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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커피 님의 서재입니다.

도시 던전: 도시의 까마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노란커피
작품등록일 :
2019.04.01 12:34
최근연재일 :
2019.06.29 23:35
연재수 :
6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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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25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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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24. 병문안

DUMMY

24. 병문안




“제 말이 맞죠? 용해액 농도가 너무 높다니까.”


벤자민이 미간을 찌푸리고 한손에 서판을 든 채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해럴드가 짜증스럽게 대답했다.


“제발 좀......! 그냥 내버려 둘 순 없나?”


해럴드는 그렇게 말하고는 용해액을 거름망에 비워 설탕 가루와 약초 원액을 분리시켰다.

마법 캔디는 대개 여러 조합의 약초 원액에 설탕, 그리고 마법 주문을 뒤섞어 만들었는데, 언뜻 보면 간단하게 보였으나, 약초의 조합과 주문에 의해 효과가 천차만별 차이가 나 자세히 파고들면 꽤나 어렵고 세심한 작업이었다.

그래서 이론만 빠삭한 벤자민은 현재 직접 작업 중인 해럴드와 적잖이 마찰을 빚고 있었다.

해럴드가 지팡이를 휘둘러 용해액을 제거한 후, 간신히 분리시킨 약초 원액을 특수 용기에 넣으며 제법 진지하게 물었다.


“............혹시 잠시 나갈 생각 없나?”


용해액으로 마법 캔디를 1차 분류하는 데만 서른 번 가량(서른 번 이후부터는 세는 걸 포기했다) 실패해서인지 그는 매우 피곤해 보였다.

벤자민이 해럴드를 똑바로 보며 되물었다.


“여기가 제 집인데, 어딜 갑니까?”


작업 공간은 마법 기구들이 있는 벤자민의 집으로 택했는데,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1층 거실과 식사 장소를 통째로 덜어낸 탓에 가구와 모든 짐이 침실과 창고에 다 때려 박혀진 상태였다.

해럴드가 잠시 고민하더니 생각했다.


“어디든...... 내가 잠시 안 보이는데. 단, 1시간이라도 아니면 1년 정도나.”


벤자민이 눈을 가늘게 뜨며 따지듯이 물었다.


“진심이에요? 제가 안 도와줬으면 아직도 ‘1차 분리’ 하고 있었을걸요?”


“자네가 안 도와줘도 할 수 있었어. 내가 다 했는데 자네가 때마침 도와준 거지.”


해럴드는 잠이 부족한 사람 특유의 불안과 과민성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잠이 부족하기도 했고.

마스터인 존의 허락을 받고 벤자민과 해럴드는 며칠째 하프 캔디만 분석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어려워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죽도록 실험만 하고 있었다. 마치 학창 시절 같았다, 그래서 벤자민은 눈에 보이는 걸 전부 다 죽여 버리고 싶을 심정이었다. (농담이 아니다)


“장난쳐요? 그건 열 번 실패하기 전에나 먹히던 말이죠. 서른 번이나 실패하고 제가 참여하니 고작 3번 만에 성공했잖아요. 누구 덕인 거 같아요?”


같은 마법사라는 동질감 때문인지(벤자민은 마법을 못 쓰지만), 아니면 며칠 동안 같은 지붕 아래에서 있었던 탓인지. 벤자민과 해럴드의 사이가 급격히 허물어져, 사사건건 유치한 말싸움을 일삼았는데, 할 수만 있다면 허물어진 벽을 다시 세우고 싶은 심정이었다. 가급적 높이, 하늘에 닿을 정도로 말이다.


“대현자 납시셨군. 그럼 자네가 주문 외우고 다 하지 그러나? 이 캔디에 들어간 주문은 매우 민감하고 세심해서 조심히 다뤄야 돼.”


“제가 그래서 도와주고 있잖아요.”


해럴드가 무엇인가 말하려다 말고 한참을 고민하더니. 세상 모든 근심을 토해내듯 한숨을 뱉으며 말했다.


“좀 자야겠어....... 내가 진짜 사고 치기 전에.”


벤자민도 현기증을 느끼며 동의의 뜻을 내비쳤다. 스트레스, 수면 부족, 초조함이 정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좋아요. 한숨 자고 다시 시작하죠.”


해럴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그럼, 어디 나가서 한 여섯 시간만 있다 와.”


“여긴 제집이라고요.”


