라는 곳이구요.”


“아하, 싱겁긴. 근데 진짜 노래 하나면 돼요?”


“어, 음, 네. 제가 좀 우울한 일이 있어서···. 기왕이면 신나는 노래로···?”


“좋아요. 그럼 제가 유행가 하나 뽑아드리면 저한테 아까 그 마법 알려주시는거죠?”


“일단 파출소에는 동행해주셔야 하구요.”


그리고 그에 뒤이어 일어난 일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


1. 입에서 마늘냄새를 풍기던 그 소녀가 도로시 암페어의 뒤를 따라 걸으며 부른 노래는 당시 소녀가 살던 공화국 전역을 강타한 화제의 가요로써,


2. 악마적인 중독성을 지닌 후렴구와 가슴뛰는 긴장감을 품은 연결구로 인하여


3. 가요평론가들 사이에서는 공화국 역사상 최고의 노래로 선정되고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공화국 역사상 최악의 노래로 선정된, 아무튼 그런 대단한 가요였는데,


4. 그 노래를 들은 도로시 암페어는 그 충격적인 선율과 리듬에 뇌를 강타당하여,


5. 갑작스럽게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얻게 됨에 따라,


6. 자신의 미래는 이 서울마법대학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눈 앞의 소녀와 2인밴드를 결성하여 유로도리아의 음악 역사를 바꾸는 데이 있다고 믿게되었고,


7. 그 결과 도로시 암페어는 그 소녀에게 마법이라면 뭐든 알려줄테니 파출소는 잊어버리고 마늘-차원의 노래를 더 알려달라고 부탁하게 되었으며,


8. 실제로 두 사람은 한 달 후 거액의 빚을 내서 ‘레드 핫 갈릭 페퍼’라는 이름의 2인밴드를 결성하였고,


9. 5년동안 온갖 차원을 전전하며 인디밴드 활동을 벌였으나,


10. 폭삭 망하고 빚에 허덕이며 끼니를 굶고있던 것을 국경없는 마법사회에 의해 구조되었고,


11. 결국 국경없는 마법사회의 일꾼으로 고용되어 잡무를 처리하며 빚쟁이들을 피해 몰래 숨어지내다가,


12. 결국 빚을 갚아나가기 위해 몬스터를 사냥해서 현상금 벌이를 해보고자 하였다.


한편 도로시 암페어가 슬슬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정수미를 자신의 밴드에 묶어두기 위해 매혹의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8번과 9번 사이에 일어났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도로시 암페어는 정수미에게 매혹의 마법을 사용한 일을 평생 죄스럽게 여겼어요.


자신의 허황된 꿈에 정수미를 억지로 붙들여 놓는 동안 10대 후반의 소녀였던 그녀는, 아무런 성과도 없이 음악을 한다고 설쳐댄 추억만 남은 20대 초반의 성인이 되어있었으니까요. 사실 앞길이 막막했습니다.


§ § § § §


씁쓸하고 시큼한 향이 최유청의 기관지를 감싸고 돕니다. 그는 두 번째 기절에서 다시 깨어난 참이었습니다.


도로시 본인이 ‘커피’라고 주장하며 구해온 정체불명의 검은 액체를 마시며 최유청은 차츰 정신이 맑아져 옴을 느꼈어요. 그제서야 그는 도로시 암페어의 모습을 비롯하여 국경없는 마법사회 마늘-차원 임시지부 사무실의 모습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습니다.


엄청나게 노후되고 오랫동안 방치된 건물인 J프라자 안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을 감안해도, 사무실은 꽤 깔끔한 편이었어요.


가구는 낡았고, 또 방은 객관적으로 좁은 편이었습니다만 나름 구색은 잘 갖추고 있다는 인상을 풍기고 있었습니다. 조명이 어두워서 주변이 흐릿하게 보인다는 점이 조금 흠이긴 했어요. 책상 두개에 작은 테이블과 소파 세트 하나, 그리고 최유청이 모르는 언어가 잔뜩 쓰여있는 책들이 꽂힌 책장 세개. 근대를 배경으로한 소설 속 탐정사무실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소개드립니다. 제 이름은 도로시 암페어입니다. 정수미 언니와는 유로도리아에서 만나 알게 된 사이에요.”


