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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해 님의 서재입니다.

제우스의 EX급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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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조경해
작품등록일 :
2020.01.27 16:51
최근연재일 :
2020.02.29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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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8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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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메르쿠리우스

DUMMY

[이미 알고는 있겠지만, 우리는 너와 싸울 마음이 없고, 너와 싸울 이유도 없어. 우린 이미 전쟁에서 승리했고, 더 이상 피를 볼 이유는 없으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너한테 털끝 하나 안 건드린 것도 그런 이유고. 이해하지?]


자신의 전용 훈련장에 도착한 기남은 헤르메스의 목소리를 들으며 주변을 살폈다. 주변에 펼쳐진 황야에 헤르메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용건은?”


적개심 가득한 목소리에 헤르메스가 너스레를 떨었다.


[아이고, 아이고, 무서워라. 이거 살 떨려서 무슨 말을 못하겠네. 친구야, 너무 살벌하게 굴진 말자. 아무리 그래도 내가 네 생명의 은인인데, 존댓말은 아니라도 고맙다는 말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냐?]


“그 목소리랑, 글씨도?”


[맞아. 그대로 뒀으면, 넌 잠에서 깨어나지도 못한 채 지모신에게 흡수되거나, 아예 승천해버렸겠지. 이카로스나 미다스 얘기 정도는 들어본 적 있지? 준비 하나도 없이 신의 힘을 가진다는 것도 참 끔찍한 거야. 너도 이제 슬슬 느끼고는 있겠지만.]


그는 헤르메스의 말에 지모신의 뱃속에서 겪었던 일을 떠올렸다. 비록 제대로 된 지모신은 아니었더라도, 그 살점을 먹고 신에 가까워졌던 경험은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일단은... 고맙다고 해두죠.”


기남이 마지못해 감사의 인사를 전하자 헤르메스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좋아, 이제야 대화할 준비가 된 것 같네.]


그는 그렇게 말한 뒤 기남의 눈앞에 본모습을 드러냈다. 날개 달린 모자를 쓰고, 날개 달린 신발을 신고, 뱀이 감겨있는 지팡이를 들고 있는 미청년의 모습이었다.


기남은 그를 보자마자 무의식적으로 번개의 창을 충전했다. 그러자 헤르메스는 혀를 쯧쯧 차면서 그를 말렸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뿐만 아니라 올림포스의 신들은 너랑 싸울 이유가 없다니까. 그건 너도 마찬가지고.”


“내가 싸울 이유가 없다고요?”


“그래, 말 그대로야. 너는 우리랑 싸울 이유가 없어. 설령 이유가 있다고 해도, 그게 널 위한 이유도 아닐 테고.”


그러자 기남은 헤르메스를 노려봤다. 상대는 사기꾼과 도둑의 수호신인 헤르메스였다. 그가 아폴론을 상대로 소를 훔치고, 벌을 받기는커녕 상을 받아낸 일화는 헤르메스가 근본부터 사기꾼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심지어 그 아폴론이 예술과 예언, 의술과 지식의 신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헤르메스의 말은 아무리 조심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헤르메스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이해해, 나였어도 내가 하는 말을 그냥 못 믿지. 전령의 신이 거짓말쟁이 취급받는 것도 참 슬픈 일이야. 안 그래?”


기남이 침묵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자 헤르메스는 말을 이었다.


“이럴 땐 올림포스 식으로 증명하는 방법이 있지. 스틱스 강에 맹세하면 그만이거든.”


그는 그렇게 말한 뒤 지팡이를 휘둘러 탁자와 의자를 소환했다. 그리고 먼저 자리에 앉은 뒤 음료가 담긴 병과 두 개의 잔을 불러냈다. 그는 능숙한 솜씨로 잔에 음료를 따르며 말했다.


“나 헤르메스는 이 의자에 앉아있는 동안 거짓말을 하지 않고, 속임수도 쓰지 않을 것을 스틱스 강에 맹세한다.”


그는 그렇게 말한 뒤 기남에게 잔을 권했다.


“그냥 넥타르야. 일단 앉아서 얘기하자고 계속 서서 얘기할 수도 없으니까. 이제 와서 이거 좀 마신다고 막 승천하고 그러진 않으니까 안심하라고.”


기남은 미심쩍어하면서도 그의 잔을 받아 마셨다. 스틱스 강에 맹세하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걸었다는 뜻이었고, 신들이 이 약속을 어긴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헤르메스의 맹세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간만에 마신 넥타르의 맛은 천상의 신주라고 불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짜릿했다.


헤르메스는 그의 표정을 보면서 키득거렸다.


“내가 쏘는 거니까 맘껏 마셔. 역시 친구가 되는데 선물보다 좋은 건 없다니까.”


