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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도로당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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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도로당
작품등록일 :
2019.12.26 00:08
최근연재일 :
2020.01.05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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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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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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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26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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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3화

DUMMY

3.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만, 사실 알코올의 진정한 쓰임새는 사람들의 간을 중독시켜 행복한 기분을 느끼고자 하는데에 있는것이 아닙니다.


알코올의 진짜 존재이유를 알아낸 것은 ‘유로도리아’라고 불리우는 차원에 살았던 고대 마법사들이에요. 그들이 알아낸 알코올의 진짜 존재이유는, 체내의 마법활동을 촉진시켜서 우리가 흔히 '마나'라고 부르는 마법에너지의 운용을 부드럽게 해주는 데에 있었습니다.


머리가 어지러워지고 눈 앞이 흐려지며 행복감이 젖어드는 것은 단순히 알코올 섭취의 부작용일 뿐이지요. 마법사들은 종종 알코올의 발견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실수 중 하나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정수미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적절하고 신속하게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체내의 마나를 활성화시켜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술을 마시는 수밖에 없었는데, 그녀는 알코올이 몸 안에 들어와 혈관 곳곳을 휘저으며 내장을 불태우는 느낌이 썩 나쁘지 않았거든요.


사실을 말하자면, 그녀는 꽤 애주가였습니다. 방금전만 해도 정수미는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방 구석에 박혀있던 미지근한 소주 반 병을 해치우고 오는 길이었습니다.


네, 맞아요. 잘못 들으셨을까봐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그녀는 마법사였습니다.


“윽, 메스꺼워. 마실 것 좀 줘.”


정수미는 이곳이 최유청의 집이 자기네 안방이라도 되는 것처럼 바닥에 철퍼덕 소리가 나도록 주저앉았습니다. 그 바람에 그녀 머리 위의 머리띠에 달린 모조 고양이귀가 팔랑거렸습니다. 아무리 봐도 여기에 처음 와보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어요. 최유청은 떫떠름한 표정으로 그녀의 앞에 생수를 대령했습니다.


그녀가 너무나도 편한 자세를 보이고 있는 바람에 오히려 최유청의 행동거지가 어색해지고 있었어요. 그리고 최유청이 잠깐 눈을 깜빡이는 사이에 머그컵에 가득 담겨있던 생수는 증발이라도 해버린 것처럼 사라져 있었습니다.


“히야, 이제 좀 살 것같네.”


수분을 보충한 정수미의 표정은 한없이 해맑았습니다. 저 대책없이 긍정적인 표정은 정수미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았어요. 그녀는 긍정적으로 사고하는데 도가 튼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하긴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그녀가 10년 전부터 주장하던 놀랍도록 태평하고 낙관적인 노후계획은(주로 무전취식과 무임승차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어요) 절대 설명되지 못할 것이기도 했죠.


“그보다 여기는 어떻게 알고 찾아온거에요?”


“말했잖아. 마법이라고.”


“대체 무슨 농담을 하는건지···.”


“농담 아닌데. 진짜야. 나 마법사라구.”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머리 위의 고양이귀 머리띠를 가리켰어요. 당연히 최유청은 그게 무슨 행동인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마법사는 뭘 뜻하는 은어인데요?”


“말 그대로인데?”


최유청은 어느새 바닥에 누워있는 정수미를 못미더운 눈빛으로 내려보고 있었어요. 그리고 정수미 역시 똑같은 눈으로 최유청을 마주보고 있었습니다. 정수미의 앞머리는, 중력을 따라 이마 위로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어요.


“좋아요, 그렇게 나가신다 이거죠. 그럼 5년 전에 왜 갑자기 사라진거에요? 연락은 대체 왜 안됐고?”


“이세계로 갑자기 전이당해버려서 그랬어. 마법은 그때 가서 배워 온 거지.”


