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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해 님의 서재입니다.

제우스의 EX급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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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조경해
작품등록일 :
2020.01.27 16:51
최근연재일 :
2020.02.29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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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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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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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23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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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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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처녀성을 잃은 처녀신

DUMMY

아레스를 흡수한 지 일주일이 지난날.


헤르메스는 아르테미스의 답변을 전하러 기남의 이사실에 도착했다.


“뭐래요?”


기남은 신을 먹는 일 따위를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아르테미스에게 전했다. 그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신들의 저력을 가늠하는 것뿐이었으니까. 하지만 헤르메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어림도 없더라.”


그는 기남이 씁쓸해하는 것을 보며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원래도 미친년이었는데, 지금은 아주 정신 나갔다고. 요즘은 번개는 물론이고, 천둥보다 작은 소리만 들어도 아주 발광을 한다니까? 보아하니 잠도 제대로 안 자는 것 같더라.”


헤르메스의 말이 끝나자 기남은 불굴의 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제우스에 대한 신들의 증오는 그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깊었다.


고작 20년 정도를 살아온 인간은 감히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해서도 안 되는 원한.


그는 이 증오의 굴레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도망치는 것은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이미 패륜을 저지른 몸이라지만, 없는 죄까지 뒤집어쓰고 싶진 않았다.


기남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말했다.


“아르테미스 신전으로 가요. 여신께서 부르시는데, 안 갈 수도 없는 거니까요.”


헤르메스는 기남의 너스레에 쓴웃음을 지었다.


“조심해. 그 여자랑 오래 있다 보면, 너까지 정신 나갈 수도 있으니까.”


기남은 헤르메스의 안내를 받아 아르테미스 신전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의 제단에 꽂혀있는 아르테미스의 화살촉을 짓밟았다.


화살촉을 짓밟는 순간, 주변이 여신의 사냥터로 바뀌기 시작했다.


사냥하거나, 사냥당하거나.


영원히 새벽인 숲에서 사냥의 밤이 시작됐다.





*




달이 차오른다.


초승달이었던 달이 하얗다 못해 창백한 보름달로 변해 숲을 비춘다.


사냥개들이 울부짖으며 사냥이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사슴과 곰, 사냥개의 가죽을 뒤집어쓴 님프 사냥꾼들은 아르테미스 앞에 모였다.


“사냥이 시작됐습니다, 아르테미스님.”


사슴을 쓰다듬고 있던 아르테미스는 충혈된 눈으로 님프들을 노려봤다.


“모두 꺼져라.”


아르테미스의 싸늘한 명령에 님프들은 숨을 죽였다. 그중 충성스러운 님프 하나가 용기를 내어 말했다.


“아르테미스님, 혼자 나서시는 것은 위험합니다. 부디 저희에게 섬길 기회를 주세요. 마지막 사냥까지 따르게 해주세요.”


아르테미스는 쓰다듬고 있던 사슴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사냥용 단검을 불러내 손에 쥔 뒤 순식간에 사슴의 목을 베었다.


님프들은 죽고 난 다음에도 경련을 일으키는 사슴을 바라보며 숨을 죽였다. 저 사슴은 아르테미스가 어여삐 여기던 짐승이었다.


그렇게 소중한 것을 망설임 없이 죽여 버린 것은,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 님프들 역시 같은 꼴을 당할 거라는 협박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한다.”


그녀는 새하얀 옷을 사슴의 피로 물들이며 말했다.


“썩 꺼져라. 내 사냥, 내 복수를 방해하는 것들은 용서하지 않겠다.”


그 말에 님프들은 눈물을 머금은 채 아르테미스의 숲을 떠났다.


아르테미스.


사냥꾼과 소녀들이 동경하는, 월광의 여신.


그녀의 순결은 본래 처녀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존재했다. 그녀는 모든 여성에게는 순결을 지킬 의무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태어난 소녀 신이었다.


덕분에 그녀는 언제나 순수했고,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자랑스럽게 여겼다.


하지만 올림포스가 신들의 협약 때문에 격리되자, 제우스는 자신의 권력을 위협할 자가 나타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신에게서 아이를 낳을 권리를 빼앗았다.


그리고 모두가 불임인 세계에서는, 순결을 지키는 것에 의미가 없었다. 아무리 관계를 나눠도 아이가 태어나지 않으니, 책임 없는 쾌락을 나누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제우스는 이를 빌미로 자신의 성욕을 모든 미남미녀에게 해소했다.


그리고 아르테미스는 올림포스에서도 손꼽히는 미녀였다.


그녀는 서슬 퍼런 증오를 달빛으로 가린 채 복수의 때를 기다렸다. 그녀가 월광의 여신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기예였다.


그 누구도 모르고, 알아서도 안 되는 광기.