기남은 그가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아니꼬왔지만, 그러면서도 넥타르를 잔에 채웠다.


“그래서, 아까 싸울 이유가 없다는 건 무슨 뜻이죠? 내 입장에선 안 싸울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


“뭐, 싸우는 게 힘겨루기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전쟁이란 게 힘 싸움이 전부는 아니거든. 안 그래?”


그러자 기남은 가족들을 떠올리며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어디로든 갈 수 있는 헤르메스의 능력이라면 그의 가족을 인질로 잡는 것 정도는 길에 떨어진 동전을 줍는 것보다 쉬웠다.


“지금 가족들 가지고 협박하는 겁니까?”


“워, 워. 진정하자, 친구야. 너랑 내가 무슨 원수를 졌다고, 그렇게 끝장을 봐야겠냐. 계속 얘기했지만, 우린 너랑 싸울 이유가 없고, 너는 우리랑 싸울 이유가 없다니까?”


“나는 이유가 있죠. 제우스한테 부탁받았고, 그 대가로 힘이랑 돈, 사회적 지위까지 얻었으니까. 받을 건 다 받아놨는데 이제 와서 뒤통수라도 치라고요?”


헤르메스는 팔짱을 끼며 씨익 웃었다.


“그래...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그러면 나랑 내기 하나만 해 볼래? 너는 아무것도 안 걸어도 돼. 대신 나는 내 신격과 날개 신을 걸지. 내기에서 이기면 너도 뚜벅이 신세 탈출하는 거야. 어때, 꽤 괜찮은 내기 아냐?”


내기의 조건이 터무니없이 좋을 경우, 그 내기의 내용은 십중팔구 사기도박에 가깝게 흘러간다. 더군다나 그 제안자가 사기와 도둑질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헤르메스라면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무시하기에는 내기의 조건이 너무나도 유리했기에, 기남은 일단 들어보기로 했다.


어차피 스틱스 강에 맹세한 이상 거짓말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남이 고개를 끄덕이며 어디 한번 말해보라는 제스쳐를 취하자 헤르메스는 내기의 내용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단 하나라도 좋으니, 너랑 내가 싸워야 되는 이유를 말해봐. 만약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나오면, 내 신격과 날개 신발을 네게 영원히 양도할 것을 스틱스 강에 맹세하지.”


그 말을 듣자 기남은 생각에 잠겼다.


조건이 너무 간단했고, 얻을 수 있는 건 많았다. 잘만하면 12주신 중에서도 도망치는 것에 일가견이 있는 헤르메스를 간단하게 처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의 가장 큰 보물인 날개 신발까지 온전히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납득할 수 있다는 게 무슨 뜻인데요?”


“말 그대로, 이것저것 다 따져봤을 때 너랑 내가 둘 다 수긍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지.”


그러자 기남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그쪽이 납득 못하겠다고 하면 끝나는 거 아니에요? 그럼 하나 마나잖아요?”


“뭐야, 벌써 잊은 거야? 친구야, 스틱스 강에 맹세까지 했는데 거짓말을 내가 어떻게 하겠니. 나는 못 믿어도 스틱스 강은 믿어야지.”


하지만 기남은 여전히 못 미더워했다.


“원래 진짜배기 사기꾼들은 거짓말을 안 하죠. 사실을 덜 말하거나, 아예 안 말하지.”


“어휴... 그래, 그렇게까지 말하면 하는 수 없지. 조건을 바꾸자.”


헤르메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내 납득은 필요 없어. 너만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하나만 대면 돼. 어때? 간단하지?”


“그러면....”


“대신, 너도 약속 하나 정도는 해야지.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것도 있어야 하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기남은 자신이 헤르메스의 손에 놀아나고 있는 건 아닐지 의심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속임수나 함정으로 여길 수 있는 단서가 없었다.


‘이 조건까지만 듣고, 영 아니다 싶으면 바로 공격해야겠어. 완전 다단계꾼 같은 새끼야...’


기남은 인상을 쓰면서도 헤르메스가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뭐, 별건 아니고. 너도 이 의자에 앉아있는 동안 거짓말을 안 하면 돼. 그게 끝이야. 딱히 스틱스 강에 맹세할 필요도 없어. 스틱스 강은 실수로 거짓말 한 사람한테도 가차 없거든.”


점점 올가미가 목을 조여 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지만, 기남은 도저히 두려워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헤르메스가 제시한 조건은 기남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했고, 무슨 수를 써도 손해를 볼 수 없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제안을 거절할 핑계를 찾는 것이 더 힘들 정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직감은 헤르메스에게 무슨 꿍꿍이가 있다는 것을 경고했지만, 그의 이성은 헤르메스의 내기를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좋아요. 그 내기, 지금 시작하죠.”


