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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마을의 판타지 모험담

백열등이 점멸하는 밤

웹소설 > 일반연재 > 중·단편, 드라마

Toary
작품등록일 :
2023.06.30 21:00
최근연재일 :
2024.04.05 00:43
연재수 :
6 회
조회수 :
60
추천수 :
0
글자수 :
20,083

작성
23.08.30 00:33
조회
22
추천
0
글자
7쪽

꿈-1

DUMMY

꿈.


꿈이란, 사람이 수면 상태에서 일으키는 일종의 전자적 장애이다.


그렇기에 그것은 하나의 불편한 기억으로써 작용하기도 하고, 때때로 좋은 기억을 간직할 수 있게 만들기도 한다.


나에게 있어 꿈이라는 것은 보다 불쾌한 경험의 연속으로, 오히려 꿈을 꾼 뒤 나는 거대한 나른함에 짓눌리곤 했다.


꿈이 구체화된 기억으로 남진 않아도 흐릿한 인상으로 남아 일상에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일주일 전쯤에 상당히 희한한 일을 겪게 되었는데, 나는 그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아직까지 분간이 가지 않고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꿈' 따위로 치부하고 있다.


학교에 가서도 흐릿한 형태로 아른거리니, 아무래도 내가 귀신에 홀리기라도 한 것인가 싶었다.


한참을 걷다 휘청거릴 만큼, 내 피곤함은 계속해서 쌓여나가고 있었다.


침대에 들면 나는 그 꿈이 이어지지 않길 바랬다.


*


"오래 걸렸어."


눈 뜬 머리맡에 있는 것은 그 여자애였다.


그리고 알아챈 것이다.


일주일 전의 꿈이 다시 이어지는구나, 하고.


분명 뇌가 잠에 취해있을텐데도 이만한 상상력을 뿜어내는 것에 감탄했다.


선명함에 감탄했고 뒤이어 닥칠 몽롱함에 걱정했다.


눈 앞의 그녀를 본 순간 이미 나는 한숨을 내쉬어버렸으니, 꿈 속의 여자에 대한 배려심이라곤 없었다.


실제로 그만큼 여력 있는 느낌을 받지도 못했고, 숨길 생각도 없었다.


나는 그녀를 환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내 생각을 모르는 그녀는 방긋 웃을 뿐이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거야?"


그녀가 물어왔다.


그녀는 자신을 '해그'라 불렀다.


수면 중의 사람들을 악귀로부터 지킨다고 하는데 내가 보았을 때 그녀가 악귀에 더 가까워 보였다.


"피곤했어."


나는 짤막히 답했다.


20대 초반을 넘나드는 그녀의 얼굴.


꾸밈없이 화장이라곤 하지 않은 얼굴.


병색을 머금었다 볼 만큼 창백했지만 걱정은 들지 않았다.


주위를 살폈다.


일주일 전과 마찬가지로 나는 병실 한 자리에 있었다.


그 때 해그와 돌아보기로는 이것이 거대한 병동이었다.


이번엔 꿈이 얼마나 길게 이어질까.


"이번엔 얼마나 있다 갈 거야?"


내 속마음과 간격없이 들어온 질문이었다.


깜짝놀라 눈을 번뜩였지만 그녀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녀는 분명 나를 기다린 것이다.


꿈 속의 악귀에 불과한 주제에 나를 기다렸다니 그게 웃기기도 했지만.


"나도 몰라."


나도 답해줄 순 없었다.


저번에 이 꿈에서 떠나간 것도 내 의지와는 별개의 사안이지 않았던가.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여기서도 잠을 잘 수 있을까 싶었지만 해그가 빤히 쳐다보고 있을 거라 생각하면 그게 가능할 것 같진 않았다.


피곤한 기색이라는 것도 현실의 나에게나 해당되었지, 꿈속은 오히려 현실보다 살만한 공간이기도 했다.


주변의 침대를 살피니 여러 인물들이 고이 잠을 청하고 있었다.


병실에서 나는 알코올의 지독한 냄새가 느껴졌다.


저번과는 다른 경험이었다.


꿈은 상당히 불친절했다.


꿈이란 걸 알아도 자각몽의 행위같은 것은 불가했다.