최유청은 어깨를 으쓱했습니다. 옛날부터 최유청은 정수미와 대화할 때면 어깨를 으쓱이는 일이 매우 많았습니다. 기본적으로 그 제스처 안에는 ‘나는 댁의 발화에 대하여 딱히 대답할 말이 없으나, 당신과의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으므로 그냥 모른채 하겠습니다’라는 깊은 내용이 숨겨져 있었지요.


하지만 정수미가 그런 깊은 뜻까지 파악하는 일은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정수미는 최유청이 어깨를 으쓱거릴 때마다 그저 일종의 틱 장애를 앓고 있는 줄로만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황당한 농담 대신 5년만에 처음 만난 사람과 평범하게 감동적으로 재회하고 싶은 사람의 마음도 헤아려 달라구요."


“글쎄 진짜라니깐, 믿지를 않네. 방금 전에 못봤어? 너네 집 주소도 모르는데 순식간에 찾아왔잖아."


정수미는 그 말을 하면서 부연설명이 필요하기라도 한 듯 양팔을 옆구리 근처에서 양쪽으로 뻗어 펄럭거리는 시늉을 취했고, 최유청은 그 꼴을 보며 참으로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웃기지 마세요. 우리 집 주소는···. 내 동생한테 전화해서 물어봐서 알아낼 수 있었을 거고. 맞아, 그러네요. 동생에게 물어봐서 주소를 미리 알아놓고, 우리집 근처 피시방에서 잠복해 있다가 이쪽으로 달려온거라면 설명이 돼요."


“내가 5년만에 나타나서 뭐하러 그런 귀찮은 짓을 해?”


정수미는 본인이 오히려 더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어요.


그리고 듣고 보면 정수미의 말이 맞았어요. 그가 기억하는 그녀는 지독하게 단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가 최유청을 골려주기 위해 복잡한 계획을 궁리하는 모습을 상상하느니 차라리 진짜 그녀가 마법사라는 사실을 믿는 것이 오히려 속이 편할 지경이었어요.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 최유청의 안면근육은 자신의 머리속 고민을 가감없이 표정으로 내보내고 있었고, 정수미는 그런 최유청의 표정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아, 뭐, 됐어. 믿기 싫으면 믿지 마. 안 믿어도 상관없으니까. 째째한 녀석같으니.”


정수미는 마치 크게 토라진 냥 고개를 휙 소리가 나게 반대편으로 돌렸습니다. 한숨이 나오는 몸짓이었어요. 그래서 최유청은 한숨을 쉬었습니다.


“알았어요, 알았어. 아까 중요한 일 있다고 했었죠? 그건 뭔데요?”


"헤헤, 째째하단 말 취소! 그건 말야, 설명하자면, 몬스터를 좀 사냥해서 현상금 벌이를 해보려는데 인원이 부족해서 말야. 와서 우리 일 좀 도와줘!”


이미 최유청은 ‘몬스터’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현상금’이라는 단어가 나올 적에는 구겨진 표정으로 헛웃음 소리를 내었습니다.


“몬스터 사냥이라구요? 그거 그냥 완전 게임 이야기잖아요!”


“야, 게임 이야기 아니라니깐! 이쪽 세계엔 없을 뿐이지 이세계에는 몬스터가 즐비하다고. 그리고 나 요새 게임 접었다.”


최유청의 눈은 세상 못 믿을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가늘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얼굴을 본 정수미는 설명으로 최유청을 설득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린 듯 외쳤습니다.


“그런 반응 나올줄 알았어. 야, 그냥 눈 한 번 딱 감고 나 좀 도와주면 안돼? 게다가 이거 엄청 재밌는 일이라고!”


정수미의 어린애같은 반응에 최유청은 머리가 지끈거렸어요.


“뭐 이상한 다단계나 사이비 종교단체 같은거에 빠져있으신거 아니에요?”


“절대로 아냐.”


“정말로?”


“‘대마법사의 감귤나무 지팡이’에 맹세해.”