도로시 암페어는 따라하기 대단히 어려워보이는 섬세한 자세로 몸을 낮추며 인사를 건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이 근방의 문화양식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최유청이라고 합니다. 이쪽이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최유청은 어설프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나눴어요. 최유청은 정수미가 동료를 소개시켜주겠다면서 따라오라고 해서 얌전히 따라오기는 했지만, 이런 미녀와 만나게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습니다. 그것도 그냥 미녀가 아니라 동화에서나 나올법한 절세미인과 대면하게 되리라고는 더더욱 예상하지 못했지요.


최유청은 멍하니 도로시 암페어를 바라보았어요.


“어···,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요?”


“아, 아뇨! 아뇨, 어···. 공화국어語를 엄청 유창하게 하신다 싶어서···.”


“아하하···. 수미언니에게서 이것저것 많이 배웠어요.”


“네···.”


“음, 그보다도! 수미 언니한테 대강 설명을 들었습니다. 저희랑 같이 사냥에 가주신다구요. 정말 깊히 감사드립니다!”


아무래도 도로시 암페어가 말하는 언니란 표현은 익숙해지지를 않았습니다. 대체 무슨 어처구니 없는 인연이 꼬여있길래 정수미라는 사람이 이런 아름다운 여성의 언니가 될 수 있었던 걸까요.


옆을 흘끗 보니 정수미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숙취해소제를 마시고 있었어요. 그 표정이란 것이 영락없이 동급생 전원이 모두 틀린 수학 문제를 홀로 맞춘 초등학생이 지을 법한 그런 표정이었기에 최유청은 그 얼굴에 왠지 주먹을 날리고 싶었습니다.


“아, 뭐, 사실 저는 아는 바가 전혀 없는데···. 그냥 누나가 도와달라고 하기에···.”


그 말에 도로시 암페어는 놀란 표정을 지었습니다.


“네? 최유청 씨께서는 설명 들으신게 없으신가요?”


“어···, 네. 매혹의 마법인지 뭔지를 맞고 그냥 따라온 건데요?”


도로시 암페어의 눈이 바늘처럼 가늘어졌어요. 그 눈초리는 정수미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정수미는 항변하듯 말했어요.


“야, 굳이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있어? 그냥 데려오기만 하면 되지.”


“언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뭘 그렇게 반응하고 그래. 너도 나한테 썼었잖아?”


“헉, 언니! 그 때 일은 제가 잘못한거긴 하지만···!”


“그럼 제삼자한테 물어보자고. 어이, 유청아, 네 생각은 어때?”


“에···. 저는 정수미 누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 커흑, 젠장할. 이 매혹의 마법인지 뭔지는 대체 언제 효과가 사라지는 거에요?”


“몰라, 나도 효과가 그렇게 잘 들줄은 몰랐어.”


정수미는 양 손을 펼쳐보이더니 어깨를 으쓱했습니다. 도로시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어요.


“조, 좋아요. 그럼, 최유청 씨는 어디까지 알고 있으신거죠?’


최유청은 고개를 기웃했습니다.


“어···. 몬스터를 사냥한다는데 인원이 모자라서, 제가 필요하다고 하던데요.”


정수미가 다시 한숨을 쉬었습니다. 다만, 이번에 쉬는 한숨은 이전의 것과는 다르게 조금 안도했다는 느낌이 드는 한숨이었습니다. 아까 전에 쉬었던 한숨은 미취학아동에게 제발 방 좀 치우라고 다섯번 쯤 주의 줄때 내쉬었을 듯한 종류의 한숨이었거든요.


“그래도 대강은 알고계셔서 다행이네요. 맞아요. 저희는 유로도리아 차원의 팔래치아나 트레일에 서식하는 ‘붉비단호랑 와이번’이란 몬스터를 사냥할 계획이에요. 최근에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개체가 부쩍 늘어나서, 인근 지역의 작황을 망치고 있다고 현상금이 붙었거든요.”


도로시는 그렇게 말하며 탁자 위에 낡은 지도 한장을 펼쳤습니다. 그러면서 한번 훑어보라는 득 손가락으로 지도 가운데 즈음의 어딘가를 가리켰어요.


최유청은 그 지도를 완벽하게 이해하기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게 연신 고개를 끄덕이다가, 결국 최유청은 이해하는 척 하기를 포기했습니다.


