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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야월

백수천마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판타지

한야월
작품등록일 :
2024.04.08 12:05
최근연재일 :
2024.04.14 09:02
연재수 :
9 회
조회수 :
4,226
추천수 :
75
글자수 :
52,922

작성
24.04.10 08:59
조회
465
추천
8
글자
14쪽

약조를 지켜라

DUMMY

막헌위는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사실 거창하게 생각하자면, 왜 막헌위의 몸에 들어왔는가를 알아보아야 했다. 처음엔 윤회하여 막헌위로 살아가다가 우연히 전생의 기억을 깨달은 게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막헌위는 22살이었고 수라마제였던 장무가 죽은 건 20년 전이었다.


즉, 장무의 혼(魂)이 막헌위의 육(肉)에 깃들었다고 보는 게 맞다.


“흐음.”


그러나 아무리 고민해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만약 누군가가 목적을 가지고 그를 되살렸다면, 눈앞에 직접 나타나리라.


이런저런 생각을 이어나가며 걷던 막헌위가 걸음을 멈추었다.


‘장엽명이 아침부터 따라오는군.’


딴에는 들키지 않고 미행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막헌위는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무슨 일 있느냐?”

“도, 도련님? 아하하하, 여기서 다 뵙는군요. 어디 가시던 중이었습니까?”


태연하게 대처하려 했지만, 막헌위의 눈을 보고 있으니 왠지 가슴이 쿵쿵 뛰었다. 예전엔 한없이 작아 보였는데, 요즘은 함부로 대할 수가 없다고나 할까? 참 기묘한 일이었다.


“나는 장가를 믿고 싶다.”

“네?”

“그러니까 무슨 꿍꿍이가 있더라도 배신하지 마라.”

“배, 배신이라뇨? 제가 무슨 배신을 하겠습니까?”


사실 장 씨 성을 쓴다고 무적장가와 연관이 있을 가능성은 낮다. 세상에 장 씨가 얼마나 많은가? 그 모두가 피가 이어져 있을 리가 없었다. 아주 오래전에는 가문을 사고팔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럼 됐다. 지금처럼만 해라. 미행은 하지 말고.”

“사실은··· 미행했습니다.”

“그래?”


거짓말을 하는 것보단 나았다.


“왜 날 미행했느냐?”

“요즘 도련님에 관한 이상한 소문이 돌아서요. 서가장의 서 공자와 싸워서 일격에 제압했다는 소문이······.”

“아니다.”

“하하, 역시 그렇지요?”

“일격은 아니지.”


이건 나름 중요한 문제였다. 일격(一擊)이라는 건, 단 한 번의 움직임이다. 그는 발을 걸기도 하고 주먹을 내지르기도 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격(二擊)으로 제압한 거다.


“예?”

“서지산을 제압한 건 맞다.”

“그, 그 소문이 사실이었단 말입니까!?”

“그래.”


거짓말할 이유는 없었다.


“대, 대체 어떻게요?”

“다리를 걸고 때렸다.”

“네? 그게 무슨······.”

“더 알 필요는 없다. 난 누가 감시하는 것을 싫어하니 미행은 그만두도록.”


너무 대수롭지 않게 말해서 진짜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지만, 문제가 있었다.


“도련님! 자, 잠시만요! 말이 안 되잖아요. 서 공자는 상당한 실력자인데 어떻게 도련님이 이길 수 있습니까!”


어찌 난 막헌위가 아니라 마교 교주였던 수라마제였다고 설명할 수 있을까? 그리 말할 필요는 없었다.


“깨달음을 얻었다.”

“네? 깨달음이요? 대체 무슨 깨달음을 얻으셨길래 갑자기 그렇게 강해질 수 있다는 겁······.”


장엽명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어느샌가 다섯 명의 흑색 무복을 입은 자들이 막헌위를 둘러쌌다. 설마 서가장에서 보낸 건가? 장엽명은 지금이라도 도망가야 하는 건지 고민했다.