최유청은 바닥에 비스듬히 누워 머리를 받치고 머리를 넘기고 있는 정수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어요. 그녀가 별난 사람이라는 것은 예전부터 쭉 알고 있었죠. 언제나 직선적이고, 언제나 방약무인하며, 또 언제나 무슨 생각을 하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사람이었습니다.


최유청은 종종 스스로에게 되묻곤 했었죠. 내가 어쩌다가 이런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 그것도 ‘진짜’ 친구 말이에요.


그런 생각에 빠져 있으려니, 최유청은 뭔가 조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따지고보면 정수미는 행방불명 되었다가 갑자기 나타난 것이라고 해도 곧바로, 최유청 자신을 필요로 하여 찾아온 것이었으니까요.


‘진짜’ 친구라면, 정말 진짜진짜 친구라면 말도 안되는 헛소리로 도움을 요청하더라도 한번쯤은 믿어주고 들어주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요? 최유청은 조심스레 앉은뱅이 탁자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정말로 마법 쓸 수 있어요?”


정수미의 표정에 한순간 희미한 미소가 나타났다가 사라졌어요. 마치 계획적으로 떡밥을 살포한 후 마침내 입질을 확인한 낚시꾼이 지을 법한 그런 종류의 미소였는데···. 너무 짧게 나타났다가 사라진 까닭에 최유청은 그 미묘한 표정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정수미는 즉답했어요.


“그래!”


“그럼 마법 좀 보여줘요. 여기 날아왔다는건 내가 못봤으니깐. 여기서 하나 제대로 보여주면 누나 말 믿을게요.”


그 말에 정수미는 살짝 고민하는 듯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짚었습니다. 술기운으로 얼굴이 붉어져 있는 탓에 사실 고민하는 듯한 자세라기 보다는 그녀의 위장을 짓누르는 중력법칙에 불만이 있는 몸짓으로 보이긴 했습니다만 어쨌든 그 의도는 최유청에게 정상적으로 전달되었어요.


한참을 우물거리던 정수미는 마침내 외쳤습니다.


“좋아! 연속으로 마법을 사용하는건 좀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 유청이 부탁이니 특별히 보여주지. 그럼 잔말 않고 도와주는거다?”


정수미는 자세를 고쳐잡고 앉았어요.


“알겠어요, 알겠어.”


최유청은 두손을 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수미는 히히덕거렸어요.


“그럼, 어디 보자. 너 집에 술 가지고 있는거 있어?”


“술이요? 그건 왜요?”


“알코올이 없으면 마법을 못 쓰걸랑.”


“뭐, 그런 말도 안되는···. 알겠어요, 기다려봐요, 냉장고에 맥주 몇 캔 있을거니깐.”


“한 캔이면 충분해.”


최유청은 곧 양손에 맥주캔 하나씩을 쥐고 돌아왔습니다. 캔 하나는 정수미의 앞에 뒀어요. 나머지 한 캔은, 아무리 생각해도 바보들의 역할극에 동참하고 있는 것만 같아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어하는 자신의 이성을 위해 소모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정수미는 맨정신으로 가까이 두기엔 어려운 여자였습니다.


“건배!”


쾌활한 건배와 함께 이어지는 소리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캔 뚜껑이 따이며 공기가 빠져나가는 소리—. 알루미늄 캔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 누런 액체가 식도를 넘어가며 목을 울리는 소리—. 그리고 정수미에게만 희미하게 들리는, 알코올이 체내에 남아있는 마나와 결합하여 신경을 자극하는 소리—.


최유청은 목을 간질이는 알코올에 짐짓 인상을 쓰며 물었습니다.


“그래서 무슨 마법 보여줄거에요?”


“뭘 보여줄까. 매혹의 마법?”


푹푹 내리찌는 8월, 모든 것이 멈춘 것만 같은 낮 2시, 10평 남짓의 한 원룸에 남녀가 주저앉아 맥주캔을 비우며 나누기에 이보다 더 적당한 이야깃거리가 있을까요. 최유청은 허탈하게 웃었습니다.


