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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해 님의 서재입니다.

제우스의 EX급 헌터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완결

조경해
작품등록일 :
2020.01.27 16:51
최근연재일 :
2020.02.29 21:15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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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17
추천수 :
1,406
글자수 :
213,233

작성
20.02.28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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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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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글자
11쪽

패륜의 끝

DUMMY

삶이란 무엇인가.


신계에서 1,000년의 세월을 보냈을 무렵.


절대권력을 손에 쥔 신들의 제왕 제우스는 옥좌에 앉아 고민했다.


그는 모든 것을 손에 쥐었다.


무한하게 쌓여있는 재물과 보물.


모든 존재 위에 군림하는 권력과 명예.


온 세상의 미남미녀를 취할 수 있는 정력까지.


부족한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점이 제우스를 오히려 권태롭게 했다.


배고픔도, 괴로움도, 고통도 없는 낙원.


그는 마침내 자신만을 위한 낙원을 완성하는 데 성공했건만, 그 속에서 오히려 자신의 영혼이 메마르는 것을 자각한 것이다.


권태로웠다.


모든 것이 평화로운 이 세계가 권태로웠다.


손가락 하나만 까딱거려도 모든 것이 손에 들어오는 세계 따위는 지루하기 짝이 없다.


그 사실을 깨달은 제우스는 ‘신들의 왕’이라는 왕관 아래에 가려진 자신의 본질에 대해 파고들기 시작했다.


왕이 되기 이전에, 그는 무엇이었는가.


제우스.


그는 제우스였다.


규율과 율법의 수호자이기 이전에, 그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손에 넣던 탕아였다.


원하는 것은 빼앗고, 쟁취하는 것.


삶의 기본적인 원리를 자각한 제우스는 모든 것을 내려놨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까지 손대지 않았던 것들을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훑어봤다.


영겁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오면서 그가 손에 대지 않은 것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금기와 연결되었다.


금기.


금기에 손을 댄 자는 반드시 파멸한다.


이는 최고의 신일지라도 피할 수 없다.


우라노스도, 크로노스도, 넓게 보면 패륜이란 이름의 금기를 어겼기 때문에 파멸한 셈이었으니까.


금기를 깨는 것은 분명 치명적이지만, 그 속에는 치명적인 매력이 담겨있다.


지금까지 금기란 이름으로 억눌러온 욕망들.


신들의 왕으로서 제우스가 지켜왔던 ‘선(線)’


그 ‘선(線)’을 넘고 싶은 욕망은 점점 그를 좀먹었다.


사사건건 방해하는 헤라를 유폐하라.


자신과 맞먹으려는 포세이돈을 굴복시켜라.


순결을 맹세한 딸들을 취하라.


콧대 높은 아들들을 밟아줘라.


무한한 힘과 불로불사를 지닌 절대 권력자 제우스는 이 금기를 어긴다면 몰락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그 몰락마저 달콤하게 느껴졌을 때, 제우스는 마침내 마지막 선을 넘어섰다.


제우스의 몰락은 그렇게 시작됐다.




***




기남이 던진 빛의 창은 제우스가 반응하는 것보다 한발 빠르게 가슴을 꿰뚫었다. 하지만 제우스의 방어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는지 치명상을 입히기에는 모자랐다.


제우스는 타들어 간 가슴을 움켜쥐며 공세를 취했다. 그가 야수처럼 맹렬한 기세로 허공을 할퀴자 공간이 갈라지며 균열이 일어났다.


헤르메스의 날개 구두로 간신히 도망친 기남은 자신의 목과 가슴에 상처가 난 것을 확인했다. 하마터면 목과 가슴이 절단당할 뻔한 것이다.


찰나의 시간에 치명타에 가까운 공방을 오갔지만, 쉴 틈 따위는 없었다. 잠깐이라도 틈이 생기면 기남은 빛의 창을 난사했고, 제우스는 빛의 창을 주먹으로 튕겨 내거나 이를 반사해 되돌리려 했다.


빛과 공간이 일그러지는 이 공방의 기세는 치열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상처가 늘기 시작하는 것은 제우스 쪽이었다.


아무리 제우스가 본래 지녔던 힘이 강하더라도, 빛의 속도로 날아오는 자신의 무기를 전부 다 막아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상처가 늘기 시작하자, 제우스는 자신의 주변에 힘을 집중한 뒤 방어에 전념했다.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에 천부신의 기운을 담아 외쳤다. 그러자 하늘이 요동칠 정도의 소리가 세상에 울려 퍼졌다.


“썩 멈춰라, 미천한 것!”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기남은 순간 몸이 굳었다. 아무리 신격이 높아졌어도, 상대는 최고신으로서 까마득할 정도의 세월을 군림한 신왕(神王)이었다. 그 목소리에는 왕만이 지닐 수 있는 명령권과 카리스마가 아직도 녹아들어 있었고, 이는 왕이 아니었던 자를 잠시 묶어두기에는 충분했다.