제우스의 몰락이 시작된 날, 그녀는 이 철저한 은닉 덕분에 망설임 없이 제우스의 심장에 화살을 꽂을 수 있었다.


“제우스...”


그녀는 제우스가 벼려낸 창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 제우스의 창을 용납한다는 것은 제우스의 힘을 인정한다는 뜻이었고, 제우스의 힘을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제우스...!”


수렵신은 자신의 거처 밖으로 나와 달을 마주 봤다. 그녀는 화살을 시위에 얹은 뒤 달을 향해 겨눴다. 그리고 시위를 뒤로 젖힌 뒤 화살을 날렸다.


여신의 화살은 달을 향해 날아간다.


사냥의 시작을 알리는 효시였다.




*



숲에 도착하자 기남을 맞이한 것은 쉴 틈 없이 쏟아지는 화살비였다. 궁술의 신이 달빛을 담아 발사한 화살들은 달의 광기라도 받았는지 궤도를 자유자재로 비틀었다.


때로는 난반사 되는 빛처럼 사방팔방으로 흩어졌고, 때로는 그가 순간이동을 할 지점을 예측해 궤도를 꺾었으며, 심지어 달의 기운을 밭아 여러 개의 환영을 복제해 그의 시각에 혼란을 일으켰다.


덕분에 기남은 숲에 들어온 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온몸에 화살이 박혔고, 이 과정에서 몸을 회복하기 위해 자해를 해야 했다.


‘잠깐... 이거 설마, 일부러 급소를 피해서 맞추고 있는 건가?’


기남은 그런 생각을 하자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본래대로였다면 급소를 노려 사냥감을 고통 없이 죽여주는 것이 아르테미스의 사냥법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자신을 모욕한 자에게 자비를 내릴 이유가 없었다.


최대한 고통스럽고, 잔인하게.


비효율적인 사냥법이었지만, 이미 미쳐있는 여신에게 승패의 결과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 숲에 숨었다 이거지?’


기남은 폭우처럼 쏟아지는 화살비를 피하며 숲에 번개의 창을 난사했다. 그러자 숲에 불길이 일어나며 주변을 태우기 시작했다.


‘어디, 언제 나오는지 보자.’


전승에 따르면 아르테미스는 숲을 소중히 여겼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신의 숲이 엉망이 되는 꼴을 잠자코 지켜볼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의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이 아르테미스는 스스로 몸을 드러냈다.


숲의 저편에서 아르테미스의 형상을 발견한 기남은 아르테미스를 향해 번개를 발사했다.


그러자 수렵신은 나무를 넘나들며 곡예에 가까운 움직임과 야생의 직감을 활용해 번개의 창을 피했고, 공중에 떠 있을 때마저 쉴 틈 없이 화살을 날려 기남의 몸을 화살꽂이로 만들었다. 사냥의 달인만이 가능한 기예였다.


그렇게 수차례에 걸쳐서 화살과 벼락이 오갔지만, 서로 자신의 무기를 난사하는 구도에서 아르테미스에게 승산은 없었다.


제아무리 몸이 날렵하더라도 번개의 창을 언제까지나 피할 수는 없는 법이었고, 아르테미스는 상대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급소를 피해서 화살을 쐈기 때문이다.


기남은 벼락에 맞아 떨어진 아르테미스를 향해 달려갔다. 그는 도망치려는 아르테미스를 낚아채 쓰러뜨렸다.


아르테미스를 사로잡는 것에 성공한 기남은 달빛에 비친 여신의 모습을 본 뒤 숨을 죽였다.


난생처음 본 여신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하얗다 못해 창백한 피부와 새벽처럼 새까만 머리카락이 대조를 이뤘고, 충혈되어 생기를 잃은 눈에는 고혹적이면서도 퇴폐적인 아름다움이 있었다.


손이 닿는 것만으로도 심장을 뒤흔드는, 마성에 가까운 아름다움에 기남은 자기도 모르게 공격하는 것을 멈췄다. 이 아름다운 여신을 건드리자 불경하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르테미스는 기남의 표정을 보자 독기를 품은 눈으로 그를 쏘아봤다. 그러자 여신의 권능이 담긴 달빛이 화살이 되어 기남의 머리를 관통했다. 기남의 머리는 곧바로 재생했지만, 아르테미스는 그 틈을 이용해 이미 그의 오른팔을 잘라내어 쥐고 있었다.


그녀는 팔을 뜯어먹으며 그를 노려봤다.


기남은 섬뜩한 기분을 느끼며 그녀의 몸을 번개의 창으로 꿰뚫었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녀가 야성을 상징하는 수렵신이란 걸 실감했기 때문이다.


