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붉은 달에 울려퍼지는 소나타

마음 속의 꽃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SF

적월소나타
작품등록일 :
2015.02.14 20:42
최근연재일 :
2017.09.18 22:23
연재수 :
50 회
조회수 :
16,983
추천수 :
153
글자수 :
216,896

작성
15.03.02 03:04
조회
434
추천
3
글자
11쪽

7. 어긋나다 (5)

Deep Forgotten




DUMMY

"왜 대답이 없어?"

또다시 시실리아의 귀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떡하면 좋지? 사라는 지금 자신이 뭘 해야되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이유를 알았다고 해서 해결책까지 생각해낸다고는 말할 수 없는 셈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지금 시실리아가 어떤 상태인가를 알았을 뿐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기억을 닫는 근본적인 원인조차 불투명한 상태였다. 물론, 대충 짐작이 아주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라는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하나는 자신과 같은 '실험체'였고 그들에 관한 끔찍한 기억을 잃어버린 기억 속에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무의식 적으로 그 말이 나왔을때 그것이 작용했을 가능성, 그리고 다른 하나는 에이미에게 끔찍한 일 - 사라는 죽음까지도 염두해 두고 있었다 - 이 벌어질까봐 너무나도 생각하기 두려워서 그것이 발동했을 가능성.

'초록빛 정원으로 데려가볼까?'

사라는 그녀 자신도 그곳에서 어느정도 감성을 되찾은 사실을 알고 있다. 혹시 시실리아도 그런 영향을 받지 않을까? 하지만 그곳은 에이미도 같이 행복한 시간을 보낸 곳이다. 만일 두가지 가능성 중에 후자 쪽이라면 시실리아의 기억은 더욱 굳게 닫힐 수도 있으리라. 그리고 아직 에이미에 대한 그들의 감시하는 지의 여부가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다. 섣불리 갔다가는 시실리아 조차도 그들의 감시망에 끌어들이는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에도 그것만큼은 피해야 했다.

그녀의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파오기 시작했다. 역시 '이런' 몸으로 너무나 깊은 생각을 하는 것은 무리였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한계 이상으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머리를 사용했다. 그녀는 기본에 충실하기로 했다.

'에이, 모르겠다. 일단, 시실리아를 데리고 병원에 가보자.'

사라는 활짝 웃으며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말했다.

"시실리아, 우리 병원 같이 가지 않을래? 거기 가면 맛있는 거 사줄게."

"와, 정말? 고마워!"

사라는 왠지 이런 생각을 하기는 죽어도 싫었지만 자신이 시실리아의 엄마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병원에 들어서자 시실리아는 처음 여기에 와본 것도 아닌데 마냥 어린 아이처럼 신나 있었다. 물론, 지금 8살이란 나이도 어린아이라고 봐도 큰 무리는 없었지만 말이다. 그녀는 병원 내의 이것저것 시설들을 보며 왁자지껄 질문 폭탄을 던져댔다.

"사라, 저걸 봐! 저건 뭘까? 선생님이 말씀해주신 것 같은데 기억이 안나! 저것두 신기해! 마치 전자 칠판이 붙어있는 것 같잖아. 우웅, 너두 저게 뭔지 궁금하지 않니? 그리고 말야."

사라는 자신이 처음 '초록빛 정원'으로 갔을 때 복도를 걷는 에이미와 시실리아를 보면서 생각했던 고민을 다시 되풀이하고 있었다. 아니, 지금의 시실리아에 비한다면 차라리 그때가 훨씬 점잖아 보이기까지 했다. 정말로 병원을 걸어다니는 내내 시실리아의 말은 끊어지는 틈조차 없었다. 그냥 뭐가 하나 보이면 계속 눈에 보이는대로 말이 술술 튀어나오는가 보다 싶었다. 아무래도 그녀는 기억을 닫으면서 '말 못해서 죽은 유령'이 달라붙은 것 같다. 그녀는 진심으로 바깥세계에서 했던 기도를 처음으로 마음속에서 중얼거렸다.

'아, 하느님! 제발 부디 저 가엾은 아이의 입을 잠시 동안만이라도 막아주세요.'

놀랍게도 얼마가지 않아 그 소원은 보기좋게 이루어졌다. 간호사의 말에 따라 에이미가 있다는 B-15 병실을 갔더니 시실리아가 입에 테이프를 붙인 것처럼 조용해졌던 것이다. 에이미는 생각돠는 달리 멀쩡했다. 벌써 정신이 들었는지 침대 위에 걸터 앉아 책까지 읽고 있었다. 그녀는 웃는 눈빛으로 시실리아를 보며 인사했다.

"안녕, 시실리아?"

