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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미시 님의 서재입니다.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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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미시
작품등록일 :
2023.10.06 17:43
최근연재일 :
2023.10.29 22:49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697
추천수 :
11
글자수 :
77,601

작성
23.10.18 17:18
조회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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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3쪽

변기석

DUMMY

2


변기석을 평창동에 내려주고 나는 집으로 향했다.

나는 난지도 근방에 살았다.

옛날에는 공원이었고 더 옛날에는 쓰레기 매립지였던 곳이라고 한다.

개성이라고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아파트는 도색도 하지 않아 콘크리트 색 그대로였다. 마치 구소련의 아파트를 연상케 했다.


이 쓰러져가는 아파트도 비각성자에게는 과분하다. 게이트가 열린 이후 지어진 아파트라 서울 변두리여도 값이 꽤 나갔기 때문이다.


“어이, 군부의 개. 오늘은 웬일로 나갔어?”


아파트는 단일 동으로 1층에 관리사무소 겸 간이매점이 있었다.

원래는 ‘서울 재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아파트 단지를 만들려고 했지만 예산 부족으로 무기한 연기되고 한 동만 간신히 지어졌다.

나를 불러 세운 건 관리소장 겸 매점 주인 오영감님이었다.

그는 비각성자 주제에 군에서 일하는 나를 ‘군부의 개’라고 불렀다.


“저 오늘 대통령 됐어요.”


나는 자켓 깃에 붙은 태극기 배지를 내보이며 말했다.


“아이고! 이게 뭔 일이래. 우리 아파트에서 나랏님이 다 나오고! 현수막이라도 크게 붙이고 잔치라도 열어야 하는 건 아닌가? 한 턱 쏴야지!”


오 영감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물론 비꼬는 말이었다.


“영감님, 놀리지 마세요. 군부 놈들이 종이 가져다주면 도장만 찍는 무보수직 대통령이 돈이 어디 있다고 쏴요. 아파트 관리소장이 더 벌걸요?”


나는 너털웃음을 지으면 받아쳤다.


“그것도 옛말이여! 지원 끊긴지가 언젠데.”


오 영감이 바로 옆 매점에 들어가면 궁시렁거렸다.

그는 퇴역군인으로 비각성자지만 공로를 인정 받아 국가 소유의 아파트 관리소장 자리에 임명됐다. 군인 출신이라 그런 건지 옷이 없는 건지 매일 개구리 군복 자켓을 걸치고 있었다. 매점경영권도 위탁받아 운영 중이다.

이렇게 말하면 대단한 자리라도 준 것 같지만 아파트 유지보수 등 잡일을 모두 도맡아 하는 수위에 불과하다.


“뭐, 비각성자면 이 정도 일자리도 감지덕지긴 하지.”


“사내놈이 뭐라고 중얼중얼 거려.”


오 영감이 무언가 주섬주섬 들고 나오며 말했다.

식빵 한 봉지였다.


“대단한 거 줄 건 없고 이거라도 먹어.”


이를 훤히 드러내면 웃었다.

일흔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튼튼하고 가지런해 보이는 치아였다.


“아니, 뭘 이런 걸... 영감님이나 드시지.”


말과는 반대로 내 손은 식빵으로 향했다.


“대통령 된 기념으로다가 주는 마지막 선물이여!”


“맨날 마지막이라고 하시면서...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계단을 올랐다.

집은 9층이었지만 한참 전에 엘레베이터가 고장 난 탓에 계단을 사용해야했다.

엘리베이터가 자주 고장 나는 탓에 계단을 오르는 게 익숙해져 한달음에 올라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좁은 원룸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마찬가지로 도배가 되지 않은 콘크리트 그대로에 벽과 천장.

옛날에는, 그러니까 게이트가 열리기 전에는 노출 콘크리트라는 공법이 유행한 적이 있다고 책에서 본 적이 있다. 팔자 좋은 세상이었다.

안 그래도 좁은데 콘크리트의 잿빛은 들어온 이로 하여금 숨이 턱 막히게 했다.