와이번이라는 명칭 자체는 얼추 알아들을 수 있을 것도 같았습니다. ‘와이번’이란 커다란 날개를 가진, 익룡을 닮은 파충류의 일종으로, 최유청이 익히 알기로는 판타지 소설에서나 나오는 가상의 생명체를 일컫는 단어였어요.


하지만 와이번의 사전적인 의미를 알고 있다고 해서 도로시 암페어의 발언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실례가 안된다면 하나 물어도 괜찮을까요. 그 붉비단 어쩌구 와이번···몬스터란건 뭐죠? 제가 아는 몬스터는 게임이나 소설에 나오는 거밖에 없거든요. 그···, 경험치를 벌기 위해 때려 잡아야하는 그런 괴물들 말이에요.”


최유청의 질문에 도로시는 살폿 웃었습니다.


“경험치를 주거나 보이는 대로 때려잡아야 하는 존재들은 아니지만, 겉모습만 보면 마늘-차원에 유행하는 게임이나 소설에 나오는 괴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몬스터는 마법을 근간으로 하는 생태계에 서식하는 특이한 생명체들이에요. 마늘-차원은 마법의 농도가 너무나도 얕아서 몬스터들이 존재하지 않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차원에서 몬스터들은 보편적으로 서식하고 있죠.”


“어···. 그럼 몬스터를 사냥한다는 건 싸우러 간다는 소리인가요?”


“반드시 그렇다고는 못하지만, 싸우게 될 가능성이 있죠. 붉비단호랑 와이번이 저희가 바라는대로 곱게 잡혀준다면 싸우게 되지는 않겠지만, 항상 예외의 상황이라는게 존재하기 마련이니까요.”


최유청은 팔짱을 꼈습니다. 그리고 크게 흐음 소리를 내며 한 손으로 턱을 거머쥐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뒤, 다시 크게 흐으음 소리를 내며 반대편 손으로 턱을 바쳤어요.


흐으으으으음.


“···그럼 그 사냥이라는 데를 가는데 제가 무슨 도움이 된다고···.”


“엄청나게 큰 도움이 되죠! 최유청씨는 마법을 안쓰시잖아요.”


“그게 무슨···?”


“아하, 잘 모르실수도 있겠네요. 죄송해요, 다른 차원에서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라···. 그게···, 왜그러냐면 말이죠···.”


그렇게 말하더니 도로시 암페어는 미묘한 표정으로 말꼬리를 늘였습니다. 최유청은 자신의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바로 지금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갑자기 왜 그녀의 말 끝이 늘어지는 걸까요?


그런 의문을 가지고 도로시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으니, 최유청은 지금껏 눈치채치 못하고 있던 사실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간 사무실 안의 조명이 어두워 바로 알아채지 못했던 점인데, 도로시의 양 뺨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는 점이었어요. 그리고 그 붉은 볼 사이에는 정체불명의 미소가 걸려있었습니다.


최유청은 공포를 느꼈습니다. 여성이 볼을 붉히며 미소를 짓고 있으면, 맞은편의 남성은 보통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름다운 여성이 홍조를 띄우며 웃어준다면, 맞은편의 남성은 당황할 정도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보통이에요. 하지만, 정말 너무나 아름다운 여성이 붉은 뺨으로 생글거리며 이쪽을 바라보게 된다면, 남자는 공포감을 느낍니다. 내 앞에 무슨 위기가 닥쳐있길래 내가 이런 미소를 감당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단 말입니다.


최유청은 공포 속에서 자신이 빠져나갈 구멍을 모색하기 시작했어요.


분명 도로시의 저러한 표정에는 특정한 의도와 원인이 있을 것이 분명하다···. 아드레날린이 최유청의 뇌를 가속했어요.


그러자 최유청의 뇌는 한 가지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얼굴이 붉어져있는 여성과 마주보고 있었던 경험에 대한 이미지를 말이에요···. 분명 비슷한 일이 과거에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도 아주 최근에···. 그리고 그 사람은 대체 왜 얼굴을 붉히고 있었더라···.

그 의문에 대한 답은 옆에서 들려왔어요. 다 마셔버린 숙취해소제 병을 젖꼭지처럼 물고있던 정수미가 아직도 취기가 덜 가신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마법사들은 마법을 쓰려면 술이 있어야 하니까, 마법을 쓰다보면 금방 취한단 말이야. 그런데 전부 취해버리면 사리분별은 누가 해? 그래서 마법사들이 모험을 떠날 때엔 술 안마시는 사람도 한명 끼어야된다구.”