“매혹의 마법? 그게 뭔데요.”


“내가 이세계에서 제일 먼저 알게 된 마법이지. 매혹의 마법이란 건, 상대방을 깊이 매료시켜서, 그 사람의 말이라면 뭐든지 믿게 되는 그런 마법이야."


“헤에, 그래요? 어디 한번 빨리 해봐요!”


“알았어. 그럼 내 손가락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으라고.”


“아, 넵···. 근데 그런 편리한 마법이 있었으면 처음부터 쓰지 그랬어요. 그 ‘매혹의 마법’이란걸 썼으면 그냥 누나 말 믿어버렸을테니 편했을텐데. 사람을 설득시키는 용도로 쓰기에는 뭔가 본말전도 아닌가 싶은데.”


“아, 생각해보니까 진짜 그러네. 뭐 어때.”


정수미는 양손을 앞으로 뻗어 기묘한 패턴으로 휘저으며, 이 세계의 것이 아닌 것 같은 기묘한 어감의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유로도리아 대부분의 마법학원에서 신입생에게 기초적인 마법을 가르칠 때 가장 널리 쓰이는 교재인 마법학개론 5판은, 매혹의 마법의 유래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매혹의 마법을 누가 발명하였는지에 대하여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으나, 학계에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설명에 의하면, 매혹의 마법은 약 8세기 경 하너리아 땅의 한 여고생에 의해 우연히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헌에 의하면 그 여고생은 동물을 매우 좋아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유로도리아 대단층의 화석기록에 의하면 그녀의 부모님은 집에서 애완동물을 기르는 것을 결사반대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저명한 점성술사인 다윗-데이빗-다빗트의 최근 연구결과에 입각해 당시 상황을 황금선형적 배분분포를 이용하여 환원해 보면, 끈질기게 애완동물을 기르고 싶어했던 그 여고생이 부모님의 계속된 반대에 부딪히다 마침내 스트레스의 한계에 달하여 결국 마법적으로 폭주하게 될 것임을 쉽게 예측할 수가 있다(황금선형적 배분분포의 구체적인 계산방법은 드 필루블의 저서를 참고하라).


즉, 매혹의 마법은 애완동물을 가지고 싶어했던 여고생이 일으킨 마법 폭주의 일환으로 생성되었으며, 당시 그곳을 휩쓸고 있던 마법 분리주의 운동의 영향으로 마법 폭주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적인 마법으로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이 마법역사가들 사이의 통론이다.


마법학개론 5판은 이어지는 다음 페이지에서 매혹의 마법의 효과에 대하여 마저 서술하고 있습니다···.


매혹의 마법을 사용하면, 대상은 시전자에게 깊이 매료되어 시전자가 하는 말을 굳게 신뢰하게 되고, 시전자의 말을 순순히 따르게 된다.


이 마법은 주로 길고양이나 들개와 같은 길거리의 소형 동물들에게 특히 효과가 있으며, 일반적으로 사람을 비롯한 지성체나 대형 동물에게는 매우 짧은 시간 동안만 효과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하에 설명하는 자에 대하여는 매혹의 마법이 효과를 장기적으로 발휘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마법적인 보험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마법 시전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권한다.


다음 자에게 시전시 주의를 요할 것 : 영유아, 노약자, 병자, 정신이 불안한 자, 정신이 대단히 유치한 자(**중요), 술자리나 자신의 방 등지에서 여성과 마주앉아 자신에게 ‘매혹의 마법’을 걸어달라고 요청하는 남성(***특히 요주의, 이 경우 사건이 발생했을 때 재판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소지가 있음)


그 다음 페이지부터는 매혹의 마법으로 인해 영구적인 금전적, 정신적, 신체적 고초를 입은 피해자들의 사례가 장장 42페이지에 걸쳐서 소개되고 있습니다만, 유로도리아의 마법학 교수들 대부분은 이 부분을 생략하고 바로 다음 챕터로 진도를 넘기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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