“알아, 안다고...... 하지만 만약 같은 지붕에서 자고 있으면 내가 자다 말고 베개로 네 얼굴을 눌러버릴 것 같아서 그래. 부탁할게. 진심이야. 잠시 사라져줘.”


벤자민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해럴드를 보며 말했다.


“꼭 과거 제 룸메이트들처럼 말하네요.”


“나랑 마음이 통하겠구만! 특히 지금은! 나갈 거야 안 나갈 거야!”


폭발한 해럴드 목소리에 벤자민이 방어하듯 소리쳤다.


“나가서 뭐하라고요! 밤인데!”


“병원 가서 린이나 만나! 만나겠다고 해놓고 왜 며칠째 이 집에 틀어박혀있는 거야!”


“제 집이니까요!”


“나가!”


참다못한 해럴드가 결국 벤자민을 내쫓았고, 벤자민은 외투만 걸친 채 거리로 쫓겨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여름이 거의 다 지나가 슬슬 기온이 떨어졌는데, 그럼에도 햇살은 눈부시게 그지없었다. 잠깐, 햇살?


‘밤인 줄 알았는데.’ 벤자민이 아직 밝은 거리와 행인들을 보며 생각했다.


며칠 동안 집에 틀어박혀 실험과 연구만 하는 통에 시간 감각을 잃고 만 것인데, 다시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남들보다 더욱 불리한 벤자민은 다른 이들에 비해 배로 노력해야만 했는데, 시험 기간이나 과제가 쌓일 때쯤에는 밤새우는 것이 기본이었다. 덕분에 이론 성적은 우수한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종합적으로는 열등생이었다.

도대체 왜 자신이 그토록 노력했는지 새삼 의문을 가졌다. 그렇게나마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


‘집에선 쫓겨난 데다, 햇살은 눈부시고 과거 기억까지 새록새록 떠오르다니..... 최고구만.’


벤자민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제 여섯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한다 말인가? 그때, 해럴드의 외침이 들리는 것 같았다.


‘린을 만나러 가라고!’


부족한 수면 탓인지 벤자민은 당장 주저앉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미간과 관자놀이를 누르며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해갔다.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다가 결국 벤자민은 할 일을 정했다.


‘그래, 일단은 린을 만나러 가자.’


벤자민은 골치 아픈 일을 하나라도 빨리 처리한다는 심정으로 그리 결심했는데, 그 순간 어느 병원에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떠올랐다, 그래서 자기 집 문을 쾅쾅 두들기며 소리쳤다.


“린 병원 어딥니까?! 그리고 내 지갑도!”




결국, 벤자민은 자다 말고 일어난 해럴드에게 욕이란 욕을 다 먹고 간신히 지갑과 린이 입원해 있는 병원의 위치를 들을 수 있었다.


다행히 린이 머물고 있는 병원은 쓰레기 타운은 아닌, 모험가들의 거리에 있는 꽤 괜찮은 병동이었다. 가격하고 간호사들 복장만 빼면 문제없는 곳으로. (얼굴 외에는 옷과 장갑으로 전신을 가리고 있어, 무슨 고문실이나, 실험실을 연상케 하였다) 초콜릿을 병문안 선물로 사 온 벤자민은 접수계원에게 린이란 환자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았다.


당연히 시간을 아끼기 위해 팁을 챙겨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자 접수계원은 다른 이들보다 두 배 빠른 속도로 린이 어디 있는지 찾아줬다.

린이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단체 입원실로 대개 절반이 살아서 걸어 나가고, 나머지 절반은 죽어 실려 나가는 곳이었는데, 그래서 몇몇은 농담 삼아 50:50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단체 입원실은 언제나처럼 만원이었으며, 현재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숨이 넘어가기 직전의 환자들이 삼 분의 일 정도 차지하고 있었다.

끔찍하지 않은가? 그런데 더 끔찍한 사실은 이게 평소보다 나은 것이라는 거였다. 병원비마저 못 내면 병원 앞에 널브러진 다른 환자들처럼 쫓겨나야만 했다.


벤자민은 책장처럼 빽빽하게 나열된 환자들 틈바구니를 헤매다가 간신히 린을 찾을 수 있었다. 그녀는 얼굴 한쪽에 붕대를 하고, 다리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끔찍한 모습이기는 했지만, 양옆에 다리를 잃은 환자와 얼굴 전체에 붕대를 감은 환자가 있기에 비교적 나아 보였다.