번개의 창이 번쩍이고 나자 아르테미스의 몸은 기남의 팔과 함께 재가 되었고, 덕분에 기남은 자신의 팔을 재생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아르테미스가 뜯어먹은 부분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기남의 신격을 흡수한 아르테미스는 부활하자마자 그림자에 몸을 숨긴 뒤, 번개의 기운을 담은 화살을 발사했다. 그 기운은 원본에 비하면 미약하기 짝이 없었지만, 이는 그녀가 쏠 수 있는 최강의 일격이었다.


하지만 이 일격은 최악의 자충수이기도 했다. 밤에 빛나는 무기를 사용한다는 것은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는 꼴이었기 때문이다. 미쳐있기 때문에 발생한 실수였다.


아르테미스가 활시위를 놓는 것과 기남이 번개의 창을 던지는 것은 동시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번개의 창은 여신의 화살을 태우며 아르테미스에게 직격했다.


기남은 아르테미스가 있던 곳을 향해 달려갔다. 이제 사냥을 끝내야 할 시간이었다.


그는 단검으로 저항하는 아르테미스를 번개의 창으로 꿰뚫었다. 일방적인 폭력이었고, 아르테미스는 결국 쓰러졌다.


기남은 쓰러진 아르테미스의 팔을 뜯었다. 사지가 뜯기는 고통이었지만, 여신은 독기 어린 눈으로 비명 하나 지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아르테미스는 너무 지쳐있었고, 애초에 불안정했던 정신은 한계를 맞이했다. 기력을 다한 아르테미스는 의식을 잃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오빠, 미안...”


그녀가 오라비의 이름을 부르며 눈을 감자, 기남은 또다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젠장...’


그녀는 죽음을 각오했던 아레스와는 달랐다. 그 사실을 직감하자 차마 그녀의 살점을 먹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망설임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숲의 저편에서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월광신의 숲에 태양이 뜬다는 점을 이상하게 여긴 기남은 태양이 뜨는 방향을 바라봤다.


그곳에서는 월계관을 쓴 남자가 감미로운 리라 소리와 함께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태양과 예언, 예술과 의술, 그리고 궁술과 이성까지 담당하는, 만능에 가까운 신 아폴론이었다.


“그 팔은 내려놓는 게 좋을 거야. 달의 음기를 남자가 먹으면 오히려 독이 되거든.”


무기는 들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기남은 강렬하게 느껴지는 태양신의 기운에 본능적으로 경계심을 높였다.


아폴론은 리라 연주를 멈춘 뒤 양손을 들어 싸울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특히나 내 동생처럼 신격이 오염되어있을 땐 더 그렇고. 설마 고자나 미치광이로 살고 싶은 건 아니지?”


말투는 농담조였지만, 그 말을 하는 것이 아폴론인 만큼 그 속에 담긴 경고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기남은 그의 충고에 따라 아르테미스의 팔을 내려놨다. 그러자 아폴론은 인자하게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


“양보 고마워. 하마터면 나도 미쳐버릴 뻔했는데, 덕분에 그럴 일은 없겠어.”


아폴론은 그렇게 말한 뒤 쓰러져있는 아르테미스의 팔을 치료했다. 그리고 자상한 목소리로 그녀를 깨웠다.


“일어나, 디아나. 들어가서 자야지.”


그는 아르테미스가 반응이 없자 준비해온 약을 꺼내 그녀에게 먹였다. 그 약을 먹고 몸을 회복한 아르테미스는 멍한 눈빛으로 말했다.


“또 레테의 강물이야?”


아폴론은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쩔 수 없었어. 그렇게 하기로 너랑 약속했으니까. 이제 돌아가자.”


아폴론은 그렇게 말한 뒤 아르테미스를 부축했다. 그는 떠나기 전 기남에게 티켓을 한 장 건넸다.


“감사의 표시야. 도전장 같은 건 아니니까 안심해. 대신 재밌는 구경을 시켜줄 테니까, 꼭 보러 와.”


기남은 떠나가는 아폴론을 바라본 뒤 그가 준 티켓을 확인했다.


[태양신의 서커스 - 올림포스의 몰락]


티켓의 내용을 확인한 기남은 티켓을 주머니에 넣은 뒤 달을 바라봤다.


달은 여전히 시릴 정도로 새하얬다.


작가의말

오늘도 감사합니다.

내일도 잘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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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영원한 2인자 +5 20.02.25 784 23 12쪽
32 태양신의 서커스, 아비를 죽이는 낫 +3 20.02.24 855 18 12쪽
» 처녀성을 잃은 처녀신 +3 20.02.23 998 23 12쪽
30 불굴의 창 +4 20.02.22 971 32 12쪽
29 항상 패배하는 군신 +5 20.02.21 1,112 2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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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헌터를 먹는 초롱아귀, 제2계층 +3 20.02.08 1,624 3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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