실제로도 콘크리트 벽 마감을 안 해서 항상 돌가루가 날려 숨쉬기 어려웠다.


손을 씻으려 욕실로 들어가 수도꼭지를 틀었지만 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또 단수인가.

놀랍지도 당황스럽지도 않았다.

냉장고로 가 생수 하나를 꺼냈다.


전기는 안 나가서 다행이군.


목을 축이고 손에 조금 부어 손을 씻었다.

창밖에는 노을이 지고 있었다.


노을이 잘 보인다는 점, 내가 이 아파트에서 유일하게 좋아하는 구석이다.

의자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며 라디오를 켰다.

폰으로도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볼 순 있지만 폰을 구하기 어려워 대부분 주요 뉴스는 라디오를 통해 전파된다.

뉴스는 김 위원장을 칭송하는 소식으로 시작한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알려드립니다. 2053년 5월 4일 현재 몬스터 서울 1, 부산 0, 인천 0, 대전 0···.”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대한민국 하루 평균 몬스터 출현 수는 100~200마리 정도다.


“···전국 1입니다.”


그렇다면 아까 본 웨어울프가 오늘 대한민국에 나타난 유일한 몬스터라는 말이다.

책장에서 연락망이라고 적힌 종이를 찾아 훑어봤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전화기를 들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 받아서 계속해서 걸었다.

네 번째에 받았다.


“여보세요?”


본부장 목소리 뒤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 대통령 된 김대영이라고 합니다.”


“아아, 본부장입니다. 축하드립니다.”


본부장은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다름 아니라 오늘 몬스터가 대한민국에서 한 마리 나타난 게 맞습니까?”


“네. 저희도 이상해서 알아보고 있는데 미국, 일본, 중국··· 전 세계적으로 몬스터가 한 마리도 안 나왔다네요?”


“그럼 게이트는···.”


“게이트도 열린 곳이 하나도··· 뭐? 비보위에서? 김태영 씨. 제가 바빠서 다음에···.”


뚝.


···내 이름은 김대영이다.


인류를 수십 년 간 매일같이 괴롭힌 몬스터가 오늘은 딸랑 한 마리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나왔다?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다.

게이트가 닫힌 건가? 속단하긴 이르다.


오 영감님이 주신 식빵 한 조각으로 저녁을 대충 해결하고 평소처럼 달리기위해 다시 집을 나섰다.

매점에는 오 영감이 빗자루질을 하고 있었다.


“또 뜀박질하려 가는겨?”


“아, 네. 식빵 잘 먹었습니다.”


“비각성자가 암만 날고 기어봤자 각성자 발톱 떼만큼도 못 따라가는데 맨날 운동은 해서 뭣 하는가?”


“···혹시 모르죠.”


“모르긴 뭘 몰러. 각성하기라도 기대하는 건가? 자네나 나나 각성하긴 늦었어. 그런 기대는 하덜 말아!”


오 영감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호통쳤다.


“저도 각성의 꿈은 접은 지 오래입니다. 암튼 어르신 만수무강 하십쇼. 좋은 날이 올지도 모르니.”


가볍게 목례를 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좋은 날은 개뿔이···.”


뒤로 오 영감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노을이 채 지지 않은 한강변을 따라 달렸다,

엘리트 각성자로 구성된 수방사가 서울을 지키기 때문에 몬스터가 서울 한복판에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다고 한강을 뛰어다니는 미친놈은 나밖에 없다. 몬스터가 안 나오는 건 아니니까.

달리기로 땀을 쫙 빼고 공터에서 팔굽혀펴기와 턱걸이로 근력운동을 마친 뒤 집으로 돌아갔다.

다행히도 물이 다시 나와 샤워를 했다.

낡은 소파에 앉아 책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지만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았다.


만약 이대로 게이트가 닫히게 된다면···.


소파 옆 자물쇠가 달린 서랍장을 열었다.

거기에는 권총 하나가 외로이 놓여있었다.


···.

···.

···.


한참을 바라보고 다시 서랍을 닫았다.


···.

···.

···.


따르르릉!


