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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cal 님의 서재입니다.

거울 속으로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pascal
작품등록일 :
2023.10.23 10:19
최근연재일 :
2024.04.21 00:15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453
추천수 :
3
글자수 :
54,123

작성
24.03.05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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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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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3화

DUMMY

수철은 자신이 하는 말이 상당히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흐름에 자신을 맡겼다.


“예, 맞아요. 선생님. 어제까지 저는 무명이었어요. 이렇게 유명한 배우가 아니었다구요.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해야 될지 전혀 알 수 없어요.”


그녀는 울음이 터져나올 것만 같았다. 사실은 오늘 하루 내내 불안했다.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어느 것 하나도 없었고, 오히려 잘해주었다면 잘해주었으나, 그럼에도 불안했다. 알 수 없는 세계에 던져졌다는 것이 이런 기분이었다. 좋은 오피스텔에 있어도. 자신이 한 벌도 절대 살 수 없는 옷을 입고 있어도. 초고급 밴을 타고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어딘가에 기대고 있었으나, 차가운 가시 위에 있는 것처럼 몸이 긴장되었고, 두려웠고 떨렸다. 그녀의 손발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드디어 자신의 상황을 이해할만한 사람을 찾은 것이었다. 기꺼해야 한나절도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찾은 것이었다.


어떻게 생각해보자면 그녀는 운이 좋았다. 모든 것이 바뀌어버린 순간 이렇게 정신병원에 진료 및 상담을 받으러 올 일이 있다는 것이 말이다.


“음..저도 지금 매우 당황스러운 상황이긴 한데 일단적으로 하나씩 기본적인 것부터 확인해나가보도록 하죠.”


그녀는 잠시 아래쪽을 바라본 채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에 잠겨있던 수철이 어렵사리 결정하고 내뱉은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내뱉으려 했으나 말을 내뱉으면 울음이 조금이라도 섞여나올 것 같았다. 또 한 편으로는 긍정의 말을 어떻게 내뱉어야 할 지도 알 수 없었다. 어떻게 말을 하여야 내 말이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느껴질까. 높은 목소리. 낮은 목소리. 어떤 목소리. 그녀는 알 수 없었다. 오늘 하루 느낀 것만으로도 자신이 온세상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 말을 내뱉는다는 것이 어떤 정도의 두려움을 가져오는지 그녀는 이해했다. 그렇기에 지금 수철의 앞에서 자신의 이 말이 거부될까 두려운 것이었다.


“일단적으로 어제의 고아라씨와 오늘의 고아라씨는 외모적으로 일치하나요?”


“...네. 여러 바르는 게 달라졌긴 하지만. 얼굴이나 키나 머리카락 길이까지 제가 맞아요.”


“그러면. 기록적인 건 어떤가요? 나이라든가. 생일이라든가. 계좌번호라든가요.”


수철의 표정은 흥미롭다는 듯이 밝아졌다. 마치 수학문제를 풀고 있는 학생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런 것도 같아요. 심지어는 핸드폰 잠금화면 해제 키패턴도요. 아마 다른 것들도 웬만하면 같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떤가요? 어제의 아라씨가 있던 곳의 나라도 대한민국이고. 수도는 서울인가요? 그리고 그곳에서도 이렇게 만원짜리 지폐가 있고. 그 지폐에 세종대왕이 그려져있나요? 혹시 만원짜리에 신사임당이 그려져있진 않나요? 전 오만원자리에 세종대왕이 그려져있었으면 하는데.”


수철이 만원짜리를 펼쳐들었을때까지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는 신사임당이야기를 꺼내자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상했다.


“아, 농담한 거에요. 꽤 진심으로 아라씨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구요.”


“...네..”


“그럼..저도 확실히 말씀드릴게요. 원래 정신과의사로서 이렇게 하는 것은 실격이란 걸 먼저 말씀드릴게요.”


그녀는 수철의 말에 침을 삼켰다. 수철은 이전보다 훨씬 부드럽게 미소를 지은 채 말을 하고 있었으나, 그 말에 담긴 내용은 그리 말랑하기만 한 내용은 아니었다.


“내담자가 자유로이 말을 풀어내게 하는 것은 좋으나, 그것에 분리되지 않은 채로 흘러가는 것은 좋지 못하죠. 아니 옳지 못하죠. 또한 사적인 관계를 형성시키는 것은 절대적으로 옳지 못한 일이죠. 하지만 전 아라씨의 말을 믿어보기로 할게요. 사실 이거 되게 말이 안되는 거라구요.”


수철은 말이 안된다는 말을 하면서 웃어보였다. 하지만 그의 눈은 반짝였다.


“저한테는 고아라라는 TV에서 보던 여배우가 VIP 상담으로 와서는 ‘사실 저는 제가 아니에요.’ 라고 말하고 있는 꼴이니까요.”