그래도 영화 속 림보차원처럼 시간은 무한히 늘어지는 것 같았다.


불친절한 꿈은 나에게 슬리퍼 따위 내주지 않았다.


맨바닥의 차가움이 느껴졌다.


"어디 가는 거야?"


해그가 물어왔다.


"1층으로 내려가려고."


"저번에 했던 거 다시 하게?"


"응."


"그때도 1층까지 못갔잖아?"


"1층이 있긴 한거야? 그때 대체 몇시간을 내려간 건지."


"나도 몰라."


"나도 모른다니...."


당연한가.


꿈 속에 시계 따위 있을 리는 전무하니.


병실을 나서니 무한히 병실이 펼쳐졌다.


층의 복도는 텅텅 비어 오로지 나와 해그만이 있을 뿐, 인기척이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한 번도."


"응?"


"한 번도 나를 제외하고 사람을 본 적이 없었어?"


"응."


해그가 내 뒤를 따르며 답했다.


"한 명도 없었어?"


"완전 없진 않아!"


도대체 그게 무슨 답인 거니.


나는 애써 물음을 살피고 되물었다.


"그 사람은 어디로 간 거야?"


"오래 전에 사라졌어."


"나같은 사람이었어?"


"무슨 말인진 잘 모르겠는데."


"그냥 뭐, 평범하고.... 그런 사람?"


"아냐, 사람이긴 했는데."


그녀는 답을 찾는 듯 말을 끌었다.


"해그였지."


그래, 그게 도대체 무슨 답인 거니?


해그는 늘 답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굉장히 어눌했다 해야할까.


내 뇌가 만들어낸 존재는 이게 한계인 걸까 싶기도 했다.


층의 계단을 찾아 난간을 붙잡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계단 어디에도 층수는 적혀 있지 않았으므로 나는 그저 어림 짐작할 뿐이었다.


불친절한 병동엔 마찬가지로 창문이 없었다.


그저 내가 내려가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던 건, 층층마다 병실의 위치가 같았고, 그 안에서 자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각기 각색으로 달랐던 사실이었다.


꿈이라는 게 게임과 같고, 뇌가 컴퓨터의 램과 같이 끝이 있다면, 언젠가 이 세상은 리소스의 한계를 맞아 끝나지 않을까?


나는 해그의 얼굴을 들여보았다.


그녀는 갑자기 되돌아보는 내 얼굴을 마주하고 두세 걸음 뒷걸음질 쳤다.


"응??"


그녀는 그러한 내 돌발 행동에 큰 의문을 품은 듯 물어왔다.


나는 그것에 답하지 않고 다만 그녀의 얼굴을 면밀히 살폈다.


창백한 입술색, 둥그스름하게 눈을 따라 생긴 쌍꺼풀.


미인이네, 같은 생각과 동시에 든 하나의 생각.


'역시 나는 모르는 얼굴인데.'


병실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해그의 얼굴 어디에도 내가 익숙한 인물을 떠올리지 못했다.


'꿈이란 건, 기억에 근거해서 만들어지는 거 아닌가.'


그것이 참 의문이었다.


해그는 입술을 오물거리며 제 뺨을 부여감쌌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생각은 이미 아득히 먼 곳까지 뻗어나가 초등학교 인연까지 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삽질을 거듭해도 얻어낸 연관성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해그."


나는 곰곰히 곱씹다 물었다.


"예전에 만난 그 사람은 어디 갔어?"


"누구? 해그말야?"


나는 망치로 뇌를 맞은 듯 할말을 잃었다.


순간 제 이름을 그렇게 말한 것인가 싶었다가, 그것이 예전에 보았다는 '또다른 해그'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웃으며 답했다.


"어. 예전에 봤다는 그 해그말야."


"그 이후론 못봤어."


"그런데 그 사람이 자길 해그라고 했다고?"


"응."


"너랑 똑같이 생긴 사람이야?"


"응? 그건 아니지. 어떻게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어? 쌍둥이도 아니구 말야."


그녀가 까르르 웃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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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무림공적(3) 24.04.02 4 0 10쪽
4 무림공적(2) 24.03.25 8 0 7쪽
3 무림공적 24.03.24 8 0 6쪽
2 정류장 23.09.30 14 0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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