“···바로 그런거죠!”


그제서야 최유청은 기억해냈습니다. 자신이 아까 기절했다가 잠시 깨어났을 적에, 도로시 암페어가 커피 심부름을 갔다오기위해 고속이동의 마법을 사용할 때의 모습을요. 벽장에서 웬 고급스러운 술병을 꺼내 마시던 그녀의 모습을 말입니다.


그제서야 도로시의 붉어진 양 뺨과 미소가 걸린 얼굴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최유청은 불안해졌습니다.


“에, 어. 같이 가는 사람 다른 분은 더 없나요?”


어느새 정수미는 숙취해소제 병을 사무실 구석으로 던져버리더니 기묘한 걸음으로 도로시 뒤에 다가와있었고, 최유청의 질문에 대신 대답했습니다.


“있었어.”


“어···. 왜 과거형이에요?”


“정치적인 문제가 있었다고 해두지.”


“더 있을 예정은 없어요?”


“경제적인 문제로 없을 예정이라고 해두지. 그보다, 참나, 그런게 중요해?”


“술에 잔뜩 취할테니까 앞으로 뒷바라지 잘 좀 부탁한다고 말하는 사람 앞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사항같은데요.”


“대부분의 앞가림은 우리가 알아서 할거야. ‘대부분’은. 네가 하면 되는건 그냥 구토봉투나 숙취해소제 재고를 잘 파악하고 잘 챙기고 잘 나르고···. 그런거라고.”


“보모 역할에 짐꾼 역할까지 추가하는거네요.”


“게다가 너 여기까지 걸어오는데 부축 되게 잘해주던데? 그런거 잘 해주면 된다는거야.”

“목발 역할 추가. 한도 끝도 없네. 뭐, 메모장 없어요? 적어놔야겠는데.”


“메모는 금지다. 몬스터 사냥에서 메모 같은 걸 보고있다간 목이 달아날거야.”


“모, 목이 달아나요? 잠깐, 아까 우리 싸운다고 했었죠. 다칠 수도 있는거 아니에요?”


“그러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지?”


“헉, 그래도 마법사니까 다친걸 치료하거나 죽은 걸 살려내거나 하실수도 있는거죠?”


“앗, 그러고보니 도로시! 우리 그때 들어놓은 생명보험마법 그거 만기가 언제까지더라?”


“네? 언니 돈도 없으면서 언제 그런것도 들어놨어요?”


“우리 그때 사은품 준다고 해서 보험 하나 들어놓지 않았냐?”


“그건 상품권만 받고 바로 해약했잖아요.”


“아하, 그럼 그런건 없나보다. 하나 새로 들어야겠네.”


최유청은 결국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쥐었습니다. 점점 골치가 아파지는 대화는 그의 이성과 상식을 무참히 뒤흔드며 여지껏 느껴본 적 없는 새로운 종류의 스트레스를 내뿜었어요.


최유청의 얼굴을 가린 두 손 사이에서 무심코 신음소리가 새어나왔어요. 그 신음 소리로 인해 두 여마법사는 마법보험사별 담보내용과 사은품 내용의 차이에 대한 격론으로 이어지던 대화를 멈출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잠시 침묵이 흘렀어요.


그렇게 흐르는 정적 사이에서, 최유청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가축의 목소리로 마지막 힘을 짜내 물었습니다.


“···어차피 저한테 선택권은 없는 거죠?”


도로시와 정수미는 살짝 놀랐습니다. 이런 질문이 나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왜,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유청씨?”


“뭐, 그야, 나는 매혹의 마법에 걸려있잖아요.”


최유청은 그렇게 말하며 정수미를 바라보았고, 그에따라 도로시도 정수미를 바라보았습니다. 정수미의 얼굴은, 입은 열었지만 뭘 말해야 할지는 모르는 사람의 전형적인 표정이었어요.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기는 했지만, 막상 최유청에게 무슨 대답을 들려줘야 할지는 머리속에 전혀 떠오르지 않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그 사이로 최유청의 낮게 갈라진 목소리는 침울하게 이어졌어요.


