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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야월

백수천마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판타지

한야월
작품등록일 :
2024.04.08 12:05
최근연재일 :
2024.04.14 09:02
연재수 :
9 회
조회수 :
4,227
추천수 :
75
글자수 :
52,922

작성
24.04.08 12:06
조회
677
추천
8
글자
10쪽

서장

DUMMY

어릴 적 부모님께서 말씀하셨다.


“교주님께서 말씀하시면 그게 무엇이든 고분고분 대답하거라. 그리고 무야가 재능있는지 교주님께 보여줘야 해? 할 수 있지, 우리 아들?”

“녜에.”

“옳지. 그럼 가자꾸나!”


말로는 쉬이 이해시킬 수 없는 여러 사연으로 아버지의 가문인 무적장가(無敵張家)는 무림공적으로 지정됐다. 내로라하는 무림 고수들이 상상 이상의 현상금에 미쳐 침을 질질 흘리며 우리를 쫓아왔다. 정파 내에서 생존할 길이 도저히 보이지 않자 부모님은 가까운 친지들만 데리고 무려 ‘마교’로 피신하기에 이르렀다.


예상외로 무적장가의 가주이자 아버지인 장충은 무려 당대의 마교주와도 인연이 있었기에, 나를 데리고 마교로 가서 제자로 받아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었다.


당연히 사파 문파 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마교였고, 거기에 교주는 그들의 지존이었다. 아무리 인연이 있던 사이라고 해도 교주 제자로 받아들일 리가 없었지만, 교주는 날 보자마자 깜짝 놀라 진맥하더니 경악했다.


“마영지맥(魔影之脈)이 실존했다니!”


교주는 당장 날 제자로 받아들였고, 무려 마교의 세력권 내에 무적장가가 자리 잡을 수 있게 터전을 내어주었다.


“아들! 정말 교주님의 제자가 됐구나! 아비를 닮아 정말 대단해! 큼하하!”

“꼭 소교주가 된어야 한다! 엄마는 우리 아들 믿어요!”


그게 마지막으로 본 부모님의 모습이었다.

마교주의 음흉한 계략에 휘말려 죽음을 맞이했었으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왜냐고? 천도맹에서 무림공적으로 지정할 정도로 사고를 쳤던 철부지 부모답게 그들은 무려 마교에서도 ‘아주 큰 건’ 하나를 마치고 홀랑 도망가버렸다.


그게 15살 때의 일이다.


“네놈은 본교에 목숨과 혼을 바쳐야 할 것이다. 당최 장가 놈들은 믿을 수가 없구나!”


얼마나 분노했는지 교주는 대성녀(大聖女)까지 동원해서 쇄맥단혼금제(鎖脈斷魂禁制)를 펼쳤다. 금제의 효과는 이러했다. 나는 마교도는 절대 죽일 수 없고, 십만대산을 벗어나면 온몸의 혈맥이 터져 즉사하게 된다.


난 반항하지 않고 금제를 받아들였다.

어차피 도망치려 해도 죽을 것이고, 뭣보다 5살 아들내미를 교주에게 홀랑 팔아넘긴 부모보다 스승이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때부터 고난이 시작됐다. 열다섯 명에 이르는 교주 제자들은 틈만 나면 나를 무시하고 괴롭혔다. 그래서 알게 됐는데 대단하신 부모는 무려 마교의 성물 중 하나를 훔쳐 갔다고 했다.


‘제기랄, 재주도 좋네. 대체 그걸 어떻게 훔친 거야?’


참고 또 참으며 견뎌냈다.

매일 쏟아지는 모욕과 비난 그리고 무자비한 폭력에도 굴하지 않고 무공에만 미쳐 살아갔다. 마영지맥이라는 마기(魔氣)가 뇌수에 미치지 않는 체질을 타고나 마교에서는 흔하디흔한 질병 중 하나인 심마(心魔)도 이겨내며 쭉쭉 성장했다.


10년, 나는 소천마(小天魔)가 되었다.

