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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마을의 판타지 모험담

백열등이 점멸하는 밤

웹소설 > 일반연재 > 중·단편, 드라마

Toary
작품등록일 :
2023.06.30 21:00
최근연재일 :
2024.04.05 00:43
연재수 :
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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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수 :
20,083

작성
24.04.05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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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무림공적(4)

DUMMY

황보이문과 심검자의 검이 공중에서 부딪혔다.


두 사람이 강 너머에서 일곱여 합을 겨루었다.


그러나 문득 들려오는 소리에 두 사람의 이목이 다른 곳으로 끌렸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구슬프던지, 순간적으로나마 자리에 위치한 모두가 집중했다.


여자아이는 제 덩치보다 큰 중년의 몸을 끌고서 숲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때가 좋지 않지 않던가.


언가의 무사는 그대로 칼을 여아에게 내질렀다.


황보이문의 얼굴에는 격노가 그려졌다.


“무슨 짓이냐!”


황보이문이 말릴 래야 말릴 수 없이 검은 빠르게 여아의 허리를 꿰뚫었다.


“내게서 눈을 떼느냐!”


틈을 놓칠까 심검자의 검이 비집고 들어왔다.


황보이문은 세차게 검을 튕겨 올렸고, 그것은 곧장 패착으로 이어졌다.


횡으로 들어간 심검자의 참격이 핏줄기를 갈랐으니, 황보세가와 진주언가의 운명이 매듭지어졌다.


힘겹게 몸을 지탱하는 황보이문에게 황보가와 천각문의 무사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반대로 언가의 무사들에게는 승리의 미소가 그려졌다.


“하늘이, 무섭지도 않던가···.”


황보이문은 매섭게 눈을 뜨고서 심검자를 노려보았다.


이윽고 묻는다.


“선생께 하나 묻고자 하니, 부디 답해주시오.”


“뭔가?”


“어째서 무고한 이도 마다하지 않고 죽이려는 것을 방조하십니까···.”


“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내가 언가에게 받은 부탁은 너와 네 아비의 목숨줄을 끊어내는 것이었다.”


황보이문은 천천히 앉을만한 자리를 찾았다.


처음 심검자가 앉아있었던 바위에 다가가 기대어 앉는 황보이문.


“이다지도 허망하게 죽는가. 선조들께 뵐 낯이 없구나. 선생, 하나만 부탁합시다.”


심검자는 고개를 까닥였다.


“저들을 모조리 죽일 것이오?”


황보이문이 무사들을 가리켰다.


“그 또한 내 일이 아니다. 부탁이라 하지 않았나?”


“그렇소. 하나만, 딱 하나만 부탁합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저들을 다 못살려도 좋소. 딱 한 명만 살려주시오. 딱 한 명만.”


심검자는 황보가와 천각문을 쭉 훑은 뒤,


“가족이 있어보이지는 않는데.”


“끅끅, 그런 건 아니오. 어떻소? 선생이 해줄 수 있을만한 일이오?”


“하나라 한다면.”


“심검자!”


언가의 무사가 목소리를 높였다.


“닥쳐라 놈. 죽어가는 자가 마지막으로 하는 부탁이다. 사사로운 부탁 하나 못 들어주겠느냐?”


“···좋소. 거기 자네. 이리 와 보시게.”


황보이문은 천각문의 가장 어린 무사 하나를 불렀다.


“예.”


패색이 드리운 무사의 얼굴이 어두웠다.


필시 자신만이 살아갈 것이라 여겨지니, 미안하고, 또 고마운 것이니라.


“뭐든지, 말만 하십시오.”


황보이문은 황보가의 무사들에게 소리쳤다.


“미안하구나! 내가 부덕하여 자네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아닙니다! 모실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무사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했다.


“가라, 천각문의 마지막 후예여. 가서 기주의 맹에 알려라! 진주언가가 황보세가를 멸문지화로 이끌었다고!”


언가의 무사들의 표정이 변했으며, 아까 전 언성을 높였던 무사는 다시 한번 심검자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심검자 또한 놀란 표정이었으나 순식간에 갈무리하여 웃었다.


“껄껄! 어린 놈이 제법이다. 그래, 네 아버지도 똑같았지. 너와 마찬가지였다!”


“심검자! 이는 안되는 말이오!”


무사가 따져묻자 심검자는 매섭게 눈을 뜨며 노려보았다.


“나는 언가와 약속한 바를 모조리 지켰음이다. 황보가의 가주는 죽었고, 소가주 또한 죽을 것이다. 이는 이제부터 별개의 문제가 되었다. 나 또한 너희가 어린 아이와 무고한 이를 죽이는 것을 방관하지 않았더냐?”


무사의 얼굴이 붉어졌다.


화를 몹시 참는 것이 보였다.


천각문의 무사는 그대로 말 한 필에 올라타, 파발로서 해야할 일을 곧장 이행했다.


언가의 무사들은 각기 무릎 꿇은 황보세가와 천각문의 곁에 섰다.


황보이문이 이대량에게 말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여 미안하게 되었소.”


“지난날의 은덕을 잊지 않겠습니다.”


언가의 무사가 이대량의 목을 쳤다.


각기 다른 울음소리가 마릉 위로 울려퍼졌다.


“그대 여동생에게 좋은 짝을 찾는 걸 돕지 못하게 되어서 어찌하오?”


그와 반대로 쉬어가는 목소리로 농을 던지는 황보이문.


받아들이는 무사가 소매로 뺨을 닦았다.


“제 짝도 못찾았는데 동생이 어찌 먼저 시집을 갑니까.”


무사의 목이 공중을 돌았다.


