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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야월

백수천마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판타지

한야월
작품등록일 :
2024.04.08 12:05
최근연재일 :
2024.04.14 09:02
연재수 :
9 회
조회수 :
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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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글자수 :
52,922

작성
24.04.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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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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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글자
14쪽

너를 고용하마

DUMMY

며칠 전 위험한 낙성파의 초대에도 불구하고 막헌위의 삶은 변화가 없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천마신공을 운용하고, 밥을 먹은 다음 장사현을 둘러본다. 보름이나 지났건만 세상은 아름다울 뿐이었다.


짙은 마기로 인해 햇볕이 가려지지도 않았고, 저마다 활기를 품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마교도들처럼 특정한 목적에 얽매이지 않았다. 물론, 마교도들의 삶이 틀렸다는 건 아니지만··· 그들은 언젠가 있을 중원 정벌을 대비했을 뿐이었고 막헌위는 금제 덕분에 평생 십만대산에 갇혀 있었어야 하는 게 달랐다.


“어, 막 공자님. 오늘도 오셨군요!”


막헌위가 풍월 객잔에 도착했다. 세상 소식을 들으려면 객잔만큼 좋은 곳이 없었다. 객잔에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중원 각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재미있게 이야기했다. 관아나 무림 문파에서 벽보(壁報)를 붙이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내용만 알리기 때문에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다.


“들어오십시오.”

“안 기다려도 되는 건가?”

“에이, 막 공자님은 단골이지 않습니까? 제가 그리 융통성이 없진 않습니다요.”

“그래, 고맙군.”


이제 막 아침 판매가 끝이 났지만, 막헌위는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사시(巳時)에는 점심을 준비하느라 손님을 받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안에서 기다리는 게 허락되었다.


이미 식사를 하는 이들로 즐비하다. 구석에 자리를 잡은 막헌위는 보이차(普洱茶) 하나를 주문하여, 귀를 열고 세상 소식을 들었다.


“천산노인(天山老人)이 천도맹에 들어갔다는군. 삼황에 가장 가까운 실력이라는 말이 있다네.”

“취향각(聚香閣)이 떠들썩해지겠군.”

“자네는 될 수 있으리라고 보나?”

“천산노인이 백호령대전에서 마두 수백 명은 척살하였으니··· 가능하지 않을까 싶군.”


막헌위는 입구 쪽에 앉은 두 중년인의 대화를 들으며 작게 미소지었다. 삼황은 20년 전, 그와 싸우다 죽었다. 두 명의 삼황은 채워졌지만, 한 명이 부족하다고 한다. 황이라는 명칭이 무림에선 쉬이 칭하기 어려웠다. 대충 머릿수만 채워놓으면 되는 자리는 아니었다.


거기에 저들이 발하는 취향각은 보통 도박장을 뜻하는 은어였는데, 이런 일로도 도박이 벌어지는 모양이었다.


‘천산노인이라······.’


전대 교주였던 막헌위도 그 이름을 들은 적이 있긴 했다. 백호령대전은 당시 전투에 참가했던 무력대가 전멸하여 마교에 큰 피해가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말이지.'


아마 천도맹의 높으신 분들은 실상을 알고 있을 거다. 당시 백호령을 급습한 교인들은 미끼였을 뿐이라는 걸. 허나, 천도맹은 겉으로 보기에만 화려한 승리를 알리는 선전 도구로 이용하고 있었다.


‘하기야 대성녀도 내 죽음을 기린다고 했었지.’


막헌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풍월 객잔이 외지인도 많이 찾기 때문인지 호남성의 정보가 아니라 중원 중심부의 이야기도 다루고 있었다. 딱히 흥미는 없었다.


그렇게 차를 음미하며 세상 소식들을 익히고 있을 때였다.


쿠당탕아앙! 타아앙!


“무, 무슨 일이래?”

“또 무림인의 싸움인가!”


막헌위는 쓴웃음을 지으며 주방을 바라보았다. 의식을 확장하여 객잔 대부분을 그의 영역으로 두고 있었다. 기막(氣幕)을 펼친 채로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이상 소음을 차단하긴 쉽지 않으리라.