“막헌위, 설마 약조를 잊은 건가?”

“헙!”


사나운 눈매의 청년이 등장했다. 서가장의 서지산은 아니었다. 장엽명은 그 사람의 이름을 잘 알고 있었다. 장사현의 뒷골목을 지배하는 낙성파(落星派)의 문도 중 하나였다.


“누군지 아느냐?”

“도, 도련님. 낙성파 왕 공자님이 아닙니까?”


그걸 어찌 모르냐는 듯 되물었다.


“낙성파? 으음, 나와 관련이 있는 놈들인가?”

“예? 같이 어울려서 도박도 하시고 기루도 다니셨었는데······.”

“그렇군.”


두 사내의 만담을 지켜보던 왕무웅은 비릿한 웃음으로 다가왔다. 약조를 깨기 위해 모르는 척 연기하는 것은 일품이었다. 그러나 왕무웅은 속지 않았다.


“제의(祭儀)를 치른 증거는 문서로 남겨뒀다. 네가 아무리 부정한다고 해서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지. 자세한 이야기는 우리 쪽으로 가서 하지. 얘들아?”

“받들겠습니다!”


짠 듯이 움직이는 낙성파 문도들을 보고 있자니 마교도가 생각났다.

받들겠습니다는 뭔.


“도, 도련님! 어떡합니까? 낙성파는 진짜 무서운 놈들입니다. 잡혀가면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른다고요!”

“걱정하지 마라.”

“어떻게 걱정을······.”

“커억!”


흉흉한 얼굴로 막헌위의 손목을 잡아채려던 거한의 무릎이 꺾였다. 그는 당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단 얼굴로 바닥에 쓰러졌다. 낙성파의 왕무웅이 소리친다.


“그만!”


기세등등하던 낙성파의 문도들이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정말 제의가 효과가 있었다고?”


그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왕무웅은 심각한 얼굴로 막헌위을 살피다가 겨우 진정하고 입을 뗐다.


“막헌위. 너는 우리와 약조를 했다. 여기서 미주알고주알 전부 이야기할 셈인가?”

“안내해라. 낙성파로 가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

“···따라와라.”


장엽명은 입술을 깨물었다.

무슨 상황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이대로 끌려가면 죽는다! 분명 죽고 말 것이다! 도련님이 방금 보여준 무위는 대단했지만, 낙성파의 문도는 무려 200명이 넘는다.


“도련님, 저는 혹시 모르니까 여기서 대기하도록 하겠습니다.”


결연한 얼굴로 선언했다.

당연히 겁이 많은 도련님은 같이 가자고 조를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변명해야 할까? 위기에 빠지면 막씨세가에 도움을 청해야 한다고 할까? 포졸들의 힘이라도 빌려야 한다고 할까?


“그러도록.”

“네?”

“여기 장엽명은 내 시종이다. 같이 데려가지 않아도 되겠지?”

“마음대로 해라.”


장엽명은 떠나는 낙성파 문도들과 막헌위를 보고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왜인지 후회가 밀려왔다. 저리 가볍게 남는 것을 허락할지 몰랐다. 죽이려고 데려가는 게 아닌 건가?


- 장가를 믿고 싶으니 배신하지 마라.


평소였다면 전혀 신경 쓰지 않았을 말이었다. 애초에 사람 구실 못하는 막헌위를 따라와서 뒤치다꺼리한 게 장엽명이었다. 남는 게 배신인가? 따라간다고 했어야 배신이 아닌 건가?


왠지 모를 패배감이 엄습해왔다.



* * *



낙성파.

호남의 성도에서 20년 동안 가파르게 성장한 문파였다. 앞에서는 정파를 표방하지만 하는 짓들은 사파나 다름없었다. 고리대금업부터 시작해서 도박장이나 기루를 운영했다. 거기다 최근에는 여러 수법으로 명문가의 자제들을 낙성파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사실 막씨세가의 막헌위도 그들의 ‘작업’에 당한 사람 중 하나였다.