“언젠가 내 호위대로 삼겠다 했는데, 이 정도면 그대와 나는 약속을 지킨 셈 아니오?”


무사는 씁쓸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제 약속은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뭘.”


무사의 목이 땅으로 떨어졌다.


그렇게 모두에게 작별을 고하자 황보이문이 나지막히 읊조렸다.


“···다음 생엔 나보다 더 좋은 주군을 모시오.”


황보세가와 천각문이 모두 무로 돌아갔음에, 화를 감당치 못하는 언가 무사가 말했다.


“네 목숨은 네가 거둬주마.”


그러나 심검자가 칼을 들이밀며 막았다.


“어딜. 네 놈은 적장의 수급도 멋대로 뺏으려 드는 놈이었더냐? 참으로 무례하다, 무례해.”


“이게 무슨 짓이오, 심검자? 언가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는 것이오?”


“아니, 소가주는 죽는다. 이대로면 하루나 이틀 정도는 더 살 수 있겠지. 단전도 함께 망가뜨렸으니, 이 애송이는 무조건 죽어. 여기 이 평야에 약선이라도 사는게 아니고서는.”


“그렇다면 길을 내주시오. 약속을 이행하시오!”


“소가주는 내 손에 죽는다. 무례한 놈아.”


“그대가 소가주를 죽이겠다는 것이오?”


“그래.”


“···좋소. 그렇담 그렇게 이행하시오.”


심검자는 혀를 찼다.


언가의 무사들이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게 틀림없노라고.


언가놈들은 황보이문의 죽음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서 자리를 뜰 셈인 듯 했다.


심검자는 그게 몹시 못마땅하여,


“너희들의 집으로 돌아가라.”


라고 말했으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심검자, 약속을 이행하라 했을텐데, 그게 무슨 의미오?”


“내 이름을 걸고 다시 한번 언가와 약속하지. 황보이문은 죽는다.”


“당신 이름 그깟게 뭐라고! 칼잡이의 위명 따위에 가문의 사활을 걸듯 싶소? 아까 전 놈과의 약속도 그렇소. 그게 무슨 짓이오 도대체?”


“허허!”


심검자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세상에는 천금같은 이름이 있다! 하나 반대로 깃털같이 가벼운 이름도 있지! 그것을 모르는 것이 네 이름의 가치다!”


“심검자! 무례는 이만하면 충분하오!”


“시끄럽다! 하면 네 놈 뜻대로 칼로써 승부를 내겠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나를 꺾는 자! 황보세가의 핏줄을 끊어낼 영광을 가질 것이다!”


두 눈을 가리던 안대는 진즉에 끊어진 심검자는 두 눈을 희번뜩이며 떴다.


한치 앞도 볼 수 업는 봉사였으나, 그 때 한 순간만큼은 마치 눈이 보이는 것처럼, 거대한 살의를 품었다.


그럼에도 무사는 애써 덤덤한 척, 칼을 뽑아 제 앞에 꺼내들었고, 단 한 합의 여유 없이 심검자는 무사의 목을 베었다.


분수처럼 튀는 핏물에 얼굴이 흥건해진 심검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또 누가 강호에서 이름을 날려보고 싶은가!”


“염라인가!”


처형인을 넘어서 살귀(殺鬼) 염라대왕이 그려지는 광경이었다.


남은 무사들은 예로써 심검자에게 인사를 한뒤 언가로 돌아갔다.


필시 긍정적인 이야기를 가주에게 고하지는 않을 것이었지만, 그것을 알고도 심검자는 신경쓰지 않았다.


쿨럭이는 황보이문이 물었다.


“선생, 황천길 건너는 말동무라도 해주려 그러시는 것이오? 그렇담 필요없소. 먼저 간 이들이 나를 기다릴테니, 속히 이 질긴 명줄을 끊어주시오. 이 상태로 내리 이틀을 더 살고 싶진 않소.”


“쯔쯔, 어린 놈이 고약하구나. 노인네 나쁜 심보라 생각하고 아파도 참고 들어라.”


“허.”


“그렇게 눈 부라릴 것 없다.”


“뭐 좀 물어봐도 되겠소?”


“해봐라.”


“왜요. 보아하니 언가랑 사이가 그리 좋은 것도 아닌 듯 싶더니, 어째서 그 부녀가 죽게 내버려두었소?”


“내가 소리치면 말을 들을 놈으로 보이더냐?”


황보이문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죽을 때가 되어서 그런가, 모든 것이 몹시 원통하오. 이제 이 한 몸 흙이 된 뒤엔, 그 누구도 우리 가문을 기억해주지 않을 것이오. 역사가 되겠지. 한실(漢室)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오.”


“어린 놈이 세상 다 산 놈처럼 구는 게 참 웃기구나.”


심검자는 죽어가는 황보이문의 곁에 앉았다.


“···무섭소. 눈을 감는게 무서운게 아니오. 눈을 감은 뒤 이 땅에 펼쳐질 풍경이 너무나 두렵소. 수천만 백성들이 걷게 될 땅이 귀신의 땅이 될까 무섭소.”


심검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보시오, 선생. 아무래도 내가 살아남을 수는 없겠지?”


“안될 말이지. 이쪽도 약속한 거라니까.”


“큭, 그렇군···.”


각등의 인생에 크게 한 획을 긋게 될 두 인물이 실없는 농담을 주고 받는 동안, 천각문의 막내 무사는 뜻을 바로 세운 의병이라도 끌고 오겠다는 생각으로 가장 가까운 마을로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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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무림공적(2) 24.03.25 8 0 7쪽
3 무림공적 24.03.24 8 0 6쪽
2 정류장 23.09.30 14 0 6쪽
1 꿈-1 23.08.30 22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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