사라는 그때 시실리아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바뀌는 변화를 마치 고속카메라처럼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순진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같은 눈빛이었는데, 에이미를 보고 눈동자가 급격하게 커지면서 놀란 표정을 짓더니, 그 후 무언가에 얻어맞은듯 반쯤 정신이 어디로 달아나버린 상태의 멍한 얼굴을 지었고, 그리고 무언가를 깨달은듯 '아' 하는 짧은 탄식 소리와 함께 기쁜 표정을 지었고, 그 후에 밝은 미소를 지으면서도 어딘가 슬퍼하는 것 같은 눈빛을 보였다. 시실리아는 불과 그 짧은 몇 초 안되는 시간에 순진한 아기에서 감성적인 소녀로 자라있었다.

"아, 에이미! 정말 난……."

시실리아는 너무나도 가슴이 벅찼는지 또박또박 말을 끊어가면서도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것 같았다. 겨우 심호흡을 몇 번 하고 난 후에 그녀가 이어서 말했다.

"지금 너가 이렇게 건강한게 기뻐서 견딜 수가 없어!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난 어둠속에 있었어. 정말이야, 난 너를 보기 전에 어떤 행동을 했는지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아. 난 끔찍한 어둠 속에서 기억이 잠긴 채 홀로 있었어. 그 기억을 가지고 바깥으로 나온다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말을 들을 것 같았거든. 마치 나의 몸 그 자체가 그것을 느끼고 위험하다고 말해주고 있었어. 그래, 나는 느낄 수 있었어. 어쩌면 내 정신이 산산조각이 날 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난 사라가 해준 말들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 하지만, 그랬던게 다행일거야. 그 말은 틀림없이 나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끔찍한 말일거야. 사라, 지금 나한테 절대로 말해주지 말아줘, 아니 앞으로도 영원히 말해주지 않았으면 좋겠어. 좀 이상한 말이지만 나는 '나'였으면 좋겠어. 다른 '나'가 되고 싶지는 않아. 아까 나는 진짜 '나'가 아니었어. 마치 나는 그것을 지켜보기만 했고 그저 내 몸이 저절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같았어.

맞아, 나는 지금 사라가 '세리'일 때의 기분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아. 그것은 결코 좋은 기분이 아니야. 아마, 사라도 그렇게 생각할거야. 말하지 않아도 아는 걸? 사라의 표정에 정말로 그렇다고 써있는 것 같아."

시실리아는 고개를 돌려 이번엔 사라를 쳐다보며 말했다. 사라는 그녀의 볼이 사과처럼 빨개졌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아챘다.

"사라, 정말로 미안해. 내가 그렇게 변했으니까 아마 많이 피곤하고 힘들었을 거야. 지금도 내가 그렇게 말을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아. 너무나도 부끄러워서 얼굴이 화끈거려. 이해해 줄 수 있지? 난, 그럴거라고 믿어. 물론, 사라는 겉으로 보기에는 조금 차갑고 거칠고 무심한 것 같아. 하지만 나는 그 속마음은 다르다고 믿어. 그 속은 분명 따뜻하고 부드럽고 밝은 마음으로 가득 채워져 있을 거야.

그리고, 정말 고마워. 사라가 날 여기로 데려오지 않았다면 난 평생 어둠 속에 기억이 갇힌 채 살아갔을 거야. 나는 어제 마음 속에 나 자신도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안고 있었어. 이제서야 그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아. 그건 바로 '어두운' 마음이었어. 이제껏 별로 갖지 못했던 나쁘고 비틀어진 마음이 있었던 거야. 에이미에게 무슨 일이 있었다는 생각을 버리고 자신에게 좋은 생각만 하고 싶었던 못된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

사라는 분명 그렇기 때문에 나의 뺨을 때린 거야. 나의 그 마음을 착하게 만들기 위해서 말이지. 오, 에이미! 그렇게 걱정되는 표정을 할 정도로 심각한 일은 아니야.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지금은 오히려 사라에게 고마워 하고 있는 걸. 이건 정말이야."

"음, 그건 그렇고. 에이미, 몸 상태는 어때?"

사라는 반듯하게 그녀의 말을 잘라버리고 말했다. 아무래도 시실리아는 그때 순진했던 아기나 지금 꿈꾸는 듯한 눈빛을 하고 있는 소녀나 한가지 공통점은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하느님조차도 겨우 몇 초동안 억제할 수 있었던 그녀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이었다. 더이상 듣다가는 시실리아의 상상과 감성이 가득 담긴 말로 제대로 에이미와 말도 나누지 못하고 병문안 시간이 끝날게 불보듯 뻔했으리라. 에이미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응, 지금은 괜찮아. 건강감독관님께서도 그렇게 큰 문제는 없다고 하셨어. 다만, 1주일 동안은 이곳에서 지내게 될 것 같아. 난 그게 조금 아쉽지만 괜찮아. 시실리아와 사라가 매일마다 여기에 와주면 난 너무나도 행복할거야."

"물론 그렇게 할거야! 학교에서 너를 보는 건 조금 - 아쉽지만, 그래도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야. 너가 무사하다면 일주일 - 정도 쯤이야 얼마든지 버틸 수 있어!"