겉으로는 풍류남을 자처하며 유희를 마음껏 즐기는 사내였으나 뼛속까지 열등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고귀한 핏줄을 타고 태어났지만, 비천한 이들보다 부족했던 막헌위였다. 그를 이용할 방법은 많았다.


예를 들자면.


“제의의 값을 치르라는 건가?”

“그래, 당시 네놈의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기에 말미를 주었지만, 넌 약조를 지키지 않았지.”


제의라······.


“제의를 치른 게 보름 전인가?”

“자꾸 기억이 없는 척하는데, 여기 네가 직접 작성한 문서다. 확인해라!”


왕무웅이 계약서를 툭 내던졌다. 막헌위가 그것을 살펴보더니 묘한 얼굴을 했다.


“내력을 각성하는 제의를 치르는 대가로 낙성파의 외문 제자로 입문한다?”

“그래, 너는 정식으로 낙성파에 들어와야 한다. 당연히 외부엔 굳이 알릴 필요가 없다. 우리가 원할 때, 명령대로 움직이면 되는 거다. 보아하니 제의가 효과가 있었던 모양인데?”


사실 왕무웅의 제의는 겉만 번지르르하지 제대로 된 것이 아니었다. 제의를 치른다고 개나 소나 내가기공을 깨우칠 수 있다면, 누구나 무림인이 되지 않겠는가?


어떤 행운이 깃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조금 전 보여줬던 막헌위의 신위는 분명 내가기공이 없으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근데 단전을 형성했다고 보름만에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나?’


그런 의문이 들긴 했지만, 왕무웅은 상부의 지시에 따라 그를 낙성파에 끌어들이기만 하면 된다.


“흐음, 제의를 치른 도사(道士)를 만나볼 수 있나?”

“무슨 목적이지?”

“궁금한 게 생겨서 말이야.”

“···보름만에 단전을 형성한 건가?”


이쯤 되니 왕무웅도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제의라는 건 사기 수법 중 하나였을 뿐이다. 물론, 도사라는 놈은 실존했다. 다른 곳에서 제의를 이용해 사기를 치는 것을 낙성파의 간부에게 걸려 덜미가 잡혔을 뿐. 실상 효과는 전혀 없는 쓸데없는 의식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럴 리가 없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조금 전 막헌위의 움직임을 본 왕무웅이다.


“아무튼, 제의의 효과를 보았을 터. 너는 약조를 지켜야 한다.”

“난 이제 어딘가에 얽매이는 건 싫어서 말이야.”

“감히! 죽고 싶은 건가!”

“앉아라.”


왕무웅이 사납게 노려본다. 세상 물정 모르는 도련님 따위 어떻게든 볶아 먹을 수 있었다. 손가락 하나를 자르는 시늉만 해도 오줌을 지리곤 한다. 하지만 이용해먹을 게 많은 놈이었다. 막씨세가라는 배경은 탐스러운 먹잇감이었다.


“이딴 종이가 효력이 없다는 건 잘 알 거다. 멍청한 놈들만 믿고 따르는 문서 계약이지.”

“뭐라고?”


사실이 그랬다.

오래전, 마교와 중원 무림은 몇 번이나 정전 협정을 맺은 적이 있다. 그러나 종이 쪼가리에 적힌 약조 따위는 언제든 깰 수 있는 게 무림이었다.


“거기다 효과도 없는 제의가 아닌가?”

“개소리를··· 네가 증거가 아닌가!”

“그래? 제의로 내력을 각성한 다른 이들은 있나?”

“···존재한다.”

“누구?”

“······.”

“뭐, 그래도 내가 약조한 거니까 너희들에게 보답은 하겠다. 무엇을 내줄지는 내가 결정할 것이고.”

“보자 보자 하니까 오만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우리 낙성파와의 약조가 얼렁뚱땅 말로 넘어갈 수 있을 줄 아느냐!”


