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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비스1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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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이비스1
작품등록일 :
2020.02.21 00:18
최근연재일 :
2023.08.19 01:25
연재수 :
177 회
조회수 :
79,430
추천수 :
3,718
글자수 :
1,081,358

작성
21.03.26 19:06
조회
258
추천
11
글자
11쪽

2부 - 7. 컨테이너 (7)

DUMMY

한 손에 반짝이는 톱니바퀴를 움켜쥐고서 건들거리며 내 쪽으로 다가오는 건 바로 T4A였다.


T4A는 다른 한 손으로 선글라스를 치켜올리며 능글맞은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었다.


"여기로 다시 돌아올 줄 알았어요, 대니."


그러면서 날 보라는 듯 톱니바퀴를 들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암디디가 순순히 줬을 리는 없고, 결국 빼앗은 모양이구만. 별 시덥지 않은 거로 내기를 하고 그래?


나는 T4A가 던지는 톱니바퀴 하나를 잽싸게 받았다. 화물칸의 고요한 분위기를 깨트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건 대니 몫이에요. 모하비로 돌아가면 멋진 옷 한 벌 구해봐요. 지금 입은 걸로는 앰버도 센스가 없다고 할걸요?"


저 능글맞은 말에 기가 차서 그저 피식하고 웃을 수밖에. 선글라스와 낡은 가방 외에는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메몬에게 저런 말을 들을 줄이야.


"어디 갔다 왔어요?"


"다들 잘 있나 둘러보고 왔죠. 테니얼은 자기 방에, 앰버는 대니 방에서 문을 잠가놓고 있어요. 암디디는 내기에서 진 게 분한지 화기제어실에 틀어박혀 있구요."


T4A는 가만히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고는 별일 아니라는 듯, 상자 속 소녀를 가리키며 내게 물었다.


"대니는 저 안에 있는 인간과 사랑에 빠진 거죠?"


"뭘 보고 그렇게 생각해요?"


"저 상자를 처음 봤을 때 대니는 달려가서 저 여자 인간을 자세히 살폈잖아요."


"놀랐으니까 그랬죠. 사람이 들어 있었을 줄이야."


"하하, 나는 봤어요. 그때 대니의 동공이 커지고 숨이 살짝 가빠졌죠. 이성에 대해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건 호감의 표시죠. 예전에 다른 행성에서 바텐더로 일할 때 가게에 예쁜 누님이 계셨거든요? 가게에 오는 남자 손님마다 같은 반응을 보이곤 했죠."


"T4A가 얘기한 것처럼 그건 그냥 호감이잖아요, 사랑이 아니라."


"호감이 있긴 하군요?"


이런. 그만 나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재미있다는 듯 T4A는 낄낄대며 말을 이었다.


"아까 대니가 잘 때 잠깐 함교에 올라갔었어요. 그리고 로즈님에게도 물어봤죠."


"뭘요?"


"아까 대니의 반응을요. 그랬더니 로즈님이 그랬어요, 그건 인간들 사이에서 사랑이라고 불리는 감정이래요."


내 참... 이젠 로즈까지 거드는구만. 나는 한숨을 쉬며 이마로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얘네들한테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잠깐 생각하다가 곧 생각을 멈췄다. 또 괜히 놀림 받을 것 같아서 말이다.


"그래서 로즈님은 대니를 잘 관찰해보라고 말씀하셨어요. 사랑에 빠진 인간은 어떻게 하는지를 알고 싶다고요."


"로즈가 그랬다구요?"


"엇, 이건 말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내 물음에 T4A는 황급하게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 시늉을 하며 중얼거렸다. 그 바람에 T4A가 쥐고 있던 톱니바퀴 여럿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싸늘하고 쥐죽은 듯 조용한 화물칸 내에 경쾌하게 땡그랑거리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암디디에게서 힘겹게 얻어낸 톱니바퀴는 특별하고 값어치가 있다는 것 마냥 바닥에 옆드려서 허겁지겁 톱니바퀴를 줍던 T4A는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었다. 아직 그의 앞에 빙글거리며 돌아가는 톱니바퀴가 여럿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T4A는 갑자기 전원이라도 꺼진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서 앞에 놓인 금속 상자를 쳐다보았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그는 천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손가락을 들어 상자를 가리켰다.