교주는 후계가 정해졌으니 이제 교를 관리하는 임무는 놓겠다며 일거리를 잔뜩 안겨줬고, 스승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던 나는 천마신교의 실질적인 교주가 되었다. 물론, 쇄맥단혼금제 덕분에 남들이 상상하는 부귀영화 따위는 누리지 못했지만.


또 10년, 교주는 갑자기 폐관을 깨고 나오더니 이제 자기가 진정한 천마(天魔)가 되었다면서 깝죽대며 교인들을 이끌고 중원 정벌을 선언했다. 혹여나 자신이 죽는다면 천마가 되어 교를 이끌어달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어차피 난 금제 덕분에 십만대산을 벗어나지도 못하고 마교도들을 죽이지도 못했기에 마음 놓고 교주는 출정을 나갔다.


그리고 현재.

나는 무림의 반을 쑥대밭으로 만든 교주가 싸질러 놓은 똥을 치우고 있었다.


“이 사악한 마두놈! 교주는 죽었으니 네놈들은 이제 끝이다!”

“멸문한 공동의 넋을 감당해야 할 것이야!”

“무량수불, 무림이 힘을 합쳤으니 이제 마교도 멸문이외다. 그만 포기하시오.”


마교가 멸문의 위기에 처하자 대성녀는 단혼종(魂禁鐘)이라는 것을 들고 내게 명령했다.


십만대산을 침입하는 놈들을 죽이라고 말이다.

명령이 아니었더라도 20년 넘게 관리해온 마교가 멸망하지 않도록 노력할 생각이었지만, 대성녀는 날 믿지 않고 금제를 발동했다.


“말도 안 돼! 이제 막 교주가 된 게 맞는 건가?”

“혈염마제(血髥魔帝)보다 더 강한 것 같은데······.”

“저 악귀가 다시 정비하여 정벌을 나선다면 무림은 재기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될 거외다! 모두 목숨을 걸어야 하오!”


사실 중간에 대화로 풀려고 했지만, 간악한 술수에 농락당하지 않겠다며 삼황(三皇)이라는 놈들이 생명까지 불태워가며 덤벼왔다.

나 또한 죽지 않기 위해서 정혈을 불태우며 그들을 상대했다. 쇄맥단혼금제 덕인지 십만대산 내에서는 마기가 계속 채워졌기에 셋의 합공에도 버텨가며 내리 나흘을 싸워댔다.


나는 결국 삼황이라는 늙은이들을 죄다 죽였다.

아주 유감스러운 점은 그들을 죽인 대가로 나 또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말 대단하시군요. 홀로 삼황을 막아내다니······.”


옥구슬이 굴러가는 목소리. 대성녀는 마기가 아니라 신성한 기운을 흘리며 나타났다. 본래 마교의 성녀가 저런 존재다. 영험한 기운으로 마기를 정화하여 심마에 빠진 교도들을 구원하는 신녀(神女)이자 성녀였다.


“마교는··· 어떻게 됐나.”

“천도맹에서 퇴각 명령을 내렸답니다. 삼황이 죽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은 것 같더군요.”

“다행이군.”


숨을 고르고 자리에 앉았다. 길었던 삶의 끝이 보인다. 길어야 일 각. 짧으면 당장이라도 숨이 끊길 것이다.


“17대 천마 장무. 당신은 마교 멸문의 위기를 극복한 영웅으로 기억될 것이랍니다. 그러니 편하게 눈을 감으셔도 된답니다. 이제 당신의 죄는 본녀가 모두 용서하겠습니다.”


용서라는 말에 절로 실소가 터졌다.

내가 잘못한 게 있나? 부모를 잘못 만난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겠지. 죽을 때가 되니 화가 나지도 않는다.


“단혼종에 명령을 내리는 능력도 있나?”

“예, 고대의 대술사가 만든 법기(法機)랍니다. 제약에 걸린 이에게 절대적인 명령을 내릴 수 있죠.”


대성녀가 자랑하듯 단혼종을 꺼내 들었다.


“···날 믿지 못한 건가?”

“전대 교주님께서 정벌을 나서기 전 제게 당부하셨답니다. 장가 사람들은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의심해야 한다고 말이죠.”