전화 벨소리가 나를 깨웠다.

나도 모르게 잠이든 모양이다.


변기석이었다.


“네. 사령관님.”


“대영아, 빨리 빨리 안 받냐? 대통령 됐다고 이러기야?”


대통령 얘기를 언제까지 우려먹으려고···.


“죄송합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시간을 보니 자정이 넘어있었다.


“얼른 따까리를 뽑아야하는데··· 나 좀 집에 데려다 줘라! 내가 하려고 했는데··· 어우··· 너무 많이 마셔서.”


전화기 너머로 술 냄새가 전해져 오는 거 같은 목소리였다.

분명 내가 대기하겠다고 했을 때는 됐다고 가라고 해놓고 이럴 줄 알았다.


“똥개 훈련 시켜서 미안하다! 근데 너 똥개 맞잖아? 키킥킥. 얼른 와라잉!”


속마음을 읽었는지 변기석이 비아냥대고는 전화를 끊었다.

벗어놓았던 정장을 입고 차를 몰고 평창동으로 달렸다.

그나마 평창동까지는 내부순환로라는 멀쩡한 도로가 있어서 금방 갔다.


*


“대통령 오셨구만! 위원장님. 이놈이 김대영입니다.”


도착해보니 변기석과 무리들은 얼큰하게 취해마당에서 추태를 부리고 있었다.

중심에는 김석태 비보위 위원장이 서있었다.


“그래? 수고가 많네.”


김석태는 나를 흘겨보고는 관우 같은 수염을 매만졌다.

우리나라 최고의 실세치고는 위엄을 찾아볼 수 없는 옹졸한 얼굴이었다.

그걸 가리기 위해 수염을 기른 듯 했다.


김석태에게 고개를 숙이고 모인 면면들을 봤다.


각 군 참모총장, 비보위 위원들, 그 외 별들···.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실세들, 각성자들이었다.

나 포함 아무 힘도 없는 비각성자인 국회의원이나 국무위원들은 이 자리에 낄 수도 없다.

실세들이라고는 하지만 각성하지 않은 지금 이들은 그저 술 배 나온 중년 남성들이었다.


“어이! 변기석이! 니 똘마니 대통령에 심어놓고··· 좋냐?”


얼마 전 각성자군사관학교장 정교신 중장이었다. 변기석보다 선배지만 권력 투쟁에서 밀려 한직으로 밀려나 변기석을 싫어하는 배 나온 인간중 하나였다.


“정 선배. 기분 좋은 날 왜 또 꼬장입니까, 꼬장은. 술 맛있게 자셨으면 발 닦고 가서 잠이나 주무십쇼. 교장선생님이 이러시면 사관학교학도들이 뭘 보고 배우겠습니까? 교장선생님이!”


변기석이 ‘교장선생님이’의 ‘님이’를 강조하며 말했다.


“뭐 이 새끼야? 니미? 너 임마 수방사 가더니 선배고 뭐고 눈에 뵈는 게 없냐?”


정교신은 벗겨진 머리까지 붉어질 정도로 소리쳤다.


“선배고 뭐고 우린 실력 위주인 거 몰라요? 선배가 딸린 게 내 책임이야? 왜 맨날 나한테 지랄이야!”


둘이 싸우는 동안 술에 취해 흥겨웠던 분위기는 싸해졌다.


“말 다했어? 딸려? 내가? 누가 더 센지 함 붙어봐?”


“좋지. 덤벼!”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전투 준비 자세를 취했다.


“그만들 하게! 위원장님도 계시는데!”


무리 중 누군가 소리쳤다.


“아니, 재밌겠는데. 한번 겨뤄보게. 단 내 집이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만.”


김석태 위원장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위원장 한 마디에 무리가 환호성을 질렀다.


“싸워라! 싸워라! 싸워라!”


이 모습을 사회 지도층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디 시골 투견꾼들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도 같이 외쳤다.


“싸워라! 싸워라! 싸워라!”


“걱정마십쇼, 위원장님. 이 새끼 한 주먹거리에 끝내겠습니다.”