제우스는 허공을 틀어쥐어 몸이 굳은 기남의 목을 비틀었다. 우두둑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목이 떨어져 나갔고, 제우스는 목을 잃은 기남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제우스는 숨을 고르며 잘게 조각난 고깃덩어리들을 바라봤다. 아무리 최강의 무기를 손에 쥐었고, 신의 자리에 올라섰다고 해도, 그 주인은 고작 20대 초반인 풋내기였다. 살아온 세월의 격이 다른 것이다.


제우스는 살덩어리들을 내려다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익숙한 승리의 감각이 그를 두근거리게 했다. 이제 저 살덩어리들을 먹어치우면, 그는 본래의 힘을 되찾는 것을 넘어서 영원불멸에 가까운 자리에 앉을 것이다.


자신에게 반역을 일으킨 머저리들을 하나하나 짓밟고, 능욕할 시간이 머지않았다.


헤라는 영영 발가벗은 몸으로 살아야 할 것이고, 포세이돈은 바닷물에 익사할 것이며, 데메테르는 평생 굶주리고, 헤파이스토스는 양 손가락을 모두 잘릴 것이며, 아테나를 백치로 만들고, 아폴론은 귀와 눈을 잃고, 아르테미스는 굶주린 짐승들에게 사냥당하고, 아프로디테는 하늘에 거꾸로 매달리고, 헤르메스는 스틱스 강 밑바닥에 처박히고, 디오니소스는 술독에 올라 죽을 것이다.


그렇게 제우스가 싸움을 끝내려 할 때, 구름에 꽂혀있던 아레스의 창에서 불길이 일어났다. 제우스는 불꽃의 열기에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구름 위에 널브러져 있던 살덩어리들을 모조리 태운 불꽃은 사람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제우스는 저 불꽃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를 고전시킨 아레스 놈이 헤페이스토스에게 받은 불꽃이었다. 그 불꽃을 보자 제우스는 경기를 일으키며 분노했다.


“아레스! 아레스! 아레스 네 이놈! 죽어서도 날 방해한단 말이냐!”


수백, 수천, 수만 번을 갈기갈기 찢어버려도 끝내 일어선 아레스의 모습이 선했다. 그 약해빠진 녀석이 마지막까지 발목을 잡은 탓에 그는 신들의 군대에 포위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무한히 부활하는 반란군들의 모습이 떠오르자 제우스는 불꽃을 꺼트리기 위해 주변을 비워 허무로 만들었다. 아무것도 태울 게 없다면 불길이 일어날 수 없는 것이 섭리였다.


하지만 제우스는 그럼에도 꺼지지 않은 불꽃을 바라보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그 역시 사실은 알고 있었다. 아무리 평정심을 잃을 정도로 열을 내봐도, 저 불꽃은 꺼트릴 수 없었다.


저 불꽃은 공기가 아닌 영혼을 태우는 불꽃이었다. 죽지 않는 자의 투혼을 태워 일어나는 불꽃이 진공상태가 됐다고 해서 꺼질 리 없는 것이다. 그러니 불을 꺼트리려는 그의 시도는 그저 분풀이에 불과했다.


제우스는 사람의 형태를 다시 갖춘 기남을 노려보며 말했다.


“뭘 위해서 그렇게까지 싸우지?”


그는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도대체 네놈에게 뭐가 그리 중요하단 말이더냐! 네놈은 그저 필부에 불과하다! 아무리 강한 힘을 손에 넣었어도 그것이 네 본질이란 말이다!”


기남은 딱하다는 눈으로 제우스를 바라봤다. 그는 고작 한번 죽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제우스는 벌써 싸울 마음이 없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기남은 씁쓸해했다.


설령 자신보다 더 강한 상대를 만나도 마지막에는 승리했던 제우스에게, 이길 수 있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항상 승리하는 위치에 있던 제우스의 멘탈 역시 포세이돈과 별다를 바 없어 보였다.


제우스가 흔들렸던 그 찰나의 순간, 기남은 주변에 빛무리를 일으켜 제우스가 공격할 수 있는 여지를 차단했다. 주변에 빛이 일렁이는 것을 본 제우스는 황급히 공간 왜곡을 일으켰다. 하지만 기남의 주변에서 일렁거리는 빛의 물결은 제우스의 힘을 흐트러뜨려 놨다.


“원한 같은 건 없어요. 나도 그냥 살고 싶어서 이러는 거니까요.”


기남은 빛무리를 일으키고 남은 힘을 모아 빛의 창을 만들었다. 제우스는 자신의 창이었던 물건이 빛나는 것을 바라봤다. 환하게 타오르던 빛은 창의 형태로 압축되고 있었다.