“누나를 따라서 이 사무실에 도착한 이후로, 어차피 저는 누나나 도로시 씨가 하자는 대로 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거에요. 그럼 그냥 이것저것 설명해주지 말고 그냥 ‘걱정말고 시키는대로만 하면 돼’라고 말해주세요. 그렇게 말해주면 또 ‘믿을’ 수 있겠죠, 아니 ‘믿겠’죠. 차라리 그게 나을거 같애.”


입을 뻐끔거리던 정수미는 갑자기 진지해진 분위기에 갈피를 못잡고 더듬거리며 말했습니다.


“어어···. 그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네. 미안하다, 유청아.”


그 말을 끝으로, 사무실 안의 기류는 어색하게 내려앉았습니다.


3초 정도 정적이 흐른 후.


최유청은 그제서야 자기가 뭔가 말을 잘못 꺼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갑자기 귀 뒤가 화끈해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는 횡설수설하기 시작했어요.


“아니, 어, 저, 누나가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려던 건 아니구요! 어, 따지고 보면, 제가 누나한테 증거로 마법을 보여달라고 해서, 매혹의 마법을 저한테 걸어준 거니까, 음, 음, 그게 어찌보면 누나가 하자는 대로 따를 수 밖에 없는것이, 어음, 결국 제 잘못도 있는 거고, 근데 이렇게 말하려고 하던게 아닌데···.”


최유청의 목소리는, 점차 낮아지고 작아지더니, 마침내 성량이 영을 향해 수렴하며 그의 문장은 마침표를 잃고 방황하기 시작했습니다.


떠올려보면 최유청은 어렸을 적 부터 늘 산통을 깨는 데에 자질이 있었습니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모여있을 때, 어색한 농담이나 갑작스럽게 진지한 발언을 던져서 잘만 흐르고 있던 대화를 얼어붙게 만들곤 했지요. 그때마다 최유청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귀 뒤가 뜨거웠습니다. 건드리면 터져버리기라도 할 것처럼요.


최유청은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어요. 자신은 왜 이렇게 한심한 사람인 것일까요? 생각해보면 오늘 하루 했던 행동 중에 마음에 들었던 행동이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5년만에 다시 만난 오랜 친구의 말에는 의심만 하고, 그녀와의 대화에는 불평불만만을 토로하다가, 그녀가 새로 소개시켜준 새로운 친구 앞에서는 결국 분위기를 끝장내버린 말만 내뱉고 말이에요.


휴대용 쥐구멍이라는 물건이 있다면 지금 당장 주머니에서 꺼내 그 속에 얼굴을 파묻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정적을 마침내 깨부순 것은 정수미였습니다. 그녀는 어새한 분위기를 타파하는데 재능이 있었지요.


“야, 음, 배고프지 않냐? 좀 이르지만 일단 먼저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이야기는 밥 먹고 마저 하고 말야. 알겠지?”


정수미는 주먹을 쥐고 도로시와 최유청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어요.


“이야기는 배를 채워서 기분이 좀 행복해진 담에 하고 말야.”


“앗, 네, 네, 언니!”


“···네, 그래요, 누나.”


그리하여 아직 풀리지 않은 어색한 분위기를 품은 채 두 명의 여성과 한 명의 남성은 J프라자 건물을 빠져나와 아직은 어둡지 않은 초저녁의 번화가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일행은 한 닭갈비 전문점을 찾아 들어가 이른 저녁 식사와 함께 소주 한 병을 주문했어요.

서먹하고 분하고 미안한 마음이 한데 묶인채, 최유청은 그들과 건배했습니다.


쪼르르, 똑, 딱, 꼴깍.


풀썩.


드르렁.


그리고 문득 최유청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시계는 11시를 가리키고 있었어요. 바깥에서 햇살이 내비치며 멧비둘기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니 결코 밤 11시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지요.


주위를 둘러보니 온갖 종류의 빈 술병과 과자봉지가 혼돈처럼 나뒹굴고 있었어요. 그리고 최유청 자신 역시 바닥에서 그 혼돈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바닥에 엎어져 코를 고는 정수미는 혼돈을 가속시키고 있었고, 그 옆에서 테이블에 반쯤 걸쳐져 입을 벌린 채 잠들어 있는 도로시 암페어는 혼돈에 도돌이표를 붙이고 있었습니다.


“머리 아파아···.”


국경없는 마법사회 마늘-차원 임시 지부 사무실에 비로소 술냄새 가득한 아침이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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