변기석이 이죽거리며 말했다.


“뭣!?”


정교신이 소리치며 변기석에게 달려들었다.

변기석도 그대로 정교신에게 달려들었다.

둘은 그대로 서로를 안았다.


“뭐야?”


군중이 웅성거렸다.


“둘이 뭐합니까? 그 상태로 싸우게?”


무리 중 하나가 말했다.

둘은 어리둥절해하며 동시에 서로를 쳐다봤다.


“뭐야··· 왜 힘이···.”


둘은 튀어나온 뱃살을 맞대고 있었다.


“장난치지 말고 얼른 싸워!”


“장난이 아니고 정말로 힘이···.”


둘은 서로에게 떨어져 계속해서 각성을 해보려했지만 변화는 전혀 없었다.


“우우우우!”


군중의 환호성은 바로 야유로 바뀌었다.

오늘 하루 몬스터가 전세계에서 한 마리 나온 것도 모자라 각성자들이 각성을 못한다?

술에 취해서 일수도 있지만 변기석은 아무리 만취해도 각성하여 최상급 몬스터를 손쉽게 제압하는 실력자였다.

아니 애초에 연중무휴 술에 취해 있는 인간이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조용한 곳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김대영 씨 맞으십니까?”


“네, 그런데요.”


“여기 고려요양병원인데요. 이숙자님이 방금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가요?”


“네. 찾아가세요.”


상대는 택배라도 찾아가라는 듯 사무적으로 말했다.


“아니 어쩌다가···.”


“평소 앓고 있던 지병 때문이죠.”


그건 나도 안다. 그 지병을 고치기 위해 변기석의 개로 살며 어머니를 서울로 모시게 해달라는 부탁을 계속 했던 것이다.


“제 말은 위독하시면 저한테 미리 말 좀···.”


“아무튼 이틀 안에 오세요.”


내 말을 자르고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전화를 끊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사람들의 야유 소리가 머릿속에 웅웅거렸다.


“뭘 멍 때리고 있어! 가지.”


그 사이로 변기석의 말이 들려왔다.

각성을 못 하자 정교신을 뒤로하고 황급히 날 찾아 재촉했다.

정교신도 당황한 건 마찬가지로 변기석을 놔주고는 마지막 자존심으로 소리쳤다.


“너 일루 안와? 얼른 와! 덤벼!”


말과는 달리 정교신도 뒤로 주춤주춤 걸어갔다.


“사령관님.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뭐? 뭔 헛소리야?”


“방금 연락 받아서 지금 내려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허가 좀 내주시겠습니까?”


“에이 씨. 야, 뭘 중요한 일이라고. 지금 같은 시대에 죽는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유세냐? 저기 지방가면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어. 그리고 이미 죽었으면 천천히 가도 되잖아.”


“네?”


“대통령님이 사사로운 일에 왔다갔다하면 모양새도 좋지 않아요. 내일 술 깨면 얘기 해보자.”


변기석이 킥킥대며 말했다.


순간

머릿속에 무언가 끊어진 것 같았다.


“니가 진작에 일처리를 했으면 이런 일 없었잖아. 큰 병도 아니고 서울로 모시고 오면 치료할 수 있는 병을···.”


내가 중얼거렸다.


“뭐라고? 니가? 너 말 다 했냐?”


흑인도 아니고 ‘니가’라는 말에 흥분하는 놈에게 그대로 달려들어 놈을 자빠뜨렸다.

변기석은 중심을 잃고 주저앉았다.


변기석에게 올라타서 놈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고 또 때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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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서울로 진격 23.10.24 33 0 13쪽
8 계룡대 23.10.23 36 0 12쪽
7 군인들 23.10.22 42 0 12쪽
6 아기새들 23.10.21 45 0 13쪽
5 김석태 23.10.20 55 1 12쪽
4 두 가지 작전 23.10.19 61 2 12쪽
3 아서 리 +2 23.10.18 89 3 11쪽
» 변기석 23.10.18 83 1 13쪽
1 임기 첫날 게이트가 닫혔다 23.10.18 141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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