정말 그랬다. 그녀도 무의식적으로는 그것을 생각했기에 남들한테 그 얘기를 안한 것이었다. 최소한 이곳이 그녀의 망상속 세계라든지, 아니면 꿈속이 아니라면. 문제가 있는 것은 자신이었고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맞았다. 무의식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였으나, 의식적으로 그 말이 꺼내지지는 않았었는데. 수철의 말을 듣고보니 정말 그러했다. 왜일까. 그녀는 궁금증이 들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생각했을 때 이 세계는 자신의 망상속 세계도 아니었고, 꿈속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어째서죠?”


“네?”


“제 말을 믿어주는 이유요. 사실 제 말을 믿을 이유가 없으시잖아요.”


그녀는 말을 하면서도 자신의 말이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이 다르긴 하지만. 물에 빠진 놈 건져놓으니까. 봇짐 내놓으라고 한다는 격이었다. 흔히 드라마에 나오는 장면이다. 사랑받고 싶어한다고 말하는 인물이. 마침 누군가 사랑해주자. 왜 날 사랑해주는거야! 하면서 자신을 꺼내주는. 그런 올바른 답을 바라면서 화를 내는 꼴이었다.


사람은 그렇다. 말을 믿어주는 것도중요하지만. 말을 믿어주는 이유도 중요하다. 자신을 도와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을 도와주는 이유도 중요하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을 사랑해주는 이유도 중요하다.


그녀는 그런 인물들을 보면서. 못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꼬이고 꼬여서. 베베 꼬여버려서는 그런 사람들. 말을 내뱉으면서 알았다. 그녀 자신이 그런 사람이란 것을 말이다.


“이유는 별 거 없어요. 제가 정신과의사가 아니기 때문이죠.”


“예?”


“정신과의사가 아니니까 내담자의 말을 믿어도, 휩쓸려도, 사적인 관계가 되어도 되는 거죠.”


“저...그러니까. 이게 무슨 소리인지..”


수철은 빙그레 미소짓고 있었다. 물론 수철이 미소짓는다고 해도 여전히 시니컬하고 까칠한 외모로 인해서 마냥 다정하고 부드러운 표정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녀는 사적인 관계라는 말이 거슬렸다. 사적인 관계가 되어도 된다면. 수철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애초에 수철은 이미 결혼했잖아 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했고. 그래서 더욱 거슬리는 말이었다. 만약 그녀의 생각이 닿는 곳이 수철의 의도라면 정말이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거슬리기만 하는 이유는 수철의 눈은 자신의 생각이 닿는 곳이 자신의 의도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수철의 눈은 그런 것에 아무 관심이 없어보였다.


“별 거 아닌 이야기에요. 저라는 뛰어난 정신과의사가 보니 아라씨는 정상이고. 아라씨는 정상이니. 제 환자가 아니고. 환자가 아니니 저는 정신과의사가 아니고. 저는 정신과의사가 아니니 아라씨의 말을 믿어도. 휩쓸려도, 사적인 관계가 되어도 된다는 거죠.”


“.....”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런 의사는 처음이었다. 물론 자신이 정신과의사를 경험해본 것은 아니었다. 정신병원에서 상담을 받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은 있으나, 방문해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러 책과 드라마, 영화를 통해서 알고 있었던. 혹은 상상했던. 머릿속으로 가늠해봤던 정신과의사는 이런 말을 내뱉는 사람은 아니었다.


“제가...정상이란 건가요?”


“예, 아라씨는 정상이에요. 그러니 아라씨의 말을 믿는 거죠. 이제 정신질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정상인의 고민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는 거죠. 아. 그 어제의 세계에 대해서도 해결책을 한 번 찾아보구요.”


수철의 말이 경망스럽지는 않았으나 그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반대로 그녀는 조금은 울컥했다. 자신을 정상이라고 해주는 것은 분명 기분 좋은 일이었으나, 자신은 분명 어제까지의 자신이었다. 자신은 자신의 심리상태가 그리 안정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항상 불안감에 있었으며, 무언가에 쫓기는 기분이었다 .잠을 쉬이 이루지 못했으며, 항상 피곤에 시달렸다. 일을 함에 있어서도 완벽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배우 오디션이 아닌 카페에서도 쉽게 까칠해지곤 했다. 배우일에 대해서는 더욱이었다. 오디션을 보고 온 날이면. 며칠동안 오디션을 보는 날을 퇴고했고, 그 날로 돌아가서는 몇날며칠을 걸었다. 똑같은 풍경을 보며. 매번의 다른 말을 하는 자신. 다른 연기를 펼치는 자신을 상상하며 수없이 다른 미래를 걸었다. 물론 그 미래 중. 가장 잘 풀린 미래라고 해도 지금보다는 안 풀린 미래였겠으나 말이다.


정신병원을 생각했던 이유도. 자신 스스로 자신이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의 정신상태에 대해서 그녀 스스로 틈만 놓친다면 눈물이 나올 정도로, 걷다가도 왈칵 울음이 터질 수 있을 정도로 무너져있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수철의 정상이라는 말에 그녀는 조금 발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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