그렇기에 막헌위는 대충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네 아비가 대령숙수고 뭐고 넌 내가 고용한 일꾼일 뿐이야! 어딜 가서 너 같은 몰골의 사람을 써주겠느냐?”

“날 고용할 때 약조했지 않소? 난 내 요리를 다른 이들한테 전수할 생각이 없소!”

“그럼 혼자서 이 많은 주문을 감당하겠다는 거냐? 요리가 다 똑같은 요리지 뭔 자존심을 세워! 내가 관아에 너를 고발하면 어떻게 될지 알고 있느냐!”

“그건······.”

“흥, 오늘 점심부터는 내가 고용한 다른 숙수들에게 비법을 전수하도록 해라.”

“그건 하지 못한다니까요!”


숙수가 마지막 반항으로 집기들을 내던졌고, 성이 잔뜩 난 풍월 객잔주가 그를 폭행하기 시작했다. 주방 가까이에 있던 이들은 다툼을 얼핏 들었겠지만, 막헌위처럼 자세하게 파악한 사람은 드물었다.


‘숙수라······.’


막헌위는 풍월 객잔이 마음에 들었다.

정확히는 객잔에서 내오는 요리들이 일품이었다.


“이놈이 어딜 도망치려고!”

“도, 도와주십시오! 객잔주가 나, 날 때리고 있습니다!”


몇 대 맞다가 도망쳐 나온 숙수. 그의 얼굴을 보며 손님들의 인상을 찌푸렸다. 얼굴 반쪽에 화상을 입어 흉하기 그지없었다. 저런 이가 만든 요리를 즐기고 있던 건가? 그런 생각에 몇몇 이들이 젓가락까지 놓았다.


거기다 보통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큰 객잔주의 체격에 다들 함부로 나서지 못했다. 무림인으로 보이는 몇몇은 딱히 관심도 없는지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다들 죄송합니다. 우리 숙수가 요리를 하다가 사고를 쳐서 말입니다. 금방 정리하고 사죄의 의미로 다른 요리들을 대접하겠습니다.”


아무도 도와주려 하지 않으니 소년 숙수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그의 얼굴을 보고 혐오감을 드러내는 이들의 차가운 시선을 보니 반항하려던 용기가 사라졌다.


‘이대로 관아에 가서 이놈을 고발하면······.’


반역 혐의가 씌워진 그의 아버지 덕분에 관아에 도움을 받기는커녕 뇌옥에 갇힐 게 분명했다. 암담하다. 풍월 객잔에서 요리를 인정받고, 손님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기뻐했던 게 엊그제였다.


그런데 객잔주는 약조를 어기고 그에게 비법을 다른 이들한테 전수하라고 했다. 물론, 객잔주의 말마따나 요리 비법은 그리 대단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요리를 배울 때,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요리를 전수해주는 건 좋지만, 사람을 보고 제자를 받으라고 말이다. 이렇게 타의에 이끌려 비법을 팔아먹을 수는 없었다.


소년 백도현은 실력을 키워 자신만의 반점을 낸 후, 돈을 모아 가족들을 구해내고 싶었다.

허나, 여기서 그의 여정은 끝인 거 같았다. 비법을 뽑아내면 누가 이런 흉측한 얼굴의 소년을 숙수로 써주겠는가?


‘역시··· 난 아무것도 바꿀 수가 없었어. 아버지, 죄송합니다. 저는······.’


소년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절망하는 순간이었다.


“으음, 심하군.”

“······?”


객잔 안의 손님들이 모두 입을 연 사내를 바라보았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햇빛에 전혀 노출되지 않은 듯이 하얀 피부가 인상적이었다. 얼핏 순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눈동자엔 강단이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같은 식구를 이렇게 때리면 쓰나?”

“손님, 이건 객잔의 일이니 참견하지 말아주십시오.”


객잔주가 흉흉한 얼굴을 무기로 ‘정중히’ 부탁했다.

당연히 막헌위는 정중한 부탁을 단박에 거절했다.


“싫소.”

“······.”