나도 바닥에 엎드려서 T4A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상자의 아랫면은 바닥에서 살짝 떠 있었는데, 거기에서 무언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상자 쪽으로 가까이 기어가서 살펴보니 그건 연기였다. 수증기 같은 연기가 솔솔 바닥 면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뭐죠?"


내 물음에 T4A는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그때였다. 솔솔 흘러나오던 수증기가 갑자기 강렬하게 여러 줄기로 세차게 뿜어져 나왔다. 연기는 상자 주변을 가득 채웠다. 시야를 가리는 연기의 커튼 손에서 꼴사나운 춤을 추는 것처럼 양팔을 허우적거리던 나와 T4A는 연기가 걷히자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소녀를 가리고 있던 투명한 면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상자 속에 있던 소녀가 천천히 눈을 떴기 때문이었다.


소녀는 녹색이 살짝 섞인 깊은 푸른색으로 빛나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 눈은 몇 번 깜빡인 후 좌우로 움직여 나와 T4A를 자신에게 담았다.


소녀의 길고 가느다란 팔은 천천히 위로 들렸다. 팔에서부터 손가락 끝까지 이어지는 곡선은 우아하게 움직여 소녀의 코와 입을 가리고 있는 투명한 마스크를 떼어냈다.


무게가 없는 존재처럼, 아니면 지금 세렌티피티호 화물칸에 잠시 인공중력이 작용하지 않은 것처럼 소녀는 고운 드레스를 필요한 만큼만 움직이며 사뿐하게 화물칸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녀는 나보다 키가 약간 작았다. 바닥으로 내려와서 나와 T4A를 마주했을 때, 나와 T4A는 고개를 숙여 그녀와 눈을 맞추었다.


그 찰나의 순간이 마치 영원과도 같았다. 섬세한 아름다움과 고결함이 실체가 되어 현실에서 움직이고 있다면 바로 이런 느낌이겠지. 나는 나와 소녀를 둘러싼 시간이 아주 느리게 가는 것처럼, 그녀 움직임, 모습, 표정 하나하나를 생생하게 보고 있었다.


"여긴 어디죠?"


소녀는 약간은 멍한 표정으로 나와 T4A,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세렌티피티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마드모아젤. 이곳에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T4A는 소녀를 향해 몸을 숙이며 간드러진 목소리로 인사했다.


"클라비스호는 어떻게 되었죠?"


소녀는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맑고 힘이 있었지만, 질문이나 부탁이라기보다는 명령조에 가까운 어투였다.


"클라... 어, 클라비스호는... 저기... 그게 나빠서... 공격을 받았는데..."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당신을 태운 화물을 실었던 배는 운이 나쁘게도 제국군의 공격으로 파괴되었고, 우리가 당신을 구했다'는 간단한 것이었지만, 웬일인지 술에 취한 듯 혀가 꼬인 듯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잽싸게 T4A가 내 말을 정정해줬다.


"아가씨가 오르셨던 배는 잔악무도한 제국군에 의해 그만 불행한 일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럼 어떻게 나오게 된 거지...? 여기가 어디죠?"


소녀의 눈길은 다시 내게로 향했고, 나는 다시 어물거리며 입을 열었다.


"어, 여기 행성이... 그게..."


갑자기 머릿속이 백지가 된 느낌이었다. 분명히 아는데 바로 떠오르지 않는 그런 느낌. 이번에도 T4A가 내 말을 이었다.


"아가씨가 계신 곳은에아라는 행성 근처입니다."


에아라는 말을 듣자마자 소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희망에 차서 반짝거리며 빛났고, 그것을 보는 나마저 기분이 좋아지게 만들었다.


"그럼 빨리 슐레이만 대령에게로 데려다줘요!"