막헌위가 다소곳하게 손을 모으고 있던 노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대가 책임자인가?”

“···놀랍군요. 정말 유희공자가 맞습니까?”


노인이 입을 열자 난폭한 눈길로 막헌위를 압박하던 낙성파 문도들이 흠칫 놀랐다. 왕무웅이 책임자인 것처럼 나서고 있었지만, 그는 대리인일 뿐이었다.


“낙성파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막씨세가의 공자를 이용하려고 했던 것을 보면 당신들의 힘이 호남의 성도에만 뻗어있는 건 아니겠지.”

“······.”

“당신들이 사파인지 정파인지도 관심없다. 허나, 불공정한 계약을 이행할 생각도 없어서 말이야.”

“인정합니다. 저희에게 몹시 유리한 계약이기 하지요. 제의 한 번에 저희는 평생 공자님을 이용할 수 있으니까요.”

“말이 통하는군. 보답은 내가 알아서 정하겠다. 그러니 이번 일은 잠시 묻어두도록 하지. 참, 제의를 치른 도사와 만나고 싶은데.”

“현재 상담(湘潭)현에 가 있습니다. 성도로 돌아오면 공자님을 초대하도록 하겠습니다.”

“좋군. 그럼 가보도록 하지.”


낙성파 문도들이 그를 막으려 했지만, 노인의 시선에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막헌위가 떠나자 왕무웅이 결국 입을 열었다.


“왜 그러셨습니까?”

“무엇을?”

“저놈을 이용하면 막씨세가와 대룡상단까지도 손을 뻗을 수 있었습니다.”

“막헌위가 호락호락 이용당할 거 같으냐?”

“강제라라도 밀어붙였어야 합니다.”

“노부도 그의 저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솔직히 그의 눈을 마주하고 있으니 두렵더군. 마치······.”


노인이 무언가를 상상하곤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건 너무 갔다.


“예? 그게 무슨?”


절정의 경지에 오른 노인이다. 웬만한 중소문파에선 문주도 자처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 노인이 알 수 없었다니? 거기다 노인은 상대의 기세를 읽는 능력이 특히 뛰어났다. 그가 틀렸던 경우는 거의 없다.


“저 망나니 백수 놈이 절정의 경지에 올랐단 말입니까?”

“그건 모르지. 허나, 그를 건드렸다면 우리도 곤욕을 치렀을 게 분명하다.”

“정녕··· 제의를 통해 모종의 힘을 얻었단 말입니까?”


노인은 찝찝한 얼굴로 대답이 없었다.

정말 제의로 막헌위가 강해졌다면, 도사가 부리는 술수가 정녕 효과가 있다는 말인데···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막헌위가 여태 발톱을 숨기고 있었다는 거겠지. 일단 도사가 돌아오면 다시 제의를 치러봐야 한다. 그게 정말 효과가 있다면 대업이 훨씬 앞당겨질 것이야. 그렇게 되면 막씨세가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다.”

“알겠습니다. 연통을 넣도록 하겠습니다.”



* * *



“도사라······.”


가능성이 있었지만, 사실 기대가 되진 않았다. 그런 신기를 지닌 도사가 낙성파 따위에게 휘둘려서 이용당할 리가 없었다.


그래도 무슨 제의를 치렀는지 확인할 필요는 있었다.


‘제의가 계기는 되었다는 걸까?’


묘한 얼굴로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올려다보는 막헌위. 그의 앞에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도련님, 어찌 되었습니까!”


장엽명이 수련용 목검을 들고 나타났다. 마치 도련님을 걱정하고 있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듯했다. 막헌위는 그의 속마음이 대충 짐작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

“저, 정말입니까? 더 늦었으면 제가 막씨세가에 지원을 요청할 생각이었습니다!”

“잘했다. 시장하니 밥이나 먹으러 가자.”

“저, 정말 전서구를 띄울 생각이었는데······.”


복잡한 얼굴로 목검을 쥐고 있던 장엽명은 결국 막헌위를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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