“좋아. 나 헤르메스는 그대가 올림포스의 신과 싸워야 할 이유를 단 하나라도 스스로 납득할 수 있다면, 내 모든 신격과 날개 신발을 그대에게 양도할 것을 스틱스 강에 맹세한다.”


헤르메스의 맹세가 끝나자 기남은 자신이 말했던 이유를 다시 한 번 말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제우스한테 부탁받았어요. 제우스 덕분에 나는 떼돈을 벌었고, 어머니 병원비랑 동생 학비, 우리 가족이 평생 먹고살 돈을 벌었어요. 이렇게 받은 게 많은데, 당연히 약속은 지켜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자 헤르메스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너는 그걸로 납득이 되니?”


기남은 말없이 그를 노려봤다. 그러자 헤르메스는 넥타르를 한 잔 마신 뒤 말했다.


“전제부터가 잘못됐어. 그러니까 너도 내심 자기 처지에 대해 납득을 못하고 있잖아? 그러니까 애꿎은 몬스터들한테 화풀이나 하고 다닌 거지. 힘은 넘치는데, 사람한테는 못 쓰니까 말이야.”


“말 돌리지 말고, 맹세나 지키시죠.”


“맹세는 내가 집행하는 게 아니야. 스틱스 강이 하는 거지. 내가 멀쩡한 건 네가 스스로 납득을 못하고 있다는 거고.”


“그건 또 무슨 개소리...”


“다시 잘 생각해봐. 제우스에게 ‘부탁’받았다고? 기억을 잘 더듬어봐. 그게 정말 부탁이었나? 그보다는 ‘명령’에 가까웠을 텐데...”


“...내가 원해서 한 거였고,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겁니다.”


“그래, 그러면 그때로 다시 돌아가면 거절할 수는 있고? 흠... 요즘은 거절할 수 없는 선택도 ‘선택’이라고 부르나 보지?”


그 말에 기남은 말문이 막혔다.


간절했던 것은 사실이다. 비루했던 삶에 신이라는 작자가 광명처럼 내려왔다. 그 기회를 도저히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하늘의 아버지인 제우스는 인간에게 부탁 따위를 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명령할 뿐이다.


그 사실에 기남이 침묵하자 헤르메스는 이어서 말했다.


“아무리 애새끼가 됐어도 천신은 천신이지. 카리스마라는 말, 그 말의 어원이 뭔 줄 알아?”


그는 자신의 잔에 넥타르를 따르며 말했다.


“사람을 매료시키는 힘이란 뜻이야. 매력이든, 권력이든, 권위든, 폭력이든, 재능이든. 비대하게 부풀어 오른 카리스마는 사람을 압도하지. 제우스 그 양반이 괜히 바람둥이 노릇 할 수 있던 게 아닌 거야.”


헤르메스는 다시 넥타르의 잔을 비웠다.


”하물며 천부신(天父神)의 카리스마라니. 보통은 만나자마자 홀리거나 미쳐버리지 않으면 다행이지. 넌 운이 좋은 편이었어. 그날은 유독 감전사당한 사람이 많았거든. 네가 아니었으면 감전사했던 사람 숫자가 더 늘어났겠지.”


그는 다시 넥타르의 잔을 채우며 말했다.


“제우스를 막 만났을 때랑, 지금의 너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야. 너도 그 당시의 ‘너’보다 지금이 원래의 ‘너’랑 더 가깝다고 느끼고 있잖아? 신격이 높아지면서 머리가 굵어지고, 제우스의 카리스마가 빠지기 시작해서 그런 거야. 아버지에게서 독립할 마음이 생긴 아들이 된 거지. 인간다우면서도 자연스러운 거니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부를 것도 없어.”


그는 이번에는 기남의 잔에도 넥타르를 따랐다. 기남은 넥타르가 담긴 잔을 바라봤다.


“일단 건배나 한번 하자고. 아직 할 얘기는 산더미니까. 너도 궁금한 게 많을 테니, 이 기회에 좀 물어봐도 돼. 올림포스 제일의 정보통이 이 정도로 인심을 쓰는 건 흔치 않거든.”


기남은 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대체 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친구를 사귈 때는 인심을 아끼면 안 되는 법이거든. 세월에서 배운 지혜지.”


헤르메스와 잔을 부딪치는 소리가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작가의말

아직 완결 아닙니다.

내일도 잘 부탁 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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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르쿠리우스 +4 20.02.18 1,256 3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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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헌터를 먹는 초롱아귀, 제2계층 +3 20.02.08 1,621 3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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