“하··· 하하. 빌어먹을 장가.”


평생 금욕하며 교도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도 난 영원한 타인이었다. 쇄맥단혼금제에 걸려 평생 십만대산을 떠나지 못하고, 휘하의 교도들을 죽일 수도 심지어 공격하려고만 해도 고통에 몸부림치는

교주는 그들의 천마(天魔)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죽어서는 교의 영웅이 되시는 거랍니다. 자랑스러워하셔도 됩니다. 이제 편히 쉬시··· 꺄아아아아아악!”


평생을 온화하고 고상하게 웃던 성녀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이유? 간단했다.


“큭큭. 단혼종은 마교도가 아니지.”


마교의 성물.

내 제약은 ‘마교도’를 죽이지 못한다는 거다. 그러니까 성녀가 들고 있는 저 지랄맞은 단혼종이라는 것도 마음만 먹으면 부술 수 있었다.


하나는 내 철부지 부모가 훔쳐 달아났고, 또 하나는 내가 부숴 먹었다.

이제 하나 남은 건가?


“말도 안 돼! 이게 부서질 리가 없어!”


조각들을 애써 붙이려 하는 대성녀였지만, 절대 붙지 않으리라. 마지막 남은 생기마저 짜내 일격을 날렸으니까. 부순 이유는 간단했다. 어차피 죽는 마당에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었다.


‘지지리도 말 안 듣는 교도 놈들 대가리를 매번 부수고 싶었는데.’


마교를 멸문에서 구해냈으니 성물 하나 정도는 괜찮잖아?


“어떻게 부서진 거지? 이건 그 누구도 부술 수 없는 물건인데··· 대체 어떻게? 어떻게 단혼종이 부서질 수가 있어어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게 대성녀의 절규가 마치 어릴 적 들었던 어머니의 자장가 같았다. 그때는 어머니가 참 좋았는데 말이지. 돌이켜보면 참 재미없는 인생이었다. 불가에서 말하는 윤회라는 게 정말 있다면, 지금처럼은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씨익.


결국, 단홍종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대성녀.

처음 보는 그녀의 표독스러운 시선에 미소로 화답하며 난 죽었다.



* * *



죽었다.

분명 ‘죽었다’로 생은 종장을 맞이했어야 할 터인데······.


익숙한 냄새. 마치 어릴 적 어머니의 허벅지를 베고 잠을 자며 느꼈던 살 내음이 코를 스친다. 거기다 왜인지 따뜻하다? 베개가 이래도 돼?


내 몸이 마구 흔들렸다.

누군가 날 깨우고 있었다. 대체 죽은 사람을 누가 깨우는 거야?


“고오오오옹.”


뭔가가 말을 하고 있다.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머리가 깨질 것 같다. 죽었는데 머리가 아파? 삼황에게 죽지 않은 건가? 아니, 그런데 왜 익숙한 냄새가 났던 거지?


“고오오옹자아아아니이이이임.”


고오오옹? 자아아아?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그만 흔들어. 그만 흔들라고.


“고오옹자아아아님! 고오옹자아니임! 고옹자아님! 공자님!”


공자님?

겨우 눈을 떴다.


“어머··· 니?”

“에?”


어머니랑은 전혀 다른 얼굴이었지만, 난 익숙한 살 내음에 저도 모르게 엄마를 찾았다. 날 버리고 도망친 어머니였지만, 죽기 전엔 한 번이라도 보고 싶었으니까.


“공자님, 아까는 술 안 취하셨다면서요!”

“······.”

“근데 아깐 왜 숨을 안 쉬셨던 거예요? 정말 죽으신줄 알았잖아요! 차암, 연기도 잘 하셔!”

“······.”

“아무튼! 오늘은 어떤 술을 내올까요?”


난 분명 죽었는데, 눈을 떠보니 처음 보는 여인의 허벅지를 베고 누워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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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백수는 뭘 하면서 지내는가 24.04.08 515 8 13쪽
2 백수가 되다 24.04.08 555 11 13쪽
» 서장 24.04.08 678 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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