소녀는 내 팔을 붙잡으며 부탁했다. 그녀를 쳐다보고 있기만 해도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는데, 팔이 잡히자 몸이 마비되는 느낌이었다. 내가 입만 벙긋거리고 있자 이번에는 소녀의 시선이 T4A로 향했다. 그러자 T4A는 점잔을 빼며 대답했다.


"실례지만 저희 배에는 그런 분은 계시지 않습니다. 적어도 이 행성 주변에서는 그런 분은 찾을 수 없을 것 같군요. 근방 수만 킬로미터 내에서 살아있는 생명체란 저희뿐인 것 같으니 말입니다."


소녀는 T4A의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한두 발짝 뒷걸음을 쳤다. 뭔가를 생각하는 듯 미간을 좁히기를 수어 초... 곧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우리 둘에게 질문을 던졌다.


"잘못된 시간에 엉뚱한 장소에 있게 된 사람들은 누구죠?"


"글쎄요, 무례한 손님이겠죠?"


T4A는 별것 아니라는 듯 바로 대답했다. 내가 T4A가 대답하는 것을 말릴 틈도 없었다. 저런 엉뚱한 질문을 다짜고짜 던지는 이유는 뻔하지 않은가 - 올바른 대답을 하지 않으면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 뻔했다.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들어맞는 법 - 소녀 뒤편 상자에서 슉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몸을 피할 사이도 없이 그것은 재빠르게 튀어 올라 나와 T4A를 덮쳤다. 그것은 금속 재질의 얇은 줄이 얼기설기 엮인 그물이었다.


나는 몸을 비틀며 허리춤에 있는 총을 꺼내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물은 나와 T4A를 덮치자마자 숨이 막혀올 정도로 조여들었으니까. T4A와 한 덩어리가 되어서 화물칸 바닥에서 뒹굴 수 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소녀 뒤편 상자에서 묵직한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선체 내부 스캔 완료. 선내 생명체는 셋. 제압을 실시합니다."


곧이어 상자에서 바퀴가 달린 작은 물체 수십 개가 쏜살같이 튀어나왔다. 그중 몇은 화물칸 곳곳을 재빠르게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나머지 물체는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다 안다는 듯 화물칸 출입구 쪽을 향해 내달렸다.


낭패였다. 소녀에 시선이 빼앗겨서 그녀를 담아두던 상자가 어떤 위협이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상자에서 튀어나온 쥐새끼 같은 것이 뭔지는 몰라도 절대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님이 분명했다.


나는 크게 고함을 질렀다.


"로즈! 여기 화물칸에 이상이 발생했어요!"


내 반응에 소녀는 약간 움찔한 듯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은 듯, 나를 안쓰럽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녀가 짓는 표정의 의미를 난 알 수 있었다.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화물칸에 설치된 통신 설비는 이미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가씨, 도대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교양있는 현대인답게 서로 말로 해결할 수 있지 않겠어요? 특히나 아가씨처럼 아름답고 우아하신 분은 마음씨도 너그러울 거라고 생각되는데 말입니다."


지금 그물에 갇혀 있는 자기 처지를 제대로 이해를 하고 있는지 모르는지 T4A는 소녀를 향해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기가 찼지만 이내 말도 안 되는 희망이 생겨났다. T4A는 헛소리만 늘어놓는 것 같지만 어떻게든 상황을 타개했었으니까... 분명 뭔가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가씨, 우리 배가 어떤 배이고, 여기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게 되면 이런 식으로 하진 않았을 겁니다. 아직 아가씨나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고 뭘 할 수 있는지 모르잖아요? 서로가 위험할 수도 있으니 일단 말로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요?"


T4A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녀 뒤쪽의 금속 상자에서 또 다른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선체 외부 스캔 완료. 제국주의자의 플라우스트라 타입 셔틀이 발견되었습니다. 주의를 요합니다."


"어, 이런. 오해가 생긴 것 같은데..."


T4A는 뭔가 변명을 늘어놓으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상자에서 튀어나온 물체가 우리에게 다가와 뾰족한 무언가로 우리를 찔렀고, 온몸을 감싸는 찌릿한 느낌이 들자마자 의식을 잃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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