벤자민이 린을 찾았을 때, 린도 벤자민을 알아봤는데, 그녀는 마치 불청객이라도 본 듯 미간을 찌푸렸다.


“여긴........... 왜 온 거야?”


벤자민은 이제 이런 태도에 내성이 생겼는지 덤덤하게 말했다.


“너 만나려고.”


“비웃어주기라도 하게?”


벤자민이 그녀의 허락도 없이 곁에 앉으며 말했다. 침상 간의 거리가 좁아 간신히 한명만 들어갈 공간을 허락됐다.


“내가 그 정도로 형편없는 녀석으로 보여?”


벤자민은 그렇게 대꾸하며 린의 부상을 다시 살펴보았다. 역시나 마음이 아팠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던전에서 사귄 몇 안 되는 친구였기에 말이다. 뭐, 고향에서라고 딱히 친구가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여하튼.

벤자민은 막상 만나자 할 말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아, 말 대신 초콜릿이 든 상자를 조심스레 내밀었다.


“초콜렛이야. 검은색에 달콤하고, 비싼 거지.”


린은 상자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윽고 열어 초콜릿 하나를 입에 넣으며 말했다.


“내가 여기 있는 줄은 어떻게 안 거야?”


“해럴드 씨가 이야기해 줬어. 너 다쳤고, 여기 있다고.”


“그 아저씨는 왜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는 거지?” 린이 못마땅하듯 말했다.


“퇴원하고 직접 물어봐. 몸은 어때? 많이 안 좋아?”


린이 되물었다.


“어때 보여?”


“많이 아파 보이는데.”


“그럼 왜 물어보는 건데?”


“보통 그게 예의라는 거니까.”


벤자민의 대답에 린이 한숨을 쉬었다.


“날 화병으로 죽일 생각으로 온 거야?”


벤자민이 사과했다.


“미안, 미안. 한동안 제대로 자지 못해서 말이 뇌를 거치지 않고 나오고 있거든. 이런 상태로 찾아오면 안 되는 거긴 한데......... 좀 바빠서.”


린이 까칠한 태도를 유지하며 말했다.


“안 바쁜 날이 있기나 했어? 이번에는 누구를 등쳐먹으려고?”


화가 날 법한 발언이었지만, 벤자민은 린의 부상 탓에 도통 화를 낼 수 없었다. 오히려 안쓰러웠는데, 그래서 한순간 고민에 빠졌다. 자신이 알아낸 사실을 이야기 해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 끝에 벤자민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궁금하면 이야기해 줄게. 대신 잠시 밖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 여긴 사람이 좀 많네.”


그러자 린이 대답했다,


“그럼 조금만 있다 와. 어차피 조금 있으면 입원비가 다 떨어질 테니.”


그러자 벤자민의 눈썹이 비대칭으로 찡그려졌다.


“돈이 다 떨어지다니............? 그동안 벌어 놓은 돈은 다 어디 썼는데?”


그 순간 린은 자신이 실수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민망한 듯 말을 뭉개며 말했다.


“그냥 .............필요한데 썼어.”


벤자민은 순간 열불이 뻗치듯 인상을 찡그렸다.


“그게 아니라 쓰레기들에게.......! 아니, 됐다. 이제 와서 무슨 상관이겠어.”


한순간이지만 어찌나 열이 뻗히던지 몽롱했던 정신이 퍼뜩 돌아왔다. 아무래도 이 녀석은 제 명에 못 살 듯싶었다. 그것도 남들 돕다가 말이다.


‘천국 1등 좌석을 맡겠군. 물론, 천국이 있다면 말이지.’


그런 벤자민의 태도에 린이 기분이 나쁜 듯 말했다.


“너한테 그런 이야기 들을 이유 없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야?”


벤자민과 린이 날 선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 늙은 간호사가 린의 침상으로 와 돈 이야기를 꺼냈다.


“환자분. 장부를 보니 앞으로 3일분 입원비밖에 안 남았는데, 빨리 납부해 드릴 것을 권해 드리죠. 하루라도 미납 시. 병원 원칙상 저희는......”


린이 뭐라 대답하기 전에 벤자민이 선수를 치며 말했다.


“입원비 드릴 테니. 그냥 가던 길 가세요.”