“예전에 그런 말 한 적 있죠? 내 힘은 보잘것없어도, 당신 힘은 위대하다고. 그 말이 맞아요. 그게 아니었으면 저는 여기까지 못 왔을 테니까요.”


기남은 창이 완성되자 제우스를 향해 던질 자세를 잡았다. 제우스는 그 모습을 보며 이죽거렸다.


“배은망덕한 녀석.”


아버지는 아들을 잡아먹으려 하고, 아들은 아버지를 살해한다.


낡아빠진 법칙이 이런 식으로 구현되는 모습을 보며 제우스는 빛을 응시했다.


한 줄기 섬광이 제우스의 몸을 꿰뚫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하늘을 뒤흔드는 소음과 함께, 구름의 바다에 파도가 일렁거렸다.




***



수차례 빛의 창에 몸을 꿰뚫린 제우스는 구름의 바다에 드러누웠다. 기남은 저항을 포기한 제우스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지금이라도 안 늦었어요. 스틱스 강에 맹세해, 왕좌를 포기한다고 말하세요. 우라노스가 그랬고, 크로노스가 그랬던 것처럼, 당신도 물러나면 그만인 거예요. 자연스러운 거죠.”


제우스는 고개를 까딱거려 기남을 바라봤다. 기남은 그의 눈동자에 담긴 어둠을 지긋이 바라봤다.


그는 예전에 꿈속에서 제우스를 봤을 때, 그의 눈동자 속에서 우주를 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의 자리에 오른 지금은 그 어둠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무한을 상징하는 우주가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메마른 허무였다. 기남이 닳고 닳은 제우스의 눈동자를 보고 있자, 제우스가 대답했다.


“대답은 변하지 않는다. 내 양물을 자르고, 목을 치더라도, 나는 제우스다. 제우스로 태어났으니, 제우스로 죽겠다.”


기남은 신들의 왕이었던 자의 말로를 보며 씁쓸해했다. 자신 역시 언젠가 제우스와 같은 길을 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동질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제우스가 그의 속을 꿰뚫어보며 말했다.


“영원히 산다는 것을 두려워 마라. 나는 내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 금기가 뭐 어쨌고, 타락이 뭐 어쨌으며, 천벌이 뭐 어쨌단 말이냐. 삶이란 이토록 우습고 유쾌한 것이거늘.”


제우스는 각오를 끝냈다. 그 사실을 깨닫자 기남은 망설이는 것을 그만뒀다. 이 이상 그를 동정하는 것은, 그를 모욕하는 일이기도 했다.


기남은 스퀴테를 꺼내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볼게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스퀴테를 들어 올렸다.


“정말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제우스는 흐릿해진 시야로 스퀴테를 올려다봤다. 우라노스의 양물을 거둬간 크로노스의 낫이 그를 겨누고 있었다.


“알면 뭐가 달라지지?”


제우스의 대답은 망설임이 없었다. 기남은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제우스를 오해하고 있었다.


고이고, 썩어버린 이 대신(大神)은 어떤 결말이 나와도 받아들일 준비가 이미 되어있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기남은 양손으로 스퀴테를 부여잡으며 허리를 젖혔다.


“편히 쉬시길.”


불사를 죽이는 낫이 제우스의 목을 내리쳤다.


신들의 왕이 죽고, 곧이어 기남이 사라지자 제우스의 하늘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마지막 사냥이 막을 내렸다.


작가의말

내일 에필로그로 찾아뵙겠습니다.


마지막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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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에필로그 +5 20.02.29 921 30 3쪽
» 패륜의 끝 +3 20.02.28 825 29 11쪽
35 하늘의 아버지 +6 20.02.27 774 25 12쪽
34 EX급 던전들의 끝 +3 20.02.26 765 24 13쪽
33 영원한 2인자 +5 20.02.25 781 23 12쪽
32 태양신의 서커스, 아비를 죽이는 낫 +3 20.02.24 851 18 12쪽
31 처녀성을 잃은 처녀신 +3 20.02.23 994 23 12쪽
30 불굴의 창 +4 20.02.22 967 32 12쪽
29 항상 패배하는 군신 +5 20.02.21 1,109 27 12쪽
28 아름다운 것은 추한 것, 추한 것은 아름다운 것 +5 20.02.20 1,151 31 11쪽
27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8 20.02.19 1,233 3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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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EX급 던전 공략자 +3 20.02.11 1,534 42 14쪽
18 부산의 새벽 +3 20.02.10 1,502 38 12쪽
17 최고의 헌터, 영생의 왕 +7 20.02.09 1,523 39 13쪽
16 헌터를 먹는 초롱아귀, 제2계층 +3 20.02.08 1,621 3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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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혈귀 도시 부산 +2 20.02.06 1,625 37 15쪽
13 부산행 직전 +1 20.02.05 1,656 37 13쪽
12 SS급 헌터, 부산 탈환 선언 +5 20.02.04 1,764 3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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