단호하게 싫다고 하니 객잔주도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다 점차 화가 치밀었다. 저런 놈은 매가 약이었다. 왕년에 뒷골목에서 파락호 짓으로 돈을 쓸어모았던 객잔주가 간만에 실력 발휘를 하려고 할 때.


점소이 한 명이 미친 듯이 달려와 그에게 속삭였다.


“그, 그만하십시오! 저분이 그분입니다! 무림인들이 줄을 서다가 싸움이 난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때 그분이라고요!”

“···뭐?”

“서가장이라는 무가의 공자를 주먹 한 방에 쓰러트린 무림 고수란 말입니다!”

“······!”


객잔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허리에 검도 없으니 무림인은 아니라 판단했다. 그리고 꽤 실력이 있는 무림인들은 대부분 태양혈이 툭 튀어나와 구분하기 쉬웠다.


그런데 저리 얇은 팔목에 햇볕 한 번 안 본 것처럼 하얀 청년이 무림 고수라니?

점소이의 말만 아니었어도 믿지 못했을 것이었다.


막헌위는 딱히 객잔주를 어떻게 혼내줄 생각은 없었다. 좋게좋게 끝나면 그걸로 만족이었다. 객잔주가 알아서 상황을 파악할 때까지 기다려줬다.


“소, 손님. 제가 귀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실례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괜찮소. 살다 보면 그런 일이 종종 있지.”

“가, 감사합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손님들 뿐 아니라 구석에서 무림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중년인들까지 막헌위를 주목했다.


대체 청년이 누구길래 저 덩치 좋은 객잔주가 설설 기는가?


“이름이 뭐지?”

“배, 백도현입니다.”


절망에 빠져 있던 순간, 구원의 손길을 내려준 청년이 눈앞에 있었다. 백도현이 겨우 자기 이름을 말했다.


“이 객잔은 인재를 대접하는 방식이 좋지 않군. 어떠냐. 차라리 내가 널 고용하고 싶은데?”

“저를요······?”


객잔주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듣기로 저놈은 새치기를 했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여버리려던 미친놈이었다. 세상에는 상대해서는 안 되는 부류가 둘 있는데, 무림인과 머리가 미쳐버린 놈들이었다. 당연히 가장 위험한 건 미친 무림인이었다.


“개, 객잔이나 반점을 운영하시나요?”


백도현은 순진하게 물었다.


“아니.”

“그럼 저를 왜······.”

“당분간은 개인 숙수로 고용하도록 하지. 그 이후는 차차 생각해보도록 하고.”

“그, 그럼··· 좋습니다!”


막헌위가 작정한다면 객잔이나 반점 따위를 세우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평생 마교라는 ‘조직’을 관리하던 막헌위는 그런 일에는 신물이 난 상태였다. 책임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는 ‘백수’ 생활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객잔주도 동의하는 것이오?”

“하, 하하하··· 그것이······.”


차마 동의한다고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장사현 외곽의 객잔에서 이리 손님이 많았던 건, 소년 숙수 때문이었다. 처음엔 그것만으로 만족했지만, 이제는 사업 확장을 꾀하고 있었다. 소년이 없으면 풍월 객잔은 예전으로 돌아갈 뿐이었다.


“객잔주가 동의할 필요도 없습니다. 계약을 먼저 어긴 것은 객잔주입니다! 제 요리 비법을 전수하라고 협박했습니다. 분명 계약 조건에 요리 전수는 없다고 적어두었습니다!”


백도현이 외친다.

분명 고용 계약 문서에 요리를 누구에게도 전수해주지 않겠다고 명시했다. 그런 약조를 먼저 깬 것이 객잔주였다.


“이 새끼가··· 흡!”


다시 백도현을 위협하려다 막헌위를 발견하고 입을 틀어막는 객잔주였다.


“계약서를 보고 싶소만?”


객잔주가 부들부들 떨며 객잔 구석으로 가서 계약서를 꺼내왔다. 한 달에 은자 다섯 냥. 소년이 받는 임금이었다. 외진 객잔을 장사현의 명물로 키워낸 소년의 몸값 치고는 참으로 초라했다.