까칠한 벤자민의 말투에 늙은 간호사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벤자민을 노려봤지만, 며칠째 잠을 제대로 못 자 피곤에 찌든 벤자민의 눈과 마주치자 겁을 집어먹곤 그냥 가버렸다.


“난 도와 달-” 린이 뭐라고 말하려는 찰라. 벤자민이 손을 들어 보이며 말을 잘랐었다.


“알아, 알아. 도와 달라고 한 적 없는 거. 아니까 굳이 말하지 마. 안 그래도 피곤해.”


평소 벤자민답지 않은 태도에 린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슨 일 있어?”


벤자민은 일 이야기를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관두었다.


“별거 아니야....... 그보다 언제쯤 낫는데?”


“.............앞으로 한 달 정도. 좀 센 포션을 먹으면 단숨에 나을 텐데.”


벤자민이 말했다.


“치료비보다 더 비싸잖아? 더욱이 넌 약발도 잘 안 받을 테고. 그러니까 약은 작작 좀 먹어.”


린은 무시하듯 콧방귀를 꼈다. 린은 초콜릿을 하나 더 꺼내 먹었는데, 벤자민이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물었다.


“린, 나 하나만 물어봐도 돼?”


린이 고개를 무심하게 한쪽으로 까딱이며 동의의 뜻을 내비쳤고, 벤자민이 질문했다.


“난 변호사가 되고 얼마 있지 않아 널 찾아갔어. 알지? 무슨 명절이었는데 그건 기억이 잘 안 나네. 어쨌건 찾아갔는데........ 도대체 왜 날 쫓아낸 거야? 확실히 하자고, 먼저 쫓아낸 건 너였어.”


린은 갑자기 초콜릿을 우걱우걱 씹어 먹더니 말했다.


“네 변호사 선임이 누구였지? 롭 앤 포터?”


“토마스?” 벤자민이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대답을 들은 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 그 사람 밑에서 일 배우면서, 도와주기도 도와줬지?”


이번에 벤자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엄청 열심히 했지. 개인적으로 보람찬 시간이었어. 그게 왜?”


“혹시, 디욘 이라는 모험가 기억해?”


벤자민이 무엇인가 알겠다는 듯 살짝 미소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지. 한번 밑에서 일해 본 적도 있는데. 결코 잊을 수가 없지. 어떻게 잊겠어?”


“네가 변호사로 취직한 후, 토마스를 도와 녀석을 어떤 마법 회사의 실험용 모르모트로 넘긴 건 기억해?”


벤자민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는 듯 말했다.


“그것도 기억하고말고. 아주 합리적인 거래였어. 계약에 실패했고, 위약금도 못 내는데, 그럼 그거라도 해야지.”


벤자민의 덤덤한 태도와 무관하게 린의 표정은 돌처럼 굳었었다.


“녀석은 내 친구였어. 물론 아주 절친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린은 분노 탓인지 억울함 탓인지 목이 멨다. 그녀가 간신히 감정을 추스른 후, 다시 말했다.


“....... 네가 쓰레기라고 부르는 내 이웃들과 무식한 놈들이라고 하는 모험가들은 모두 이 도시에 착취당하는 불쌍한 사람이야. 열심히 일하지만. 함정과 불행에 빠져 쉽게 나락으로 떨어지지.”


평소의 벤자민이었다면 그냥 넘겼겠지만, 오늘만큼은 그럴 수가 없었다. 어쩌면 지쳐 자제력이나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것일지도 몰랐다.


“난 디욘과 네가 친구인 줄 몰랐어. 미안해. 그냥 우연히 마주치면 술이나 한잔씩 하는 사이인 줄 알았지. 모험가들은 전부 술을 같이 마시잖아.”


벤자민이 말을 끊고 어깨를 한번 으쓱인 뒤 말했다.


“근데, 한 가지 확실히 말하자면 네 친구 디욘은 실험용 쥐새끼로 팔려 가도 싼 놈이었다는 거야,”


벤자민의 말에 린의 표정이 험악하게 굳어졌다. 마치 얼굴에 침을 맞은 사람과도 같았다. 허나, 벤자민은 대화의 고삐를 놓치지 않고 쏘아대듯 물었다.


“넌 그 녀석에 대해 어떤 걸 알지?”


린이 선뜻 대답하지 못하자 벤이 말을 가로채며 말했다.