시실리아는 무리하게 두 팔을 구부렸다 폈다하며 씩씩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에이미의 입술과 눈빛이 살짝 떨렸다. 너무 순간적이어서 시실리아는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만 또다른 '잿빛'의 두 눈동자는 그것을 확실히 지켜봤다. 사라는 무언가 결심한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자, 좀 이르긴 하지만 이제 저녁먹을 준비도 해야하니 그만 가봐야 겠어. 시실리아도 갈 시간이지 않니?"

"음, 그래야 할 것 같아."

시실리아는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 내일 소중한 에이미를 다시 만날 수 있지만 얼마나 아쉽겠는가!

에이미와 시실리아의 따뜻한 작별인사가 끝나고 그녀와 사라는 어느새 병동을 나와 어느 복도를 걷고 있었다. 사라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듯이 말했다.

"아, 그러고보니 선생님이 에이미에게 전달해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어. 먼저 갈 수 있겠니?"

"응, 그렇게 할게. 내일 봐!"

다행히도 시실리아는 쿨하게 묻지 않고 밝게 웃으며 말하고는 성큼성큼 날아가듯이 걸어가버렸다. 사라는 그것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다급히 에이미가 있는 병실로 뛰어갔다. 이제 병문안 할 수 있는 시간이 몇 분 밖에 남지 않았다.

콰당

급한 마음에 걸어가다 맞은 편으로 달려오던 간호사와 부딪혀서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사라의 엉덩이 쪽이 아픔으로 저려왔다. 펑펑 울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입을 앙다물고 참았다. 그녀는 '얘야, 괜찮니?'하고 물어보는 예쁘장한 간호사의 말을 무시하고 달리던 방향으로 복도를 다시 질주했다.

마침내 위에 걸려있는 B-15라는 팻말이 저 멀리서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고 문을 거칠게 활짝 열었다. 고르지 못한 사라의 숨소리가 방 안에 고요하게 울려퍼졌다. 그곳에는 아까 전까지의 밝고 웃기만 한 소녀는 온데간데 없고 뭔가 어둡고 깊은 슬픔에 잠겨있는 듯한 눈을 가진 에이미가 지긋이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여러분의 댓글 하나하나가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모든 비평과 감상 환영합니다!


작가의말

뭐죠? 이 중2병같은 인물들의 행동과 말은... 제가 무슨 약을 잘못먹었나 봅니다. 물론 시실리아나 사라가 중2병같다고 말하는 건 아니지만 저는 결코 이런 것을 유도한 건 아닙니다. 동화같은 이야기를 쓰고자 했는데 점점 취지가 산으로 가네요. 정신차리고 동화의 초심으로 다음 편을 써야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마음 속의 꽃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마음 속의 꽃을 리메이크 할 생각입니다. 17.09.18 92 0 -
공지 공지 : 휴재 관련 15.04.26 182 0 -
공지 모든 궁금증을 해결해 드립니다! 15.02.15 545 0 -
50 (Re) 프롤로그 17.09.18 94 0 8쪽
49 12. 딥 포가튼 (1) 15.03.23 473 1 8쪽
48 11. 꺼지지 않는 빛 (5) 15.03.18 466 0 15쪽
47 11. 꺼지지 않는 빛 (4) 15.03.16 393 0 8쪽
46 11. 꺼지지 않는 빛 (3) 15.03.15 424 1 8쪽
45 11. 꺼지지 않는 빛 (2) 15.03.14 555 1 8쪽
44 11. 꺼지지 않는 빛 (1) 15.03.13 489 1 9쪽
43 10. 콜드 부트 (3) 15.03.12 525 2 8쪽
42 10. 콜드 부트 (2) 15.03.11 586 3 10쪽
41 10. 콜드 부트 (1) 15.03.09 497 3 8쪽
40 9. 남겨진 마음 (3) 15.03.09 455 3 18쪽
39 9. 남겨진 마음 (2) 15.03.07 414 3 9쪽
38 9. 남겨진 마음 (1) 15.03.07 467 6 13쪽
37 8. 말할 수 없는 것 (4) 15.03.06 694 6 9쪽
36 8. 말할 수 없는 것 (3) 15.03.05 411 3 11쪽
35 8. 말할 수 없는 것 (2) 15.03.05 396 3 9쪽
34 8. 말할 수 없는 것 (1) 15.03.03 341 3 8쪽
33 7. 어긋나다 (6) 15.03.02 440 3 10쪽
» 7. 어긋나다 (5) 15.03.02 435 3 11쪽
31 7. 어긋나다 (4) 15.03.01 403 3 8쪽
30 7. 어긋나다 (3) 15.02.28 393 3 9쪽
29 7. 어긋나다 (2) 15.02.28 412 4 10쪽
28 7. 어긋나다 (1) 15.02.28 316 3 10쪽
27 6. 빛과 어둠 (3) 15.02.27 412 4 18쪽
26 6. 빛과 어둠 (2) 15.02.27 527 4 9쪽
25 6. 빛과 어둠 (1) 15.02.26 401 3 9쪽
24 5. 전학생 (4) 15.02.26 392 3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