“상도덕이라는 게 있지. 소년의 부재로 인해 풍월 객잔의 영업이 당분간 힘들 터이니 이걸로 다른 숙수를 고용하시오.”


은자 열 냥을 내밀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객잔주가 노발대발할 테지만, 막헌위의 앞이라 대항할 수가 없었다.


“여기서 챙길 것이 있느냐?”

“서책 몇 권이랑 옷가지들이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금방 가지고 나오겠습니다.”

“그래.”


막헌위는 주위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차를 마시던 자리에 가 앉았다. 객잔주는 대체 이 상황을 어찌 정리해야 할지 몰라 머리를 쥐어뜯었다.


일 각이 채 지나기도 전에 백도현이 객잔 입구에 나타났다.

막헌위는 객잔을 나서면서 객잔주에게 말했다.


“허튼수작을 부릴 생각은 마시오.”

“예?”

“기회는 한 번뿐이오.”


객잔주가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백도현을 다시 노린다거나 막헌위에게 복수하려고 한다면, 그 또한 상응하는 보답할 것이었다. 객잔주는 빨려들 것처럼 검은 눈동자를 보고 흠칫하며 뒤로 물러섰다.


막헌위와 소년이 떠나자 중년 무림인 두 명이 점소이에게 다가와 물었다.


“저 청년이 대체 누군가?”

“막씨세가의 막 공자님입니다!”

“막 공자? 아, 최근에 막씨세가의 소가주가 확실히 정해졌다던데······.”

“아, 저도 무림 정세는 잘 모르지만 손님께서 말하는 분은 아닐 겁니다.”

“그래? 하기야 막씨세가의 소가주가 여기에 있을 리가 없지. 그럼 누군가? 장사에 막씨세가 사람이 있다는 걸 듣지 못했는데······.”


그때 중년인과 같이 천산노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사내가 말한다.


“막 가주의 셋째 아들이 장사현에 있다는 걸 들었네. 이름이 기억이 안 나는데. 뭐였더라?”

“막 공자님의 성함은 막헌위입니다!”

“그래? 아무튼, 그자일 듯하군. 그런데 이상한데··· 셋째 아들은 무공에 재능이 없어서 유배되듯 장사로 왔다고 들은 거 같아.”

“유배라니요? 막 공자님은 서가장의 서 공자님도 주먹 한 방에 쓰러트렸습니다. 그런 분이 어떻게 유배를 당하겠습니까?”


점소이가 활기차게 말하자 중년인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직접 봤다고?”

“예, 제가 직접 봤습니다!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 발은 보이지도 않고 주먹이 어찌나 빠른지 정말 멋졌지요!”


가만히 듣고 있다 보니 점소이의 태도가 의아했다. 흉측한 얼굴의 소년이 풍월 객잔의 숙수였는데 막헌위가 데리고 나갔지 않은가? 이대로라면 풍월 객잔의 재정에 문제가 생길 게 분명했다. 풍월 객잔이 망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너무 신난 표정으로 떠들고 있지 않은가?


“근데 자네 괜찮은가? 이대로면 풍월 객잔이 망할 수도 있지 않나?”

“네? 그냥 다른 객잔으로 가서 일하면 되지요. 장사에 객잔이 얼마나 많은뎁쇼. 사실 여기 객잔이 월봉이 짜서 곧 나가려고 했습니다. 일거리는 계속 늘어나는데 월봉은 똑같다니! 요즘 시대가 얼마나 바뀌었는데 말입니다.”

“······.”


중년인이 구석에서 넋이 나간 객잔주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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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시대의 변화 24.04.14 362 4 13쪽
8 운명일지도 24.04.13 371 7 14쪽
7 용돈 도착 24.04.12 374 9 14쪽
» 너를 고용하마 +1 24.04.11 422 10 14쪽
5 약조를 지켜라 24.04.10 465 8 14쪽
4 악독한 백수 24.04.09 485 10 13쪽
3 백수는 뭘 하면서 지내는가 24.04.08 515 8 13쪽
2 백수가 되다 24.04.08 555 11 13쪽
1 서장 24.04.08 677 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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