“기껏해야. 술집에서 어떤 술을 시키는지나 알겠지. 인정해. 술집에서는 꽤 매력적인 녀석인 거. 돈도 쓸 줄 알고, 잘생기기도 하지. 근데, 놈과 그 일행에 대해 너보다 잘 아는 나로서는 놈들이 아주 개자식이었다는 거야.”


벤자민이 그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녀석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값비싼 몬스터를 척척 잡는지 궁금해 본 적 없어? 알려줄까? 미끼를 쓰거든. 살아있는 미끼.”


“양이나 염소?” 린이 확실치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벤자민 고개를 저었다.


“그거보다 맛있는 거야. 살아있는 사람이거든.”


그러자 린은 보기 드물 정도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다들 주변에 대해 전부 아는 척을 하곤 했지만, 의외로 사람이란 주변에 무지한 법이었다.

이쯤에서 멈출까 하였지만 벤자민은 자제력을 잃고 마치 만담이라도 하듯 느긋한 태도로 마저 술술 이야기했다.


“어떻게 아냐고? 당연히 나도 몇 번 해봤거든. 왜 했냐고? 돈이 필요했거든. 랍의 푸줏간에 잘못 취직해 하루하루 소중한 시간을 헐값에 빼앗기고 있는데, 왜 돈이 필요하지 않겠어? 녀석이 날 보더니 돈이 궁하지 않냐고 물었지. 난 궁하다고 대답했고. 그러자 녀석은 제대로 된 설명도 하지 않고 날 성벽 밖으로 끌고 가더니. 대뜸 돼지 피를 뒤집어씌우고는 몬스터가 사는 굴에 밀어 넣었어. 산 미끼였지. 다행히 난 운이 좋은 편이라 도망쳐 살아남았는데. 목적을 달성한 놈들은 위험수당이다, 입막음 비용이다 뭐다 해 내게 돈 좀 쥐여 주고는 비웃으며 가버렸어. 물론 그 돈으로 도움을 받은 내가 이런 말 하긴 뭣하지만. 그 녀석은 개자식이었어..... 솔직히 말할까? 난 놈이 지독한 실험을 당하다 죽기를 간절히 빌어.”


린의 하얗게 질려버린 표정을 보아하니 정말 몰랐던 것 같은데, 아이의 동심을 짓밟은 거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진실은 원래 아픈 법인데.


“나 같은 경우는 그나마 나은 경우야. 빈민가 소년 가장이나 거지들도 몇몇 들고 갔는데, 당연히 살아서 나온 놈들보다 죽은 놈들이 많겠지? 상식적으로다가. 더 재밌는 점은 이런 짓을 하는 놈들이 생각보다 적지 않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 내가 디욘을 실험용 쥐새끼로 넘겨버린 것에 일말의 가책도 없다는 거야. 이해해?”


벤자민은 문병 왔다가 뭐 하는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이왕 입을 뗀 거 할 말은 다 해야 한다 생각으로 계속 입을 놀렸다.


“네가 날 혐오하는 거 어느 정도 이해해. 네가 보기엔 순진한 사람 속이는 것처럼 보이겠지. 하지만, 내 시야에서 보면 모험가를 비롯한 많은 이들도 적잖게 나쁜 놈으로 보인다는 거야. 혈관에 물을 쑤셔서 무게를 늘린다? 이건 상거래법 위반이지. 확실치도 않은데 멋대로 일을 받아 장비까지 날려 먹는 거? 이건 비양심적인 계약 불이행이고, 사전 정보를 제대로 주지 않고 상대방을 속이는 건? 사기죄지. 난 매일 이런 걸 봐. 내가 너에게 날 좋아해 달라고는 할 수 없지만. 최소한 날 함부로 재단하지는 말아줬으면 해. 난 열심히 살았거든.........이거, 아픈 사람 앞에서 헛소리만 했네. 이만 일어나 볼게.”


린이 혼란스러운 정신을 다잡고 벤자민을 붙잡으며 물었다.


“내게 왜 그런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하지 않은 거야?”


벤자민이 어깨를 으쓱였다.


“돈 받았다니까. 비밀 유지비라고. 난 약속은 지키자는 주의야.”


작가의말

드디어 시험이 끝마쳤습니다. 일단 오늘은 하나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체력이 더 이상........ 일요일까지 나머지 네편 올릴테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강과 먼지의 왕자도 올려야 하는데. 허허허허허허


늦었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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